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관 법안 (1851)
Questors' Bill (1851)
1851년 11월 6일 프랑스 입법국민의회의 재무관(의사당 경비와 회계를 맡은 의원)인 바즈, 르플로 등이 낸 법안. 의회가 자기를 지키려고 군대를 직접 불러낼 권리를 정해, 쿠데타를 준비하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막으려 했다. 산악파 다수가 보나파르트파와 함께 반대해 11월 17일 부결되었고, 2주 뒤 쿠데타가 일어났다.
상세
1851년 7월 대통령의 연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이 4분의 3 찬성을 얻지 못해 무산되자,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준비하며 측근을 요직에 앉혔다. 10월 27일 생타르노 장군이 육군장관이 되었고, 그는 파리의 병사들에게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이에 겁을 먹은 의회 다수파, 주로 왕당파는 군대에게 헌법이 군의 위계보다 앞선다는 것을 상기시키려 했다. 그것이 재무관들의 이름으로 나온 이 법안이다.
법안은 오를레앙파 의원으로 의회 재무관이던 장디디에 바즈 등이 1851년 11월 6일에 냈다. 국민의회 의장이 의회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직접 징발할 수 있다는 원칙을 법으로 굳히려는 것으로, 티에르가 앞장선 방어책이었다. 샤를 드 레뮈자 같은 오를레앙파가 찬성했고, 공화파 샤라스 대령은 쿠데타가 코앞이라며 좌파 동료들에게 왕당파와 함께 찬성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공화파 다수는 이 법이 왕당파 다수와 샹가르니에 같은 장군들만 돕는다고 보았고, 미셸 드 부르주는 의원들은 인민이라는 “보이지 않는 보초”의 보호를 믿으면 된다고 답했다. 법안은 11월 17일 부결되었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썼다. “행정 권력이 보통선거권 부활을 제안하며 국민의회를 건너뛰어 인민에게 호소했다면, 입법 권력은 재무관 법안으로 인민을 건너뛰어 군대에 호소했다.” 그는 “재무관 법안을 부결함으로써 자기의 무력함을 공공연히 고백했다. 이 법안은 108표 차로 떨어졌으니, 산악파가 승부를 가른 셈이었다”고 보았다. 산악파는 한쪽으로는 샹가르니에를, 다른 쪽으로는 보나파르트를 두려워하는 “뷔리당의 당나귀” 꼴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