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인 선언
Declaration of 46
1923년 10월 15일, 46명의 저명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이 정치국에 비밀리에 보낸 서한으로, 트로츠키가 일주일 전 제기한 당내 관료화 비판에 동조하며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분파 금지 조치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 선언은 좌익 반대파 형성의 기초가 되었으며, 서명자 대다수는 대숙청기에 처형되었다.
상세
문서
1923년 10월 15일 46명의 당 간부가 정치국에 비밀 문서를 제출했다. 서명자에는 프레오브라젠스키와 세레브랴코프, 안토노프-옵세옌코, 사프로노프 등 혁명과 내전기의 지도적 인물들이 포함되었고, 이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경력을 가진 여러 그룹에 속해 있었다.
문서는 두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경제 정책의 부재로, 계획 없는 대응이 가위 위기와 신용 경색, 실업을 낳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당내 체제로, 서기국이 인사권을 통해 당 조직을 장악하고 있으며 당원의 의견 표명이 실질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비판이었다.
트로츠키의 서한과의 관계
이 선언은 한 주 앞선 10월 8일 트로츠키의 서한과 문제 설정을 공유했다. 두 문서가 조율된 것인지 별개로 작성된 것인지는 당시부터 논점이었고, 정치국은 이를 분파적 결집으로 규정하는 근거로 삼았다. 서명자 다수는 조율을 부인했다.
정치국과 중앙통제위원회는 같은 해 12월과 이듬해 1월에 걸쳐 이 문제를 처리했다. 1924년 1월 제13차 당협의회는 트로츠키의 서한과 46인 선언을 분파주의로 규정하는 결의를 채택했고, 이 결의가 이후 반대파 처분의 선례가 되었다.
귀결
46인 선언은 좌익반대파의 조직적 출발점으로 다루어진다. 서명자들은 이후 다른 경로를 걸었다. 일부는 견해를 철회하고 당직을 유지했고, 일부는 1927년 제적되었으며, 일부는 반대파 활동을 계속했다.
대숙청기에 이 명단은 사실상 처형 명부가 되었다. 서명자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46인 선언에 서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수사 기록에서 반소비에트 조직 참여의 증거로 인용되었다. 당내 문서로 제출된 의견 표명이 십여 년 뒤 형사 혐의의 근거로 사용된 이 경로는 분파 금지 이후 당내 반대의 지위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여준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article covering the declaration's background, text, signatories, and its role as the founding document of the Left Oppos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