반코민테른 협정
Anti-Comintern Pact
반코민테른 협정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1936년 11월 25일 베를린에서 코민테른에 맞서 체결한 국제 조약이다. 공개 조항은 코민테른 활동에 대한 정보 교환과 방어 조치 협의를 규정했고, 비밀 의정서는 소련을 겨냥한 양국의 협력을 규정했으며, 이탈리아가 1937년 가입해 추축국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상세
명칭과 체결
방공 협정(防共協定) 또는 반코민테른 협정으로 불리며, 독일어 공식 명칭은 코민테른에 반대하는 협정으로 1937년 제국법령지에 공포되었다. 독일과 일본의 첫 정치 조약으로, 1936년 10월 23일 초안이 마련되어 11월 25일 베를린에서 일본 특명전권대사 무샤노코지 긴토모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서명했고 기한은 5년이었다.
히틀러는 1933년 국제연맹 탈퇴 이후의 고립을 깨고 소련을 겨냥한 수정주의 외교의 동맹자를 찾았고, 유럽에서는 영국과 폴란드를, 동아시아에는 일본을 상정했다. 영국과의 동맹 시도가 실패한 뒤에도 나치 독일의 대중국 협력이 걸림돌이 되어 협상은 지연되었다. 독일-일본 동맹 구상은 베를린 주재 일본 무관 오시마 히로시에게서 나왔으나 히틀러의 지지를 얻기까지 오랜 숙의가 필요했고,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외무장관을 비롯한 외무부의 직업 외교관들은 일본과의 결속에 반대했다.
조항과 비밀 의정서
공개 제1조는 코민테른 활동에 관한 정보 제공, 필요한 방어 조치의 협의와 그 실행에서의 긴밀한 협력을 규정했고, 제2조는 코민테른의 전복 활동으로 내부 안전이 위협받는 제3국에 협정 정신에 따른 방어 조치를 권고하거나 가입을 권유하도록 했다. 제3조는 일본어본과 독일어본을 정본으로 하고 5년 기한으로 서명일에 발효한다고 정했다. 의정서는 코민테른 활동에 관한 정보 교환, 국내외에서 코민테른을 직간접으로 돕는 자에 대한 현행법상의 엄격한 조치, 추가 방어 조치를 연구할 상설 위원회 설치를 규정했다.
비밀 추가 협정에서 양국은 소련의 도발이나 그 위협이 있을 경우 우호적 중립을 보장하고, 상호 동의 없이 협정의 정신에 어긋나는 정치 조약을 소련과 체결하지 않기로 했으며, 협정과 동시에 발효되어 같은 5년 기한을 가졌다. 일본은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 비밀 협정을 근거로 베를린에 항의했다.
확대와 균열
이탈리아는 1937년 11월 6일 가입했으나 비밀 추가 협정의 존재는 통보받지 못했다. 헝가리와 만주국이 1939년 2월 24일, 에스파냐는 1939년 3월 프랑코군의 마드리드 입성 직후 가입했는데, 가입일은 사료에 따라 3월 26일(러시아어 사료)과 3월 27일(독일어 사료)로 엇갈린다. 1941년 11월 25일 협정은 5년 연장되었고, 루마니아·핀란드·크로아티아·슬로바키아·불가리아와 점령하 덴마크, 난징의 왕징웨이 정부가 가입했으며 튀르키예가 옵서버 지위를 가졌다.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은 일본과 이탈리아에 알리지 않고 체결되어 협정과 '세계정치적 삼각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노몬한에서 붉은군대와 싸우던 일본은 이를 협정 위반으로 보았고, 히라누마 내각이 사임했으며 관계는 일시적으로 냉각되었다. 다만 일본이 1939년 8월 23일 협정을 공식 파기했다는 브리태니카의 서술과, 공식 파기 없이 거리를 두었다는 다른 사료의 서술이 엇갈려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다. 1940년 9월 삼국동맹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을 주된 위협으로 규정했고, 이로써 협정의 효력은 정지되어 회원국 지위는 대체로 명목적이 되었다. 협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멸했다.
성격과 구분
협정은 실질적 군사동맹이라기보다 상호 이념적 정렬과 외교적 결속의 선언에 가까웠으며, 일본의 서명자들은 이것이 소련에 대한 실질적 동맹이 되기를 기대했고 소련 지도부도 그렇게 인식했다. 명목상 반볼셰비키 세계관 동맹으로 제시되었으나, 협정과 비밀 의정서는 군사전략적 목표를 우선했다. 독일의 반코민테른 기구(GDAV)는 1933년 괴벨스가 세운 선전 기관으로, 나치 정권은 집권 이래 반공 노선을 취했고 이 기구는 반공·반소·반유대 선전을 통해 나치 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모으려 했다. 1935년 7월 코민테른 제7차 대회가 파시스트 독일과 일본을 주요 전쟁 도발자로 지목한 것도 협상에 영향을 주었다.
1939년까지 리벤트로프는 '세계정치적 삼각형'을 영국을 겨냥한 독일-일본-이탈리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에 한정된 1939년 5월 22일 강철 조약은 그 실패를 드러냈다. 협정이 1939~1940년 공개 군사동맹으로 전환되었다는 서술이 있는가 하면, 삼국동맹으로 효력이 정지되었다는 서술도 있어 사료가 엇갈린다.
사례
외교적 도구로서의 기능을 보여주는 사례로, 독일은 1922년 라팔로 조약과 1926년 베를린 조약을 소련과 체결했으나, 1936년 11월 25일 리벤트로프는 비밀 추가 의정서에 따라 이 조약들을 무효로 본다고 무샤노코지에게 통보했고 무샤노코지는 같은 날 일본 정부의 만족을 표했다. 같은 날 무샤노코지는 소련과의 어업 교섭 및 만주국과 소련의 국경 문제에 협정이 영향을 미치는지도 질의했고, 리벤트로프는 일본이 그 문제에서 자율적이라고 답했다. 1937년 5월 17일에는 오시마 히로시와 빌헬름 카나리스가 정보 교환과 소련에 대한 전복 계획을 담은 비밀 군사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의 체결은 미국이 대일 '오렌지' 전쟁 계획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supports the pact's formation by Nazi Germany and Japan on 25 November 1936, secret anti-Soviet protocol, and Italy's accession in 1937)
- 위키백과 (러시아어) (supports the Russian-language name, treaty purpose, articles, and subsequent accessions)
- avalon.law.yale.edu (Yale Avalon document collection listing the 25 November 1936 German-Japanese agreement, supplementary Anti-Comintern protocol, and 6 November 1937 three-power protocol)
- britannica.com (supports the dates, participants, ostensible anti-Comintern purpose, and implied anti-Soviet orientation)
- 위키백과 (영문)
- de.wikipedia.org
- 위키백과 (러시아어)
- britannica.com
- 위키백과 (한국어)
- avalon.law.yal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