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
Ukrainian 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
1905년 12월 혁명우크라이나당을 바탕으로 결성된 우크라이나의 마르크스주의 정당. 민족 문제와 우크라이나 자치를 앞세우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과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1917년 중앙 라다 시기에 볼로디미르 빈니첸코가 이끈 첫 우크라이나 정부를 주도했고, 디렉토리 시기에도 여러 정부 수반을 냈다. 망명지에서 활동을 이어가다 1950년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우크라이나 사회당으로 통합했다.
상세
우크라이나어 출처는 당이 1905년 12월부터 1950년까지 활동했고, 지식인과 일부 노동자·농민으로 이루어졌으며, 1908년 당원이 약 3,000명이었다고 적는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당은 1905년 혁명 중 하르키우에서 세워진 혁명우크라이나당(RUP)의 제2차 대회에서 공식 창당되어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르푸르트 강령을 채택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받는 조건으로 합류를 제안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스톨리핀 반동기에는 유대인 분트, 일부 멘셰비키와 함께 행동했다.
1908년 이후 경찰의 탄압으로 활동이 제한되었다. 지도자로는 볼로디미르 빈니첸코, 시몬 페틀류라, 드미트로 안토노비치, 레우 유르케비치, 미콜라 포르시 등이 있었다. 당은 1917년 4월 키이우 대회에서 활동을 재개해 우크라이나 자치를 요구했고, 중앙 라다 시기에는 빈니첸코 정부를 통해 집행 권력의 주된 짐을 맡았다. 그러나 토지 문제에 신중했던 탓에 대중의 지지를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에 내주었고, 제4차 우니베르살 이후 정부에는 당 소속 장관이 2명만 남았다.
헤트만 국가 시기에는 야당이었고 페틀류라 등 지도자들이 한때 투옥되었다. 당은 우크라이나 국민연합에 참여해 정변과 디렉토리 구성을 준비했고, 빈니첸코(의장)와 페틀류라가 디렉토리에 들어갔다. 볼로디미르 체히우스키, 보리스 마르토스, 이사크 마제파 등 당 인사들이 정부를 이끌었다. 1919년 1월 제4차 대회에서 소비에트 권력 조직을 인정한 좌파 「독립파」와 디렉토리를 지지한 다수파로 갈라졌고, 2월에는 페틀류라가 탈당했다. 독립파는 1920년 1월 우크라이나 공산당(УКП)을 세웠다.
망명지의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 해외대표단」은 프라하에 중심을 두고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속했으며, 망명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정부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이를 지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우크라이나 국민평의회 창설에 참여했고, 1950년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우크라이나 사회당으로 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