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반역자 가족
Family Members of a Traitor to the Motherland
'조국반역자'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가족을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한 소련의 가족 연좌 제도이다. 법적 근거는 1926년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 형법 제58조와 1937년 8월 15일자 내무인민위원부 작전명령 제00486호이며, 예조프가 서명했다. 명령에 따라 아내는 사회적 위험도에 따라 5~8년 이상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사건은 내무인민위원부 특별회의가 심리했으며, '사회적으로 위험한' 자녀로 분류된 아이들은 노동수용소나 특별제도 고아원에 보내졌다. 러시아어 약어 ЧСИР은 '조국반역자의 가족 성원'을 뜻하며, 이 체제는 1938년 10월 베리야의 명령 제00689호로 아내의 자동 체포가 중단되고 1942년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일부가 되살아나기까지 이어졌다.
상세
기원
가족을 이유로 한 처벌은 소비에트 권력 초기부터 나타난다. 1919년 11월 2일 트로츠키의 명령 제163호는 '반역자들에게 죽음을'이라는 제목으로 탈주자와 공황을 퍼뜨리는 자들의 가족을 체포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때의 표현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였고 '조국'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법전상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26년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 형법 제58-1조였다. 조국 반역 조항을 도입하도록 한 것은 1934년 6월 8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결정이었고, 제58-1a조부터 제58-1г조까지가 형법에 실제로 추가되어 시행된 것은 1934년 7월 20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인민위원회 결정(СУ № 30, ст.173)에 의해서였다. 개정된 제58-1в조는 범행자 본인뿐 아니라 그의 가족 성원에게도 처벌을 규정했는데, 군인이 국외로 도주한 경우 이를 알았거나 도왔으면서 신고하지 않은 성인 가족에게 몰수와 함께 5~10년의 자유 박탈을, 그와 함께 살거나 그에게 부양되던 다른 성인 가족에게는 선거권 박탈과 시베리아 외딴 지역으로의 5년 유형을 규정했다. 이른바 '조국반역자 가족 성원'이라는 범주는 이 조항과 1942년 국방위원회 결정, 기타 소비에트 규범문서의 표현으로 굳어졌다.
1937년 명령 제00486호
1937년 8월 15일 내무인민위원회 인민위원 예조프가 국가보안 총감찰관 자격으로 서명한 작전명령 제00486호는 '조국반역자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의 아내에 대한 탄압과 자녀 배치에 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이 명령은 1936년 8월 1일까지 거슬러 올라가 군사재판소와 군사법정에서 제1범주 또는 제2범주로 유죄판결을 받은 우익-트로츠키주의 스파이·파괴 조직 성원들의 아내에 대한 탄압을 지시했고, 형법 제58조의 해당 부분도 그에 맞게 고쳐졌다. 아내들은 사회적 위험도에 따라 5~8년 이상의 수용소형을 받았고 사건은 내무인민위원부 특별회의가 심리했다. '사회적으로 위험한' 자녀로 분류된 아이들은 노동수용소와 소년교화수용소, 특별제도 고아원에 보내졌고, 나머지 아이들은 일반 고아원이나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친척에게 맡겨졌다. 1937년 정치국 결정도 반역자와 당내 반대파(트로츠키주의자, 지노비예프주의자, 우익 등)의 아내를 5~8년 수용소형에 처하는 것을 규정했으며, 이 관행은 이후 다른 모든 범주의 탄압 대상자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축소와 재확대
대숙청의 후퇴 국면에서 1938년 10월 17일 베리야가 서명한 내무인민위원부 명령 제00689호는 아내를 남편과 함께 자동으로 체포하지 않고 내무인민위원부 담당관 개인의 심사 후에만 체포하도록 했으며,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거나 사회적으로 위험한' 아내, 또는 남편의 '반혁명 활동'을 알고 있던 아내만 체포 대상으로 삼았다.
1940년 정치국 결정 '조국반역자와 그 가족 성원의 기소에 관하여'와 관련 법규는 국경을 넘어 도주한 반역자의 가족을 극북 지역으로 3~5년 유형(재산 몰수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주로 새로 병합된 지역, 즉 발트 3국, 폴란드에서 넘어온 서부 벨라루스와 서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에서 넘어온 북부 부코비나의 주민에게 적용되었다.
