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우파 투쟁
Anti-Rightist Campaign
백화제방 운동에서 당을 비판한 지식인·간부·학생을 「우파분자」로 규정해 처벌한 1957~1959년의 정치운동. 덩샤오핑이 실무를 총괄했고 각 단위에 할당 비율이 내려와 공식 집계로 약 55만 명이 우파로 낙인찍혀 강등·해고·노동교양·농촌 하방을 당했다. 지식인의 비판 통로가 막히면서 대약진의 과오를 견제할 힘이 사라졌고, 1978~1980년 대부분이 「착오 판정」으로 복권되었다.
상세
운동은 1957년 6월 8일 『인민일보』 사설과 마오의 당내 지시로 시작되었다. 표적은 먼저 민주당파와 언론계·학계의 유명 인사였고, 이어 각 기관과 대학에서 5% 안팎의 할당을 채우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딩링·아이칭 같은 작가, 마인추 같은 학자, 수많은 대학생과 중등교사가 포함되었으며 실제 낙인 수는 공식 집계보다 훨씬 많다는 추정이 있다.
처벌은 노동교양 제도의 확립과 맞물렸다. 1957년 8월 도입된 노동교양은 재판 없이 행정 결정으로 수용을 허용했고, 간쑤의 자볜거우 농장처럼 우파 수용소에서 대기근 시기에 대량 아사가 일어났다. 1959년 루산 회의 뒤 펑더화이 비판과 함께 「반우경」 운동이 당 내부로 확대되었다.
1978년 이후 당은 반우파 투쟁이 「필요했으나 심각하게 확대되었다」고 규정하며 약 55만 명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한 전원의 낙인을 취소했다. 운동 자체의 정당성은 공식적으로 유지되었고, 이 시기의 침묵이 대약진 재난의 정치적 조건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