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азаки (козаки) · 1492–현재

카자크

Cossacks

흑해·카스피해 북쪽 초원에서 자라난 동슬라브계 정교도의 무장 공동체와 그 구성원. 돈·쿠반·테레크·우랄·오렌부르크 등 「군단」 단위로 스타니차를 이루어 자치했고, 러시아 제국에서는 군역을 지는 대가로 특권을 누리는 신분이었다. 러시아 내전에서 카자크 지역은 백군의 근거지가 되었지만, 적색 카자크처럼 붉은 군대 편에서 싸운 이들도 많았다.

상세

「카자크」는 튀르크어로 「자유로운 사람」을 뜻하는 말에서 왔고, 15세기 말에는 드니프로강·돈강 하류의 황무지로 달아나 기병 공동체를 이룬 슬라브 농민을 가리키게 되었다. 국제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1492년 크림 칸의 항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러시아 제국은 남쪽 국경 방어와 비정규 기병 복무를 대가로 그들에게 자치와 특권을 주었고, 제정 말기에는 1905~1907년처럼 혁명 운동을 진압하는 경찰 노릇도 맡겼다. 1917년 카자크 군단들은 크루크(회의)와 아타만을 중심으로 자체 정부를 세웠고, 10월 혁명 뒤 돈의 칼레딘을 비롯한 아타만 다수가 소비에트 권력을 거부했다. 인민위원회의는 1917년 12월 22일 카자크의 군역과 특권을 폐지해 신분 자체를 없앴다.

가난한 카자크와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근로 카자크」의 토지를 지켜 주겠다는 볼셰비키 선전에 끌렸고, 1918년 봄까지 붉은 군대가 카자크 땅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곡물 징발이 반란을 불렀고, 카자크 공동체는 돈 공화국과 쿠반 인민공화국을 세워 의용군과 손잡았다. 1918년 말부터 1919년 초 사이 백군 편 돈·우랄·오렌부르크 카자크의 대량 탈영과 이탈은 붉은 군대에 기회를 주었지만, 1919년의 탈카자크화는 새로운 봉기를 불렀다. 1920년 백군이 패하자 카자크 8만~10만 명이 망명했고, 다른 많은 카자크 병사는 붉은 군대로 넘어가 폴란드 전쟁에서 싸웠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