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1957

백화제방·백가쟁명

Hundred Flowers Campaign

「백 가지 꽃이 함께 피고 백 가지 학파가 다투게 하라」는 구호 아래 1956년 마오쩌둥이 지식인에게 당에 대한 비판을 권한 운동.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헝가리 혁명 뒤 당 관료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였고, 1957년 5~6월 「대명대방」 국면에서 지식인·민주당파·학생이 일당 독점과 소련 모방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6월 8일 마오가 방향을 바꾸면서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었다.

상세

구호는 1956년 5월 처음 제기되었고 1957년 2월 마오의 「인민 내부 모순의 올바른 처리」 연설에서 이론화되었다. 마오는 사회주의 사회에도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이 있으며 후자는 토론과 설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다수는 지식인에게 문을 여는 데 소극적이었고 실제 「방명」은 1957년 5월 초 시작되었다.

몇 주 동안 신문과 좌담회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파의 장보쥔·뤄룽지는 「정치 설계원」과 당·정 분리를 제안했고, 학생들은 베이징대학의 「민주의 벽」에 대자보를 붙였으며 일부는 소련의 헝가리 개입을 비판했다. 비판의 범위가 당의 지도 원칙 자체에 이르자 마오는 6월 8일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설로 「우파의 진공」을 선언했다.

운동이 처음부터 반대자를 끌어내는 「양모(陽謀)」였는지, 예상보다 커진 비판에 놀란 뒤바꿈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이다. 마오 자신은 뒤에 「뱀을 굴에서 끌어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발언한 사람들은 이후 20년 동안 우파의 낙인을 안고 살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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