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6
라세야, 루시, 콜롬나 — 지방. — 거리 건너편, 무너져 가는 붉은 벽돌담은 한 모퉁이에서는 망루가 달린 황토색 집에, 다른 모퉁이에서는 교회에 가 닿고, 그다음에는 광장, 다시 교회, 수양버들, 여름 하늘, 자갈길. 돼지 한 마리가 길 한복판 먼지 속에 누워 있고, 모퉁이에서 물장수가 나오는데, 돼지가 비키지 않자 물장수가 날렵하게 겨냥하여 돼지 꼬리 위로 지나가니, 돼지가 비명을 지르며 뒷다리로 곤두섰다. — 한데 쪽문 너머로는 — 푸른 마당, 정원으로 난 울타리, 야생 포도 덩굴이 덮인 테라스, 보리수 아래 푸르스름하게 바랜 작은 집, 반쯤 허물어진 목욕간, 고요, 햇볕, 양지의 개, 해바라기의 작은 해들. 거리 쪽 창 안에는 집주인인 노처녀 자매 카피톨리나와 림마 스쿠드리나가 산다. 정원 쪽 창 안, 테라스 너머에는 폴레티카와 라슬로의 옛 아내가 두 딸과 함께 산다. 류바 폴레티카와 알랴 라슬로다. 목욕간에는, 카피톨리나와 림마의 친동생이자 막내로, 스쿠드린에서 오조고프로 제 성을 바꾼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가 개와 함께 외로이 산다.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의 방은 더없이 가난하면서도 더없이 정갈하게 치워져 있었으니, 노처녀에게, 처녀 노파에게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 수십 년에 걸쳐 자리 잡힌 모습이었다 — 흰 덮개를 씌운 침대, 작업대, 발재봉틀, 마네킹, 모슬린 커튼.
이 두 노파, 카피톨리나와 림마 카르포브나는 콜롬나시와, 그리고 온 소시민 루시의 대대로 내려온 명예로운 세습 소시민이요, 흰 바느질꾼이자 재봉사였다 — 그러나 본질을 따지자면 그들은 저희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았다. 자매는 한 살 터울로 태어났다. 카피톨리나가 손위였다. 카피톨리나의 삶은 소시민 도덕의 품위로 가득 차 흘렀으니, 그녀의 온 삶이 온 도시의 눈과 온 도시의 도덕의 손바닥 위에서 흘렀고 — 온 도시의 잡것들에게 축복받았다 —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는 명예로운 소시민이었다. 온 도시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토요일이 철야기도로 흘러갔다는 것을, 그녀의 모든 나날이 블라우스와 셔츠의 가두리 장식과 솔기에, 수천 아르신의 아마포와 무명천에 굽혀졌다는 것을 — 단 한 번도 낯선 이가 그녀에게 입 맞춘 적이 없다는 것을 — 그리고 오직 그녀만이, 삶을 쓸모없게 만드는 그 생각들, 삭아 버린 인생의 포도주가 주는 그 아픔을 알고 있었다 — 한데 삶에는 청춘도, 젊음도, 늦여름도 있었건만 — 단 한 번도 그녀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온 도시의 명예의 본보기로 남았으니, 성(性)의 순결로, 하느님으로, 콜롬나의 도덕으로 제 삶을 삭혀 버린 것이다.
흰 바느질꾼인 림마 카르포브나의 삶은 또 다르게 펼쳐졌다.
이 일은 이십팔 년 전에 일어났고, 그때 삼 년 동안 이어졌으니 — 온 콜롬나의 수치로 삼 년 동안 이어져, 그 수치가 평생토록 남게 되었다. 이 일은 림마의 나이가 서른을 넘어가며 젊음을 잃고 절망을 뿌리던 날들에 일어났다. 콜롬나에는 한 국고(國庫) 관리가, 아마추어 배우가, 미남이자 쓰레기 같은 자가 살고 있었으니, 그는 결혼하여 아이들이 있었고 술꾼이었다. 림마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림마는 제 사랑에 복종하여 온 콜롬나의 도덕을 악마에게나 던져 버렸다. 모든 일이 온 콜롬나의 수치로, 불운하게 벌어졌다. 콜롬나 너머에는 일곱형제 숲이 자랐고, 모스크바강 너머에는 비밀을 지킬 만한 술 취한 강굽이가 놓여 있었다. — 림마는 밤에 ‘접시’라 불리는 작은 가로수길에서 이 사람에게 몸을 내맡겼다 — 한데 사내아이들이 덤불 뒤에서 그들을 엿보다가, 이튿날 아침 야유하고 수치를 알리려 했다. 그리고 수치의 모든 세월 내내, 림마는 집의 지붕 아래에서는 단 한 번도 제 아마추어 배우를 만나지 못했으니, 들판에서, 거리에서, 무너진 크렘린의 마린킨 탑에서, 버려진 거룻배에서, 가을이며 겨울에도 만났다. 마린킨 탑은 마리나 므니셰크의 죽음뿐 아니라 림마 스쿠드리나의 사랑의 죽음까지 제 안에 간직했다. 거리에서 낯선 이들은 림마를 손가락질했고, 아는 이들은 모른 체했다. 누이 카피톨리나조차 그때는 누이 림마를 멀리했다. 국고 관리 배우의 본처는 림마를 때리러 다녔고, 자프루드의 사내녀석들을 — 역시 림마를 때리도록 — 부추겼다 — 그리고 콜롬나는 제 법으로 본처 편에 섰다. 사람들은 림마에게 셔츠를 지을 솔기 장식과 가두리 천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굶주렸다. 림마에게 바르바라라 이름 지은 딸이 태어나, 수치스러운 증거의 본보기요 수치 그 자체가 되었다. 림마에게 둘째 딸 클라브디야가 태어나, 클라브디야가 두 번째 수치의 증거가 되었다. 림마의 여권에는 “자녀 둘 있음”, “처녀”라고 적혀 있었으니 — 혁명 이전의 러시아에서라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그렇게 적혔을 것이다. 국고 관리 아마추어 배우는 림마를 때렸고 술을 빌려 그녀를 사랑했으며, 본처와 함께 콜롬나를 떠났다. 림마는 두 계집아이와 함께, 잔혹한 가난과 수치 속에 홀로 남았으니, 그때 이미 서른을 한참 넘긴 여자였다.
그로부터 다시 삼십 년 가까이 흘러, 시간이 가려 주고 시간이 걸러 주었다 — 그리하여 림마는, 제 삶에 — 있었음을 안다. 행복이 — 그녀의 삶은 가득 차 있고, 채워져 있다. 손위 바르바라는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벌써 두 아이를 두었다. 바르바라의 남편은 제도사로 일한다. 바르바라는 교사로 일한다. 막내 클라브디야는 보육교사로 일한다. 림마 카르포브나는 살림을 꾸리는 안주인이요, 집안의 어머니다. 림마 카르포브나는 제 삶에 행복하다. 늙음이 그녀를 작게 만들었고, 행복이 그녀를 살지게 만들었다.
