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동맹 (영국)
Reform League
1865년 2월 남성 보통선거와 비밀투표를 요구하며 세워진 영국의 선거권 운동 단체. 지도부에 조지 하월, 조지 오저, 랜들 크리머, 벤저민 루크래프트 같은 국제노동자협회 인물이 많았다. 1866~1867년 런던의 대중 집회로 1867년 개혁법 통과를 밀어붙였고 1869년 3월 해산했다.
상세
1864~1865년 겨울 「근로 계급의 물질적 향상을 위한 만국 동맹」 회원들이 남성 보통선거 하나에 힘을 모을 새 조직을 꾸렸고, 1865년 2월 23일 개혁동맹이 세워졌다. 마르크스는 처음에 크게 반겼으나 곧 동맹의 노선에 실망했다. 회장은 변호사 에드먼드 빌스였고, 조지 하월은 몇몇 부유한 후원자가 대는 돈으로 상근 서기를 맡아 신문 홍보와 집행위원회 공고를 도맡았다. 언론인 피터 폭스는 집행부에 있었고, 찰스 브래들로와 토머스 모터스헤드도 동맹에서 이름을 얻었다. 남북전쟁 때 남부를 지지한 노동조합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866년 3월 글래드스턴이 낸 개혁 법안이 6월 러셀·글래드스턴 내각과 함께 무너지자 동맹은 전국에서 시위를 열었다. 6월 29일 트라팔가 광장 집회는 동맹 강령에 기초하지 않은 개혁 법안은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7월 23일 내무장관 월폴이 금지한 하이드파크 집회에서는 군중이 공원 난간을 무너뜨리고 들어갔고, 이 「하이드파크 난간 사건」으로 동맹 지도자들은 전국에 이름이 알려졌다.
1867년 동맹의 지부는 런던에만 100개에 이르렀다. 정부가 다시 금지한 5월 6일 하이드파크 집회에 20만 명이 모이자 정부는 물러섰다. 같은 해 통과된 개혁법은 처음으로 노동계급 남성에게 투표권을 열었다. 뒤에 파리로 건너가 코뮌에 가담하는 귀스타브 폴 클뤼세레가 동맹 회원 십여 명에게 영국에서 내전을 일으키자고 제안했을 때, 조지 오저는 찬성했으나 동맹 대다수는 이를 물리쳤다.
법 통과 뒤에도 동맹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선거법과 비밀투표를 위해 활동을 이었다. 부유한 후원자 새뮤얼 몰리가 낸 돈으로 1868년 총선에 여러 대표단을 보냈고, 빌스, 하월, 크리머 같은 지도자도 직접 출마했으나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다. 동맹은 1869년 3월 해산했고 회원 가운데 일부는 자유당 의원이나 활동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