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치카
Smychka
소비에트 러시아와 초기 소련에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정치적·경제적 동맹을 가리킨 용어. 문자 그대로는 '결합' 또는 '연결'을 뜻하며, 네프 시기 내내 볼셰비키 당이 농민 다수 국가에서 혁명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이념으로 삼았다. 레닌이 네프 도입의 근거로 제시한 이 동맹은 1923년 가위 위기, 1928년 곡물 위기 등을 거치며 균열을 드러냈고, 강제 집단화로 전면 폐기되었다.
상세
개념
스미치카는 잇는다, 연결한다는 뜻의 일상어로, 노동자 권력과 농민 경제를 결합해야 한다는 정책 표어로 쓰였다. 농민이 인구의 대다수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묻는 문제 설정 자체가 이 말에 담겨 있었다.
레닌은 네프를 도입하면서 이 결합을 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국가가 공산품을 농촌에 공급하고 농민이 잉여 곡물을 시장에 내놓는 교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동맹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협동조합을 농민을 사회주의로 끌어들이는 통로로 본 그의 마지막 저작들도 같은 문제의식에 서 있었다.
시험
동맹은 곧 시험대에 올랐다. 1923년 가위 위기에서 공업품 가격이 농산물 가격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자 농민의 판매 유인이 약해졌고, 당은 공업품 가격 인하와 수매가 조정으로 대응했다. 1925년 이후에는 반대 방향의 문제, 즉 국가가 제시한 수매가로는 곡물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 국면에서 스미치카는 정책 논쟁의 언어가 되었다. 좌익반대파는 농민 부문에서 잉여를 이전해 공업화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고, 부하린을 중심으로 한 우익반대파는 동맹의 유지 자체를 우선 조건으로 삼았다. 양측 모두 스미치카를 인용했지만, 그것이 요구하는 대가에 대한 판단이 정반대였다.
폐기
1928년 곡물 위기에서 비상 조치가 발동되고 강제 수매가 되살아나면서 동맹의 언어는 실질적으로 폐기되었다. 1929년 이후 농촌 정책은 결합이 아니라 계급 투쟁의 언어로 서술되었고, 쿨라크 청산이 정책의 중심에 놓였다.
부하린이 1929년 초 발표한 「경제학자의 노트」는 균형의 파괴를 경고한 마지막 공개 방어였다. 그가 축출된 뒤 스미치카는 공식 어휘에서 사라졌으며, 이후 소련 농업 정책은 동맹의 조건이 아니라 수취의 효율을 묻는 문제로 재편되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primary definition and etymology
- encyclopedia.com historical development, factional debates, and the end with collectivization
- soviethistory.msu.edu smychka as framework for NEP market relations, urban-rural exchange, and cultural dimensions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compact glossary defin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