이제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에게도 — 오직 하나의 삶이 있을 뿐이니, 림마와 바르바라와 클라브디야와 손주들의 삶이다. 성서의 무화과나무 같은 순결도, 온 콜롬나의 명예와 정직함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에게는 제 삶이 없다. 시간이 걸러 주었다. 림마의 생물학적 명예가 카피톨리나의 온 콜롬나적 명예보다 강한 것으로 드러났고, 수치가 행복으로 변했으니, 무릇 무(無)는 — 오직 무로써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한편 림마의 명예는 사랑의 모놀리트로 떠받쳐진 강의 여울과 소처럼 만들어졌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의 방에는 — 마네킹, 재봉틀, 멈춰 버린 시간.
7
콜롬나 위로 종소리가 죽어 갔다.
러시아의 옛것들, 러시아의 지방, 오카 유역, 숲, 늪, 마을, 수도원, 영지. 소시민의 콜롬나에는 교회 스물일곱, 수도원 넷이 있다. 타루사, 카시라, 로스치슬라블, 콜롬나, 랴잔, 카시모프, 무롬으로 이어지는 도시들의 사슬은 역사의 약효 있는 카밀러 속에 깃든 러시아 분령공국과 골목들의 기억이요, 살인과 세기의 돌 기념비요, 크렘린의 잿빛 돌들이다. 콜롬나의 마린킨 탑에서는 마리나 므니셰크가 죽었다. — 그해 모스크바가 전쟁하는 요새를 닮았다면, 소시민의 콜롬나는 깊숙한 후방의 도시, 조세와 징집과 할당의 도시로, 나라가 전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쟁을 받아들인 도시였다. 소시민의 도시는 직업 수첩과 줄 서기 속에서 살았고, 상점에는 전선으로 넘어간 물건들이 없었다 — 상점에는 두 줄이 있었으니 직업 수첩을 가진 사람들의 줄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줄이었고, 영화표도 다른 이들에게는 이십오, 사십, 육십 코페이카였으나 수첩 소지자에게는 오, 십, 십오 코페이카였다. 직업 수첩은 콜롬나의 집들에서, 그것이 있는 집이라면, 빵 배급표 곁 첫째 자리에 놓여 있었고, 빵 배급표는, 따라서 빵은,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만 나왔다 —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빵이 주어지지 않았다. 소시민의 후방은 전쟁 속에서 피 없이 가난해지고, 누레지고, 우레도 대포도 없이 말을 잃는다. 후방의 사람들은 잠잠해지고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후방의 집들은 귀가 멀고, 딱총나무에 뒤덮이고, 무너져 내린다. 후방의 줄은 군(郡)의 땅거미처럼 흐리고 느리다. 그때 후방에서는 가축을 부지런히 치고 약탈자들이 약탈한다. 도시에서 파는 술은 사실상 두 가지뿐이었으니, 보드카와 교회 포도주였다. 보드카는 많이 마셨고, 교회 포도주는 그보다 덜했어도 역시 많이 마셨으니 — 그리스도의 피와 따뜻한 물로도 쓰였고 여자들을 위해서도 쓰였다. 궐련은 도시에서 「푸시카」, 한 갑에 십일 코페이카, 그리고 「복스」, 십사 코페이카를 피웠고 — 다른 것은 피우지 않았다. 보드카와 궐련에는 수첩 있는 줄과 수첩 없는 줄이 섰으되, 이제 노동조합의 원칙이 아니라 담배와 술의 원칙을 따랐다. 깊숙한 후방이 콜롬나를 지휘했고 — 콜롬나는 병사들의 후방으로 살았다. 옛 유물 박물관들의 관장은 콜롬나를 실크해트에 소매 넓은 외투, 체크무늬 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고, 그리보예도프처럼 구레나룻을 길렀다. 사람들은 그를 그리보예도프라 불렀다. 그의 외투 주머니에는 박물관과 수도원들의 묵직한 열쇠가 들어 있었다. 그리보예도프에게서는 양파와 보드카와 땀 냄새가 났다. 광을 닮은 그의 집에는 박물관의 성서와 백의와 영대와 소매 덮개와 수단과 제의와 성작 덮개와 덮개포와 제단 옷이 — 십삼 세기, 십오 세기, 십칠 세기의 것들이 — 굴러다녔고, 보브레네보 수도원에서 가져온 십칠 세기 작품인, 가시관을 쓴 벌거벗은 나무 그리스도가 먼지 속에 뒹굴었다. 그리보예도프의 서재에는 지주 카라진의 마호가니가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붉은 띠와 흰 윗부분을 지닌 귀족의 자기(瓷器) 모자가 재떨이로 쓰이고 있었다. — 지주 카라진,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는 한때 근위기병 연대에 복무하다가 혁명 이십오 년쯤 전에 퇴역했다. 동료의 도둑질과 난동을 조사하라고 파견된 그가 연대장에게 진실을 보고했는데, 그 진실은 근위기병대 명예 연대장에게 쓸모없는 것이었으니 — 명예 연대장, 곧 황태후 마리야 표도로브나가 그 도둑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카라진은 전역을 청하고 영지에 들어앉아, 일주일에 한 번 시내로 장을 보러 왔으니, 하인 둘을 거느리고 낡은 큰 마차를 타고 와서는 코스타코프의 가게에서 흰 장갑으로 가리켜 캐비아 반 푼트, 발리크 사분의 삼 푼트, 철갑상어 한 마리를 싸게 했다. 하인 하나가 값을 치르고 다른 하나가 물건을 받았다. 한번은 상인 코스타코프가 나리에게 손을 내밀려 하자, 카라진은 손을 내주지 않고 짧게 말했다. “그럴 것 없다!” — 카라진은 귀족 모자를 쓰고 니콜라이 시대의 외투를 입고 다녔다. 혁명은 카라진을 영지에서 도시로 내쫓았으나 외투와 모자는 남겨 주었다. 줄에 서면 지주는 모자를 쓴 채, 하인들 대신 아내를 제 앞에 세웠다. 카라진은 옛 물건을 팔아 살았다. 그런 일로 그는 박물관지기를 찾아가곤 했다. 박물관지기의 집에서 그는 혁명의 뜻으로 제 영지에서 빼앗긴 가구를 보았고, 그것을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카라진은 박물관지기의 책상 위에서 귀족 모자 모양의 재떨이를 보고 모자의 띠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 치우시오, — 그가 엄하게 말했다.
— 왜요? — 박물관지기가 물었다.
— 러시아 귀족의 모자는 침 뱉는 그릇이 될 수 없소, — 카라진이 대답했다.
옛것 애호가들은 서로 말다툼을 했다. 카라진은 다시는 박물관지기의 문턱을 넘지 않았다.
