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국제 공산주의 운동 총노선에 관한 건의」와 소련공산당 「공개서한」 (1963)

인물마오쩌둥, 류사오치, 덩샤오핑, 니키타 흐루쇼프, 이오시프 스탈린, 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피델 카스트로, 존 F. 케네디 용어평화공존, 전인민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족해방운동, 개인숭배, 탈스탈린화, 수정주의, 9평, 고타강령 비판 사건중소분열, 쿠바 미사일 위기, 제20차 당대회와 비밀연설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2부 · 7장 핵 시대의 총노선은 평화공존일까, 혁명일까?

국제 공산주의 운동 총노선에 관한 건의 (1963년 6월 14일)

(1)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이론을 준칙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며, 이 준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1957년과 1960년의 두 차례 모스크바 회의는 충분한 의견 교환을 거쳐 협의 일치의 원칙에 따라 선언과 성명을 채택하였다. 이 두 문건은 우리 시대의 특징을 밝히고,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공통 법칙을 밝히고,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당의 공동 노선을 규정하였다. 선언과 성명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강령이다.

몇 해 전부터 국제 공산주의 대열 안에는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에 대해 분명히 서로 다른 인식과 태도가 있어 왔다. 이 서로 다른 인식과 태도의 중심 문제는 선언과 성명의 혁명 원칙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결국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10월 혁명의 길이 지니는 보편적 의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며, 아직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제도 아래 있는 세계 인구 3분의 2의 인민이 여전히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이미 사회주의의 길에 들어선 세계 인구 3분의 1의 인민이 여전히 혁명을 끝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혁명 원칙을 단호히 지키는 것은 이미 오늘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중요하고도 절박한 임무가 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학설을 견지할 때에만, 10월 혁명의 공동의 길을 견지할 때에만, 선언과 성명의 혁명 원칙을 올바로 인식하고 대할 수 있다.

(2)

선언과 성명의 혁명 원칙이란 무엇인가?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피압박 인민, 피압박 민족과 단결하여 제국주의와 각국 반동파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 민족 해방, 인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쟁취하며, 사회주의 진영을 공고히 하고 강대하게 하여,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의 완전한 승리를 한 걸음씩 실현하고, 제국주의도 자본주의도 착취 제도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우리가 보기에 이것이 현 단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이다.

(3)

이 총노선은 세계 현실의 전체 국면에서 출발한 것이고, 현대 세계의 기본 모순에 대한 계급 분석에서 출발한 것이며, 미 제국주의의 반혁명적 세계 전략을 겨냥한 것이다.

이 총노선은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핵심으로 삼아,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와 각국 반동파에 반대하는 광범한 통일전선을 세우는 노선이며, 대담하게 대중을 발동하고 혁명 세력을 키우며 중간 세력을 쟁취하고 반동 세력을 고립시키는 노선이다.

이 총노선은 각국 인민이 단호하게 혁명 투쟁을 벌여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는 노선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으로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지키는 노선이다.

만약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을 일면적으로 ‘평화공존’, ‘평화경쟁’, ‘평화이행’으로 귀결시킨다면, 그것은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혁명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의 역사적 사명을 내버리는 것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학설을 저버리는 것이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은 세계 발전의 일반 법칙을 표현해야 한다.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와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은 모두 서로 다른 단계를 거치고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겠지만, 세계사 발전의 일반 법칙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은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와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에 기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당이 자국의 구체적 노선과 정책을 정할 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자국 혁명과 건설의 구체적 실천과 결합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7)항 생략]

(8)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광대한 지역은 현대 세계의 온갖 모순이 집중된 지역이고, 제국주의 지배가 가장 약한 지역이며, 지금 제국주의를 직접 타격하는 세계 혁명 폭풍의 주요 지역이다.

이 지역들의 민족 민주 혁명은 현대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의 반제국주의 혁명 투쟁은 제국주의와 신구 식민주의의 지배 기반을 심각하게 타격하고 약화시키고 있으며, 오늘날 세계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힘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업 전체가 결국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지역 인민의 혁명 투쟁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의 반제국주의 혁명 투쟁은 결코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 사업 전체에 관계되는 전체 국면의 문제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의 반제국주의 혁명 투쟁이 지니는 위대한 국제적 의의를 감히 부정하면서, 민족과 피부색과 지리의 경계를 허문다는 따위의 구실로 피압박 민족과 압박 민족, 피압박 국가와 압박 국가의 경계를 지워 버리고 이 지역 인민의 혁명 투쟁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는 제국주의의 필요에 영합하여,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지배를 유지하고 신구 식민주의 정책을 밀고 나가도록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런 ‘이론’은 민족과 피부색과 지리의 경계를 정말로 허물려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우등 민족’의 피압박 민족 지배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런 기만적 ‘이론’이 이 지역 인민의 배척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회주의 국가들과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압박 민족은 단결하라”는 전투적 구호를 참되게 실현해야 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의 혁명 경험을 연구하며, 그들의 혁명 행동을 단호히 지지하고, 그들의 해방 사업을 자신에 대한 가장 믿음직한 지원으로, 자국 노동계급의 직접적 이익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민족과 피부색과 지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피압박 민족과의 연합 없이, 피압박 민족의 해방 없이, 유럽과 아메리카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이룰 수 없다. 레닌은 아주 올바르게 말하였다. “만약 유럽과 아메리카 노동자들의 반자본 투쟁이 자본에 억압받는 수천만 ‘식민지’ 노예들을 충분히, 가장 긴밀하게 결합하지 않는다면, 선진국의 혁명 운동은 사실상 하나의 기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국제 공산주의 대열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피압박 민족의 해방 투쟁에 대해 소극적이고 경멸하며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는 독점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보호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배반하여 스스로 사회민주주의자로 타락하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혁명과 비혁명을 가르는 중요한 표지이며, 누가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지키고 누가 침략 세력과 전쟁 세력을 부추기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다.

(9)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피압박 민족과 피압박 인민 앞에는 제국주의와 그 주구에 반대하는 절박한 임무가 놓여 있다.

역사가 이 지역 프롤레타리아 정당들에 부여한 영광스러운 사명은 제국주의 반대, 신구 식민주의 반대, 민족 독립 쟁취, 인민 민주주의 쟁취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 민주 혁명 운동의 맨 앞에 서서 사회주의의 전망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극히 광범하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 소부르주아지만이 아니라 애국적 민족 부르주아지, 나아가 애국적인 왕공 귀족의 일부까지도 포함된다.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정당은 인민 대중의 힘을 믿어야 하며, 무엇보다 농민과 연합하여 공고한 노농동맹을 세워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 분자들이 농촌에서 일하며 농민이 조직되도록 돕고, 그들의 계급 각성과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을 높이는 것은 첫째가는 중요성을 지닌다.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정당은 노농동맹을 바탕으로 단결할 수 있는 모든 계층을 단결시켜 제국주의와 그 주구에 반대하는 광범한 통일전선을 조직해야 한다. 이 통일전선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려면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사상적·정치적·조직적으로 독자성을 지키고 혁명의 영도권을 견지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정당과 혁명적 인민은 무장투쟁의 방식을 포함한 온갖 투쟁 방식을 배워야 한다. 제국주의와 그 주구가 무력 탄압을 가하는 상황에서는 혁명의 무장력으로 반혁명의 무장력을 쳐부수어야 한다.

새로 정치적 독립을 얻은 일련의 민족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정치적 독립을 공고히 하고, 제국주의 세력과 국내 반동파에 반대하며, 토지개혁과 그 밖의 사회 개혁을 실행하고, 민족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어려운 임무를 안고 있다. 이 나라들에는 낡은 식민주의자들이 신식민주의 정책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을 경계하고 반대하는 것, 특히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경계하고 반대하는 것이 중요한 현실적 의의를 지닌다.

일부 신생 독립국의 애국적 민족 부르주아지는 계속 인민 대중과 함께 서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사회 진보에 이로운 조치들도 취하고 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정당에 애국적 민족 부르주아지의 진보적 역할을 충분히 평가하고 그들과의 단결을 공고히 할 것을 요구한다.

일부 신생 독립국의 부르주아지, 특히 대부르주아지는 국내의 사회 모순과 국제 계급투쟁이 첨예해짐에 따라 점점 더 제국주의에 붙어 반인민적·반공적·반혁명적 정책을 펴고 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정당에 이런 반동 정책에 단호히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 나라들의 부르주아지는 양면성을 지닌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부르주아지와 통일전선을 세울 때 연합하면서 투쟁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부르주아지의 반제·반봉건적 진보 경향에 대해서는 연합의 정책을, 그들이 제국주의 및 봉건 세력과 타협하고 결탁하는 반동 경향에 대해서는 투쟁의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민족 문제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세계관은 국제주의이지 민족주의가 아니다. 혁명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진보적 민족주의를 지지하고 반동적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어느 때에도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하며 그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1960년 성명은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 속의 반동파가 이기적이고 편협한 계급 이익을 민족 전체의 이익으로 사칭하려는 기도를 폭로하고, 부르주아 정객들이 같은 목적으로 사회주의 구호를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폭로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에서 지주와 부르주아지의 꼬리가 된다면, 민족 민주 혁명이 진정하고 철저한 승리를 거두기란 불가능하며, 설령 어떤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것을 공고히 하기란 불가능하다.

피압박 민족과 피압박 인민의 혁명 투쟁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파에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 독립과 인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강령을 독자적으로 제기하고, 독자적으로 대중 사업을 벌이며, 진보 세력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중간 세력을 쟁취하며 반동 세력을 고립시킬 때에만, 민족 민주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고 혁명을 사회주의의 궤도로 이끌 수 있다.

(10)

제국주의 국가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철저히 해결하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해야 한다.

