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유언
Lenin's Testament
블라디미르 레닌이 1922년 12월부터 1923년 1월까지 구술한 문서로, 볼셰비키 지도부에 대한 인물평과 당 중앙위원회 구조 개편안을 담고 있다. 1923년 1월 4일 추가분에서 스탈린은 "너무 거칠며" 총서기직에 부적합하다고 명시했고, 레닌 사후 스탈린에 의해 은폐되었다. 1956년 제20차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에게 배포되고 흐루쇼프가 비밀연설에서 대대적으로 인용하면서 탈스탈린화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상세
배경
1922년 12월, 레닌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해 5월 첫 뇌졸중으로 일시적 마비와 언어 상실을 겪었고, 12월에는 두 번째 뇌졸중으로 고리키 저택에서 요양 중이었다. 이 기간 동안 레닌은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Письмо к съезду)를 비롯해 「국가계획위원회에 입법 기능을 부여하는 것에 대하여」, 「민족 문제 또는 '자치화'에 대하여」, 「협동조합에 대하여」 등 이른바 '정치적 유언'으로 묶이는 여러 글을 구술했다.
내용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는 1922년 12월 23일부터 1923년 1월 4일까지 구술되었으며, 레닌은 차기 당대회까지 엄중한 비밀로 보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뜻과 달리 대부분의 메모는 즉시 중앙위원회로 보내졌다.
레닌은 중앙위원회 위원 수를 50~100명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며, 이는 당의 안정성을 높이고 소수 지도부의 갈등이 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당대회의 핵심 쟁점이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관계라고 지적했다.
"스탈린 동지는 총서기가 된 이후 무한한 권력을 자기 손에 집중시켰소. 나는 그가 언제나 이 권력을 충분히 신중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소."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현 중앙위원회에서 아마도 가장 유능한 인물"이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사무의 순전히 행정적 측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지적했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1917년 10월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평가했고, 부하린은 "당의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이론가"이지만 그의 이론적 견해가 "완전히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이라고 평했다.
1923년 1월 4일 추가
스탈린이 레닌의 아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에게 전화로 폭언한 사건 이후, 레닌은 편지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추신을 추가했다.
"스탈린은 너무 거칠다. 이 결함은 우리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용납될 수 있지만, 총서기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나는 동지들에게 스탈린을 이 자리에서 옮기고, 스탈린 동지와 다른 점이 오직 한 가지, 즉 더 관대하고, 더 충성스럽고, 더 예의 바르고, 동지들에게 더 세심하며, 덜 변덕스러운 인물을 임명할 방안을 숙고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분열의 방지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내가 위에서 서술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며, 결정적 중요성을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궤적
레닌 사후, 크룹스카야는 1924년 5월 제13차 당대회 직전에 이 문서를 중앙위원회에 전달했다. 대의원들은 각 대표단별 비공개 회의에서 문서를 접했으나, 대회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스탈린은 사임 의사를 밝혔고, 카메네프가 표결을 제안했다. 표결 결과 트로츠키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다수가 스탈린의 유임에 찬성했다. 한 대의원은 "우리는 거칠다고 겁먹지 않는다. 우리 당 전체가 거칠고 프롤레타리아적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927년 「프라우다」의 토론란 부록과 제15차 당대회 회보 제30호에 게재되었으나, 1930년대 대숙청과 함께 위조 문서로 간주되어 유통이 금지되었다. 1956년 제20차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 연설에서 이 문서를 상세히 인용하며 스탈린 격하의 결정적 근거로 삼았다. 흐루쇼프는 레닌의 유언을 대의원들에게 사전 배포하여 비밀연설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진위 논란
일부 현대 러시아 역사가들(발렌틴 사하로프, 유리 주코프 등)은 이 문서의 저자가 레닌이 아니라 크룹스카야나 트로츠키일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E. H. 카, 아이작 도이처,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올레크 흘레브뉴크 등 다수 역사가들은 레닌의 저작임을 인정했다. 로널드 수니는 "당시 이 문서가 작성되고 당 고위층에서 논의될 때 그 진위가 의심된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ull text, dictation dates (Dec 1922–Jan 1923), postscript content, suppression and re-publication history, authenticity debate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background on Lenin's illness, assessments of individual Bolshevik leaders, scholarly consensus on authenticity (Suny, Pipes, Lewin)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Full text of Khrushchev's secret speech at the 20th Congress (Feb 24–25, 1956), including the complete quotation of the testament and the statement that it was distributed to delegates
- britannica.com Britannica: confirms that Khrushchev "recalled Lenin's Testament, a long-suppressed document" as the centerpiece of his de-Stalinization spe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