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 républicain, radical et radical-socialiste (Parti radical) · 1901–현재

급진사회당 (프랑스)

Radical Party (France)

1901년 6월 창당한 프랑스의 정당으로, 정식 명칭은 공화·급진·급진사회당이다. 처음에는 좌파에 속했으나 점차 중도좌파와 중도를 거쳐, 1972년 좌파가 떨어져 나간 뒤 중도우파로 자리를 옮겼다. 제3공화국, 특히 양차 대전 사이에 거의 모든 정부에 참여한 중심 정당이었고 1905년 정교분리법을 비롯한 개혁을 이끌었다.

상세

급진파는 19세기 초부터 알렉상드르 르드뤼롤랭, 루이 블랑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사상적으로 존재했다. 7월 왕정기인 1843년 르드뤼롤랭 주위에 모여 제2공화정의 수립에 참여했고, 1848년 남성 보통선거, 노예제 폐지, 언론·집회의 자유 같은 개혁을 지지했다. 나폴레옹 3세 체제에 맞선 이들은 1868년 레옹 강베타를 지도자로 맞았고, 1869년 그의 「벨빌 강령」으로 강령을 갖추었다. 1879년 이후 공화파가 국가를 장악하자 급진파는 반교권주의와 식민지 팽창 반대를 대표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1901년 창당된 이 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급진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당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1901년 7월 법보다 앞선 1901년 6월 21~23일에 창당되었다. 그때까지 존재하던 여러 경향의 의원 그룹과 지역 선거위원회, 프리메이슨 지부, 인권연맹과 교육연맹의 지부 등을 하나의 전국 정당으로 묶은 것이었다. 1902년 총선 승리 뒤 당은 좌파연합의 축으로 에밀 콩브를 정부 수반으로 내세웠고, 1905년 정교분리법, 1906년 노동부 신설과 일요 휴무제, 1910년 노동자·농민 연금, 1914년 조제프 카요의 주도로 소득세를 도입했다. 1907년 낭시 대회에서 에두아르 에리오가 보고자를 맡은 강령을 채택했다.

당은 양차 대전 사이에 정점에 이르러, 이 시기 42개 정부 가운데 13개를 급진당원이 이끌었다(카미유 쇼탕 4개, 에두아르 달라디에·에두아르 에리오 각 3개, 알베르 사로 2개, 테오도르 스테그 1개). 1924년 사회당(SFIO)과 좌파 카르텔을 이루어 집권했고, 1927년 「청년 튀르크」의 한 사람인 달라디에가 에리오를 이어 당을 이끌었다. 1936년에는 SFIO, 공산당과 함께 인민전선에 참여했지만, 당내 우파는 이에 반대했고 1938년 당은 중도우파와의 새 「집중」 정부로 인민전선을 끝냈다. 1940년 7월 10일 당 소속 의원 다수는 필리프 페탱에게 전권을 주는 데 찬성했지만, 반대표를 던진 80명 가운데 13명이 급진당원이었고 뱅상 바디는 독재에 반대하는 항의문을 작성했다. 점령기에 장 물랭, 피에르 망데스프랑스 등 여러 급진당원이 레지스탕스에 투신했다.

해방 뒤 당은 제3공화국과 그 실패와 동일시되어 득표율이 10% 안팎으로 떨어졌다. 당은 민주사회주의저항연합(UDSR) 등과 공화좌파연합(RGR)을 결성해 1947년 삼당 체제가 깨진 뒤 다시 정부의 축이 되었고, 제4공화국 내내 여러 총리를 배출했다. 1955년 5월 망데스프랑스가 당을 이끌며 쇄신과 좌파 연대를 꾀했으나, 알제리 문제와 노선 갈등으로 분열이 이어졌다.

제5공화국의 양극화 속에 당은 우파·중도와 손잡았고, 이에 반발한 좌파가 1972년 좌파급진운동을 만들어 떨어져 나갔다. 이후 「발루아 급진당」으로 불린 당은 1979~2002년 프랑스민주연합(UDF), 2002~2011년 대중운동연합(UMP)의 연합 정당이었고, 2012년 민주독립연합(UDI) 창당에 참여했다. 2017년 좌파급진당(PRG)과 합쳐 급진운동이 되었으나 2021년 다시 독립 정당으로 재건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fr.wikipedia.org
  2. fr.wikipedia.org
  3.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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