콜롬나에는 마구장이 한 사람이 살았으니, 그는 어린 시절 카자크 사동(使童)으로 카라진 밑에서 부릴 때, 굼뜨다는 이유로 카라진이 왼손 단 한 방에 제 이를 일곱 개나 부러뜨린 일을 고맙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8
콜롬나 위로 종소리가 죽어 갔으니, 종들은 광물금속무역 트러스트로 보내려 종루에서 떼어 내고 있었다. 도르래와 통나무와 삼밧줄로, 종루 높은 곳에서 종들을 종각에서 끌어내, 땅 위 높은 데 매달았다가 아래로 내던졌다. 종들이 밧줄을 타고 기어 내려오는 동안, 그것들은 음울한 통곡으로 울부짖었다. 이 통곡은 도시의 음울함 속에서 죽어 갔다. 종들은 으르렁거리고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대포처럼 울부짖으며 땅속으로 두 아르신쯤 파고들었다. 대대로 내려온 러시아의 종들은 동틀 녘부터 울부짖기 시작했다.
9
마호가니 세공·복원가인 파벨, 스테판 표도로비치 베즈데토프 형제는 늘 모스크바의, 옛날에 지보데르카라 불리던 블라디미로-돌고루콥스카야 거리에 살았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도 지보데르카에 살았다. 지보데르카는 — 굽고 좁고 어두운 거리로, 막다른 골목과 대문 통로가 많고, 언제나 우레 같은 짐마차꾼들과 먼지로 메워진, 모스크바-아시아적 거리의 본보기였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옛것의 예술과 무명(無名)에 헌신하고 있었다.
표트르가 러시아에서 시작한 러시아 마호가니 가구의 예술에는 제 나름의 기억이 있었다. 이 농노의 예술에는 기록된 역사가 없으며, 시간은 장인들의 이름을 보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예술은 이름 없는 외톨이들의, 도시의 지하실과 영지의 머슴 오두막 뒷방의, 독한 보드카와 고독의 잔혹함의 일이었다. 자코브와 불이 스승이 되었다. 농노 소년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파리로, 빈으로 보내졌다 — 그곳에서 그들은 솜씨를 익혔다. 이윽고 그들은 돌아왔다 — 파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지하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슴방 뒤의 골방으로 — 그리고 창조했다. 어떤 장인은 수십 년에 걸쳐 무슨 침상이며 화장대며 작은 책상이며 책장 따위를 만들었다 — 일하고, 마시고, 죽으며, 제 예술을 조카들에게 남겼으니, 장인에게는 자식을 두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리하여 조카는 — 큰아버지의 예술을 이어가거나, 그것을 본떴다. 장인은 죽었으나 물건들은 지주의 영지와 저택에서 살아남아, 그 곁에서 사람들이 사랑하고 침상 위에서 죽었으며, 책상 비밀 서랍에는 은밀한 편지가 간직되었고, 신붓감들은 화장 거울 속에서 제 젊음을 들여다보았으며, 노파들은 제 늙음을 들여다보았다. 옐리자베타, 예카테리나 — 로코코, 바로크, 청동, 곱슬 장식, 작은 꽃들, 자단(紫檀), 장미목, 흑단, 카렐리야 자작, 페르시아 호두나무. 파벨은 — 엄격하다, 파벨은 — 몰타 기사단원이다. 파벨에게는 군대식 프리메이슨의 군대식 선(線)이, 엄격한 안식이 있다 — 마호가니는 짙게 광이 나도록 닦이고, 초록 가죽에, 검은 사자와 그리핀. 알렉산드르 — 앙피르, 고전, 그리스. 니콜라이 — 다시 파벨이로되, 형 알렉산드르의 위대함에 짓눌린 파벨. 그렇게 시대들이 마호가니 위에 새겨졌다. 이 예술을 먹여 살리던 농노제가 무너지자, 농노 장인들을 가구 공장이 대신했다. 그러나 장인들의 조카들은 — 보드카를 통하여 — 살아남았다. 이 장인들은 이제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옛것을 복원한다 — 그러나 그들은 큰아버지들의 솜씨와 전통을 간직했다.
파벨과 스테판 베즈데토프는 위대한 장인들의 조카로 살았으니, 외톨이요 과묵한 사람들이었다 — 그러나 그들은 큰아버지들 외에도 상업학교와 스트로가노프 학교에서 배웠다. 큰아버지들을 기려 그들은 지하실에 살았다.
이런 장인은 가구 공장으로 보낼 수도 없고, 니콜라이 일세 이후에 만들어진 물건을 수리하게 할 수도 없다. 그는 — 골동상이요, 옛것의 복원가다. 그는 모스크바 집의 다락에서, 전당포에서, 군청 소재지 작은 읍에서, 불타지 않은 영지의 헛간에서 — 예카테리나, 파벨, 알렉산드르 양식의 탁자며 삼면경이며 소파를 찾아낼 것이고 — 죽은 물건들의 살아 있는 삶을 되살리려, 제 지하실에서 그것들을 두고 몇 달이나 매만지고, 담배 피우고, 생각하고, 눈으로 가늠할 것이다. 그는 — 복원가요, 물건들의 시간 속, 과거를 바라본다 — 어쩌면 그는 작은 책상의 비밀 서랍에서 누렇게 바랜 편지 묶음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는 이렇게 주장하리라. 이 복원가들은 철학자처럼 제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시인처럼 그것을 사랑한다고 — 그들은 영락없는 괴짜이며, 괴짜답게 저와 똑같은 괴짜 수집가에게 복원한 물건을 팔되, 거래하면서 — 예카테리나 시절의 독수리 문양 술병으로 옮겨 부은 코냑을, 옛 황실의 다이아몬드 그릇 세트에 딸린 술잔으로 함께 마시리라고.
베즈데토프 형제가 역에서 나왔을 때, 콜롬나는 음울한 고요와, 말의 땀내가 밴 원시적인 새벽 전의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가 삯마차로 그들을 앞질러 갔다.
그는 마차를 세우고 포장마차에서 뛰어내려, 파벨 표도로비치에게 말했다.
— 내일 저녁 스쿠드린 댁에서!
근교 모스크바의 칠월 밤은 — 이미 가을 같고, 어둡고, 느리다. 밤의 어둠 속에는 언제나 공간과 냄새의 뒤엉킴이 있으니, 군청 소재지의 소박한 꽃들이 향기를 풍기되 어둠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새벽은 빛을 가져와 신비를 없애 버린다. 도시는 동녘의 푸른빛으로 차가워져 갔다. 동녘은 이윽고 보랏빛이 돌았고, 그러자 공간이 부예지기 시작했다. 거리들은 새벽 전 개 짖는 소리 속에, 거리의 자갈 포장 속에, 지난 반세기 동안 죽어 가던 석조 가옥의 관(棺) 속에 잠겨 있었다. 파트니츠키예 문은 크렘린으로 통했다 —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쿨리코보 들판으로 출진하던 바로 그 문이다. 요새의 성벽은 먼지 어린 어스름 속에 이끼처럼 헐벗어, 양딱총나무와 세월에 뒤덮였다.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은 하늘을 떠받치며, 희끄무레해진 구름에 걸리고, 제 기슭을 안개 속에 숨겼다. 땅이 밤에서 기어 나왔고, 밤은 먼지 어린 동녘으로 스러져 갔다. 풀밭에서 도시로, 새벽으로 안개가 기어들었다.
