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이론
Regulation theory
1970년대 프랑스에서 미셸 아글리에타, 로베르 부아예, 알랭 리피에츠 등이 세운 정치경제학의 흐름. 자본주의가 모순과 위기의 경향을 안고도 수십 년씩 비교적 안정되게 성장하는 까닭을, 생산·분배·소비가 맞물려 자본을 늘리는 방식인 「축적 체제」와 이를 받치는 제도·규범·국가 정책의 묶음인 「조절 양식」의 짝으로 설명한다. 2차 세계대전 뒤 황금기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맞물린 포드주의 축적 체제로, 1970년대 위기를 그 체제의 구조적 위기로 해석했다. 여기서 조절(régulation)은 정부 규제가 아니라 사회관계가 일정한 틀 안에 자리 잡는 것을 뜻한다.
상세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이윤율 저하나 과잉생산 같은 모순 때문에 되풀이해 위기에 빠진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1945년 이후 서구 자본주의는 30년 가까이 큰 공황 없이 빠르게 성장했을까. 그리고 왜 그 성장은 1970년대 초에 갑자기 멈췄을까. 조절이론은 이 두 질문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초 프랑스는 경제 불안과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같은 행정 기관의 연구자들이 「영광의 30년」의 성장이 왜 막혔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조절」이라는 말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프랑스어 régulation을 처음 경제학에 쓴 사람은 제라르 데스탄 드 베르니스로, 마르크스 경제 분석을 체계 이론으로 새롭게 하려는 뜻이었다. 영국 정치학자 밥 제솝은 이 말이 정부의 규제라기보다 「정규화」나 「정상화」로 옮기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본의 축적이라는 갈등과 위기투성이의 과정이 어떻게 한동안 정상적인 흐름처럼 굴러가게 되는지가 관심이기 때문이다. 이 학파는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아날 학파, 제도주의, 칼 폴라니, 샤를 베틀렘의 영향을 받았다.
출발점은 미셸 아글리에타가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1976년에 낸 『조절과 자본주의의 위기: 미국의 경험』(국내 번역 『자본주의 조절이론』)이다. 아글리에타는 미국 자본주의가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를 분석했고, 로베르 부아예가 이를 넓혀 학파의 다른 기둥이 되었다. 부아예는 이 이론을 「경제적·비경제적 새 형태를 만들어 내는 사회관계의 변형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했다.
핵심 개념은 두 가지다. 「축적 체제」는 생산, 유통, 소비, 분배가 어떻게 짜여 자본을 늘리면서 경제를 오래 안정시키는지를 가리킨다. 리피에츠는 포드주의 축적 체제를 대량생산, 부가가치의 비례적 분배, 그에 따른 기업 수익성의 안정, 설비의 완전 가동과 완전고용으로 묘사했다. 「조절 양식」은 축적 체제가 돌아가게 하는 법, 규범, 국가 형태, 정책 관행의 묶음이다. 흔히 다섯 「제도 형태」를 든다. 경쟁의 형태, 화폐의 형태, 국가의 형태, 임금 관계(임금과 고용을 정하는 방식, 노동 조직), 세계경제에 편입되는 형태다. 둘이 잘 맞으면 성장이 이어지고, 어긋나면 위기가 온다. 이 구도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역사 변화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틀과 나란히 놓인다.
이 개념으로 조절학파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나눈다. 19세기는 자본과 노동력을 대량으로 끌어들이는 「외연적 축적」에 시장 경쟁이 모든 것을 맞추는 「경쟁적 조절」이 짝을 이루었다. 양차 대전 사이에는 테일러주의로 생산성은 크게 올랐으나 대중의 소비가 따라오지 못한 「대량소비 없는 내포적 축적」이 있었다. 갤브레이스의 계산을 빌리면 1919~1929년 미국의 생산성은 43% 올랐지만 임금은 제자리였다. 조절이론은 1929년 공황을 이 어긋남이 낳은 축적 체제의 위기로 본다. 2차 대전 뒤 「영광의 30년」에는 생산성 향상이 임금 인상으로 옮겨지는 단체교섭, 케인스주의 국가, 브레턴우즈 체제가 받치는 「대량소비를 동반한 내포적 축적」, 곧 포드주의가 자리 잡았다.
조절학파는 위기도 층위로 나눈다. 바깥 사건에서 오는 외생적 위기, 호황기에 쌓인 불균형을 제도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고 해소하는 내생적(순환적) 위기, 제도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하강을 멈출 수 없는 조절 양식의 위기, 제도 형태를 크게 뒤엎지 않고는 장기 성장을 이어 갈 수 없는 축적 체제의 위기, 그리고 체제 전체가 무너지는 발전 양식의 위기다. 1929년 공황은 조절 양식의 위기이자 축적 체제의 위기였고, 1970년대의 위기는 포드주의 조절 양식이 깨진 것으로 해석된다. 아날 학파 역사가 에르네스트 라브루스의 말처럼 「모든 사회는 그 구조에 맞는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조절이론은 기업, 산업 부문, 지역, 그리고 한국·칠레·일본·알제리 같은 프랑스·미국 밖의 경제로 연구를 넓혔다. 리피에츠는 신흥 공업국을 두고 실제 발전 과정이 시작된 「주변부 포드주의」와 사회적 진전 없이 저임금 노동만 쓰는 「주변부 테일러주의」를 구별했다. 20세기 말의 자본주의는 시장형(영미권), 중간 수준 조합주의형(일본), 사회민주주의형(스칸디나비아), 국가 주도형(프랑스 등) 모델로 나뉘었다. 포드주의 이후를 두고는 포스트포드주의 논쟁이 벌어졌고, 부아예는 그 뒤의 시기를 「대량소비를 동반한 외연적 축적」으로 보았으나, 금융이 주도하는 새 조절 양식이 성립했는지는 학파 안에서도 열린 문제로 남아 있다. 아글리에타 자신은 그 뒤 화폐와 국제 금융, 주주가치 비판으로 연구를 옮겼다.
학파는 파리 학파를 넘어 그르노블 학파, 독일 학파, 암스테르담 학파, 영국 급진 지리학자, 미국의 사회적 축적 구조 학파, 신그람시 학파로 퍼졌다. 비판도 이어졌다. 로버트 브레너와 마크 글릭은 1991년 《뉴 레프트 리뷰》의 「조절 접근: 이론과 역사」에서, 조절학파가 자본주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법칙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제도 형태로 구분되는 국면의 연속으로 본다고 정리하면서, 이들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 역사 해석을 검토했다. 포스트포드주의론에 대해서는 포드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을 뿐이라거나, 대량생산과 유연 전문화가 한 산업 안에 함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조절학파 쪽은 이 이론이 예측의 도구가 아니라 제도와 경제 동학의 정합성을 분석하는 도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