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есталинизация · 1953년–1990년대(다파(多波)적 과정)

탈스탈린화

De-Stalinization

탈스탈린화는 스탈린 사망 이후 1953년부터 시작된 소련의 정치 개혁 과정으로, 스탈린 개인숭배를 극복하고 스탈린 치하에서 형성된 정치·이데올로기 체제인 '스탈린주의'를 철폐하려 한 일련의 조치를 가리킨다. 공식적 출발점은 1956년 2월 25일 제20차 당대회 비공개 회의의 흐루쇼프 비밀연설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였고, 이를 계기로 대규모 석방·복권과 굴라크 축소가 이어졌다. 학계는 이 과정을 흐루쇼프 시기, 고르바초프 시기, 소련 붕괴 이후라는 세 개의 '물결'로 구분하며, 1964년은 탈스탈린화 전체의 종료가 아니라 첫 번째 물결의 종료로 본다. '탈스탈린화'라는 용어 자체는 소련 붕괴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되었고, 흐루쇼프 시기에는 같은 조치를 공식적으로 '개인숭배 극복'으로 불렀다.

상세

정의와 용어

탈스탈린화는 스탈린 사망 이후 1953년에 시작된 정치 개혁의 과정으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극복하고 스탈린 치하에서 구축된 정치·이데올로기 체제, 즉 '스탈린주의'를 철폐하는 것을 뜻한다. '탈스탈린화'라는 용어는 소련 붕괴 이후에야 널리 쓰이게 되었고, 흐루쇼프 시기에는 같은 조치를 공식적으로 '개인숭배의 극복·폭로'라고 불렀다.

역사

스탈린의 진압 정책이 남긴 결과를 청산하는 첫 조치는 이미 1953년에 이루어졌다. 당·국가 체제의 부분적 개조와 합법성의 부분적 회복이 시작되었고, 굴라크 수용자 석방은 베리아가 주도했다. 이후의 '조용한 탈스탈린화'는 스탈린의 정책을 비공개로 수정해 나갔으며, 탈스탈린화는 경제에서 대규모 강제노동의 종말을 의미했다.

공식적인 출발점은 1956년 2월 25일 제20차 당대회 비공개 회의에서 행한 흐루쇼프의 비밀연설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였다. 이 연설은 대규모 진압을 규탄하면서 그 기원을 1934년으로 잡았고, 비공개 당 회의에서만 낭독되었으며 1956년 3월 18일까지 공개되지 않았고 소련에서 전문이 인쇄된 것은 1989년이었다. 연설 직후 수만 명의 정치범이 석방되었다. 고르바초프는 훗날 이 연설이 개인숭배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와 국가 운영 방식을 다룸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비밀연설은 탈스탈린화의 핵심이면서도 그 비판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스탈린의 잘못을 당에 대한 권력 남용으로 한정하고 일반 주민에 대한 대규모 테러는 사실상 지나갔으며, 1934년 이전의 스탈린 활동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유화'의 한계도 곧 드러났다. 연설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반발에 영향을 주었고, 9개월 뒤인 1956년 11월 소련 전차는 헝가리 봉기를 진압했다.

1960년대 후반 해빙이 끝나면서 탈스탈린화는 국가 정책의 지위를 잃고 지식인과 반체제 인사의 개별적 작업이 되었다. 브레즈네프 시기에는 스탈린의 부분적·간접적 복권 경향이 나타났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건 이후 추가적 탈스탈린화는 불가능해졌다. 첫 번째 물결이 완전히 끝난 것은 1965년부터라고 서술되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는 최고 국가 차원에서 탈스탈린화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분과 한계

탈스탈린화는 흐루쇼프 시기에 국한된 단일 사건이 아니라 세 개의 '물결', 즉 흐루쇼프의 물결, 고르바초프의 물결,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물결로 구분된다. 첫 번째 물결은 1956~1957년 전환기에 잦아들었고,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중단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로 이어졌다. 1990년 하반기부터는 이 과정이 일반적 탈레닌화와 탈공산화로 확대되었으므로, 탈스탈린화는 탈레닌화·탈공산화와 구별되면서도 역사적으로 그쪽으로 겹쳐 들어갔다. 기록상 종료 연도를 1964년으로 닫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례

탈스탈린화에는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지명을 바꾸고 소련 국가(國歌)에서 스탈린 관련 구절을 삭제한 일이 포함되었다. 공개적 개명에 이어 소련 전역에서 수백 개의 스탈린 기념물이 해체되었고 동유럽 여러 지역에서도 추가로 철거되었다. 이 과정은 1961년 제22차 당대회에서 정점에 이르러 스탈린의 시신이 레닌 묘에서 크렘린 벽 묘역으로 옮겨지고 스탈린그라드가 볼고그라드로 개칭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1년 이후에도 러시아 국가 차원의 탈스탈린화 시도가 있었으며, 2010년에는 세 번째 국가적 캠페인을 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대통령 직속 시민사회·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대중의식의 탈스탈린화'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de-Stalinization as a series of political reforms after Stalin's death, including the Secret Speech, rehabilitation, Gulag downsizing, renaming, and removal of Stalin's body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confirming the three 'waves' of de-Stalinization (Khrushchev, Gorbachev, post-Soviet) and the earliest 1953 steps by Malenkov and Beria
  3. britannica.com the Secret Speech as 'nucleus of a far-reaching de-Stalinization campaign,' with details on Khrushchev's specific charges against Stalin and the speech's role in the Hungarian and Polish revolts
  4. rferl.org RFE/RL 50th-anniversary retrospective with historians Medvedev and Gorbachev on the speech's 'colossal historical significance,' prisoner releases, and limits of the 1956 thaw
  5. 위키백과 (영문)
  6. 위키백과 (러시아어)
  7. britannica.com
  8. rfer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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