Генеральный секретарь ЦК КПСС (Генеральный секретарь Центрального комитета КПСС) · 1922–1953, 1966–1991

소련 공산당 서기장

General Secretary of the CPSU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을 이끈 당의 최고 직책. 1922년 행정 직책으로 만들어졌으나 스탈린이 권력 기반으로 삼은 뒤 1924년부터 1991년까지 사실상 소련의 최고 지도자 자리였다. 1953년부터 1966년까지는 제1서기라고 불렸다.

상세

볼셰비키 집권 뒤 1919년 행정 업무를 맡는 책임서기직이 생겼다. 1919~1921년 서기 세 명 가운데 유일한 정치국원이던 니콜라이 크레스틴스키가 비공식적으로 서기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서기장직은 제11차 당대회 뒤인 1922년 4월 3일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서기국 기구의 직책으로 만들어졌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처음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당 규약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당원 구성을 정하고 당내 직책을 배정하는 행정·규율 업무를 맡는 자리였기에 당과 정부의 지도자는 여전히 인민위원회의 의장 레닌으로 여겨졌다. 서기국의 첫 책임자 야코프 스베르들로프가 1919년 일찍 죽지 않았다면 그가 자연스러운 후보였으리라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다.

레닌은 마지막 몇 달 동안 스탈린이 권위적으로 변해 권한을 남용한다며 그를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라고 요구했으나, 스탈린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도움으로 자리를 지켰다. 레닌 사후 그는 서기장직을 발판으로 권력을 굳혀 1928년 무렵에는 확고한 소련의 지도자가 되었다. 1934년 제17차 당대회 뒤로 중앙위원회는 서기국을 선출하면서 서기장직을 언급하지 않았고, 스탈린은 형식상 서기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지도력은 그대로였다. 1952년 10월 제19차 당대회에서 이 직책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은 뒤에는 서기국 최고 서열이던 게오르기 말렌코프가 1주일가량 당을 이끌다가 3월 14일 서기국에서 물러났다.

1953년 9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제1서기직을 만들어 니키타 흐루쇼프를 선출했다. 규약에 없는 직책이었지만 사실상 서기장직의 부활이었고, 흐루쇼프는 1957년 말렌코프·몰로토프·카가노비치를 몰아내며 그 지위를 굳혔다.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해임되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제1서기가 되었고, 1966년 제23차 당대회는 직책 이름을 서기장으로 되돌려 당 규약에 넣었다. 그 뒤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차례로 이 자리에 올랐다. 1990년 당이 권력 독점을 잃자 고르바초프는 소련 대통령직으로 지도자 지위를 이어 갔고, 같은 해 부서기장직이 생겨 블라디미르 이바시코가 맡았다. 1991년 8월 쿠데타가 실패한 뒤 고르바초프는 8월 24일 서기장직을 내려놓았고, 이바시코가 닷새 동안 직무를 대행한 뒤 당 활동이 정지되면서 직책도 사라졌다.

직책 계보 · 명부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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