이 임무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현재의 조건 아래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노동계급과 그 밖의 근로 인민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독점자본에 반대하는 투쟁, 민주적 권리를 지키는 투쟁, 파시즘의 위험에 반대하는 투쟁, 생활 개선을 쟁취하는 투쟁, 제국주의의 군비 확장과 전쟁 준비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지키는 투쟁을 벌여야 하며,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미 제국주의가 지배하거나 지배하려 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계급과 인민 대중의 주된 타격 대상은 미 제국주의이며, 아울러 민족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독점 부르주아지와 그 밖의 국내 반동 세력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난 갖가지 대규모 대중 투쟁은 이 나라들의 노동계급과 그 밖의 근로 인민이 새로운 각성 속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투쟁은 독점자본과 반동 세력을 타격하여 자국 혁명 사업에 밝은 전망을 열어 줄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 인민의 혁명에 대한 힘 있는 지원이며 사회주의 진영 각국에 대한 힘 있는 지원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국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혁명 투쟁을 이끌 때 사상적·정치적·조직적으로 자신의 독자성을 지켜야 한다. 동시에 단결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단결시켜 독점자본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광범한 통일전선을 세워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은 당면 투쟁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가운데 이 투쟁들을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이익을 위한 투쟁과 결합해야 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정신으로 대중을 교육하여 대중의 각성을 끊임없이 높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눈앞의 운동을 전부로 여기며 그때그때 임시변통하고 눈앞의 사태에 영합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근본 이익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사회민주주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사조이다. 레닌은 일찍이 사회민주당이 부르주아지의 정치 부대이고, 노동운동 속 부르주아지의 대리인이며, 부르주아지의 주요한 사회적 지주라고 지적하였다. 공산주의자는 어느 때에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기본 문제에서 사회민주당과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하며, 국제 노동운동과 각국 노동자 대중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사상적 영향을 일소해야 한다. 물론 공산주의자는 사회민주당의 영향 아래 있는 대중을 쟁취해야 하고, 사회민주당 안에서 자국 독점자본과 외국 제국주의의 지배에 반대하려는 좌익 분자와 중간 분자를 쟁취하여, 노동운동의 일상 투쟁과 세계 평화를 지키는 투쟁에서 그들과 광범한 공동 행동을 실현해야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밖의 근로 인민을 이끌어 혁명을 하기 위해 모든 투쟁 형식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고, 투쟁 정세의 변화에 따라 한 투쟁 형식을 다른 투쟁 형식으로 신속히 바꿀 줄 알아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는 평화적인 것과 무장한 것, 공개적인 것과 비밀스러운 것,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의회의 것과 대중의 것 따위 모든 투쟁 형식을 손에 쥐고 있을 때에만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 않는 자리에 설 수 있다. 의회 투쟁과 그 밖의 합법 투쟁 형식을 이용해야 하고 이용할 수 있는 때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의회 숭배자, 합법주의자가 되어 투쟁을 부르주아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가두어 버린다면, 그것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취소하는 데로 이어진다.

(11)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의 문제를 대할 때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혁명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설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는 언제나 평화적 방식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평화이행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새로운 세계 전략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가 국가 권력의 문제라고 늘 여겨 왔다.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은 모두 분명히 지적하였다. “레닌주의는 지배계급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며, 역사적 경험도 이를 증명한다.” 어떤 낡은 정부도 밀어 넘어뜨리지 않으면 위기의 시대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계급투쟁의 보편 법칙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혁명의 평화적 발전 가능성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의 평화적 발전의 기회는 “혁명의 역사에서 매우 드문 기회”이다.

사실 지금까지 세계사에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한 선례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회주의가 반드시 자본주의를 대신하리라고 예언했을 때에도 선례는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선례가 없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하리라고 예언하면 안 되는가?

이것은 터무니없는 비유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분석하고 인류 사회 발전의 객관적 법칙을 발견하여 과학적 결론을 얻었다. 반면 모든 희망을 ‘평화이행’에 거는 예언가들은 역사적 관념론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을 지워 버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투쟁 학설을 어기며 아무 근거 없는 주관적 억측을 내놓았다. 마르크스주의를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마르크스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 모두가 보고 있듯이, 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국가기구, 특히 군사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무엇보다 자국 인민을 진압하는 데 있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결코 자신의 사상과 혁명 방침과 모든 사업을 제국주의와 반동파가 평화적 변혁을 받아들이려 하리라는 예측 위에 세워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두 가지 손을 준비해야 한다. 곧 혁명의 평화적 발전을 준비하는 동시에 혁명의 비평화적 발전에도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주된 주의력을 혁명 역량을 꾸준히 힘들여 쌓는 데 두어,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혁명의 승리를 쟁취하거나, 제국주의와 반동파가 기습과 무력 공격을 감행할 때 힘 있게 반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의지를 마비시키고, 사상적으로 스스로를 무장 해제하며, 정치적·조직적으로 아무 준비도 없는 수동적 처지에 빠져 결국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업을 망치게 될 것이다.

[(12)~(13)항 생략]

(14)

몇 해 전부터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적지 않게, 충분히 많이 이야기되었다.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한 우리의 관점과 정책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며, 누구도 왜곡할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안의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얼마나 전쟁을 증오하는지 이야기하면서도, 전쟁 문제에 관해 레닌이 말한 단순명료한 진리는 조금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레닌은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 전쟁 문제에서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고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며, 그래서 이른바 공허하고 쓸데없는 논쟁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기본 문제이다. 곧 이 전쟁이 어떤 계급적 성격을 지니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어떤 계급들이 수행하는가, 어떤 역사적 조건과 역사적·경제적 조건이 그것을 낳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보기에 전쟁은 정치의 다른 수단에 의한 계속이며, 모든 전쟁은 그것을 낳은 정치 제도와 정치 투쟁에서 떼어 낼 수 없다. 세계의 모든 계급투쟁의 역사가 증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 과학적 논점을 떠나서는 전쟁의 문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평화의 문제도 이해할 수 없다.

평화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전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그것이 어떤 평화이고 어떤 전쟁인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을 구별하지 않고 한데 뒤섞어 일률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관점이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점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 없이도 혁명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전쟁을 말하는가? 민족해방전쟁과 국내 혁명전쟁인가, 아니면 세계 전쟁인가?

민족해방전쟁과 국내 혁명전쟁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말은 실제로는 혁명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며 곧 혁명에 반대하는 것이다.

세계 전쟁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히 과녁 없이 활을 쏘는 격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역사에 근거해 세계 전쟁이 필연적으로 혁명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설명한 적은 있지만, 혁명이 반드시 세계 전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주장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전쟁의 소멸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으며 전쟁은 소멸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전쟁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레닌은 이렇게 보았다. “우리의 목적은 사회주의 제도를 세우고, 인류가 계급으로 나뉘는 현상을 없애고,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착취하는 현상을 없애서 전쟁이 아예 일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1960년 성명도 분명히 말한다. “사회주의가 전 세계에서 승리하면 모든 전쟁을 낳는 사회적 원인과 민족적 원인이 최종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은 제국주의 제도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제도가 아직 존재하는 조건에서도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통해 ‘무기도 군대도 전쟁도 없는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상식은 군대가 국가기구의 주요 부분이며, 이른바 무기도 군대도 없는 세계란 국가가 없는 세계일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레닌은 말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를 무장 해제한 뒤에야 자신의 세계사적 임무를 저버리지 않고 모든 무기를 없앨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때에만, 결코 그 이전에는 아니다.”

세계의 현실은 또 어떠한가?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서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실행할 준비의 그림자라도 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그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비 확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제국주의의 군비 확장과 전쟁 준비를 폭로하고 반대하기 위해 우리는 보편적 군축의 주장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사회주의 진영 각국과 전 세계 인민이 연합하여 투쟁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어떤 군축 협정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세계 평화를 쟁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길로 삼고, 제국주의가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으리라는 환상을 퍼뜨리며, 군축을 구실로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취소한다면, 그것은 고의로 세계 인민을 속이고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에 봉사하는 것이다.

지금 국제 노동운동에서 전쟁과 평화 문제를 둘러싼 사상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내버린 레닌의 논점을 되살리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데 이롭고, 세계 평화를 지키는 투쟁에 이롭다.

새로운 세계 전쟁을 막는 것은 세계 인민의 보편적 요구이다. 새로운 세계 전쟁을 막는 것은 가능하다.

지금의 문제는 세계 평화를 쟁취하는 길이 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레닌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평화는 세계 각국 인민이 싸워서 얻어 내는 것일 뿐, 제국주의에 구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진영 역량의 발전에 의거하고,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 인민의 혁명 투쟁에 의거하고, 피압박 민족의 해방 투쟁에 의거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인민과 국가의 투쟁에 의거할 때에만 세계 평화를 힘 있게 지킬 수 있다.

레닌주의의 정책이 바로 그러하다. 이와 반대되는 정책은 결코 세계 평화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제국주의자들의 야심을 부추기고 세계 전쟁의 위험을 키울 뿐이다.

최근 몇 해 사이 어떤 사람들은 민족해방전쟁과 인민 혁명전쟁의 작은 불씨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세계대전으로 번질 것이라는 논조를 퍼뜨리고 있다. 사실은 어떠한가? 정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많은 민족해방전쟁과 인민 혁명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혁명전쟁들의 승리는 제국주의의 힘을 직접 약화시켰다. 사실이 이 논조가 지극히 터무니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15)항 생략]

(16)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평화공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은 레닌이 제기한 것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위대한 소련 인민이 외국의 무력간섭을 물리친 뒤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 정부는 레닌의 영도 아래, 그 뒤로는 스탈린의 영도 아래 줄곧 이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했으며, 독일 제국주의자들이 공격해 왔을 때에야 어쩔 수 없이 자위 전쟁을 벌였다.

중화인민공화국도 성립 이후 줄곧 사회제도가 다른 나라들과 평화공존하는 정책을 견지해 왔으며, 평화공존 5원칙의 제창자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레닌이 제기한 평화공존 정책을 갑자기 자신의 ‘위대한 발견’으로 치고, 이 정책의 해석에 대한 독점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평화공존’을 만물을 다 품은 불가사의한 천서(天書)로 여기고, 세계 각국 인민의 모든 투쟁 성과와 모든 공로를 이 천서에 기록해 넣는다. 그들은 또 레닌의 뜻을 이렇게 왜곡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평화공존의 반대자로,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로, 천하의 대역무도한 이단자로 몰아붙인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런 관점과 방식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평화공존에 관한 레닌의 원칙은 아주 명료하며 보통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화공존은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며, 제멋대로 해석할 수 없다. 어느 때에도 평화공존을 피압박 민족과 압박 민족, 피압박 국가와 압박 국가, 피압박 계급과 압박 계급의 관계로까지 끌어 넓혀서는 안 되고, 평화공존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의 주된 내용이라고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평화공존이 전 인류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 사이에 평화공존을 실행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평화공존은 공존하는 국가들의 사회제도를 터럭 하나도 건드리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으며 또 건드릴 수도 없다. 반면 각국의 계급투쟁, 민족해방투쟁,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또 다른 일이다. 이 투쟁들은 모두 사회제도를 바꾸기 위한, 격렬하고 사생결단의 혁명 투쟁이다. 평화공존은 결코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을 대신할 수 없다. 어떤 나라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오직 자국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서만 가능하다.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는 정치·경제·이데올로기 등 여러 방면에서 투쟁이 불가피하게 존재하며, 결코 무슨 ‘전면적 협력’일 수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와 이런저런 협상을 벌이는 것은 필요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올바른 정책과 각국 인민 대중의 압력에 의거하여 협상을 통해 어떤 협정을 맺는 것은 가능하다. 사회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어떤 필요한 타협이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에게도 그에 따라 제국주의와 그 주구에 타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때에도 누구든 평화공존의 이름으로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에게 자신의 혁명 투쟁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가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평화로운 국제 환경을 쟁취하는 데 이롭고,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폭로하는 데 이로우며, 제국주의의 침략 세력과 전쟁 세력을 고립시키는 데 이롭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대외 정책 총노선을 평화공존에 국한한다면,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처리할 수 없고, 사회주의 국가와 피압박 인민 및 피압박 민족 사이의 관계도 올바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평화공존을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총노선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보기에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총노선은 다음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곧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 아래 사회주의 진영 각국 사이의 우호·호조·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5원칙에 기초하여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쟁취하며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에 반대하고, 모든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은 서로 이어져 있어 나눌 수 없으며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17)

프롤레타리아트가 정권을 얻은 뒤의 매우 긴 역사적 시기 동안에도 계급투쟁이 계속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는 객관적 법칙이다. 다만 계급투쟁의 형식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정권을 잡기 전과 다를 뿐이다.

