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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44

……밤, 텅 빈 방, 고요,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책들을 치워야 해! 사실 마리야는 책을 닮았어!”

고요,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집은 사방이 열려 있었다. 책들이 서가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카메라 옵스쿠라들. — 원은 닫혔다. 수세기 전, 라슬로의 조상들은 그때 라라 불리던 볼가에서 떠났다. 라슬로는 볼가의 근원을 파헤치러 왔다. 라슬로는 근원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라슬로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을 피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모자는 잊고 나왔다. 왼쪽 슈로보 쪽으로는 모놀리트의 가로등 사슬이 이어졌고, 뒤편으로는 우회 운하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건설 현장의 불빛들은 검은 하늘과 낮게 깔린 구름에 부딪혔다. 하늘에서는 이미 가을 같은 잔비가 떨어졌다. 풀밭 위로 바람이 더듬고 다녔다. 라슬로는 집 문을 열어 둔 채 나왔다. 그는 불빛에서, 사람을 만날 만한 곳에서 비켜서 — 어둠 속으로, 비 속으로, 풀밭으로 걸어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걸었다. 땅 위로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책들이 라슬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또 당신이오!?

라슬로 앞의 땅에서 폴토라크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라슬로도 폴토라크도 이 만남에 놀라지 않았다. 폴토라크는 다시 젖은 땅 위에 누웠다. 라슬로는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바로 그 순간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두 기사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건설 현장에 당신이 파괴자라는 정보가 들어왔소, — 라슬로가 무심하게 말했다.

—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소, — 폴토라크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 그리고 오늘 밤, 새벽 한 시에 우리가 모놀리트를 폭파할 것 같소.

둘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잠자코 있었다.

— 새벽 한 시까지, — 손위 베즈데토프가 말했다.

— 새벽 한 시까지, — 스쿠드린이 말했다.

— 그래, 한 시까지.

그리고 그 뒤, 폴토라크에게는 모든 것이 그의 파멸의 저녁에 찾아온 열병이 되었다. 삯마차가 콜롬나를 옆으로 밀어내고 스쿠드린의 집을 가까이 끌어왔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베즈데토프 형제의 어깨 위, 알코올 군함 뒤에서 나타나 바보 성자 흉내를 내고, “고생 없이는 단물도 없느니”라고 중얼거리고, 비열한 자는 죽일 수 있으며 모든 비열한 자가 바보 성자는 아니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폴토라크는, 자신의 마지막 밤인 이 밤에, 죽음이 피 없이도 올 수 있음을, 건설이 피 위에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아주 잘,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폴토라크는 스쿠드린에게서 떠나 — 열병 속으로, 밤에 타 버린 새벽 한 시 속으로, 부교로 갔다. 거기서는 베즈데토프 형제의 주석 같은 눈이 확고히 서 있었고, 그 눈은 셔우드의 눈처럼 무거웠다. 그 눈은 풀밭의 사막에서 바라보며, 하늘의 불기둥과, 비명과, 공포와, 물의 살랑거림 속에 주석 같은 평온으로 박혀 있었다. 폴토라크는 자기의 사랑들을 끌고 다녔다. 사방에는 무력, 아나톨 쿠라긴의 입맞춤, 무혈, 무가정, 죽음, 공허, 황폐, 공포가 둘러섰다 — 피 없는 죽음. 폴토라크는 자신을 한 시에 맞추어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변두리를 따라, 모스크바강 기슭을 따라,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을 지나, 크렘린 아래로 걸었다. 탑에서는 올빼미들이 울었다. 폴토라크는 풀밭으로 나갔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있었다. 내일은 어린 시절만큼 멀리 물러났다. 앞에는 건설 현장의 불빛이 타며 풀밭의 검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폴토라크는 불빛에서 벗어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몇 달 뒤면 물에 잠길 풀밭에서 평화로운 메추라기들이 울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졌다.