크렘린 안의 어느 집, 외로운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집은 박물관지기의 것이었다. 형제는 창가로 다가가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헛간 같은 방은 백의(白衣)며 영대(領帶)며 제의(祭衣)며 사제복으로 어지러웠다. 방 한가운데에는 둘이 있었으니 — 박물관지기가 벌거벗은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벌거벗은 사람은 두 팔을 엇갈려 모은 채 미동도 없이 있었다. 박물관지기가 사분의 일 병에서 보드카 한 잔을 따라 벌거벗은 사람의 입술로 가져갔으나, 그자는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박물관지기가 보드카를 마셨다. 벌거벗은 사람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얽혀 있었다.
그제야 형제는 알아보았다. 박물관지기는 사람 키만 한 나무로 깎은,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목상(木像)과 함께 홀로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박물관지기는 나무로 된 그리스도의 입술로 잔을 가져가며 보드카를 마셨다. 박물관지기는 제 그리보예도프식 프록코트를 풀어 헤쳐 털 많은 가슴을 드러냈고, 구레나룻은 부글거렸다. 박물관지기는 한없이 취해 있었다. 그리스도는 무심했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가슴에 핏방울이 맺힌 채 두 팔을 엇갈려 모은 나무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저런 개자식들! — 손아래 베즈데토프가 놀라 말했으나 — 그가 누구를 개자식이라 여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이 하늘을 떠받쳤고, 그 기슭을 안개가 끌어안았다. 풀밭 너머, 모스크바강 너머에서 해가 땅 뒤로 나오려 하며 새 하루를 낳았다. 밤은 사무적으로 희미해졌고, 빛은 교회의 종루를, 박물관지기 집 아래의 물방앗간을, 둑과 수양버들을 어둠에서 끌어내, 그것들에게서 흐릿함을 씻어 내고 그것들을 낮의 자리에 세웠다. 박물관지기 집 창의 불빛이 희미해졌다. 밤은 크렘린 토루 아래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물방앗간과 급수탑을 지나 둑을 건너 형제는 자프루디예로 들어갔다. 물방앗간 곁에서는, 새벽이 먼지 어렸음에도, 폐어초(肺魚草)의 축축한 향기가 났다. 새벽 아래 음울한 고요가 식어 갔고, 살아남은 교회 종루들의 새벽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에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빛이 어둠에서 공간을 끄집어내 제자리에 세웠다. 안개는 서둘러 사라졌다. 형제의 얼굴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밤에 속아, 창백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자프루디예의 스쿠드린 다리 옆, 제 소유의 기둥 달린 집에 살았다. 형제는 소(沼) 곁에 멈춰 섰고, 새벽 안개 속 둑가에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잠옷 바람에 맨발로, 오른손은 터진 틈으로 내민 채 왼손에 잔가지를 들고 소들을 치고 있었다. 해가 풀밭 뒤에서 제 빛살을 뿜어내, 교회 십자가와 마린킨 탑에 가 부딪쳤다. 단번에 이슬이 차가워졌다. 얼빠진 갈까마귀 떼가 머리 위를 날아갔다. 도시는 종루에서 끌어내려지는 종들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멀리 건설 현장의 발파 작업장에서 산소가 펑 터졌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생각에 잠겨 베즈데토프 형제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 알아보고는 반가워하여 — 끙끙거리고 코를 훌쩍이고 빙긋 웃으며 마중 나와 — 말했다.
— 아아, 손님들이로군…… 내가 자네들 주려고 프롤레타리아 이론을 하나 지어냈다네!…… 왔구먼!……
— 소 치나? — 파벨 베즈데토프가 묻고 킬킬거렸다.
— 치지, — 노인이 대답하며 파벨 표도로비치를 따라 킬킬거렸다.
— 그러게나!
— 그러게 말일세!
— 지키나? 망보나? — 자네, 전사(戰士)로군!……
— 망보지. 그래서 뭐?…… 싸우기도 하지, 암!…… 자네들 주려고, 예브게니 예브게니치 주려고 착상을 하나 지어냈다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께서 저녁에 들르신다고 전하라 하셨소. 우리와 함께 오셨소…… 한데 그리보예도프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드카를 마시고 있더이다.
— 마시지!
셋이서 가축을 앞세워 몰며, 약초 같은 카밀러가 우거진 거리로 들어섰다. 그들 위로 얼빠진 갈까마귀 떼가, 이미 햇살에 잠긴 높은 하늘에서 날았고, 제비들은 소리 없는 고요 속에 밤을 배웅하며 땅 위 낮게 날았다. 거리는 제비들의 침묵 속에 잠겨, 약초 카밀러가 우거진 채, 텅 비고 노쇠하여, 제정 분국 시절의 모습으로 있었다. 마지막 박쥐가 날아갔다. 잿빛 소들이 카밀러와 빈카의 꽃봉오리를 느릿느릿 뜯었다. 새벽의 고요가 끝나 가고 있었다. 낮이 다가왔다.
— 들리지? 신음하는 소리, — 스쿠드린이 말했다.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황제 시절과 꼭 마찬가지로, 종을 훔쳐 가는군. 이 도시에는 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신경쇠약에 걸린 이가 많다네. 알다시피, 사격장의 미숙한 사수들은, 같은 중대 옆 사람이 쏘려 하면 눈을 질끈 감지 않나. 종이 떨어질 때면 영락없이 대포처럼 쾅 하거든. 그래서 이 도시에는 눈을 질끈 감고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신경쇠약에 빠져 아무것도 못 보고 다니는 이가 많다네. 그리고 — 잘 보게나 — 다른 건 몰라도, 종만은 노동인민위원회도 없이 새벽부터 끌어 내린다 이 말씀이야.
스쿠드린의 집은 늙은 영감처럼 시간에 기댄 채, 기둥의 깨진 송곳니를 햇볕에 들이대고, 흐려진 무지갯빛 유리창으로 바라보며, 구레나룻처럼 라일락에 뒤덮여 있었다. 쪽문은 옆으로 비스듬히 매달려, 지의(地衣)와 이끼의 지친 역사를 이루었다. 쪽문으로 들어가, 기둥 아래 테라스를 지나, 말린 버섯처럼 바싹 마르고 거뭇해진 십팔세기 방들로, 셀러리와 양파 냄새 속, 먼지 낀 응접실의 마호가니로 갔다. 응접실에는 아직 밤이 끼어 있었다. 파벨 베즈데토프는 감식가의 눈과 장인의 손으로 소파의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래도 버틸 텐가? 안 팔 거야? 노인은 안절부절못하고 킬킬거리며 우는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 그래, 그 말일세. 못 해, 안 돼, 못 해. 내 것은 내 곁에 둬야지, — 그러고는 악의에 차 덧붙였다. — 내가 자네들보다 더 오래 살 거야!…… 한데 어디서 사들일지는, 자네들 줄 목록을 작성해 뒀네.