10월 혁명 이후 레닌은 여러 차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1. 타도된 착취자들은 늘 온갖 방법으로 빼앗긴 ‘천국’을 되찾으려 한다.

2. 소부르주아지의 자생적 세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본주의 분자를 낳는다.

3. 노동계급의 대열 안에서도, 국가기관 직원들 사이에서도, 부르주아지의 영향과 소부르주아 자생 세력의 포위와 부식 작용 때문에 일부 변질 분자, 새로운 부르주아 분자가 생겨날 수 있다.

4. 국제 자본주의의 포위, 제국주의 무력간섭의 위협, 평화적 와해의 음모 활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계급투쟁이 계속 존재하는 외부 조건이다.

실제 생활은 레닌의 이 논단들을 증명하였다.

어떤 사회주의 국가도 사회주의 공업화와 농업 집단화를 이룬 뒤 수십 년, 아니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더라도, 레닌이 거듭 통렬히 비판한 부르주아 식객, 기생충, 투기꾼, 사기꾼, 게으름뱅이, 불량배, 국고 도둑 같은 분자가 그곳에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이 제기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남겨 준 이 전염병과 역병과 궤양을 없애는” 임무를 이제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나 내버려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가운데 누가 누구를 이기느냐의 문제는 매우 긴 역사적 시기를 거쳐야 점차 해결될 수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길의 투쟁은 그 역사적 시기 전체를 관통한다. 이 투쟁은 오르내리며 물결처럼 나아가고, 때로는 매우 격렬하기까지 하다. 투쟁의 형식은 갖가지이다.

1957년 선언은 훌륭하게 말하였다. “노동계급에게 정권을 잡는 것은 혁명의 시작일 뿐 혁명의 끝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의 계급투쟁을 부정하고, 경제 전선과 정치 전선과 사상 전선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철저히 완수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며, 객관적 사실에 맞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에 어긋난다.

(18)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모두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속하며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기라고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곧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이 과도기 동안 수립되고 공고해지고 강화되었다가 점차 사멸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혁명적 전화의 시기가 가로놓여 있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 과도기도 상응하며,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위대한 학설을 자주 힘주어 거듭 밝혔다. 특히 『국가와 혁명』이라는 위대한 저작에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학설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를 향해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것은 ‘정치적 과도기’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며,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

레닌은 또 말하였다. “한 계급의 독재가 계급 사회 일반에,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계급 없는 사회’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시기 전체에 걸쳐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만이 마르크스 국가론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기본 사상은 이렇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시기 전체, 곧 모든 계급 차이가 없어지고 계급 없는 사회에 이르기 전의 시기,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들어서기 전의 시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계속 존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만약 도중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제 필요 없다고 선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근본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론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남겨 준 전염병과 역병과 궤양”이 퍼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그것은 지극히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며, 공산주의로의 이행 문제 따위는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게 될 것이다.

무슨 ‘전인민국가’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무슨 ‘전인민국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어느 한 나라의 내정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에 관련된 근본 문제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보기에 비계급적이고 초계급적인 국가란 없다. 국가인 한 언제나 계급성을 지니며,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인민’의 것일 수 없다. 사회에 계급이 없어지면 국가도 없어진다.

그렇다면 이른바 ‘전인민국가’란 어떤 물건이 되겠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이른바 ‘전인민국가’는 무슨 새로운 물건이 아니다.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은 늘 부르주아 국가를 ‘전인민국가’라고, 또는 ‘전인민 정권의 국가’라고 불러 왔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는 이미 계급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대답한다. 아니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는 예외 없이 계급과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그곳에 아직 복벽을 꾀하는 낡은 착취계급의 잔재 분자가 있고, 그곳에서 아직 새로운 부르주아 분자가 끊임없이 생겨나며, 그곳에 아직 기생충, 투기꾼, 게으름뱅이, 불량배, 국고 도둑 따위가 있는데, 어떻게 계급과 계급투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임무는 적대 계급을 진압하는 것 말고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노동계급과 농민의 관계를 올바로 처리하고, 노동계급과 농민의 정치적·경제적 동맹을 공고히 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 차이를 점차 없앨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보면,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는 예외 없이 전인민적 소유와 집단적 소유의 차이가 있고, 개인 소유도 아직 존재한다. 전인민적 소유와 집단적 소유는 사회주의 사회의 두 가지 소유제이며, 사회주의 사회의 두 가지 생산관계이다. 전인민적 소유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집단적 소유 농장에서 일하는 농민은 사회주의 사회의 두 부류의 근로자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는 예외 없이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는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넘어가야만 사라질 수 있다. 지금 모든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 발전 수준은 아직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 차이를 없애는 데는 아직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계급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급 없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를 ‘전인민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부르주아 국가론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론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닌가? 다른 성격의 국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역사의 큰 후퇴일 수밖에 없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제도의 변질이 바로 심각한 교훈이다.

(19)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시기 전체에 걸쳐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없어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의 적에 반대해야 하고, 농민과 그 밖의 소생산자를 개조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을 늘 정비해야 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공산주의로 넘어가야 하는데,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영도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전인민의 당’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무슨 ‘전인민의 당’으로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당을 대신할 수 있는가?

이 문제 또한 어느 한 나라 당의 내부 문제가 아니며, 역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에 관련된 근본 문제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보기에 비계급적이고 초계급적인 정당이란 없다. 모든 정당은 계급성을 지닌다. 당성은 계급성의 집중적 표현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은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그것이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이익의 대표자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과 의지를 집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체 인민을 영도할 수 있는 까닭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전 인류를 해방해야만 마침내 자기 자신을 해방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본성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재와 장래의 이익에 따라 문제를 생각하고 인민에게 끝없는 충성과 자기희생 정신을 지니며, 그리하여 당의 민주집중제와 강철의 규율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할 수 없고,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들어서기 전의 시기에, 만약 도중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이 이미 무슨 ‘전인민의 당’이 되었다고 선포하고 당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근본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정당론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조직적으로, 정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모든 근로 인민을 무장 해제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의 복벽에 봉사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남쪽으로 가려 하면서 수레는 북쪽으로 모는 격이 아니겠는가?

(20)

몇 해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지도자, 정당, 계급, 대중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한 레닌의 완결된 학설을 어기고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제기해 왔는데, 이것은 잘못이고 해롭다.

이 문제에 관해 레닌이 제기한 학설은 다음과 같다.

1. 대중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2. 계급은 보통 정당이 이끈다.

3. 정당은 보통 비교적 안정된 집단이 운영하며, 이 집단은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경험 많은, 가장 중요한 직책에 선출되어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레닌은 이것들이 “모두 초보적인 상식”이라고 말하였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투의 지휘부이다. 어떤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든 민주주의에 기초한 집중제를 실행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강력한 영도를 세워야만 조직되고 전투력 있는 전위가 될 수 있다.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제기하는 것은 실제로는 지도자를 대중과 대립시키고, 당의 민주집중제의 통일된 영도를 파괴하며, 당의 전투력을 흐트러뜨리고, 당의 대열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레닌은 지도자를 대중과 대립시키는 그릇된 관점을 비판하였다. 그는 그것이 “참으로 터무니없고 우스울 만큼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였다.

중국공산당은 개인의 역할을 과장하는 데 늘 찬성하지 않았으며, 당의 민주집중제를 실행할 것을 주장하고 견지해 왔고, 영도와 대중의 결합을 주장해 왔으며, 올바른 영도는 모두 대중의 의견을 잘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겨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요란하게 벌이면서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을 추악하게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악하게 그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개인들의 역할은 크게 떠벌리고, 모든 잘못은 남에게 떠넘기며 모든 공적은 자기에게 돌린다.

더 심각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구실로 다른 형제당과 형제국의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하고, 다른 형제당의 지도부를 강제로 바꾸어 자신의 그릇된 노선을 다른 형제당에 강요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짓이 대국 배외주의, 종파주의, 분열주의가 아니고 전복 활동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지도자, 정당, 계급, 대중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한 레닌의 완결된 학설을 진지하고 전면적으로 선전할 때가 되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당 조직들과 소련의 모든 공산주의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1963년 7월 14일)

[머리말과 Ⅰ장 생략]

Ⅱ

한편으로 중국공산당과, 다른 한편으로 소련공산당 및 국제 공산주의 운동 사이의 의견 차이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6월 14일 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틀림없이 이런 물음을 품게 될 것이다.

이 서한의 많은 명제는 처음 보면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다. 도대체 중국 동지들은 누구와 논쟁하고 있는가? 이를테면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거나,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을 자기 의무로 여기지 않는 공산주의자가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무엇 때문에 이런 명제들을 그토록 집요하게 내세우는가?

이런 물음도 생길 수 있다. 중국 동지들이 서한에서 여러 중요한 문제에 관해 밝힌 입장에 왜 동의할 수 없는가? 전쟁과 평화라는 근본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서한에서 평화와 평화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이렇다. 현대의 근본 문제들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의 방침을 상대로 공세를 시작한 중국 동지들은, 첫째로 소련공산당과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이 한 번도 표명한 적 없고 그들에게 낯선 견해를 그들에게 덮어씌우고, 둘째로 공산주의 운동의 문서에서 가져온 정식과 방침을 말로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그릇된 견해와 잘못된 입장을 가리려 애쓴다. 평화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 군축 따위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나선다면 전 세계 공산주의자와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 앞에서 자기 입장을 드러내 그들을 자기에게서 떼어 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논쟁이 깊어질수록,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이 약하다는 것이 드러날수록 지도부는 더욱 열심히 이런 위장에 기댄다. 중국 동지들의 이런 수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밖에서 보기에는 논쟁이 스콜라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삶의 문제와 동떨어진 개별 문구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민들의 사활적 이익에 관계되는 문제들이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역할과 발전의 문제, ‘개인숭배’의 이데올로기와 관행에 맞선 투쟁의 문제, 세계 노동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의 전략과 전술의 문제이다.

