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азвитой социализм · 1964–1986년(1967–1985년이 공식 명칭으로 통용)

발전된 사회주의

Developed Socialism

소련이 사회주의 건설의 과제를 완수하고 공산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규정한 브레즈네프 시기의 공식 이론. 생산력의 성숙, 사회주의적 소유 형태의 수렴, 계급 적대의 소멸을 내세웠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전인민적 국가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규정은 이론 자체의 자기 서술이며, 1977년 헌법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상세

개념

공식 규정에서 발전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구성체의 첫 단계인 사회주의적 생산양식 안의 한 단계, 곧 공산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이 시작되는 완성된 사회주의였다. 이 이론은 성숙한 사회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을 토대로 한다고 보았고, 사회주의적 소유 형태의 수렴과 도시와 농촌,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차이의 희미해짐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전인민적 국가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이론 자체의 자기 서술이며 검증된 결과가 아니었다. 브레즈네프는 1967년 11월 7일 10월 혁명 50주년 기념 보고에서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었다고 선언했으며, 그해 11월의 규정은 이 사회가 '능력에 따라, 노동에 따라'라는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역사

이 명칭의 전사는 196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산당·노동당 대표자회의가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이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 건설 시기'에 들어섰다고 규정한 데 있다. 이 표현은 1960년대 중·후반 브레즈네프의 연설에서 다시 쓰였고, 처음에는 소련이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과 관련해 부각되었다. 동독 지도부는 발터 울브리히트 아래에서 공산주의 건설의 연기를 주장했고(1966년 9월과 1967년 9월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서한), 동독은 블록에서 처음으로 발전된 사회주의 건설을 선포했으며 1968년 4월 발전된 사회주의의 첫 헌법을 채택했다. 이는 일방적 강요만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능동성의 기록이다.

최종 명칭을 담은 첫 소련 출판물은 표도르 부를라츠키가 1966년 12월 21일 『프라우다』에 실은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대하여」였다. 1966년 3~4월 제23차 당대회 문건에는 '성숙한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의 완전한 건설'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당 기관지 『콤무니스트』 편집장(1976~1986)이자 중앙위원이었던 리차르드 코솔라포프는 『사회주의: 이론의 제기들』(1975, 2판 1979)과 『발전된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1982)으로 표준적 저작을 남겼다. 아. 뿌찌엔꼬, 게. 글레제르만, 라. 꼬솔라뽀프, 뻬. 페도세예프, 게. 샤흐나자로프 등 주요 철학자·사회과학자들이 당 중앙위 산하 사회과학 아카데미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를 기반으로 작업했고, 정치국 위원이자 수석 이데올로그였던 미하일 수슬로프도 역할을 했다.

제24차 당대회(1971년 3~4월)가 이 이념 규범을 공식적으로 확립했고 새 강령 준비가 시작되었다. 1977년 5월 24일 중앙위 보고(6월 5일 『프라우다』 게재)는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가 형성되었고 국가가 전인민적 국가라고 밝혀 이 성숙 단계 주장의 대표적 근거가 되었다. 브레즈네프 사망(1982) 뒤 이 개념은 문제시되었다. 안드로뽀프는 소련이 발전된 사회주의의 '장기적 역사 단계'의 시작에 도달했을 뿐이라고 밝혔고, 1982~1984년 체르넨코까지 중요한 이론 개념으로 다루어졌으며 고르바초프도 1984년 12월까지 지지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체르넨코를 대신한 뒤 강조는 급격히 줄었고, 그는 1985년 3월 중앙위 연설과 1985년 10월 말 새 강령 초안 연설에서 이 용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1986년 제27차 당대회가 채택한 강령은 소련이 1961년에 이미 발전된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섰다고만 밝혀, 개념을 버리려는 쪽과 확대하려는 쪽 사이의 타협이 되었다. 제27차 당대회 이후에도 소련 문헌은 '발전된 사회주의'를 계속 쓰면서 점차 '발전해 가는 사회주의'로 강조를 옮겼다.

구분과 평가

이 이론의 공식적 용법은 '발전된', '성숙한', '실제의' 사회주의를 뒤섞을 수 있었고, 러시아어 문헌은 '실제의 사회주의'를 이 시기의 공식 명칭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의 사회주의'는 1960년대 이후 생산력 수준에서 가능한 정책이었다는 논변과 함께 브레즈네프 시기 동구의 통용어였고, 루돌프 바로 같은 반체제 인사들도 비판적으로 이 말을 받아들였으므로 공식적 완곡어법과 비판적 용법은 구별되어야 한다. 또 '발전된 사회주의'는 대외 선전에 쓰였을 뿐 아니라 마오주의 중국에도 겨누어졌다. 소련 이데올로그들은 문화대혁명의 '마오주의적 공상적 좌경 급진주의'를 규탄하며 소련의 '실제의 사회주의'와 대립시켰다.

체제의 자기 초상은 기록된 현실과 어긋났다. 대부분의 공준은 현실과 연결점이 적었고, 기술 혁명 주장은 민수품에서 서방과 벌어진 격차 앞에서 부조리해 보였으며,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번영이라는 테제는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가혹한 박해와 모순되었다. 한편 이 개념은 당시 사회를 정당화한 '이데올로기적 속임수' 또는 자유주의 지식인 사이의 웃음거리로 평가되기도 했고, 뒤에 많은 러시아인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회고한 시대의 기념비로 평가되기도 했다. 러시아어 문헌은 이 개념이 심각한 체제적 경제·정치·이념 위기에 대한 '긍정적 설명'의 필요에서 나왔다고 서술하며, 일부 연구자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상투구나 완곡어로 본다. 고르바초프는 이 개념이 자기만족의 외관이 되어 실제 문제를 가렸다고 비판했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념의 도입 자체를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에서의 이탈로 보았다.

시기 구분의 논쟁

이 단계에 도달한 시점과 명칭의 공식 사용 시기에 대해서는 문헌이 갈린다. 러시아어 문헌은 공식 명칭 사용을 1964년(좁게는 1966~1967년)부터 1985년까지로 잡고, 1959~1964년의 '공산주의의 광범위한 건설 시기' 규정을 대체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중간 단계로 본다. 영어 문헌은 소련이 1961년에 이 단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는 소련공산당 사학의 규정을 전하며, 1959~1964년이라는 구분과 1985년 이후의 계속된 사용을 함께 기록한다. 이 항목의 시작 연도 1967년은 브레즈네프가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선언한 1967년 11월 7일을 가리키며, 명칭 사용의 시작을 1966년 12월의 부를라츠키 논설로 보는 견해와 1971년 제24차 당대회로 보는 견해도 있다. 끝 연도 1986년은 강령이 타협적 표현을 채택한 제27차 당대회의 해로, 사용이 완전히 끝난 시점이 아니다. 브레즈네프 시대는 소련 이데올로기에서 '발전된 사회주의 시기'로 불렸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시기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같은 시기가 '정체의 시기'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encyclopedia.com origin, content and fate of the doctrine
  2. doaj.org developed socialism as the ideological framework of the Brezhnev period
  3. encyclopedia.com
  4. soviethistory.ms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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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ritanni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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