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난 사변
New Fourth Army incident
1941년 1월 안후이 남부(완난)에서 창장 이북으로 이동하던 신4군 본부 약 9천 명이 국민당군 8만 명에게 포위되어 궤멸된 사건. 군장 예팅은 협상하러 갔다가 억류되었고 부군장 샹잉은 탈출 중 살해되었으며 약 2천 명만 포위를 뚫었다. 장제스가 1월 17일 신4군의 번호를 취소하면서 제2차 국공합작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상세
1940년 가을 장제스는 팔로군과 신4군에게 안후이·장쑤에서 황허 이북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공산당은 완난의 본부만 창장 북안으로 옮기기로 했고, 1941년 1월 4일 본부 병력이 징현 윈링을 떠났다. 1월 5일 마오린 일대에서 상관윈샹이 이끄는 국민당군에 포위된 부대는 며칠의 전투 끝에 무너졌고, 정치부의 비전투원도 많이 희생되었다. 13일 예팅이 상관윈샹의 사령부에 협상하러 갔다가 억류되었다.
사건의 책임은 지금도 엇갈린다. 중화민국 쪽은 신4군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한더친의 국민당군을 먼저 공격한 데 대한 응징이라고 보고, 중화인민공화국 쪽은 국민당의 계획된 배신으로 본다. 역사가 그레고어 벤턴은 국민당이 공산군을 위험한 곳으로 몰아 관할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는 점과 함께 신4군이 먼저 공격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공산당은 1월 20일 천이와 류사오치를 중심으로 신4군을 재건했고, 내전을 일으킨 국민당이라는 선전으로 여론에서 이득을 보았다. 이후 두 당은 합작의 이름만 남긴 채 서로를 봉쇄했다. 작가 마오둔의 소설 「부식(腐蝕)」이 이 사건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