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евые коммунисты · 1918

좌파 공산주의자

Left Communists

1918년 초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조약에 반대하며 독일 제국과의 '혁명 전쟁'을 주장한 볼셰비키 내 파벌. 부하린이 이끌었고, 산업의 즉각적 국유화·노동자 통제·화폐 폐지 등 급진적 경제 강령도 내세웠다. 제7차 당대회(1918년 3월)에서 조약 비준에 기권했고, 전시 공산주의가 그들의 급진적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1918년 말 조직적 파벌로서는 소멸했다. 이후 대부분의 구성원은 1920년대 중반 트로츠키좌익반대파에 합류했다.

상세

브레스트-리토프스크와 혁명전쟁론

1917년 12월부터 1918년 3월까지, 볼셰비키당은 독일과의 단독 강화 문제를 두고 격렬한 내부 투쟁을 벌였다. 레닌은 '전선도 군대도 없는' 현실에서 어떠한 조건으로든 평화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트로츠키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중간 노선(즉 일방적 동원해제 선언)을 제안했다.

좌파 공산주의자는 이 두 노선을 모두 거부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제국주의 강대국과의 평화는 세계 혁명에 대한 배신이며, 러시아 혁명은 유럽, 특히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혁명전쟁을 통해 독일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촉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지역당과 페트로그라드 위원회를 장악한 이들은 기관지 『코무니스트』를 발행하며 조약 반대 여론을 조직했다. 당시 각 지방 소비에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평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예컨대 우랄 지역 70개 소비에트 중 46개가 독일 조건 거부를 지지했다.

구성과 이후 행로

주요 구성원은 부하린, 부브노프, 오신스키(오볼렌스키), 퍄타코프, 프레오브라젠스키, 라데크, 콜론타이, 스미르노프, 야코블레바 등이었다. 제7차 당대회(1918년 3월 6~8일)에서 레닌과 스베르들로프가 평화파 대의원으로 대회를 채운 결과,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표결에서 기권했다.

1918년 여름 내전이 본격화되고 전시 공산주의 정책이 시행되면서, 이들의 급진적 경제 강령(산업 국유화, 은행 철폐, 부르주아 전문가 배제)은 더 이상 별개의 파벌 정체성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1918년 말 좌파 공산주의자 파벌은 사실상 해소되었고, 구성원 일부는 군사반대파나 민주집중파로, 그리고 1920년대 중반에는 대부분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로 흘러들어갔다.

좌파 공산주의자는 이후의 '좌익반대파'(1923년 이후의 트로츠키 주도 파벌)와는 전혀 다른 집단이다. 양자는 '좌파'라는 명칭을 공유하지만, 전자는 브레스트 강화 반대라는 구체적 계기에 결집한 1918년의 일시적 파벌이며, 후자는 관료화·일국사회주의 노선에 맞선 1920년대 중반 이후의 지속적 반대 운동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Primary source: faction composition, leadership under Bukharin, Brest-Litovsk opposition, VII Congress abstention, dissolution by late 1918, later affiliation with Trotsky's Left Opposition.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full list of faction members, details of the revolutionary war programme, survey data on local soviet opposition to the treaty (70 Urals soviets: 46 against, 24 for), confirmation of Kommunist journal and Moscow regional bureau cont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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