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ualökonomie · 1927

성 경제학

Sex-Economy

빌헬름 라이히가 1920년대 후반부터 정신분석의 리비도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를 엮어 세운 연구 방향. 쌓인 성 에너지를 오르가슴으로 온전히 풀어 균형을 되찾는 「오르가슴 능력」을 정신 건강의 기준으로 삼고, 사회가 왜 성을 억압하는지를 계급 지배와 권위주의 가족에서 찾았다. 1933년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이를 마르크스의 사회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 위에 선 학문이라 불렀고, 라이히는 망명 뒤 이를 「오르곤」 연구로 넓혀 갔다.

상세

성 경제학의 출발점은 라이히의 임상 이론이었다. 그는 1924년부터 「오르가슴 능력」(orgastische Potenz)에 관한 글을 냈고, 1927년 프로이트에게 바친 『오르가슴의 기능』에서 이를 정신 건강의 기준이자 치료의 목표로 삼았다. 오르가슴 능력은 쌓인 성적 긴장을 남김없이 풀어 에너지의 균형을 되찾는 능력이고, 이것이 모자라면 방출되지 못한 성 에너지가 고여 신경증의 생리적 바탕이 된다고 했다. 그는 신경증 환자 가운데 오르가슴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고, 프로이트는 이 생각을 라이히의 「목마(Steckenpferd)」라고 불렀다. 신경증은 대중 현상이어서 개인 치료로는 없앨 수 없고, 급진적 성 개혁에 바탕을 둔 예방으로만 없앨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라이히가 1934년 망명지 코펜하겐에서 창간한 《정치 심리학과 성경제학 잡지》는 성 경제학을 「성 과정의 개인적·사회적 법칙에 관한 학설」로 정의하고, 앞으로 세울 변증법적 유물론적 심리학의 중심에 놓았다. 그 바탕에는 리비도, 곧 성 「에너지」의 조절과 「살림」, 그 경제를 다룬 라이히의 정신분석 작업이 있었다. 잡지에는 오르가슴을 전기생리적 방전으로 보는 글 등 이 이론을 생물학 쪽으로 밀고 간 그의 글들이 실렸다.

1933년 성정치 출판사에서 나온 『파시즘의 대중심리』 초판은 성 경제학을 몇 해 전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 성생활의 사회학에 적용하며 형성된 연구 방향이라고 소개한다. 그것은 마르크스를 프로이트로, 또는 프로이트를 마르크스로 바꾸거나 보충하거나 뒤섞는 흔한 시도가 아니며, 마르크스의 사회학적 토대와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토대 위에 선 학문이라고 했다. 정신분석이 성 억압의 메커니즘과 병적 결과를 밝힌다면, 성 경제학은 사회가 무슨 사회학적 이유로 성을 억압하는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초판의 답은 성 억압이 문화 형성의 전제가 아니라 비교적 늦게, 생산수단의 사유재산과 계급 분열의 시작과 함께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성적 이해가 소수의 이윤 이해에 봉사하게 되었고, 이 사태가 일부일처혼과 부권 가족으로 굳어졌으며, 지배 계급은 성을 부정하는 종교와 교회라는 성정치 조직을 세웠다고 했다. 그는 모건과 엥겔스를 들어 모권제를 원시 공산주의의 경제 조직이자 성경제적으로 조직된 사회로 보았다.

이 분석의 핵심 고리는 가족이다. 초판에 따르면 사회경제 구조와 성 구조의 결합, 그리고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은 생애 첫 4~5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고, 교회는 그 기능을 나중에 이어 갈 뿐이다. 그래서 계급국가는 가족에 큰 관심을 두며, 가족은 계급국가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공장이 된다. 어린아이의 성기 성욕을 도덕적으로 억누르면 아이는 겁 많고 수줍고 권위를 두려워하며 순종하게 되고, 반항하는 힘이 마비되며 성에 관한 사고 금지가 사고 전반의 억제와 비판 능력 상실로 번진다. 그 목표는 사유재산 질서에 적응해 궁핍과 굴욕을 견디는 국민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부르주아 교육에 고유한 감각 체험의 억제, 곧 「오르가슴 불능」도 여기서 나온다고 보았다.

라이히는 1946년 증보 제3판에서 이 대목들을 고쳐 썼다. 성 억압이 생겨난 시점은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의 성립과 계급 분열의 시작」으로, 가족을 공장으로 삼는 주체는 계급국가에서 「권위주의 국가」로 바뀌었고 가족도 「권위주의 가족」이 되어, 마르크스주의 어휘가 줄었다. 「성 경제학」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두었으며, 그는 새 서문에서 영어 번역을 위해 책을 고치고 늘리다가 15년 전의 사고 오류에 몸서리쳤다고 적었다. 라이히는 오슬로 시절 「오르곤 에너지」라는 말을 만들었고,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생명 에너지라 여긴 오르곤 연구에 매달렸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서문은 이 책이 아직 덜 자란 성정치 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주려 한다고 밝혔다. 성 경제학은 라이히가 1931년 가을 세운 섹스폴의 이론이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1955년 『에로스와 문명』 후기에서 라이히의 초기 저작을 프로이트에 담긴 비판적 사회 이론을 발전시킨 가장 진지한 시도로 꼽았다. 성 억압이 지배와 착취의 이해로 강제되고 다시 그 이해를 강화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히의 성 억압 개념은 구별 없이 뭉뚱그려져 있어 성 해방 그 자체가 만병통치약이 되었고, 억압적 승화와 비억압적 승화를 구별하지 않아 자유의 진보가 성의 방출로만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관련 인물

출처

  1. archive.org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3. de.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
  6. de.wikipedia.org
  7.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