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위원회
Special Committee
소련 원자폭탄 개발을 총괄하기 위해 1945년 8월 20일 국방위원회 결의 제9887호로 설치된 초법적 국가기관이다. 베리야를 위원장으로 하고 당·정부·과학계 수뇌부를 망라했으며, 인력·자원·정보를 제한 없이 동원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받아 사실상 원자력 분야의 '소형 정치국'으로 기능했다. 1953년 6월 26일 베리야 체포와 함께 해체되어 중형기계제조부로 흡수됐다.
상세
설치 배경
1945년 8월 6일과 9일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 스탈린은 원자폭탄 개발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켰다. 기존에는 몰로토프가 명목상 관할하고 페르부힌이 실무를 맡고 있었으나, 진척이 더뎠다. 스탈린은 8월 20일 국방위원회(GKO) 결의 제9887호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베리야를 위원장에 임명했다.
구성과 권한
특별위원회는 말렌코프, 보즈네센스키, 반니코프(군수인민위원), 쿠르차토프(과학책임자), 카피차, 페르부힌 등 당·정부·과학계 핵심 인물들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정부가 보유한 모든 자원을 원자력 사업에 동원할 수 있는 비상 권한을 가졌으며, 그 결정은 스탈린에게 직접 보고되었다. 위원회 산하에 제1총국(PGU)을 두어 연구·설계·건설·생산을 일원적으로 지휘하게 했다. 학자 메드베데프는 이 위원회를 '원자력 정치국(atomic politburo)'이라 불렀다.
실제 운영
특별위원회는 NKVD의 정보망(클라우스 푹스 등)을 통해 맨해튼 계획의 설계 자료를 입수했고, 쿠르차토프·하리톤·젤도비치의 독자 연구와 결합했다. 우라늄 채굴과 폐쇄도시(사로프·첼랴빈스크-40) 건설에는 굴라크 수용자와 강제 노동이 대규모로 투입됐다. 1949년 8월 29일 RDS-1 실험 성공으로 미국의 핵독점을 무너뜨렸고, 1953년에는 수소폭탄 RDS-6s 실험까지 이끌었다.
해체
1953년 3월 스탈린 사후 베리야는 특별위원회 개편을 시도했으나, 6월 26일 체포되어 처형됐다. 특별위원회는 같은 날 해체되고, 그 기능과 인력은 신설된 중형기계제조부(원자력 산업 전담 부처)로 이관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full institutional history: created by GKO Resolution 9887 on 20 August 1945, chaired by Beria, dissolved 26 June 1953, absorbed into Ministry of Medium Machine Building
- spokesmanbooks.com (Zhores Medvedev, 'Stalin and the Atomic Bomb') — describes the Special Committee as 'a kind of atomic politburo' with exceptional powers, Beria as chairman, list of members produced by Stalin himself
- 위키백과 (영문) confirms the Special Committee was established by the Politburo after Hiroshima/Nagasaki to oversee nuclear weapons development, with Beria appointed 22 August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