이 문제들을 제기한 것은 삶 그 자체, 곧 사회주의 나라들과 온 세계에서 일어난 깊은 변화, 최근 몇 해 사이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역관계에 생긴 변화, 우리 운동 앞에 열린 새로운 가능성이다. 공산주의 운동은 이 문제들에 답해야 했고 실제로 답하였다. 세계 발전의 현 단계가 지닌 조건과 요구에 맞추어 총노선을 정식화한 것이다.

공산당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르면, 이 점에서 거대한 역할을 한 것은 공산주의 운동 전체의 발전에 새로운 단계를 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였다. 이 평가는 현시대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정치 노선을 정식화한, 공산당들이 집단적으로 작성한 문서인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이제 그것에 맞서 다른 노선을 내세웠고, 그들의 입장은 기본 문제들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과 점점 더 어긋나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해당한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평가하고 그 해결에 다가서는 데에는 어떤 모호함이나 얼버무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인민들의 운명, 전 인류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우리 사이에, 세계 공산주의 운동과의 사이에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의견 차이가 생겼다는 것을 당과 인민에게 숨김없이 말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 그 본질은 세계 열핵전쟁을 막을 가능성,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 평화를 위한 투쟁과 세계 혁명운동의 발전 사이의 상호 관계 같은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정반대의 접근에 있다.

우리 당은 제20차 대회와 제22차 대회의 결정에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선언과 성명에서 평화를 위한 투쟁, 세계 열핵 파국의 방지를 공산주의자들 앞에 첫째가는 과제로 제시하였다. 우리는 세계의 역관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거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제국주의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고 전쟁 발발의 위험도 없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강력한 공동체를 주된 보루로 하는 평화 세력이 힘을 합쳐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전쟁 수단의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전쟁의 가능한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금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로켓-핵무기는 전쟁에 관한 예전의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이 무기는 전례 없는 파괴력을 지닌다. 강력한 열핵폭탄 단 한 발의 폭발력이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지난 모든 전쟁에서 쓰인 모든 전투 수단의 폭발력을 넘어선다는 것만 말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폭탄이 수천 발이나 쌓여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이 위험을 무시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는 열핵전쟁의 결과에 관한 모든 진실을 인민에게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물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동지들이 주장하듯이 이것이 대중에게 ‘마비’ 작용을 할 리는 없다. 오히려 현대 전쟁에 관한 진실은 평화를 위해, 전쟁 위험의 근원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도록 대중의 의지와 힘을 동원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적 과제는 세계 열핵전쟁을 막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실행할 수 있는 과제이다. 우리 당 제20차 대회는 오늘날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숙명적으로 불가피한 것은 아니라는, 더없이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은 선량한 의도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계급 세력의 역관계를 현실적이고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이며, 세계 사회주의의 거대한 힘에 근거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우리의 견해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 전체가 함께하고 있다. “세계대전은 막을 수 있다”, “사회주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승리하기 전에도, 세계의 일부에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동안에도 세계대전을 사회생활에서 배제할 현실적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성명은 강조한다.

이 성명에는 중국 동지들의 서명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들이 선전하는 다음과 같은 테제들은 무엇을 뜻할 수 있는가?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을 끝낼 수 없다, 평화공존은 환상이며 사회주의 나라들 대외 정책의 일반 원칙이 아니다, 평화를 위한 투쟁은 혁명 투쟁을 방해한다.

이 테제들은 중국 동지들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노선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을 가능성을 믿지 않고, 평화와 사회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제국주의의 힘을 과대평가하며, 전쟁 위험에 맞서는 투쟁에 인민 대중을 동원하는 일을 사실상 무시한다.

결국 중국 동지들은 사회주의 나라 인민들, 국제 노동계급, 모든 민주 세력과 평화 세력이 전쟁 도발자들의 계획을 깨뜨리고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평화를 쟁취할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중국 동지들의 요란한 혁명적 문구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노동계급의 힘과 그 혁명적 능력에 대한 불신, 평화공존의 가능성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리라는 데 대한 불신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투쟁에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친다. 그 세력들은 계급 구성으로 보나 계급 이익으로 보나 서로 다르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전쟁을 막기 위한 투쟁은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원자폭탄은 계급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은 그 파괴력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죽인다.

중국 동지들이 제안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은, 평화를 위한 끈질기고 용감한 투쟁으로 인민들의 공감을 얻은 공산당들에게서 인민 대중을 떼어 놓는 것을 뜻한다.

광범한 대중의 의식 속에서 이제 사회주의와 평화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중국 동지들은 열핵전쟁의 위험 전체를 분명히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원자폭탄은 종이호랑이”이며 “전혀 무섭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 말로는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제국주의를 끝장내는 것이고, 어떤 길로 어떤 희생을 치르며 그것을 이룰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묻건대 누구에게 부차적인가? 열핵전쟁이 일어나면 죽을 운명에 처할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인가? 그런 전쟁의 처음 몇 시간 만에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릴 나라들에게인가?

큰 나라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수백만 명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칠 권리는 없다. 세계대전을 인민들의 삶에서 배제하고, 사람들의 대량 살상과 인류 문명이 이룬 가치의 파괴를 막기 위해 애쓰려 하지 않는 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6월 14일 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은 혁명을 위해서라는 ‘불가피한 희생’을 많이 이야기한다. 중국의 일부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전쟁에서 수억 명의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승인한 논문집 『레닌주의 만세!』[1]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승리한 인민들은 멸망한 제국주의의 폐허 위에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보다 천 배나 높은 문명을 지극히 빠른 속도로 창조하고, 자신의 참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할 것이다.”

중국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세계 로켓-핵전쟁이 어떤 종류의 ‘폐허’를 남길지 그들은 알고나 있는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리고 우리 당 전체와 소련 인민 전체가 이 점에서 우리를 한마음으로 지지하리라고 우리는 확신하는데, 수억 명의 주검 위에 ‘천 배나 높은 문명’을 창조한다는 중국 지도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이런 견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중국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없애기 위해 어떤 수단을 제안하는가?

우리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없애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을 믿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계급투쟁의 길을 통해 되도록 빨리 이루어지도록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이 역사적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자신의 전위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이끄는 노동계급, 그리고 각 나라의 근로 인민이다.

중국 동지들은 다른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대놓고 “멸망한 제국주의의 폐허 위에”, 달리 말해 전쟁을 일으킨 결과로 “아름다운 미래가 건설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길로 간다면 평화공존의 원칙도,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한 투쟁도 정말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모험주의적 길에 들어설 수 없다. 그 길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본질과 모순된다.

오늘날의 조건에서 세계대전이 열핵전쟁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기 손에 있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서는 결코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관 속에 들어가 눕지 않을 것이다.

열핵무기를 ‘종이호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무기의 파괴력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것을 냉정하게 헤아린다. 우리 자신이 열핵무기를 만들고 있으며 이미 충분한 양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그 파괴력을 잘 안다. 그리고 만약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우리는 이 무서운 무기를 침략자에게 쓰는 데 손을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격받지 않는 한 이 무기를 먼저 쓰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게 평화를 구걸하는 방법이 아니라,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을 만들고, 모든 나라의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자신의 자유와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인민들을 단결시키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력과 국방력에 의거하는 방법으로 확고한 평화를 확보하려 한다.

열핵전쟁으로 멸망한 낡은 세계의 폐허 위에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하자고 제안하는 중국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들의 노동계급과 의논해 보았는가?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계급은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 당신들에게 전쟁을 일으켜 제국주의자들을 없애는 김에 우리나라까지 없애 달라고 부탁했는가? 독점자본가와 제국주의자는 비교적 한 줌밖에 되지 않고, 자본주의 나라 인구의 대부분은 노동계급, 근로 농민, 근로 인텔리겐치아이다. 원자폭탄은 누가 제국주의자이고 누가 근로자인지 가리지 않는다. 원자폭탄은 지역 전체를 친다. 그러니 독점자본가 한 사람을 없애려다 노동자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자들은 그런 ‘혁명가’들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 대신 우리의 생존과 우리의 계급투쟁 문제를 결정하는가? 우리도 사회주의를 원하지만, 우리는 세계대전을 일으켜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사회주의를 쟁취하고 싶다.

중국 동지들이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는 이미 자본주의를 없애기 위한 투쟁에서의 계급적 접근이 아니라 무언가 전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정당한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낡은 세계의 폐허 아래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함께 묻혀 버린다면 ‘아름다운 미래’는 누가 만든단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중국 동지들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에 표현된 계급적·국제주의적 접근 대신 계급적 내용이 없는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2]는 구호를 집요하게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당은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적 입장에 확고히 서 있으며, 각 나라에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은 밖으로부터의 군사적 개입 없이 그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 인민이라고 본다.

물론 제국주의의 미치광이들이 끝내 전쟁을 일으킨다면 인민들이 자본주의를 쓸어 내고 묻어 버리리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인민을 대표하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적 인도주의의 참된 옹호자는 수억 명이 목숨을 잃을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인민의 이익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는 당이라면,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고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에서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당의 노선을 밝히며 N. S. 흐루쇼프 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식민주의가 존재하는 한 해방 전쟁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혁명전쟁이다. 그런 전쟁은 허용될 뿐 아니라 불가피하기도 하다. 식민주의자들은 인민들에게 스스로 독립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민들은 오직 투쟁으로써, 무장투쟁을 포함한 투쟁으로써만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소련은 민족해방운동을 가장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 이집트, 이라크, 알제리, 예멘의 인민들과 쿠바 인민을 비롯한 여러 인민에게 준 실제적인 원조는 모두가 알고 있다.

소련공산당은 레닌의 평화공존 원칙을 소련 대외 정책의 총노선으로 선포했고 이를 흔들림 없이 따르고 있다. 1953년부터, 특히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우리의 평화 정책은 활동이 크게 늘었고, 인민 대중의 이익에 맞게 국제 관계의 전체 흐름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중국 동지들은 마치 우리가 ‘평화공존’이라는 개념으로 제국주의 나라들뿐 아니라 사회주의 나라들, 그리고 최근 식민지 억압에서 벗어난 나라들과의 관계 원칙까지 모두 다 말해 버린다고 여기는 것처럼 우리에게 덮어씌운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처음으로 우애와 동지적 상호 원조의 원칙을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 관계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선포했고 이를 확고하고 일관되게 지키고 있다는 것, 우리가 해방된 인민들에게 온갖 방면의 원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슨 셈속에서인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왜곡해 보여 주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여긴다.