— 베라, 나데즈다, 류보프! — 아내의 이름은 소피야였다. 베라, 나데즈다, 류보프, 소피야!……

폴토라크는 죽임당하는 바보 성자들의 종족을 두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베라, 나데즈다, 류보프, 지혜[8] — 아무것도 없다, 헛소리다. 모든 것이 피 위에 있었고 — 이제 무혈이 찾아왔다. 베라는 피 없는 죽음으로 죽었다. 나데즈다는 자신이 언제 진짜 자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폴토라크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이 허락되는 여자가 되고 싶어 했다 — 왜인가? 폴토라크가 진짜로 말한 상대는 스쿠드린뿐이었다. 류보프는 자신이 떠난다고 말하러 왔다. 몰이사냥의 깃발 뒤에 있는 늑대들은 알지 못한다. 숲속의 어두운 새벽에 깃발들이 펼쳐지고, 나무 뒤 고요 속에 사냥꾼들이 죽이기 위해 서 있다는 것을. 죽음은 고함치는 몰이꾼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없는 그들에게서 온다. 몰이꾼들이 울부짖고, 야유하고, 비명을 질렀고, 삶은 — 깃발 뒤에, 몰이꾼들 뒤에,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으로 남았다. 베라! 나데즈다! 류보프! —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불었다. 어둠이 공간을 감추었다. 폴토라크는 풀밭을 달렸다. 앞쪽에서 굴착기들이 건설 현장의 불빛이라는 열병 속에서 쌕쌕거리고, 헐떡이고, 울부짖고, 흐느끼고, 신음했다. 폴토라크는 옆으로 달렸다. 굴착기들은 공포에 사레들렸다. 폴토라크는 둔덕에 걸려 넘어졌다. 머리 위에서 몰이꾼들이 울부짖고 외쳤다. 베라, 나데즈다, 류보프는 죽음이 아니라 몰이꾼들이 되었다. 울부짖음 속에서 모스크바 전차의 한 조각, 흰 사각형, 문구가 떠올랐다. — “시민 여러분! 차장의 요구를 기다리지 말고, 벌금을 피하기 위해 차비를 내십시오!” — 이것이 죽음처럼 보였다. 폴토라크는 자기의 사랑들을 끌고 다녔다. 폴토라크는 러시아인이요 민족주의자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느 때부터 그는 러시아적인 모든 것에 맞서게 되었단 말인가. 셔우드에게서 영국 파운드 스털링을 받아, 러시아 노동자들이 세운 댐을 폭파할 준비를 하던 바로 그가? 열병 속에서 노동자 생산 회의가 떠올랐다. — “시민 여러분, 벌금을 피하려면 요금을 내십시오!” — “맥주 대신 모든 잉여금을 저축통장에 넣으십시오!” — 이것은 문맹처럼 다가왔다. 문장의 뜻대로라면, 예전에는 잉여금 대신 맥주를 저축통장에 넣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었다. 저기, 전차 안에서 취한 장인이 떠들고 있었다. — “예전엔 이랬지. 한쪽에는 통장이 표트르 이바니치가 살고, 다른 쪽에는 통장이 이반 페트로비치가 살아. 나는 이반 페트로비치한테서 일해. 일요일에 한잔하고, 월요일에 싸우고, 보따리를 싸서 화요일부터 표트르 이바니치한테 가. 그 사람은 내가 이반 페트로비치한테 한 방 먹인 걸 아주 좋아하면서 날 받아 주지. 그런데 이제는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장 일로 사고를 치면 — 민스크에서는 통장 일은커녕 직물 일로도 안 받아 준단 말이야!” — 영사기사가 서두를 때의 영화처럼, 폴토라크는 수백, 수천 장의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들은 그의 러시아를 그에게서 가로막고 있었다. “마시지 마시오.” “악수는 폐지됩니다.” “용건을 짧게 말하시오.” “권하지 않아도 앉으시오.” “흡연과 침 뱉기는 금지.” “열 명 넘게 서 있지 마시오.” “도둑을 조심하시오.” “시민 여러분! 민경 기관에서 벌금 영수증을 받을 때에는, 벌금액이 벌금 장부의 부본에 적혔는지 확인하십시오!” — 그것들은 도덕의 포스터였다. 진해지는 용액에서 소금이 밀려 나오듯, 도덕이 거리로 밀려 나와 만든 포스터였다. 폴토라크는 자기 앞에 나타난 손을 보았다. 거즈에 못 박힌 듯 펼쳐진 손 — 검사용 붕대를 감은 손, 봉인이 찍힌 붕대. 