침실에서 아내 마리야 클리모브나가 나와, 두 손을 앞치마 밑에 감추고 손님들에게 허리 굽혀 절하며 노래하듯 말했다.
— 귀하신 손님들, 어서 오십시오, 오래 기다린 손님들이여……
문 뒤에서 딸 카테리나가 잠옷 바람으로, 맨 장딴지를 드러내고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빼꼼 내다보았다 — 문 뒤에서 손님들에게 무릎 굽혀 인사했고, 나무토막 같은 그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노인은 펠트 장화를 신었다. 손님들의 눈은 죽은 자의 눈처럼 텅 비었다. 노파는 안부를 거듭 물으며 우유를 권했다. 낮이 왔다. 손님들은 잠을 청하여, 응접실 바닥의 깃털 이불 위에 프록코트는 벗되 바지는 입은 채 함께 누웠다. 집 위로, 거리 위로 떨어지는 종이 울부짖었고, 유리창이 쟁그랑거렸으며, 집이 흔들렸다.
10
1. 곤차리 구역 포사드스카야 거리에는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이 집에는 일흔 살 노파인 미시키나 미망인이 살았다. 집은 거리에 대해 모로 서 있었으니, 거리가 생기기 전에 지어진 까닭이었다 — 게다가 이 집은 켠 목재가 아니라 도끼로 다듬은 목재로 지어졌으니, 곧 목수들이 아직 톱을 쓰지 않고 도끼 하나로만 일하던 때에 지어진 것이다 — 그러니까 표트르 시대 이전, 그리고 표트르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 시절 기준으로는 보야르의 집이었다. 집에는 그 시절부터 — 양치기와 보야르를 그린 십칠세기 그림에 황토와 유약을 입힌 타일로 꾸민, 타일 벽난로와 타일 온돌 침상이 간직되어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가 쪽문으로 들어섰다.
태곳적 같은 노파가 돼지 구유 앞 흙벽 가에 앉아 있었다. 돼지가 구유에서 끓는 물에 데친 쐐기풀을 먹고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인사하고 말없이 노파 곁에 앉았다. 노파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갑고 또 겁먹은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노파는 해진 펠트 장화에 사라사 치마를 입고 페르시아풍 알록달록한 숄을 두르고 있었다.
— 그래, 어떻습니까, 파시겠소? — 파벨 베즈데토프가 물었다.
노파는 두 손을 숄 밑에 감추고 눈을 땅으로, 돼지 쪽으로 떨구었다. 스테판과 파벨 표도로비치는 음울하게 서로를 바라보았고, 스테판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 팔 거라고. 보랏빛 손톱이 달린 뼈만 남은 손으로 노파는 양피지 같은 입가를 훔쳤고, 손이 떨렸다.
— 글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구려, — 노파가 미안한 듯 형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 우리 할아버지도, 증조부도 사셨고, 그 시절은 가물가물 잊혔으니…… 내 셋방 사람이 죽고 나서는, 천국에 가셨겠지만, 정말 견딜 수가 없게 됐다오. 그이가 방값으로 한 달에 삼 루블씩 내고 등유도 사 줬으니, 나한테는 그걸로 족했지. 한데 이 침상에서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남편도, — 어쩌면 좋단 말이오?…… 천국에 가셨겠지, 셋방 사람은 조용했고, 삼 루블 내고 내 손에서 숨을 거뒀다오……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몇 밤이나 잠을 못 잤소……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 벽난로와 침상의 타일은 — 백스무 장이오. 약속대로, 한 장에 이십오 코페이카. 그러니 당장 댁에 삼십 루블이오. 평생 쓸 만하지요. 우리가 미장이를 보내 그것들을 떼어 내고 그 자리에 벽돌을 놓고 회칠까지 해 드리겠소. 죄다 우리 돈으로.
— 값에 대해선 할 말 없소, — 노파가 말했다. — 값은 후하게 쳐 주시는구려. 우리 데서는 누구도 그런 값을 안 줄 거요…… 게다가 나 말고 누구한테 그게 필요하겠소?…… 부모님만 아니었더라면…… 외로운 몸이라오……
노파는 생각에 잠겼다. 오래 생각했다 —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 그녀의 눈은 보지 못하는 눈이 되어 눈구멍 속으로 꺼져 들었다. 돼지는 쐐기풀을 다 먹고 코로 노파의 펠트 장화를 쿡쿡 찔렀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사무적이고 엄하게 바라보았다. 노파는 다시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러고는 미안한 듯 빙긋 웃으며, 미안한 듯 마당과 채마밭의 비뚜름한 울타리들을 둘러보고는 — 미안한 듯 베즈데토프 형제 앞에서 눈을 떨구었다.
— 그럼, 그렇게 합시다,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 노파가 말하며 파벨 표도로비치에게 서투르고 수줍게, 그러나 본격 장사 전통이 요구하는 대로 손을 내밀어 — 옷자락에서 옷자락으로 물건을 넘겼다.
2. 성당 광장의, 한때 제 소유였던 집 반지하에 — 지주 투치코프 일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옛 영지는 우유 공장으로 바뀌었다. 이곳 지하에는 — 어른 둘과 아이 여섯이 살았다 — 여자 둘, 곧 노파 투치코바와 그 며느리였으니, 며느리의 남편은 옛 장교로, 이십오년에 결핵으로 죽기 전날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늙은 대령은 십오년에 카르파티아에서 전사했다. 네 아이는 며느리인 올가 파블로브나의 자식이었고 — 나머지 둘은 반혁명죄로 총살된 막내 투치코프의 자식이었다. 올가 파블로브나는 유모로 일하며, 저녁이면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쳤다. 서른 살 여자인 그녀는 노파처럼 보였다.
베즈데토프 형제가 왔을 때, 지하실은 모든 가난한 집이 그러하듯 잠겨 있지 않았다. 올가 파블로브나가 그들을 맞았다. 그녀는 들어오라 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 이불 밑에 침구가 없는 것을 낯선 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침대를 가리려, 이른바 식당이라는 데로 앞서 달려갔다. 올가 파블로브나는 알렉산드르 앙피르 양식 마호가니 화장대의 삼면경에 제 모습을 비춰 보았다.
형제는 사무적이고 빈틈없었다.