평화와 국제 안전을 위한,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위한, 제2차 세계대전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모든 국제 분쟁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기 위한 소련의 끈질긴 투쟁은 열매를 맺었다. 우리나라의 권위가 지금처럼 온 세계에서 높았던 적이 없고,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지금처럼 굳건했던 적이 없다. 이것은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끊임없이 커 가는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그들의 평화 대외 정책 덕분이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우리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펴 왔고, 펴고 있으며, 앞으로도 펼 것이라고 선언한다. 우리 당은 여기에서 소련 인민에 대한,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 인민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본다.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그리하여 해방 투쟁의 전체 흐름과 세계 혁명 과정에 미치는 그 영향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다.

전쟁, 평화, 평화공존 문제를 두고 한편으로 소련공산당과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 다른 한편으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 사이에 견해가 얼마나 깊이 다른지는 1962년 카리브해 위기 때 특히 뚜렷이 드러났다. 그것은 첨예한 국제 위기였다. 인류가 지난해 10월만큼 열핵전쟁의 문턱에 가까이 다가간 적은 없었다.

중국 동지들은 카리브해 위기 때 우리가 쿠바에 미사일을 들여놓아 ‘모험주의적’ 오류를 저질렀고, 그 뒤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투항’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963년 3월 8일 자 《인민일보》 사설 「미국공산당의 성명에 관하여」에 실렸다.

이런 주장은 사실과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소련 정부는 미 제국주의의 쿠바 무력 침략이 당장이라도 시작되리라는 믿을 만한 정보를 쥐고 있었다. 침략을 물리치고 쿠바 혁명을 실효 있게 지키려면 가장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저주와 경고는, 그것을 ‘엄중한 경고’라 부르며 이백오십 번을 되풀이한다 해도, 제국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쿠바 혁명을 지켜야 한다는 필요에서 출발하여 소련 정부와 쿠바 정부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합의하였다. 그것이 미 제국주의의 침략을 미리 막을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것은 쿠바에 대한 공격이 침략 조직자들을 겨냥한 미사일 무기의 사용을 포함한 단호한 반격에 부딪히리라는 것을 뜻하였다. 소련과 쿠바의 이 단호한 조치는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쿠바를 군사적으로 침공한다면 그 대가로 자기 영토에 괴멸적 타격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문제는 단순히 미국과 쿠바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두 최대 핵강국 사이의 충돌이었으므로, 카리브해 지역의 위기는 국지적 위기에서 세계적 위기로 바뀔 수 있었다. 세계 열핵전쟁의 현실적 위협이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서 출구는 두 가지였다. ‘미치광이들’(미 제국주의의 가장 공격적이고 반동적인 대표자들을 이렇게 부른다)에게 끌려가 세계 열핵전쟁을 일으키는 길로 들어서느냐, 아니면 미사일 반입으로 생긴 가능성을 이용하여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쿠바공화국에 대한 침략을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느냐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는 두 번째 길을 골랐고,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확신한다. 우리 인민 전체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확신한다. 소련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줄 알고 혁명의 대의, 사회주의의 대의를 지킬 줄 안다는 것을 여러 번 실제로 증명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인민들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고통을 가져오며 얼마나 큰 고난과 희생을 치르게 하는지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미국 정부가 쿠바를 침공하지 않고 동맹국들도 그러지 못하게 막겠다고 약속한 데 대한 대가로 미사일 무기를 철수한다는 합의, 쿠바 인민의 영웅적 투쟁,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의 쿠바 인민 지지 덕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밀고 나갈 태세였던 미 제국주의의 극단적 모험주의 세력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 결과 혁명 쿠바를 지키고 평화를 구할 수 있었다.

중국 동지들은 쿠바를 둘러싼 위기 과정에서 케네디 정부도 어느 정도의 분별과 현실적 접근을 보였다는 우리의 발언을 ‘제국주의 미화’로 본다. 그들은 정말로 모든 부르주아 정부가 모든 일에서 분별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소련의 용감하고 멀리 내다본 입장, 영웅적인 쿠바 인민과 그 정부의 굳셈과 인내 덕분에 사회주의와 평화의 세력은 제국주의의 공격 세력을 억누르고 전쟁 지지자들에게 평화를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것은 이성의 정책, 평화와 사회주의 세력의 큰 승리였고, 제국주의 세력과 군사적 모험 정책의 패배였다.

그 결과 혁명 쿠바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사회주의혁명통일당과 쿠바 인민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루스 동지의 영도 아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과 합의가 이루어져 카리브해 지역 위기 해소가 시작되었을 때, 중국 동지들은 제국주의자들의 말은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소련을 모욕하고 헐뜯는 데 특히 열을 올렸다.

우리는 두 세계, 두 체제, 곧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두 체제에 속한 나라들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모든 문제를 일체의 협상과 합의를 배제하고 오직 무력으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쟁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접근에 반대한다.

중국 동지들은 제국주의자들은 무엇 하나 믿을 수 없으며 반드시 속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믿음이 아니라 냉정한 계산이다. 카리브해 지역의 위기가 해소된 지 여덟 달이 지났고, 미국 정부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쿠바 영토에 대한 침공은 전혀 없다. 우리도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이행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쿠바 인민에게도 약속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 제국주의자들이 약속을 어기고 쿠바 영토를 침공한다면 우리는 쿠바 인민을 도우러 갈 것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듯이, 미 제국주의자들이 침공할 경우 우리는 쿠바 영토에서 도왔을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 영토에서 쿠바 인민을 도우러 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미사일이 조금 더 오래 날아가겠지만, 그렇다고 명중률이 덜 정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동지들은 왜 쿠바 혁명의 지도자들 자신이 소련 정부의 정책을 형제적 연대와 참된 국제주의의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집요하게 무시하는가? 중국 지도자들은 대체 무엇이 불만인가? 쿠바 침공을 막고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한 것이 불만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카리브해 위기 때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행동 노선은 어떠했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 동지들은 소련 정부의 현실적이고 확고한 노선에 맞서 자기들만의 특별한 입장을 내세웠다. 무슨 자기들만의 특별한 관념에 따라 그들은 비판의 포화를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보다는 소련공산당과 소련에 집중하였다.

그때까지 제국주의가 언제라도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가장 책임이 무거운 순간에 투쟁하는 동맹자와 동지가 아니라 비평가의 자리에 섰다. 그 무렵 쿠바 혁명을 지키기 위한 실제 행동에 관한 성명을 중국 지도자들에게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중국 지도자들은 그러지 않아도 첨예한 카리브해 지역의 정세를 더 악화시키려 애쓰며, 연기를 피우는 분쟁의 불씨에 장작을 던져 넣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진짜 입장은 군축 투쟁을 철저히 과소평가하는 데서, 아니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데서 아주 뚜렷이 드러난다. 중국 동지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에도 반대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끌어대면서 한편으로는 군축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 없다고 온갖 방법으로 증명하려 든다. 인용문을 가지고 곡예를 부리며, 전면 군축은 지구상에서 사회주의가 완전히 승리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증명하려 한다.

세계가 군비 경쟁의 올가미에 숨 막혀 하고, 제국주의자들이 핵무기를 쌓아 가며 인류를 세계대전의 심연에 밀어 넣겠다고 위협하는 때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팔짱을 낀 채 사회주의가 온 지구에서 승리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엄중한 명령 앞에서 범죄적인 무위가 될 것이다.

인민들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참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모두 이 진리를 오래전에 깨달았으며, 벌써 여러 해째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위해, 핵실험 중지와 핵무기 금지를 위해 끈질기고 집요한 투쟁을 벌여 왔고 앞으로도 벌여 나갈 것이다.

평화를 위해 싸우고 전면 군축의 구호를 내걸면서, 우리는 인민들의 근본 이익에서 출발하고, 현실 정세를 고려하며, 어려움에 눈감지 않는다. 물론 제국주의자들은 군축 합의를 끌고 깨뜨리려고 모든 일을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군비 경쟁으로 그들은 부를 쌓고 자본주의 나라들의 인민 대중을 공포 속에 붙잡아 둔다. 그렇다고 우리가 흐름에 떠밀려 가고, 제국주의에 끌려가며, 평화의 보장과 군축을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동원하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침략 세력 앞에, 군국주의자와 제국주의자 앞에 투항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자들이 제국주의 정부들에 군축을 강제하고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단결해야 한다.

제국주의와 전쟁의 세력에는 세계 노동계급의 조직된 힘이 맞서야 한다. 노동계급은 이제 제국주의에 맞서 있는 사회주의 나라들의 물질적 힘과 국방력에 의거한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제국주의가 아무 거리낌 없이 지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나라가 홀로였고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10월 혁명 이후 처음 수십 년과 비교해도 정세는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 세계무대의 역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므로 지금 전쟁 불가피론의 관점에 서는 것은 사회주의의 힘을 믿지 않고 절망과 패배주의의 분위기에 굴복하는 것을 뜻한다.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그런 관점을 자신의 ‘혁명성’의 표현인 양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접근은 자기 힘에 대한 불신,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낼 뿐이다.

제국주의 진영에는 아직 군축에 저항하는 강력한 세력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세력을 물러서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 맞서 인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그들이 인민들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

인민들은 군축을 원하며,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민 투쟁의 전위이자 조직자라고 믿는다.

군축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전술적 술책이 아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군축을 원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토대 위에 서 있다. 이미 F. 엥겔스가 지난 세기 말에 군축이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평화의 보장’이라고 불렀다. 우리 시대에 군축 구호를 처음으로 실천적 과제로 내건 것은 V. I. 레닌이었고, 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군축에 관한 소련의 첫 제안은 일찍이 1922년 제노바 회의에서 제출되었다. 그것은 레닌이 살아 있을 때였고, 군축에 관한 제안은 그가 정식화한 것이었다.

군축을 위한 투쟁은 전쟁을 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제국주의에 맞서는 실효 있는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인류의 절대다수를 자기편으로 두고 있다.

중국 동지들은 국제 정세를 완화하고 ‘냉전’을 끝내려는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정책에 맞서 ‘날에는 날로 맞서는 투쟁’이라는 구호를 내놓았다. 이런 구호는 사실상 제국주의의 ‘전쟁 벼랑 끝 정책’이라는 물레방아에 물을 대 주고, 군비 경쟁 지지자들을 돕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국제 긴장, 특히 소련과 미국의 관계에서의 긴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이롭다고 여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들은 분명 소련이 도발에는 도발로 응수하고, 제국주의 진영의 ‘미치광이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들고, 모험주의와 공격성을 겨루자는 제국주의자들의 도전, 곧 평화의 보장이 아니라 전쟁 도발을 겨루자는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길로 들어서는 것은 인민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민들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그런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위한,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제국주의가 준비하는 새로운 전쟁에 맞서는, 식민지 나라들에서의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행동에 맞서는, 다른 나라 영토에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기지에 맞서는, 군비 경쟁 따위에 맞서는 인민 투쟁의 가장 중요한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이 투쟁은 노동계급과 모든 근로자의 이익에 맞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계급투쟁이다.

