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ризис безобразия. От кубизма к поп-арт · 1968

추함의 위기

The Crisis of Ugliness

소련 미학자 미하일 리프시츠와 그의 아내 레인가르트가 1968년 모스크바 이스쿠스트보 출판사에서 낸 현대미술 비판서로, 부제는 「입체파에서 팝아트까지」다. 입체파의 신화, 제2차 세계대전 뒤의 모더니즘, 팝아트를 차례로 다루고, 리프시츠가 1963년에 쓴 에세이 「나는 왜 모더니스트가 아닌가?」를 함께 실었다. 모더니즘을 20세기의 비합리주의와 힘의 숭배에 이어진 현상으로 비판해 ‘반모더니즘의 성서’라는 평과 반동적 보수주의라는 비난을 함께 받았다.

상세

왜 이 책이 문제작이 되었나?

1960년대 소련 미술계는 해빙기의 공기 속에 있었다. 1930~1950년대에는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퇴폐’나 ‘속임수’라며 비웃는 것이 공식 태도였지만, 국제 교류가 늘면서 어조는 누그러졌다. 서구 공산당 안에서도 프랑스 공산당의 이론가 로제 가로디처럼 피카소가 일으킨 혁명을 현대의 가장 큰 사건으로 꼽으며 모더니즘을 마르크스주의 안에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젊은 소련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모더니즘은 스탈린 시대의 획일성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추함의 위기』는 이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책은 리프시츠가 1960년대 전반에 쓴 입체파·팝아트 논문, 아내 레인가르트가 1949년에 쓴 전후 모더니즘론, 그리고 1966년 《문학신문》에 실려 파문을 일으킨 리프시츠의 에세이 「나는 왜 모더니스트가 아닌가?」를 묶은 것이다. 1967년에 원고가 준비되어 1968년에 나왔는데, 자유주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프라하의 봄’을 짓밟는 소련 탱크 소리를 배경으로 읽혔다. 그 뒤 리프시츠는 오랫동안 공식 정통파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러시아어 제목의 ‘베즈오브라지예’(безобразие)는 형체가 일그러진 추함을 뜻하면서 일상어로는 ‘꼴불견, 난장판’이라는 뜻도 지닌다. 영어판은 이를 ‘추함’(Ugliness)으로, 1971년 독일어판은 ‘추한 것’(das Häßliche)으로 옮겼다. 이 사전의 표제 『추함의 위기』는 원제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한국어 번역본은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왜 모더니스트가 아닌가?」는 무엇을 주장했나?

리프시츠는 이 글을 1963년 프라하의 잡지 《에스테티카》를 위해 썼고, 글은 1964년 체코어로, 1966년 동독 잡지 《포룸》에 독일어로 실린 뒤 같은 해 10월 8일 《문학신문》에 러시아어로 실렸다. 제목은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그리스도교인이 아닌가」를 흉내 낸 것이고, 리프시츠 스스로 장르의 법칙에 따라 “역설적으로 날을 세운” 답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답은 이랬다. 모더니즘이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운 심리적 사실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고, 그 사실이란 “힘의 숭배, 파괴의 기쁨, 잔인함에 대한 애호, 생각 없는 삶에 대한 갈망, 맹목적 복종”이다.

Потому что, в моих глазах, модернизм связан с самыми мрачными психологическими фактами нашего времени. К ним относится — культ силы, радость уничтожения, любовь к жестокости, жажда бездумной жизни, слепого повиновения.

그는 마티스나 모딜리아니가 나치 돌격대원과 친척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미리 못 박았다. 개인의 도덕성과 역사적 현상에 대한 판단은 별개라는 것이다. 그가 든 예는 이렇다. 1932년 안할트주의 나치 정부가 데사우의 바우하우스를 닫았을 때, 입체파를 지지하던 파리의 잡지 《카이에 다르》는 젊음과 생명력을 끌어모으려는 당이 왜 진정한 현대미술을 적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리프시츠는 이 논평에서 ‘야만인의 가짜 젊음’ 앞에 엎드린 시대의 분위기를 읽었다. 생명력과 본능을 이성 위에 놓고 대중의 맹목적 복종을 요구한 철학은 그 결과에 대해 비극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베르그송과 니체에 대한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다음이다. 근대 미학이 예술을 최면처럼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거나 마비시키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암시로 조종되는 군중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강령 앞에서라면 나는 가장 평범하고 가장 아류적인 아카데미즘에 표를 던지겠다. 그것이 더 작은 악이니까. 그러나 물론 나의 이상은 다른 데 있다.” 그 이상은 글 끝에 나온다. 카이사르는 신성한 군중 앞에서 감격하지만 “공산주의자에게는 신화에 눈먼 군중이 필요 없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민이다.” 리프시츠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라는 『공산당 선언』의 구절로 이를 뒷받침했다.

Цезарь умиляется перед священной толпой, коммунисту толпа, ослепленная мифом, не нужна. Ему нужен народ, состоящий из сознательных личностей.

입체파와 팝아트를 어떻게 읽었나?