스테판은 의자를 거꾸로 세우고, 소파를 밀어내고, 침대의 매트리스를 들추고, 서랍장의 서랍을 빼내며 — 마호가니를 살폈다. 파벨은 세밀화와 유리구슬과 자기를 들춰 보았다. 젊은 노파 올가 파블로브나에게는 처녀다운 동작의 가벼움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이 남아 있었다. 복원가들은 방 안에 말없는 난장판을 벌이며, 더러움과 가난을 하느님의 빛 아래로 끌어냈다. 여섯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것에 호기심을 느껴 어머니 치마로 기어들었고, 손위 둘은 난장판을 거들 채비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부끄러웠고, 손아래 아이들은 치마 곁에서 칭얼대며 어머니가 부끄러워하는 것조차 방해했다.
스테판은 의자 셋과 안락의자 하나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말했다.
— 한 벌이 안 맞소, 짝이 안 차요.
— 무슨 말씀이세요? — 올가 파블로브나가 되물었다! — 그러고는 어쩔 줄 몰라 아이들에게 외쳤다. — 얘들아, 제발 여기서 나가 있으렴! 여긴 너희 있을 데가 아니야, 부탁이야……
— 한 벌이 안 맞소, 짝이 안 차요,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 의자가 셋인데 안락의자는 하나뿐이오. 물건은 좋아요, 두말 않겠소, 허나 손을 많이 봐야 하오. 보시다시피 — 눅눅한 데서 사니. 한 벌은 채워야 합니다.
복원가가 입을 열자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 네, — 올가 파블로브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다 있긴 했는데,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떠나올 때 일부는 영지에 남았고, 일부는 농민들 손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아이들이 부쉈고, 그러다 — 보시다시피 — 눅눅해서, 헛간으로 옮겨 뒀어요……
— 아마 스물네 시간 안에 나가라 했겠지요?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 네, 우리는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밤에 나왔어요. 미리 내다봤지요……
파벨 표도로비치가 대화에 끼어들어 올가 파블로브나에게 물었다.
— 프랑스어하고 영어를 아십니까?
— 오, 네! — 올가 파블로브나가 대답했다. — 할 줄 알아요……
— 이 작은 그림들은 — 부셰와 코즈웨이겠지요?
— 오, 네, — 이 세밀화들은……
파벨 표도로비치가 형을 흘긋 보며 말했다.
— 한 점에 이십오 루블씩 쳐 드려도 되겠지요?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동생의 말을 엄히 끊었다.
— 부서진 거라도 좋으니 가구 한 벌을 채워 주시면, 가구를 다 사들이겠소. 농민들한테 있다 하셨으니, 그리로 가 봐도 좋고.
— 오, 네! — 올가 파블로브나가 대답했다. — 절반이라도 채운다면…… 우리 마을까지는 십삼 베르스타니, 거의 산책이나 다름없어요. 절반은 채울 수 있어요. 오늘 마을에 다녀와서 내일 답을 드리지요. 한데 — 몇몇 물건이 부서져 있다면……
— 그건 상관없소, 값을 깎으면 되니. 답을 줄 것도 없이, 바로 오늘 밤 역으로 실어 오십쇼. 거기 우리 포장꾼이 받아 셈하고 꾸려 둘 테니. 소파는 십오 루블, 안락의자는 — 칠 루블 오십, 의자는 한 점에 오 루블. 포장은 우리 쪽에서.
— 오, 네, — 지금 바로 가지요, 우리 마을까지는 십삼 베르스타밖에 안 되니, 거의 산책이에요, 걷는 데는 익숙하답니다…… 지금 곧 가겠어요.
손위 사내아이가 말했다.
— 엄마, 그럼 제 신발 사 주실 거예요?
지하실 창밖으로 황금빛 칠월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3. 지주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카라진은 식당 소파에 누워, 닳을 대로 닳은 다람쥐 가죽 윗옷을 덮고 있었다. 식당은, 그와 그 아내의 서재 겸 침실과 마찬가지로, 우편 마부의 셋집에 차려진 진열실 같았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문턱에 서서 인사했다.
지주는 한참 그들을 뜯어보더니 버럭 소리쳤다.
— 나가라, 이 사기꾼들아!…… 여기서 나가!
형제는 꼼짝하지 않았다.
카라진은 얼굴이 시뻘게져 다시 버럭 소리쳤다.
— 내 앞에서 꺼져라, 못된 것들!
고함 소리에 아내가 나왔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카라지나 부인에게 인사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 나딘, 지난달 우리를 속여 먹은 저 비열한 것들을 나는 볼 수가 없소, — 카라진이 아내에게 말했다.
— 알겠어요, 뱌체슬라프, 당신은 서재로 가세요, 제가 저들과 이야기하지요. 아, 당신은 다 아시잖아요, 뱌체슬라프! — 카라지나가 대답했다.
— 저것들이 내 휴식을 깨뜨렸어. 알겠소, 서재로 가리다. 다만, 부디 저 종놈들에게 허물없이 굴지는 마시오.
카라진은 윗옷을 질질 끌며 방을 나갔다. 그 뒤로 베즈데토프 형제가 방에 들어와 다시 한번 공손히 인사했다.
— 댁의 러시아 고블랭을 보여 주시고, 작은 책상의 마지막 값도 말씀해 주십시오, —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 앉으시지요, 여러분, — 카라지나가 말했다.
서재 문이 벌컥 열리며 카라진의 머리가 문에서 쑥 나왔다. 카라진은 베즈데토프 형제를 행여 보지 않으려고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소리쳤다.
— 나딘, 저들을 앉히지 마시오! 저들이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 턱이 있소? 저들이 고르게 두지 마시오! — 우리가 팔아야겠다 정한 것만 저들에게 파시오. 자기와 시계와 청동만 파시오!
— 우리는 그냥 가도 됩니다, —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 아, 잠깐만요, 여러분,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가 진정하게 두세요, 저이는 아주 편찮으세요, — 카라지나가 말하며 힘없이 탁자에 앉았다. — 우리도 몇 가지는 꼭 팔아야 하니까요. 아, 여러분…… 뱌체슬라프 이바노비치, 부탁이에요, 문 좀 닫으시고, 우리 말은 듣지 마시고, 정원으로 나가 계세요……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자프루디예의 스쿠드린 다리 옆, 제 소유의 집에서 시간을 멈춰 세운 채 살았다. 혁명도 그의 여든다섯 해는 건드리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마 젊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늙음으로 제 자신을 속여 넘기려 살았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했다 — 그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들 알렉산드르와 셈을 치르듯 삶과 셈을 치렀다. 노인은 비굴하면서도 음흉한, 더없이 추레한 미소 속에 몸을 숨겼다 — 웃을 때면 그의 희끄무레한 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늪에 절은 사시나무 등걸처럼 미끈거리고 옹이진 제 삶의 선을 그어 나갔다. 노인은 모질게 살았고 모질었으니, 그의 아들들이 그에게서 모질게 나온 것과 같았다. 손위 아들 알렉산드르는, 이십세기가 한참 멀던 시절, 아버지가 이미 노인이던 때, 랴잔으로 가는 기선에 급한 편지를 전하라는 심부름을 받았다가 기선을 놓치고는, 아버지에게서 “서둘러라, 못된 놈아!” 하는 말과 함께 따귀를 맞았다. 이 따귀가 집안의 꿀단지에 떨어진 마지막 한 방울이었으니 — 사내아이는 열네 살이 되어 가던 참이었다 — 사내아이는 돌아서서 집을 나갔다 — 그러고는 육 년이 지나서야 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학생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이십세기의 문턱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돌아오라 명하며 부모의 축복을 거두고 영영 저주하겠노라 으름장을 놓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자랐다. 바로 그 편지에, 아버지 서명 바로 아래 아들은 이렇게 적어 넣었다. — “그깟 당신 축복, 악마에게나 줘 버리쇼!” —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편지를 돌려보냈다. 집을 나간 지 육 년 만에, 햇살 좋은 봄날 알렉산드르가 응접실로 들어서자, 아버지는 반가운 미소를 띠고 아들을 때리려 손을 치켜든 채 종종걸음으로 마주 나왔다. 아들은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제 손으로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고, 다시 한번 웃었으니, 그 웃음 속에 힘이 즐겁게 빛났고, 아버지의 손은 집게에 물린 꼴이 되었다. 아들은 손목을 살짝 눌러 아버지를 앉히고, 탁자 곁 안락의자에 앉히며 즐겁게 말했다.