우리 당과 모든 형제당은 새로운 세계대전의 위험에 맞서는 투쟁을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펼쳐야 한다는 성명의 결론을 기억하며 그것을 활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 투쟁은 지금 벌여야 하며, 날마다 노력을 늘려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침략자들을 제때 억누르고, 전쟁을 막고, 전쟁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최대한의 경계심을 지키고, 제국주의의 정책을 끊임없이 폭로하며, 전쟁 방화자들의 음모와 술책을 날카롭게 지켜보고, 전쟁으로 노선을 잡은 자들에 맞서 인민들의 신성한 분노를 일으키며,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의 조직성을 높이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대중의 적극적 행동을 끊임없이 강화하며, 새로운 전쟁에 이해관계가 없는 모든 국가와의 협력을 굳게 하는 것을 뜻한다.

평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의 전선을 약화시키고, 그 가장 공격적인 세력을 인민 대중에게서 고립시키며, 노동계급의 혁명 투쟁과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을 돕는다.

평화를 위한, 평화공존을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 투쟁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81개 공산당은 성명에 이렇게 적었다. “평화공존의 조건에서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계급투쟁을, 식민지·종속국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을 펼쳐 나가기에 유리한 가능성이 생긴다. 거꾸로 혁명적 계급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성과는 평화공존을 굳건히 하는 데 이바지한다.”

평화공존의 환경 속에서 최근 몇 해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민족 자유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에서 새롭고 중요한 승리들이 이루어졌고, 세계 혁명 과정은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 동지들이 하듯이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위한 투쟁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는, 독립과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 투쟁에서 떼어 내고 둘을 서로 맞세우는 것은, 평화공존의 원칙을 빈말로 만들고 그 실제 내용을 거세하며, 제국주의에 맞서는, 평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단호한 투쟁의 필요성을 사실상 무시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에게만 이로울 것이다.

6월 14일 자 서한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산당들이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 피압박 계급과 압박 계급 사이, 근로 대중과 제국주의자 사이의 관계에까지 넓힌다고 비난한다. 이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허구이며, 자본과의 계급 격돌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 투쟁과 정의로운 해방 전쟁을 언제나 지지하는 형제당들에 대한 중상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소련공산당과 다른 형제당들에 맞서는 투쟁에서 논거가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온갖 잔꾀를 부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먼저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들이 지어낸 명제를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그다음에 그 명제를 폭로한다며 우리를 비난하고 우리와 싸우기 시작한다. 소련공산당과 다른 형제당들이 혁명을 거부하고 계급투쟁을 평화공존으로 바꿔치기한다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바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치 학습 모임에서든, 우리가 평화공존을 말할 때 그것이 사회주의 나라들과 자본주의 나라들 사이의 국가 간 관계를 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화공존의 원칙은 당연히 자본주의 국가 내부의 적대 계급들 사이의 관계에 결코 적용될 수 없으며, 자기 계급 이익을 위한 노동계급의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 식민주의자들에 맞선 피압박 인민들의 투쟁에 그것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소련공산당은 이데올로기 분야에서의 평화공존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것은 스스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이 이제는 익혀 두었어야 할 기초 중의 기초이다.

Ⅲ

스탈린 개인숭배의 결과에 맞선 투쟁 문제를 두고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 및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과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개인숭배의 옹호자, 스탈린의 그릇된 사상의 전파자 역할을 떠맡았다. 그들은 개인숭배 시기에 판치던 질서, 이데올로기와 도덕, 영도의 형식과 방법을 다른 당들에 강요하려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부러울 것 없는 역할이며, 명예도 영광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을 개인숭배 옹호의 길로 끌어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소련 인민과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N. S. 흐루쇼프 동지를 우두머리로 하는 우리 당과 그 중앙위원회가 개인숭배의 결과에 맞선 투쟁에서 보여 준 대담함, 용기, 참으로 레닌적인 원칙성을 정당하게 평가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당이 그렇게 한 것은 근로자들의 강력한 힘을 옭아매던 무거운 억압을 걷어 내고, 그로써 소련 사회의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우리 당이 그렇게 한 것은 위대한 레닌이 우리에게 물려준 사회주의의 이상을, 그 이상을 더럽혀 온 개인 권력의 남용과 자의에서 깨끗이 씻어 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당이 그렇게 한 것은 개인숭배에 따라붙던 비극적 사건들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산주의 운동 전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낯선 개인숭배와 그 해로운 결과에 맞선 투쟁을 올바로 이해하고 지지하였다. 한때는 중국 지도자들도 그것을 승인했으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거대한 국제적 의의를 이야기하였다.

1956년 9월 중국공산당 제8차 대회를 열면서 마오쩌둥 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소련 동지들과 소련 인민은 레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다. 짧은 기간에 그들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얼마 전에 열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는 또한 많은 올바른 정치 방침이 마련되었고 당 안의 결점들이 비판받았다. 그들의 사업이 앞으로 매우 크게 발전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류사오치 동지가 이 대회에서 발표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 보고에서는 이 평가가 더 자세히 표현되었다.

“올해 2월에 열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는 세계적 의의를 지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대회는 제6차 5개년 계획의 웅대한 계획과 사회주의 사업의 더 큰 발전을 위한 일련의 가장 중요한 정치 방침을 마련하고, 당 안에서 심각한 결과를 낳은 개인숭배를 비판했을 뿐 아니라, 평화공존과 국제 협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제안을 내놓아 국제 긴장 완화 사업에 뛰어난 기여를 하였다.”

덩샤오핑 동지는 같은 제8차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에 관한 보고를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레닌주의는 당 안의 모든 중요한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한 사람이 아니라 해당 집단이 내릴 것을 요구한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는 집단 영도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개인숭배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이 설명은 소련공산당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다른 공산당들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잘 알려진 《인민일보》 편집부 논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논함」(1956년 12월)에서 중국 동지들은 이렇게 썼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는 스탈린 숭배를 없애고, 스탈린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스탈린의 오류가 낳은 결과를 청산하는 데 커다란 결단과 용기를 보여 주었다. 온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사업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소련공산당의 노력을 지지하며, 소련 동지들의 노력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바로 그렇다.

중국 지도자들의 이 발언들을 6월 14일 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의 내용과 견주어 보는 객관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우리 당 제20차 대회에 대한 평가에서 180도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인 문제에서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물론 용납될 수 없다. 둘 중 하나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예전에는 이 원칙적인 문제들에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의견이 다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 발언들이 모두 거짓이었거나.

잘 알려져 있듯이 실천은 진리의 가장 좋은 기준이다.

소련공산당 제20차, 제21차, 제22차 대회의 노선을 실현한 것이 우리나라의 삶에 어떤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실천이다. 우리 당이 레닌적 원칙과 당 생활 규범의 회복으로 크게 방향을 바꾼 뒤 지난 10년 동안, 소련 사회는 경제 발전, 문화와 과학의 향상, 인민 복지의 증진, 국방력의 강화, 대외 정책의 성과에서 참으로 웅대한 결과를 이루었다.

개인숭배 시기에 인민의 삶을 좀먹던 공포와 의심과 불안의 분위기는 영원히 과거의 것이 되었다. 소련 사람이 더 잘살게 되었고 사회주의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새 아파트를 받은 노동자에게(그런 사람이 수백만이다!), 노후를 보장받은 연금 생활자에게, 넉넉한 살림을 얻게 된 콜호스 농민에게 물어보라. 개인숭배 시기에 억울하게 탄압받았다가 자유와 명예를 되찾은 수천, 수만 명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레닌적 노선의 승리가 소련 사람에게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개인숭배 시기에 탄압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가 정직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자신들이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소비에트 조국의 떳떳하고 완전한 권리를 지닌 아들딸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그들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공업, 농업, 문화, 과학, 예술, 어디로 눈을 돌리든 모든 곳에서 빠른 전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우주선은 지금 우주의 광활한 공간을 누비고 있다. 이것 또한 우리 당이 소련 인민을 이끌어 가는 노선이 올바르다는 것을 눈부시게 확인해 준다.

물론 우리는 소련 사람을 위해, 그의 삶을 낫게 하기 위해 이미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련 사람들은 이 원칙의 실현이 우리의 바람에만 달린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물질적 재화의 풍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인민은 물질적·정신적 가치를 더 빨리 만들어 내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끈기 있게 일하고 있다. 우리가 올바른 노선을 걷고 있으며 우리 발전의 전망을 분명히 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소련공산당 강령에는 공산주의 건설의 구체적 계획이 제시되어 있다. 그 실현은 소련 인민에게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하고, 공산주의의 소중한 원칙인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로 점차 넘어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웅대한 계획인 소련공산당 강령을 중국 동지들이 헐뜯으려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소련 사람들에게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다.

우리 당이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을 자기 과제로 선포한다는 점을 들먹이며,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소련 사회의 무슨 ‘부르주아화’와 ‘변질’을 넌지시 내비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인민이 짚신을 신고 다니며 한 그릇에서 멀건 양배추 국을 떠먹으면 그것이 공산주의이고, 근로하는 사람이 잘살면서 내일은 더 잘살기를 바라면 그것은 거의 자본주의 복귀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런 철학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마지막 계시인 양 우리에게 내놓으려 한다! 이것은 그런 ‘이론’의 저자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자신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노동계급의 힘과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소련공산당 강령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레닌의 영도 아래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어디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소련 인민이 어떤 정상에 이르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가장 거대한 사회주의 강국이 되었다. 공업 생산량에서 소련은 유럽 1위,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곧 미국을 앞질러 1위에 오를 것이다. 우리의 모든 승리를 만들어 낸 것은 소련 노동계급, 소련 콜호스 농민, 소련 인텔리겐치아이다.

우리는 소련 인민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인민들도 위대한 노동의 위업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노동계급과 농민에 대한 올바른 영도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 영도를 맡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근로자들의 힘과 에너지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개인숭배를 정당화하려고 중국 지도자들은 서한에 소련의 계급투쟁에 관한, 그리고 전인민국가와 전인민의 당에 관한 소련공산당 강령의 명제가 그릇되었다는 데 관한, 마르크스주의와 거리가 먼 논의를 잔뜩 쌓아 놓았다.

우리는 이 서한에서 그들의 논거를 모두 자세히 따질 생각은 없다. 6월 14일 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서한에 담긴 논의가 완전히 무력하고 소련 인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 틀림없이 주목할 것이다. 그들은 소련 사회에 아직 적대 계급이 남아 있고,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우리를 가르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계급들인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을 보면 그것은 ‘부르주아 식객’, ‘기생충, 투기꾼, 사기꾼, 게으름뱅이, 불량배, 국고 도둑’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해 중국 동지들은 독창적인 관념을 지니고 있다. 언제부터 이런 기생적 분자들이 계급으로 여겨졌는가? 그리고 어떤 계급인가? 게으름뱅이 계급인가 불량배 계급인가, 국고 도둑 계급인가 기생충 계급인가? 범죄자는 어느 사회에서도 일정한 계급을 이룬 적이 없다. 이것은 학생도 아는 일이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이런 분자들은 계급을 이루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 잔재의 표현이다.

