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lle und reelle Subsumtion der Arbeit unter das Kapital · 1863–현재 (마르크스가 1863~1865년 『자본』 1권의 6장으로 쓴 원고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에서 자세히 전개하고 『자본』 1권 14장에서 짧게 언급했다. 원고는 1933년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아르히프』로 처음 출판되었다.)

형식적 포섭과 실질적 포섭

Formal and Real Subsumption of Labour under Capital

자본이 노동과정을 자기 아래에 두는 두 단계를 가리키는 마르크스의 구분. 형식적 포섭은 수공업자나 농민이 하던 기존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둔 채 그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해 자본가의 지휘 아래 두는 것으로, 잉여가치는 주로 노동일을 늘려(절대적 잉여가치) 얻는다. 실질적 포섭은 협업·분업·기계제 대공업으로 노동과정 자체를 바꾸어 생산력을 높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얻는 것으로, 마르크스는 이를 「특수하게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이라 불렀다.

상세

자본은 노동을 어떻게 손에 넣나?

자본주의는 하룻밤에 공장과 기계를 들고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 자본은 이미 있던 노동을 있는 그대로 사들였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포섭(Subsumtion)」이라는 말로 분석했다. 원래 칸트와 헤겔 철학에서 개별적인 것을 일반적인 것 아래에 넣는 논리적 절차를 뜻하던 말인데,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이 실제로 자본의 지배 아래 놓이는 역사적·사회적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바꾸어 썼다.

마르크스는 1863~1865년 『자본』 1권의 마지막 장으로 쓰려던 원고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과정은 가치증식 과정, 곧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 잉여가치 제조의 수단이 된다. 노동과정은 자본 아래 포섭되고(그것은 자본 자신의 과정이다), 자본가는 지휘자, 관리자로서 그 과정에 들어선다. 그에게 이것은 동시에 직접적으로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나는 자본 아래로의 노동의 형식적 포섭이라 부른다.”

Der Arbeitsprozess wird zum Mittel des Verwertungsprozesses, des Prozesses der Selbstverwertung des Kapitals – der Fabrikation von Mehrwert. Der Arbeitsprozess wird subsumiert unter das Kapital (es ist sein eigner Prozess) und der Kapitalist tritt in den Prozess als Dirigent, Leiter; es ist für ihn zugleich unmittelbar Exploitationsprozess fremder Arbeit. Dies nenne ich die formelle Subsumtion der Arbeit unter das Kapital.

형식적 포섭에서는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형식적 포섭에서 바뀌는 것은 노동자와 생산수단, 노동자와 생산물의 관계다. 예전에 자기 도구로 자기를 위해 일하거나 길드 장인 밑에서 도제로 일하던 수공업자가 이제 임금노동자가 되어 자본가의 직접 통제 아래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 14장에서 바로 이 예를 들었다. 그러나 작업 방식, 도구, 기술은 그대로다. 같은 베틀로 같은 방식으로 베를 짜지만, 이제 베틀과 실과 천은 상인 자본가의 것이고 직조공은 임금을 받는다.

Wenn zur Produktion des absoluten Mehrwerts die bloß formelle Subsumtion der Arbeit unter das Kapital genügt, z.B. daß Handwerker, die früher für sich selbst oder auch als Gesellen eines Zunftmeisters arbeiteten, nun als Lohnarbeiter unter die direkte Kontrolle des Kapitalisten treten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형태를 「형식적」이라 불렀다. 그것은 그 바탕이 된 이전의 생산양식과 형식에서만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강제의 종류다. 노예나 농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인격적 지배와 예속이지만, 형식적 포섭에서 잉여노동을 짜내는 강제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인격적 지배·예속 관계에 기대지 않고 단지 서로 다른 경제적 기능에서 생겨나는 강제 관계”라고 했다. 노동자는 법적으로 자유롭지만 생산수단이 없으므로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생산 방식이 그대로이므로 생산력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형식적 포섭 아래에서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은 주로 노동일을 늘리는 것, 곧 절대적 잉여가치다.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가 유일한 잉여가치 생산 형태일 때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 형식적 포섭이라고 했다.

실질적 포섭은 노동을 어떻게 바꾸나?

