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9–1916

제2인터내셔널

Second International

1889년 파리에서 창립된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의 국제 조직. 독일 사회민주당이 중심이었고 카우츠키가 이론적 권위로 통했다. 노동절과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들었고, 8시간 노동제와 보통선거권 운동을 국제적으로 조직했다. 전쟁이 나면 각국 노동자가 이를 저지한다고 거듭 결의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주요 정당들이 자국 정부의 전쟁 예산에 찬성하면서 사실상 붕괴했다.

상세

어떤 조직이었나

제1인터내셔널이 해산한 지 13년 뒤, 프랑스혁명 100주년인 1889년 파리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의 국제 조직이 다시 만들어졌다. 제2인터내셔널은 전신과 달리 대중정당의 연합이었다. 각국에 수십만 당원과 의회 의석을 가진 정당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그 중심에 독일 사회민주당이 있었다. 상설 기구로는 1900년에 만들어진 브뤼셀의 국제사회주의사무국이 있었지만 권한은 약했고, 실질적 통일성은 마르크스주의라는 공통의 이론에서 나왔다. 그 이론의 공인된 해석자가 카우츠키였다. 1890년 이후 노동절 시위를 국제적으로 조직했고, 1910년 코펜하겐 대회의 결의로 세계 여성의 날이 만들어졌다. 아나키스트의 배제를 확정한 1896년 런던 대회 이후로는 의회 정치를 인정하는 정당만이 남았다.

무엇을 놓고 싸웠나

번영하는 조직 안에서 두 개의 큰 논쟁이 벌어졌다. 하나는 수정주의 논쟁이다.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 붕괴론을 의심하고 개혁의 축적을 통한 점진적 이행을 제안하자, 카우츠키와 룩셈부르크가 이를 정통의 이름으로 반박했다. 대회 결의는 번번이 수정주의를 부결시켰지만, 각국 당의 일상 실천은 이미 의회와 노동조합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대중파업 논쟁으로, 1905년 러시아혁명이 보여 준 대중파업을 독일에서도 정치적 무기로 쓸 수 있는가를 놓고 당 지도부, 노동조합, 좌파가 갈라졌다. 두 논쟁 모두에서 공식 입장과 실제 행동의 간격은 계속 벌어졌다.

1914년에 왜 무너졌나

전쟁 문제에서 이 간격이 폭발했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와 1912년 바젤 임시 대회는 전쟁이 나면 각국 노동자가 이를 저지하고, 전쟁이 터지면 그것을 자본주의 타도에 이용한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1914년 8월 4일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단이 전쟁 예산에 찬성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당들도 뒤따랐다. 수십 년 쌓인 조직과 의석을 지키려는 계산, 각국 여론의 압력, 방어전쟁이라는 정부의 논리가 국제주의 결의를 눌렀다. 반전파는 치머발트 운동으로 따로 모였고, 인터내셔널은 기능을 멈췄다. 레닌은 이 붕괴를 지도부의 배신으로 규정하고 새 인터내셔널 건설을 주장했으며, 그 귀결이 1919년의 코민테른이다. 사회민주주의 쪽 계보는 1923년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1951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이어졌다. 1914년의 붕괴는 이후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별개의 운동으로 갈라지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관련 인물

출처

  1. James Joll, The Second International 1889–1914 (Routledge, 1974)
  2. Leszek Koł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vol. 2: The Golden Age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ists Internet Archive: history of the Second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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