1942년 6월 24일 국가방위위원회는 스탈린이 서명한 극비 결정 제1926сс호 '조국반역자 가족에 관하여'를 채택해 최초의 규정 일부를 되살렸다. 제58-1a조에 따라 독일을 위한 간첩, 적에게 넘어간 행위, 반역, 독일 점령자 조력, 점령 기관 근무 등의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성인 가족은 체포되어 소련 외딴 지역으로 5년간 유형되었다. 여기서 가족은 부, 모, 남편, 아내, 아들, 딸, 형제, 자매 가운데 그와 함께 살거나 그에게 부양되는 사람을 뜻했다. 이 결정 원본 타자 원고는 스탈린의 자필 서명과 함께 아르가스피(РГАСПИ, F. 644, Op. 2, D. 72, L. 95-96)에 소장되어 있다.
처벌의 성격과 구분
이 조치는 개인의 책임과 죄과라는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 타인에게 귀속된 범죄에 대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에게 형사책임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혈통이나 신분을 이유로 한 집단적 처벌이라는 점에서 다른 여러 관행과 구분되면서도 나란히 놓인다. 중대 범죄자의 친족을 함께 처벌하던 중국의 구족(九族) 처형, 나치 독일이 정치범의 친족을 억류한 지펜하프트(Sippenhaft), '혈통 이론'과 연좌 제재 같은 개념이 함께 거론된다.
'조국'이라는 명칭과 달리, 가족 탄압을 처음 도입한 1919년 트로츠키 명령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라는 표현을 썼고 '조국'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ЧСИР을 '인민의 적', '사회적으로 위험한 요소', '반소비에트 선동' 등과 나란히 58조 관련 스탈린 시대 탄압의 범주로 분류한다. 한편 연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기점이 달라진다. 법전상 기원은 1934년 제58-1조 개정에 있으나, 가족 연좌 처벌이 대규모로 시행된 것은 1937년 명령 제00486호부터이므로 이 사전은 시행 기점을 1937년으로 잡는다.
사례
카자흐스탄의 알지르(ALZhIR, 러시아어 '악몰린스크 조국반역자 아내 수용소')는 소련 최대 여성 수용소 가운데 하나로, 2만 명이 넘는 여성이 이곳을 거쳤다. 이들은 소련 전역에서 끌려왔으며,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 사람과의 관계 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첫 수감자는 1938년 1월 6일 모스크바 부티르카 감옥에서 온 1,600명의 여성 호송대였다. 수용소에는 62개 민족 출신 여성이 있었는데, 러시아인 4,390명, 유대인 855명, 벨라루스인 740명, 그루지야인 146명이었고 카자흐 여성은 87명뿐이었다. 이들은 공직자, 정부 인사, 저명한 예술가나 작가의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이유로 나이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3년, 5년, 8년, 심지어 10년까지 자유를 박탈당했다. 다수는 교육받은 전문직 종사자와 대학 졸업자였다.
알지르 수감자 가운데는 카자흐 지식인들의 아내도 있었다. 베이임베트 마일린의 아내 굴자말 마일리나는 5년형(알지르 4년, 카라간다 1년)을 살았고 자녀들은 세메이와 오사카로프카 지역의 고아원에서 자랐다. 투라르 리스쿨로프의 아내 아지자 리스쿨로바는 8년형을 받았으며, 생후 한 달 된 딸 리다와 함께 왔고 큰딸 사울레는 오데사 근처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억압당한 사람들의 자녀는 부모와 강제로 분리되었다. 1937년 '조국반역자'로 처형된 아버지를 둔 A. A. 페레베덴체바는 어머니가 체포된 뒤 남동생과 함께 하리코프의 내무인민위원부 배분소와 볼찬스크의 고아원을 거쳤고, 그곳의 조건은 견딜 수 없었으며 아이들이 구타당했다고 기억했다. 이 고아원에서 '사회적으로 위험한' 자녀로 분류된 아이들은 내무인민위원부의 상시 감시 아래 있었고, 구내를 벗어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또래와의 접촉도 차단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re article: legal basis (Art. 58-1), NKVD Order 00486 (15 Aug 1937), Beria's Order 00689 rollback (17 Oct 1938), GKO resolution 1926ss (24 Jun 1942)
- 위키백과 (러시아어) detailed history: Trotsky's 1919 order, Politburo decisions, GKO 1942 resolution text, children's orphanage conditions
- qalam.global ALZhIR camp history: over 20,000 women of 62 nationalities, first convoy Jan 1938, camp conditions, forced labor, family separation
- ru.wikisource.org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영문)
- docs.historyrussia.org
- qalam.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