자본이 일정한 크기로 자라 생산을 직접 장악하면 노동과정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 14장에서 “형식적 포섭의 자리에 자본 아래로의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 들어선다”고 썼다. 형식적 포섭을 바탕으로 자라난 특수하게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이 그 방법과 수단과 조건까지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Sie unterstellt also eine spezifisch 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 die mit ihren Methoden, Mitteln und Bedingungen selbst erst auf Grundlage der formellen Subsumtion der Arbeit unter das Kapital naturwüchsig entsteht und ausgebildet wird. An die Stelle der formellen tritt die reelle Subsumtion der Arbeit unter das Kapital.

그 첫걸음은 협업이다. 많은 노동자를 한 작업장에 모아 함께 일하게 하는 것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실제의 노동과정이 자본 아래로 포섭되면서 겪는 첫 번째 변화”다. 이어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의 분업이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잘게 쪼개 각 노동자를 평생 한 가지 단순 동작만 하는 부분 노동자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기계제 대공업이 노동자와 도구의 관계를 뒤집는다. “매뉴팩처와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부리지만,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에 봉사한다. … 공장에서는 그들과 상관없이 죽은 기계 장치가 존재하고, 노동자들은 그 살아 있는 부속물로 그것에 편입된다.”

In Manufaktur und Handwerk bedient sich der Arbeiter des Werkzeugs, in der Fabrik dient er der Maschine. Dort geht von ihm die Bewegung des Arbeitsmittels aus, dessen Bewegung er hier zu folgen hat.

「결과들」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실질적 포섭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변화를 짚었다. 협업, 분업, 기계, 과학의 응용으로 커진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 모두 노동의 생산력이 아니라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본 관계에 들어 있는 신비화는 형식적 포섭에서보다 훨씬 더 발전한다.

dies alles stellt sich dar als Produktivkraft des Kapitals, nicht als Produktivkraft der Arbeit

두 포섭은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와 어떻게 이어지나?

형식적 포섭에는 절대적 잉여가치가, 실질적 포섭에는 상대적 잉여가치가 대응한다. 생산력이 높아져 노동자의 생활수단이 싸지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노동일 가운데 필요노동이 줄고 잉여노동이 늘어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두 짝을 기계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대공업은 노동일을 끝없이 늘리는 데도 쓰였으므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은 동시에 절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그는 근대의 가내노동처럼 대공업을 배경으로 형식적 포섭에 가까운 「잡종 형태」가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보자(가정). 마을의 직조공 열 명이 상인에게 고용되어 각자 집에서 하루 12시간 베를 짜던 것을 14시간으로 늘리는 것은 형식적 포섭 아래의 착취 강화다. 상인이 이들을 공장에 모으고 역직기를 들여 같은 천을 절반의 시간에 짜게 하면, 노동자는 더 이상 베 짜는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는 감시자가 된다. 이것이 실질적 포섭이다.

이 구분은 어디에 처음 나오나?

이 구분이 가장 자세히 나오는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은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의 「제6장」으로 썼지만 출판본에서 빠진 원고다. 이 원고는 1933년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가 펴낸 『마르크스-엥겔스 아르히프』에 처음 실렸지만 오랫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 「잃어버린 장」과 『요강』이 20세기 중반 다시 출판되면서 포섭 개념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 새로운 관심을 받았다.

뒤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넓혀 썼나?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해리 브레이버먼은 1974년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20세기의 테일러주의 과학적 관리법이 노동자에게서 작업 지식을 빼앗아 경영진에게 넘기며 숙련을 해체했다고 분석했다. 이 책은 「노동과정 논쟁」을 일으켰고, 실질적 포섭이 20세기 작업장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룬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데이비드 노블 같은 연구자는 브레이버먼이 노동이 자본에 종속된 정도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았다며 노동자들의 저항 사례를 제시했다.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마리오 트론티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실질적 포섭이 공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퍼져 사회가 하나의 「사회적 공장」이 된다고 보았다. 네그리는 이 「총체적 포섭」에서 가치법칙이 직접적인 정치적 명령으로 대체된다고 주장했다. 레오폴디나 포르투나티, 실비아 페데리치 같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임금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과 재생산 노동이 노동력 재생산에 꼭 필요하므로 비공식적으로 자본 아래 포섭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소통과 지식, 사회적 상호작용을 포섭한다는 논의도 이 개념을 빌려 쓴다.

관련 인물

출처

  1.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web.archive.org
  5. web.archive.org
  6. web.archive.org
  7. 위키백과 (영문)
  8.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