책의 서문은 독일 동화 「외눈이, 두눈이, 세눈이」로 시작한다. 외눈이와 세눈이가 평범한 두눈이를 괴롭히다가 결국 망한다는 이야기다. 리프시츠와 레인가르트는 이 우화에서 외눈이와 세눈이가 서구를 지배하는 현대 예술 사조를 뜻한다고 밝히면서도, 두 가지를 덧붙였다. 오늘의 이야기꾼들은 두 눈이 다른 ‘보는 방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며 상대주의로 흐르고, 거꾸로 기사가 몽둥이로 외눈이를 벌주는 결말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외눈과 세눈은 몽둥이로 다스렸다고 해서 기형이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증명한 진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즈다노프 시대의 행정적 탄압을 겨눈 문장이다.

Одноглазость и трехглазость не перестали быть уродством оттого, что их лечили палкой. Истина, которую доказывают таким образом, больше теряет, чем выигрывает, — вот и все.

첫 장 「신화와 현실」은 1907~1908년 탄생한 입체파를 다룬다. 저자들은 대중에게 조롱받다가 뒤에 천재로 추앙받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현대의 신화라고 보았고, 플레하노프가 일찍이 내린 입체파에 대한 부정적 판결을 다시 꺼냈다. 그들은 입체파를 20세기 초, 세계를 착취하며 살찐 유럽의 “달콤한 삶” 속에서 나온 ‘사물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했다. 레인가르트가 쓴 둘째 장은 전후 추상미술과 리얼리즘의 모조품을 비판한다. 리프시츠의 셋째 장 「통조림 깡통의 현상학」은 팝아트를 다룬다. 가게에서 20센트에 팔리던 깡통이 유명 화가의 서명을 달고 화랑에서 2천 달러에 팔리고, 미술 잡지가 명나라 도자기와 조토의 프레스코와 함께 그것을 다루는 현상을 그는 취향의 경제학과 ‘반성의 병’으로 분석했다.

누가 어떻게 반응했나?

《문학신문》에 「나는 왜 모더니스트가 아닌가?」가 실리자 독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편집부에 미술사가, 화가, 물리학자, 학생의 편지가 쏟아졌고 상당수가 리프시츠를 규탄했다. 비평가 그리고리 포메란츠는 그가 모더니즘과의 전쟁이 누구에게 이로운지 보려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고, 스탈린 수용소에서 돌아온 레프 코펠레프는 그를 미학의 구교도 수장에 빗댄 편지를 보냈다. 신문은 토론으로 기획했지만 반론자가 마지막에 물러서는 바람에 그의 글은 공식 지침처럼 보이게 되었다. 1966년 12월 20일에는 1940~1950년대 형식주의 비판의 선봉이었던 알렉산드르 딤시츠가 반박문을 냈다.

리프시츠는 피카소 같은 화가를 파시즘의 공범으로 몰았다는 비난에 “나는 비극에 대해 썼지, 공범에 대해 쓴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론의 언어를 형법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속임수라는 것이다. 1968년 《철학의 문제》에 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서는 미학의 문제와 예술가의 시민적 권리의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며, 입체파와 추상미술과 팝아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즐길 시민적 권리를 가져야 하고 “수장고에 있는 말레비치와 칸딘스키를 모두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Я писал о трагедии, а не о пособничестве

이 구분은 공식 진영에도 낯설었다. 책이 나왔을 때 공식 언론은 침묵했고, 긍정적 서평은 토양주의 잡지 《옥타브르》에 실린 작가 이반 셰프초프의 글 하나뿐이었다. 1949년 반형식주의·반유대주의 소설을 썼던 그는 저자들의 “관대한 단서와 타협”을 물리치며 낯선 사상을 퍼뜨리는 자들이 영혼을 타락시킨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리프시츠의 모더니즘 비판은 행정적 금지를 요구하는 쪽과도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어떻게 읽히나?

역설적으로 이 책은 한 세대의 소련 예술가에게 현대미술 교과서 노릇을 했다. 그들은 여기서 처음으로 뒤샹, 폴록, 워홀, 라우센버그의 작은 흑백 도판을 보았고, 이브 클랭과 백남준의 첫 퍼포먼스에 대한 묘사와 서구 잡지의 최신 인용을 읽었다. 책은 1971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추한 것의 위기』로 번역되었고, 2018년에는 데이비드 리프의 번역으로 영어판이 나왔다. 영어판 출판사는 이 책을 시각예술의 모더니즘을 공격하면서도 스탈린주의 미학의 교조적 안주에 저항하는 소책자로 소개했다. 화가 드미트리 구토프는 이 책을 “반모더니즘의 진짜 성서이자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대표 이론서”라고 불렀다.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미학 안의 오래된 갈림길을 보여 준다. 루카치처럼 카프카와 조이스를 비판하며 리얼리즘을 지킨 쪽과, 블로흐·아도르노처럼 모더니즘에서 부서진 현실에 대한 저항을 읽은 쪽이다. 리프시츠는 앞쪽의 가장 극단적인 대변자였지만, 그의 비판의 칼끝은 예술을 강제로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라 생각 없는 복종과 신화를 찬미하는 문화를 향해 있었다. 그 구분을 놓치면 이 책은 스탈린주의의 잔재로만 보이고, 구분을 붙들면 대중문화와 미술 시장에 대한 이른 비판으로도 읽힌다. 이 사전의 ‘마르크스주의 미학 (리프시츠)’ 항목이 그 이론적 배경을 다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gutov.ru
  2. gutov.ru
  3. gutov.ru
  4. gutov.ru
  5. gutov.ru
  6. 위키백과 (러시아어)
  7. de.wikipedia.org
  8. historicalmaterialis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