—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 어찌 그리 애쓰십니까, 아버님? — 좀 앉으시지요, 아버님.
아버지는 코를 훌쩍이고 꿀꿀거리고 킬킬거렸으며, 얼굴에 모진 선량함이 스쳤다 — 아버지가 아내에게 외쳤다.
— 마류시카, 그래, 히히, 보드카를, 보드카를 가져오너라, 여보, 지하실에서 시원한 걸로, 시원한 안주랑 같이! 아들이 컸구나, 컸어 — 우리한테 복덩이로 왔구나, 이 망할 자식!……
아들은 아버지를 꺾어 누른 첫 번째 존재였다 — 두 번째는 혁명이었다. 그 무렵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 그러나 기사가 된 아들 알렉산드르는 혁명에 부딪혀 거기에 이마를 깨뜨렸으니, 혁명에 복종하지 않고 그 도끼 밑에 서서, 군청 지하실 벽 앞에서 나간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평온하고 모진 눈으로 총알을 맞으며 — 그리고 아버지는 — 아들을 속여 넘겼으니, 아무도, 아들도 혁명도 믿지 않은 채 혁명과 잔꾀를 부린 것이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아들들은 이렇게 풀려 나갔다. 기사, 사제, 발레 배우, 의사, 다시 기사 — 그리고 그 가운데 누구도 제 아버지의 집을 마다하지 않았고, 모두가 혁명에 머리를 깨뜨려, 잔꾀의 삶은 노인에게 남겨 두었다. 천구백이십구년에 이르러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손위 손주들은 이미 결혼했으나, 막내이자 외동인 딸은 열아홉 살이 되어 가고 있었다. 노인이 치던 그 과거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 알렉산드르는 명예의 기억이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탈장을 앓아, 걸을 때면 오른손으로 바짓가랑이 터진 틈을 통해 그 탈장을 받쳐 들었다 — 그의 푸르스름한 두 손은 수종으로 부어올랐다 — 빵에는 공용 소금통에서 소금을 듬뿍 쳐 와지끈와지끈 씹었고, 남은 소금은 아껴 도로 소금통에 부어 넣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사람답게 자는 법을 잊어버려, 한밤중에 깨어 성경을 읽거나 동틀 녘까지 풀밭에서 소를 치며 깨어 있다가, 그러고 나서 한낮까지 잤다. 한낮이면 그는 신문을 읽으러 도서실로 갔다 — 구독료로 돈을 쓰지는 않았다. 지난 십 년 동안 그는 잔꾀를 부렸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수종으로 뚱뚱하고 머리가 온통 세고 벗어졌으며, 말을 꺼낼 채비를 하는 동안 한참 쌕쌕거리고 코를 훌쩍였다. 스쿠드린의 집은 한때 지주 베레이스키의 것이었으니, 그는 농노 해방 뒤 선출직인 치안 중재관 자리에 있다가 가산을 탕진한 자였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개혁 이전의 군대살이를 마치고 베레이스키 밑에서 서기로 일하며 재판소의 농간을 익혔고, 그가 가산을 탕진하자 집을 사들이면서 사설 대리인, 곧 농민 사건을 대신 다니는 자의 자리까지 함께 사들였다. 집은 예카테리나 시절 그대로 손대지 않은 채 서 있었고, 백오십 년의 세월 동안 제 마호가니처럼 거뭇해지고 유리창이 푸르죽죽해졌다. 노인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 제 농노 마을 지주에서부터, 세바스토폴 징집에 이르기까지. 그는 농노제를 아들 알렉산드르처럼 기억했다. 지난 오십 년 동안 그는 러시아의 모든 장관과 인민위원의, 제정 러시아 궁정과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에 온 모든 대사의, 열강의 모든 외무장관의, 모든 황제와 국왕과 교황과 총리의 이름과 부칭과 성을 다 기억했다 — 노인은 햇수 세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나는 니콜라이 파블로비치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도,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도 다 살아 넘겼다 —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도 살아 넘길 게야.
집에는 — 노인과 아내 마리야 클리모브나, 그리고 딸 카테리나가 살았다. 집은 마호가니로 예카테리나 시절을 말없이 간직했으되, 혁명 속에서도 노인의 잔꾀 속에서도, 사람들이 예카테리나보다, 아니 표트르보다도 한참 전에 살던 그대로 살아갔다. 노부부는 채마밭으로 살았다. 집 안에 산업에서 온 것이라곤 — 성냥과 등유와 소금, 그것뿐이었다. 성냥과 등유와 소금은 노인이 관리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와 카테리나와 노인은 봄부터 가을까지 양배추와 비트와 순무와 오이와 당근에, 그리고 설탕 대신 쓰는 감초 뿌리에 매달렸다. 밤이면 동틀 녘까지 노인은 소를 쳤으니, 건설 현장 쪽 풀밭으로 나가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안개 속을 헤맸다. 겨울이면 노인은 성경 위에서 깨어 있는 그 시간에만 등불을 켰다 — 다른 시간에는 어머니와 딸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한낮이면 노인은 도서실로 가, 공산주의 혁명의 이름들과 소식을 제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러면 딸은 클라브생 앞에 앉아 교회 합창단을 위한 카스탈스키의 성가를 익혔다. 노인은 해 질 녘에 집으로 돌아와,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집은 여자들의 속삭임 속으로 함몰했다. 해 질 녘이면 카테리나는 집에서 몰래 빠져나갔다 — 성당 합창 연습으로, 동무들에게로. 아버지는 한밤중에 깨어났다. 노인은 시간을 잃어버려, 죽음을 두려워하기를 그쳤고, 삶을 두려워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가축을 치듯 그는 과거를 쳤다. 어머니와 딸은 노인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는 교회 말고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며, 죽과 양배춧국을 끓이고, 피로그를 굽고, 우유를 데우고 발효시키고, 묵을 굳히고, 증손주들을 위해 공기놀이 뼈를 챙겨 두고, 방을 치웠다 — 곧 러시아 사람들이 십오세기에도 십칠세기에도 살던 그대로, 십칠세기와 십오세기의 먹을거리로 살아갔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마르고 늙은 노파로, 마땅히 그러하듯, 성모상 같은 옛 성상들과 더불어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 간직되는 그런 러시아 여인의 부류였다. 오십 년 전 혼례를 올린 이튿날, 손가락에 침을 발라 관자놀이 머리를 어떻게 빗어 넘겨야 하는지 아프게 보여 주던 남편의 모진 뜻이 —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모든 기쁨을 죽을 때까지 쇠 박은 궤짝 속에 가둬 버린 그 모진 뜻이, 복종으로 그녀를 단련시켜, 그녀를 영영 군말 없고 말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녀의 세계를 쪽문까지로 좁혀 놓았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카스탈스키의 시편을 불렀다. 집에는 표트르 이전의 루시가 깃들어 있었다. 노인은 밤마다 성경을 읽었으니, 삶을 두려워하기를 그친 것이다. 아주 드물게, 몇 달에 한 번, 밤의 말 없는 시간에 노인은 아내의 잠자리로 가, 코를 훌쩍이며 속삭였다.