이런 사람들과 싸우는 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요 없다. 전인민국가는 이 과제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실제로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실천의 경험으로, 당 조직과 노동조합과 그 밖의 사회단체들의 교육 사업이 잘 이루어질수록, 사회 여론의 역할이 클수록, 소비에트 민경(民警)이 일을 잘할수록 범죄와의 싸움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소련 사회가 두 기본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인텔리겐치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련 사회의 어떤 계급도 다른 계급들을 착취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다. 독재는 계급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중국 동지들은 소련에서 누구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행사하자는 것인가? 콜호스 농민에게인가, 아니면 인민의 인텔리겐치아에게인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이 본질적으로 달라졌고, 그들 사이의 차이와 경계가 점점 더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승리한 뒤 노동계급은 자신의 영도적 역할을 더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수행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공산주의 건설이 전면적으로 펼쳐지는 조건에서도 사회의 가장 선진적인 계급으로 남는다. 그 선진적 역할은 노동계급이 가장 높은 형태의 사회주의 소유와 직접 이어져 있다는 경제적 처지에 의해서도, 수십 년의 계급투쟁으로 다져진 가장 강한 단련과 혁명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중국 동지들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내용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말고 다른 것일 수 없다는 K. 마르크스의 발언을 끌어댄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마르크스가 염두에 둔 것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단일한 사회경제적 구성체로서의 공산주의(그 첫 단계가 사회주의이다)였으며, 사회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없이는 그리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V. I. 레닌의 여러 발언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바로 착취계급의 저항을 꺾고, 사회주의 건설을 조직하며, 공산주의의 첫 국면인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승리한 뒤 사회에 근로하는, 서로 우호적이며 그 본성이 완전히 달라진 계급들만 남고 더는 진압할 대상이 없을 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요성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들에 관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에 들어 있는 사이비 이론적 논의 더미에서 참된 내용을 뽑아내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중국 동지들은 우리 당 제20차, 제21차, 제22차 대회의 결정과 소련공산당 강령에서 그토록 힘 있게 선언된 사회주의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소련공산당의 노선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그 긴 서한 어디에도 사회주의 조건에서의, 공산주의 건설 조건에서의 민주주의 발전에 관해서는 언급할 자리조차 없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 동지들이 개인숭배를 옹호하면서 어떤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지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사실상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개인숭배를 공공연히 찬양하는 일에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숭배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스탈린 자신은 말로는 이 소부르주아 이론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이 이론이 사회혁명당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겠다.

개인숭배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려고 마르크스와 레닌에 기대려는 시도는 놀라움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레닌이 이미 우리 당이 태어날 무렵부터 영웅과 군중에 관한 나로드니키 이론과 큰 투쟁을 벌였다는 것, 레닌 시절에 우리 당 중앙위원회와 소비에트 국가에서는 참으로 집단적인 영도 방법이 실행되었다는 것, 레닌이 유달리 겸손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향한 아첨과 비위 맞추기를 아주 작은 것까지 가차 없이 꾸짖었다는 것을 중국 동지들은 정말 모른단 말인가?

물론 우리 당이나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은 개인숭배에 맞선 투쟁을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소련공산당은 제20차와 제22차 대회를 포함해 여러 차례, 당은 자기 지도부의 권위를 소중히 여기며, 개인숭배를 무너뜨리고 그 결과에 맞서 싸우면서도 참으로 인민의 이익을 표현하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 힘을 바쳐 그로써 마땅한 권위를 누리는 활동가들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해 왔다.

Ⅳ

의견 차이의 중심에 있는 다음 큰 문제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노동계급의 혁명 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길과 방법의 문제, 전 인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길의 문제이다.

중국 동지들의 묘사에 따르면 이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는 이렇게 보인다. 한쪽, 곧 그들 자신은 세계 혁명을 지지하는데, 다른 쪽, 곧 소련공산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은 혁명을 잊어버렸고 심지어 혁명을 ‘두려워’하며, 혁명 투쟁 대신 평화,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제 발전과 그 인민들의 복지 향상, 자본주의 나라 근로자들의 민주적 권리와 생활상의 이익을 위한 투쟁처럼 참된 혁명가에게 ‘걸맞지 않은’ 일에나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공산당의 견해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견해를 가르는 분수령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한쪽, 곧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세계 혁명을 논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때로는 아무 핑계도 없이 ‘혁명적’ 문구를 뽐낸다. 반면 다른 쪽, 바로 중국 동지들이 비판하는 사람들은 혁명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대하며, 요란한 문구를 늘어놓는 대신 사회주의 승리를 위한 가장 올바르고 시대의 조건에 맞는 길을 찾으려고 끈기 있게 일하고, 민족 독립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해 끈질긴 투쟁을 벌인다.

현대 혁명운동의 문제들에 관한 중국 동지들의 기본 견해를 살펴보자.

‘세계 혁명’의 이름으로 평화를 위한 투쟁을 그만두고, 평화공존과 평화적 경제 경쟁의 정책을 버리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근로자들의 생활상 이익과 민주적 개혁을 위한 투쟁을 버리라는 방침이 나라들과 인민들이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 사회주의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이 평화를 주장하고 평화공존 정책을 펴면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본의 나라들에 있는 계급 형제들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사실인가?

오늘날의 평화를 위한, 열핵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련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형제당들이 자신의 평화 정책으로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문제는 핵전쟁을 막는 것이 노동계급을, 나라 전체와 대륙 전체의 인민들을 멸망에서 구하는 것이라는 데에만 있지 않다. 물론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모든 정책은 이미 정당화되지만 말이다.

문제는 또한 그런 정책이 국제 혁명적 노동운동이 그 기본적 계급 목표를 이루도록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 있다. 사회주의 나라들이 스스로 쟁취한 평화의 조건에서 경제 발전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과학과 기술에서 새로운 승리를 잇달아 이루며, 사람들의 생활 조건과 노동 조건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완성해 나간다면, 그것이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거대한 기여가 아니겠는가?

이 성과와 승리를 보면서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는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낫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고 있다. 이 제도를 위해서라면 싸울 가치가 있다.” 오늘날의 조건에서 사회주의는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행동, 자신의 살아 있는 본보기로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를 얻는다.

1960년 성명은 우리 시대의 주된 특징을 세계 사회주의 체제가 인간 사회 발전의 결정적 요인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회의에 참가한 모든 공산당은 현시대의 중심에 국제 노동계급과 그 소산인 세계 사회주의 체제가 있다는 공동의 결론에 이르렀다.

혁명운동의 다른 모든 과제의 해결은 세계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크게 달려 있다. 그래서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은 “국제적 역할과 세계 정세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해마다 커지고 있는 인민들의 위대한 사회주의 공동체를 끊임없이 굳건히 할” 의무를 졌다. 우리 당은 이 가장 중요한 과제를 실현하는 데서 자신의 최고의 국제적 의무를 본다.

V. I. 레닌은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주로 우리의 경제 정책으로 국제 혁명에 영향을 미친다. ……투쟁은 세계적 규모에서 이 무대로 옮겨졌다. 이 과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국제적 규모에서 확실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긴 것이다.”(『저작집』 제32권, 413쪽)

위대한 레닌의 이 유훈을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굳게 익혔고,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공산주의자들도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V. I. 레닌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린 동지들이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사회주의 나라들이 경제 경쟁에서 자본주의를 이길 능력에 대한 불신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움에 부딪혀 실망한 나머지, 자기 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한 본보기와 경제적 성과로 국제 혁명운동에 주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인가? 그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더 짧은 다른 길로 혁명을 더 빨리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러나 승리한 혁명은 인민의 노동, 오직 노동으로만 자신의 성과를 굳히고 발전시키며,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혁명이 과거로부터 저발전 경제를 물려받은 나라들에서 일어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련과 다른 많은 사회주의 나라의 본보기는, 그런 조건에서도 올바르게 영도한다면 거대한 성과를 거두고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온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나라 노동계급의 혁명 투쟁에 어떤 환경이 더 유리한가? 평화와 평화공존의 환경인가, 아니면 끊임없는 국제 긴장과 ‘냉전’의 환경인가?

이 물음의 답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층이 ‘냉전’의 환경을 이용해 배외주의와 전쟁 히스테리와 광적인 반공주의를 부채질하고, 가장 악명 높은 반동분자들과 친파시스트들을 권력에 앉히며,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노동계급의 정당과 노동조합과 그 밖의 대중 조직을 박살 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평화를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은 대중과의 유대, 그들의 권위와 영향력을 크게 강화하며, 따라서 혁명의 정치적 군대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평화를 위한,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평화공존을 위한 투쟁은 국제 노동계급의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투쟁을 결코 늦추거나 멀어지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투쟁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경험 많고 스스로 혁명을 해낸 사람들인 중국 동지들이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는 믿기 어렵다. 오늘날 세계 혁명은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강화를 통해서도, 자본주의 나라 노동자들의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도, 민족해방운동을 위한 투쟁과 아시아·아프리카 신생 해방 국가들의 정치적 독립 및 경제적 자립의 강화를 통해서도, 평화를 위한,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서도, 인민 대중의 반독점 투쟁을 통해서도, 그 밖의 여러 길을 통해서도 나아가고 있다. 이 길들은 서로 맞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제국주의 지배의 타도라는 하나의 목표로 향하게 해야 한다.

중국 동지들은 오만하고 모욕적인 태도로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과 그 밖의 나라 공산당들을 다름 아닌 기회주의와 개량주의, ‘의회 백치증’, 심지어 ‘부르주아 사회주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고 비난한다. 무슨 근거로? 이 공산당들이 즉각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정세가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중국 지도자들도 알아야 한다.

나라에 혁명적 정세가 없을 때 무장봉기의 구호를 성급하게 내거는 것은 노동계급을 패배의 운명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V. I. 레닌이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는지, 혁명적 행동의 순간을 고를 때 얼마나 정치적 혜안과 구체적 정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임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10월 혁명 바로 전날 레닌은 10월 24일에 일어서는 것은 아직 이르고 26일이면 이미 늦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니 반드시 25일에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계급 모순이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혁명적 정세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행동의 순간을 고르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오직 각 나라의 노동계급, 그 전위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만이 할 수 있다.

