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군
Korean Volunteer Army
1942년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개편해 조선독립동맹(주석 김두봉)의 당군으로 만든 조선인 무장 부대. 총사령은 김무정이었고 타이항산을 근거지로 1943년부터 팔로군의 지휘를 받으며 선전 공작과 항일 전투를 벌였다. 해방 뒤 만주로 들어가 조선인 청년을 받아들여 인민해방군 사단으로 커졌고, 1949~1950년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었다. 그 지도자들은 북조선에서 연안파를 이루었다.
상세
화북지대는 1941년 12월 후자좡 전투, 1942년 5월 일본군의 타이항산 포위 돌파 등을 치렀다. 타이항산 전투에서 팔로군 부참모장 쭤취안과 함께 조선인 윤세주·진광화 등 10여 명이 전사했다. 의용군은 화북조선청년군사정치간부학교와 옌안 조선군사정치학교 등을 세워 간부를 길렀고, 1945년 무렵 850~1천여 명에 이르렀다. 공산당으로서는 소련 지원 아래 만주에서 싸운 동북항일연군과 국민당 영향 아래 있던 한국광복군을 함께 의식한 조직이기도 했다.
1945년 8월 11일 공산당은 조선의용군에게 만주 진군을 명령했다. 압록강을 건넌 일부는 소련 군정에 무장해제되었고 김무정 등 지휘관 100여 명은 12월 개인 자격으로 북조선에 들어갔다. 11월 만주에 들어간 2천 명은 1·3·5·7지대로 나뉘어 옌볜 등지의 조선인 청년을 받아들였고, 인민해방군 제164사단·제166사단·독립 제15사단 등으로 커져 국공내전에 참전했다. 1949년 7~8월 제164사단과 제166사단(사단장 방호산)이 북조선에 들어가 조선인민군 제5·6사단이 되었고, 1950년 4월 독립 제15사단이 제12사단이 되었다. 모두 5만 5천~6만 명이 인민군에 편입되어 한국전쟁 직전 북조선의 군사력을 키웠다. 연안파는 1956년 8월 종파 사건 뒤 1958년까지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