— 마류시카, 그래, 크흠, 음!…… 이게 인생이야, 마류시카, 그렇지!……
그의 손에서 양초가 떨렸고, 그의 눈은 눈물에 젖어 웃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겁에 질려 제 몸과 남편에게 성호를 그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불을 껐다.
집 너머로는 혁명이 흘렀고 혁명 후방의 도시가 누워 있었다. 딸 카테리나는 벽 너머에서 잤다. 카테리나는, 끝없는 잠 탓에 멈춰 있는 듯 보이는 작고 누런 실눈 뒤에서 살았다. 부어오른 눈꺼풀 둘레로는 일 년 내내 주근깨가 돋았다. 그녀의 팔다리는 통나무 같았고, 가슴은 스위스 소의 젖통처럼 컸다. 노인은 카테리나를 십칠세기의 순결로, 목욕간 마룻장 밑에 묻어 둔 혼수로 지켰다.
하루를 까마귀들이 흩뜨려 갔다. 해 질 녘 내내 까마귀들이 몹시 부산을 떨며 하루를 훔쳐 갔다. 그리고 해 질 녘은 비가 될 채비를 하며 모여드는 잿빛 구름이라는 물장수 늙은 말들이 실어 갔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종이 울부짖기를 그친 시각에 스쿠드린에게 돌아왔으니, 일을 마친 피로 속에 형제의 눈은 죽은 자의 눈처럼 텅 비었다.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으며 그들은 쉬려고 코냑을 마셨다. 그리고 점심 뒤 — 다시 옷을 벗지 않은 채, 머리맡 바닥에 코냑병을 세워 두고, 바닥 깃털 이불 위에 잠자리에 들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점심을 마치자마자 길 떠날 채비를 했으니, 주머니가 베즈데토프 형제의 루블 지폐와 잔 목록으로 두둑해졌고, 그는 사들인 것 — 예카테리나, 파벨, 알렉산드르 양식의 물건들 — 을 꾸려 역으로 부치도록 일을 시키러, 목수에게, 짐꾼에게, 밧줄과 거적을 구하러 나섰다. 노인은 챙 넓은 펠트 모자를 썼으되 맨발이었다. 일에 바빠 떠나며 그가 말했다.
— 옮기고 꾸리는 일은 저 부랑자들한테 맡겨야 할 텐데 — 얼간이긴 해도 더없이 정직한 사람들이지. 한데 안 돼. 내 동생 이반 카르피치가, 저들의 우두머리 혁명가가 허락을 안 할 거야 — 반혁명 일은 못 하게 하지, 히히!……
땅은 밤을 향해 나아갔다. 저녁부터 가랑비가 흩뿌렸다. 저녁 내내 사람들이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창문을 몰래 두드렸다 — 카테리나가 그들에게 나갔다 — 사람들은 가난뱅이답게 알랑거리며 — “댁에 손님들이 묵으면서 온갖 옛 물건을 사들인다던데” 하면서 — 옛 루블과 코페이카 동전, 부서진 사모바르, 책, 촛대, 쌍안경 따위를 내밀었다. 이 후방의 사람들은 옛것의 예술을 알지 못했으니, 그저 온통 가난했다. 카테리나는 세월에 푸르죽죽해진 구리 등잔 따위를 든 그들을 집 안에 들이지 않았다 — 손님들이 쉬고 나서 내일 보겠거니 하며 물건을 두고 가라 일렀다.
해 질 녘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칠월이 팔월로 넘어가며 먹구름을 몰고 왔으며, 비가 가을처럼 흩뿌렸다. 마호가니의 예술은, 장인들이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은 물건들의 예술이다. 그날 밤을 향해, 오카 위 숲으로 올가 파블로브나 투치코바가, 노파의 얼굴과 처녀처럼 젊은 동작을 지닌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해 질 녘은 잿빛 구름에 덧칠해져 스러졌고, 숲은 팔월의 바람으로 술렁였으며, 오카의 너른 펼침은 태곳적처럼 늙어 갔다. 이곳에는 숲과, 구릉과, 풀과 더불어 사는 너른 바람이 불었다. 오카는 이 자리에서 제 물길을 부수었다. 이 여자는, 숲에 대한 처녀다운 두려움 속에서, 한때 농노의 마을이던 곳으로, 농민들에게는 쓸모없는 마호가니 안락의자와 의자를 사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혼례를 올린 지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그날 저녁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 춤추는 것을 보았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마호가니 일로 다니던 길에서 때 아닌 시각에 돌아왔다. 그의 펠트 모자가 한쪽으로, 뒤통수로 비뚜름히 흘러내려 있었다. 쪽문을 지나 백 년 된 제 마당으로 들어서며,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맨발 뒤꿈치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처구니없고 젊디젊은 앙트르샤를 차 댔다. 어느 때는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았고, 어느 때는 후사르처럼 발길질을 했으며, 어느 때는 뒤꿈치를 마주 부딪치며 마주르카로 펄쩍 뛰었으니, 펠트 모자를 짝으로 삼아서였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비도 밤도 보지 못했다 — 그러나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시간 가운데 하나인 이때, 노인의 얼굴이 행복으로 주름지는 것을 보았다.
하루를 까마귀들이 실어 갔다.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이 콜롬나 크렘린에서 어둠 속으로 잠겨 들며 말없이 서 있었다. 검은 물장수들이 밤과 비를 흩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