국제 노동운동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노동자 정당을 자처하면서 경제 문제에만 매달리고 노동계급을 혁명 정신으로 교육하지 않으며 정치투쟁과 권력 장악을 준비시키지 않는 당은 나쁜 당이다. 그런 당은 불가피하게 개량주의의 입장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러나 노동계급, 농민, 모든 근로자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과 떼어 놓고 정치투쟁의 과제를 내세우는 당도 나쁜 당이다. 그런 당은 불가피하게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을 올바로 이용하고 그것들을 능숙하게 결합할 때에만 당은 참으로 혁명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대중의 지도자가 되어 노동계급을 이끌고 자본에 대한 돌격과 권력 쟁취에 성공적으로 나설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의 많은 공산당이 저지른 죽을죄를, 그들이 자신의 당면 과제를 근로자들의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위한 투쟁, 그리고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실현할 수 있고 노동계급과 농민과 주민 중 소부르주아 계층의 생활 조건을 덜어 주며 광범한 반독점 전선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민주적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찾는다는 데서 본다. 그 반독점 전선은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위한 다음 투쟁의 토대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당들은 바로 1960년 모스크바 성명에 적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의 공산당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중국 동지들은 계급투쟁의 최전선에서 자본과 싸우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초보적인 연대감도, 이 나라들의 구체적 조건과 그곳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이 걸어가는 특수한 길에 대한 이해도 보여 주지 못하였다. 사실상 그들은 ‘혁명의 이름으로’ 바로 혁명으로 이끄는 길들을 거부하고, 공산당들을 대중에게서 고립시키고 노동계급이 독점과 자본주의의 지배에 맞서는 투쟁에서 동맹자를 잃게 만들 노선을 강요하고 있다.

중국 동지들은 여러 나라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형태의 문제에서도 세계 공산주의 운동과 갈라섰다.

모스크바 회의들의 문서와 소련공산당 강령에 분명히 적혀 있듯이, 소련공산당과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은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과 비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중국 동지들은 우리 당과 다른 형제당들이 평화적 길만 인정한다고 집요하게 덮어씌운다.

1963년 3월 30일 자 서한에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노동계급과 그 전위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은 내전 없이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려고 한다. 이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인민 전체의 이익, 나라 전체의 민족적 이익에 맞을 것이다. 동시에 혁명 발전의 길을 고르는 것은 노동계급에게만 달려 있지 않다. 착취계급이 인민에게 폭력을 쓴다면 노동계급은 권력 쟁취의 비평화적 길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구체적 조건, 나라 안과 세계무대에서의 계급 세력의 배치에 달려 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오직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여러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소련공산당은 자본의 나라들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노동계급의 헌신적 투쟁을 높이 평가하며, 그들에게 온갖 원조와 지지를 보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여러 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관한 중국 동지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모든 발언과 6월 14일 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한을 붉은 실처럼 꿰뚫고 있다.

중국 동지들은 언제나, 모든 일에서, 어디서나 무장봉기를 인정하는 것을 혁명성의 기본 기준으로 여긴다. 그로써 중국 동지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평화적 형태를 이용할 가능성을 사실상 부정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이 폭력적인 것이든 비폭력적인 것이든 혁명적 계급투쟁의 모든 형태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

오늘날 세계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나라들의 공산당들로 대표되는 국제 혁명적 노동운동,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은 현대의 위대한 힘이다. 이 둘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의 주요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동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 그것은 그들의 새로운 ‘이론’에서 드러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기본 모순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중국 동지들의 생각으로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결정적 힘은 세계 사회주의 체제도,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도 아니고, 이번에도 민족해방운동이다.

중국 동지들은 이로써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에게서 인기를 얻으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이론’에 아무도 속아서는 안 된다. 중국 이론가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실제 의미는 민족해방운동을 국제 노동계급과 그 소산인 세계 사회주의 체제에서 고립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해방운동 자신에게 거대한 위험이 될 것이다.

실제로 10월 혁명과 뒤이은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이 제국주의를 뿌리째 뒤흔들고 식민주의자들의 힘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아시아의 많은 인민이 그 모든 영웅적 행동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해방된 인민들이 투쟁의 새 단계에 들어서 정치적 성과와 경제적 독립을 굳히는 데 힘을 모으고 있는 지금,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없다면 이 과제를 해결하기가 헤아릴 수 없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세계사적 의의와 그 위대한 미래를 늘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해방운동이 앞으로 승리를 거두기 위한 주요 조건 가운데 하나가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주된 힘인 세계 사회주의 체제 나라들과의 굳건한 동맹과 협력, 자본주의 나라 노동운동과의 굳건한 동맹이라고 본다. 이 입장은 1960년 성명에서 정해졌다. 그것은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승리의 조건으로서 노동계급의 영도(헤게모니)라는 레닌의 사상에 근거한다. 오직 그런 헤게모니의 조건 아래에서만 이 운동은 결국 참으로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얻고, 사회주의 혁명의 길로 넘어가는 것으로 완결될 것이다.

레닌의 이 사상은 10월 혁명의 경험과 다른 나라들의 경험으로 검증되었으며 누구에게도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 동지들은 레닌을 ‘바로잡아’, 노동계급이 아니라 소부르주아지나 민족 부르주아지, 심지어 “애국적인 일부 왕과 왕자와 귀족”이 제국주의에 맞선 세계적 투쟁의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고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고 나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게 언제 어떤 조건에서도 프롤레타리아적·계급적 접근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국제 노동계급과 민족해방운동이 앞으로 승리를 거두리라는 보증은 이 둘의 굳건한 동맹과 협력, 공동의 이익이 명하는 제국주의에 맞선 공동 투쟁에 있다. 이 투쟁에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헌신과 모든 인민의 이익에 대한 사심 없는 봉사로써 자신의 영도적 역할을 인정받고, 자신의 영도가 자신의 승리와 동맹자들의 승리를 함께 보장하는 믿음직한 담보임을 동맹자들에게 납득시킨다.

우리 레닌의 당은 민족해방운동을 세계 혁명 과정의 구성 부분으로, 제국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힘으로 본다. 과학적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위대한 호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 깃발이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업을 이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위대한 10월 혁명의 승리 뒤 생겨난 새로운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운동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특별히 강조하였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는 세계 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주된 구호였고 지금도 그렇다. 새로운 조건에서 이 구호의 내용은 넓어졌다. 잘 알려져 있듯이 레닌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와 피압박 민족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승인하였다. 이 구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도적 역할과 민족해방운동의 커진 의의가 강조된다. 우리 당은 모든 활동에서 이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국제주의 원칙을 엄격히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근본 문제들에 관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방침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중국 동지들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고, 전쟁과 평화와 혁명의 문제를 교조적이고 책상물림식으로 다루며, 현시대의 구체적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중국 동지들이 일으킨 ‘세계 혁명’에 관한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음 뒤에 혁명과는 아무 상관 없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강요하는 노선이 그릇되고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이 ‘총노선’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는 것은 시간과 계급 세력의 실제 역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현 역사 단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계급의 가장 일반적인 과제들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동지들은 현시대의 조건에서 우리 운동의 과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려 하지 않는다. 총노선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모든 단계에서 효력을 지니는 일반적 과제들로 환원함으로써, 그들은 총노선에서 구체성과 목적성과 참된 실효성을 빼앗는다.

형제당들은 오늘의 노선을 마련하면서 개별 나라들과 세계적 규모에서의 계급 세력 배치, 서로 대립하는 두 체제의 발전과 현 단계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의 특수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세계 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분석함으로써 온 세계의 형제당들은 시대에 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규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작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우리 시대는 대립하는 두 사회체제가 투쟁하는 시대,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 혁명의 시대,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식민지 체제가 청산되는 시대, 새로운 인민들이 잇달아 사회주의의 길로 넘어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세계적 규모에서 승리하는 시대이다.”

현시대에 대한 이 규정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마련할 때 올바른 접근의 기초가 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은 자신의 공동 노선을 정했으며, 그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현시대 세계 혁명 과정의 성격과 내용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인민들의 투쟁, 자본주의 나라 노동계급의 혁명운동, 피압박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 일반 민주주의 운동이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의 단일한 흐름으로 합쳐지는 데서 규정된다. 반제국주의 혁명 세력의 동맹에서 결정적 역할은 국제 노동계급과 그 주된 소산인 세계 사회주의 체제에 속하며, 세계 사회주의 체제는 본보기의 힘과 자신의 경제 건설로써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발전에 주된 영향을 미친다.

  • 형성된 객관적 역사 조건(제국주의 공격성의 극단적 첨예화, 거대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의 출현 따위) 때문에, 현시대에 반제국주의 세력 앞에 놓인 모든 과제 가운데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열핵전쟁을 막기 위한 투쟁이다. 공산당들의 첫째가는 과제는 평화를 지키고 인류를 핵 파국에서 구하기 위해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력을 단결시키는 것이다.

  • 사회주의 혁명은 각 나라 안에서 계급투쟁이 발전한 결과로 이루어지며, 그 형태와 길은 그 나라의 구체적 조건이 정한다. 일반 법칙은 자본 권력의 혁명적 타도와 이런저런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이다. 노동계급과 공산당들의 과제는 내전과 결부되지 않은 사회주의 혁명의 평화적 길을 위해 지금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동시에, 비평화적 길, 곧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일반 민주주의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필수 구성 부분이다.

  • 민족해방운동에서 노동계급과 공산당들의 목표는 반제국주의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고, 농민 및 애국적인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에 기초한 민족전선을 발전시키고 굳히며, 민족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하고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넘어갈 조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협력과 상호 원조의 관계,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의 결속과 단결, 함께 마련한 입장과 평가에 대한 충실성, 당 생활과 당 상호 관계의 레닌적 원칙은 공산주의자들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것이 현시대 세계 혁명 과정 발전의 기본적인 길이며, 현 단계 국제 공산주의 운동 총노선의 기본 명제이다. 평화, 민주주의, 민족 독립,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이것이 간단히 말해 이 총노선의 본질이다. 이 노선을 실천에서 일관되게 수행하는 것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 성공의 보증이다.

현대의 조건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 모든 가장 중요한 원칙적 명제들은 형제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선언과 성명에서 집단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새로운 소련공산당 강령에 표현되었다. 이 강령은 전적으로 우리나라와 국제적 규모의 혁명 경험을 마르크스-레닌주의적으로 일반화한 데 기초하고 있다.

[Ⅴ장과 Ⅵ장 생략]

주석

  1. 옮긴이: 1960년 4월 레닌 탄생 90주년을 맞아 《홍기》 편집부 논문 「레닌주의 만세」와 《인민일보》 편집부 논문 등을 묶어 펴낸 논문집.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이름을 들지 않고 비판해 중소 이념 논쟁의 공개적 출발점으로 꼽힌다. ↩
  2. 옮긴이: 마오쩌둥이 1957년 11월 모스크바 회의 때 현지의 중국 유학생들에게 한 말(东风压倒西风)로, 사회주의 진영의 힘이 제국주의 진영을 앞질렀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