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onismus · 1896–

수정주의

Revisionism

1890년대 후반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론과 혁명 전략을 경험적 근거로 고쳐 쓰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 논쟁이자, 그 제안을 가리키는 이름. 자본주의는 저절로 무너지지 않으며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안에서 개혁의 축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제2인터내셔널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결시켰다. 이후 공산주의 운동에서 수정주의는 정통에서 이탈했다는 비난어로 굳어져, 중소 분쟁기에는 중국이 소련 노선을 '현대 수정주의'라고 불렀다.

상세

베른슈타인은 무엇을 주장했나

엥겔스의 유고 관리자였던 베른슈타인은 1896년부터 연재한 글과 1899년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과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몇 가지 예측이 현실과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자본이 소수에 집중되는 대신 주식회사와 중간층이 늘고 있고, 노동자의 처지는 절대적으로 악화되지 않았으며, 공황은 파국이 아니라 완화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결론은 전략의 수정이었다. 사회주의는 붕괴를 기다려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선거권, 노동조합, 협동조합을 통한 개혁의 축적으로 실현되며, 따라서 "운동이 전부이고 최종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마르크스주의의 폐기가 아니라 과학적 정신에 따른 수정이라고 불렀다.

논쟁은 어떻게 진행됐나

반박의 선두는 정통의 수호자 카우츠키와 젊은 룩셈부르크였다. 룩셈부르크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개혁과 혁명은 수단과 목표의 관계이므로 최종 목표를 버린 개혁주의는 자본주의의 관리로 전락한다고 답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1899년 하노버 대회와 1903년 드레스덴 대회에서, 제2인터내셔널은 1904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수정주의를 부결시켰다. 그러나 결의와 실천은 따로 움직였다. 당과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은 이미 의회와 임금 투쟁 중심이었고, 이 간극은 1914년 전쟁 예산 찬성으로 폭발했다. 수정주의 논쟁이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분열의 이론적 예고편으로 읽히는 이유다.

욕설이 된 말

10월 혁명 이후 공산주의 운동에서 수정주의는 이론적 입장의 이름이 아니라 정통 이탈에 대한 판결로 쓰이기 시작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독자 노선, 흐루쇼프의 평화공존 노선이 차례로 이 이름을 받았다. 가장 큰 사례는 중소 분쟁으로,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현대 수정주의'로 규정했고 소련 쪽은 중국을 교조주의와 좌익 모험주의로 맞받았다. 같은 시기 서유럽에서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개방적 재해석을 자임하는 흐름이 이 말을 자기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수정주의 논쟁에 대한 평가는 보는 자리에 따라 갈린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에서 베른슈타인은 현실을 직시한 선구자이고, 전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은 사실상 그의 사후 승리로 읽힌다. 공산주의 전통에서 그는 계급 타협의 이론가이며, 1914년의 붕괴가 그 노선의 귀결이다. 학술적으로는 두 가지가 대체로 인정된다. 베른슈타인이 지적한 경험적 어긋남 중 상당수는 실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낙관이 전제한 평화로운 민주주의적 발전은 이후 반세기의 유럽사에서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적 비난어로서의 용법과 이론사의 논쟁을 구분하는 것이 이 말을 다루는 첫걸음이다. 개혁 자체를 목표로 삼는 흐름 일반은 개량주의 항목이 다룬다.

관련 인물

출처

  1. Manfred B. Steger, The Quest for Evolutionary Socialism: Eduard Bernstein and Social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2. Leszek Koł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vol. 2: The Golden Age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duard Bernstein, Evolutionary Socialism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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