노동자들이 몰래 집에서 상처를 덧나게 하여 자해하지 못하도록 콜롬나의 검사용 의사들이 붕대에 찍어야 했던 바로 그 봉인이었다. 검사용 붕대가 눈앞에 들러붙었다. 인간은 개별성 없는 존재로, 사기꾼이라는 수정치를 붙여 취급되었다. 인간은 믿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정직해야 할 의무가 없는 존재였으며,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죄 있는 존재였다. 이것이 죽음처럼 일어섰다. 폴토라크는 늑대가 되었다. 폴토라크는 땅에서 일어나 어둠 속으로 달렸다. 뒤쪽, 풀밭의 어둠 너머로 건설 현장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그곳에서 러시아가, 피 없는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오고 있었다. 열병 속에서 사람들, 도시들, 공장들, 도시와 공장과 건설 현장의 수송대들이 풀밭을 지나 건설 현장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 러시아는 반드시 도달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피로에 쓰러졌다가 일어나 다시 걸었다. 도시들은 자기들의 붉은 간판이라는 포스터를 달고 걸었다. 아무것도 서 있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걸었다. 숲과 마을들까지 걸었다 — 사람들, 건물들, 나무들, 돌들, 물들, 땅이. 러시아는 잿빛과 강철빛으로, 누더기 무리의 진영으로, 구호와 포스터의 지휘 아래, 노동조합의 군단으로, 국가기관의 보병으로, 공산당의 포병과 전차로 걸었다. 그것은 공장이 건설되듯 조직되어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공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러시아의 노동 군대, 묶이고, 서로 종속되고, 이어지고, 지도받고, 교정받는 군대. 수만 개 조직 — 당 조직, 노동조합 조직, 국가 조직, 농촌·볼로스트·구·관구·주·변강의 조직, 노동자·농민·인텔리겐치아의 조직, 노동인민위원회·보건인민위원회·교육인민위원회·상업인민위원회와 그 밖의 수백 조직이 인간과 노동을 조직하고, 서로 종속되고, 겹치고, 함께 조직하며 그 군대를 다듬고 있었다. 폴토라크는 열병을 앓았다 — 이 행진은 동시에 마리야의 장례이자 생산 회의였다. 사람들, 도시들, 땅이 건설 현장으로, 거기서부터, 거기를 지나 걸었다. 건설 현장은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터였기 때문이다. 폴토라크는 풀밭을 달렸다. 포스터들은 건설 현장에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폴토라크의 심장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모놀리트를 폭파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보았다. 사람과 도시와 땅의 이 환영 속에서 자신도 모두와 보조를 맞추어 걷고 있음을. 그는 멈추었다. 그는 달렸다. 도랑에 빠졌다가 서둘러 기어 나왔다. 그의 앞에는 도랑과 구덩이와 미끈거리는 진흙이 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폴토라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부랑자 오조고프였다. 오조고프 뒤로는 답답한 울타리가 솟아,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하늘을 어둠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울타리 뒤에서는 푸른 전등불이 번쩍였다.

— 여기서 왜 이리 이리저리 날뛰는 거냐? — 부랑자가 물었다.

— 누구요? — 폴토라크가 물었다.

— 나다, 이반 오조고프.

— 여기가 어디요?

— 벽돌공장 채석장이야.

벽돌공장 둘레에서는 땅을 파헤치기 마련이고, 벽돌 헛간의 지붕은 낮고 길며, 울타리는 답답하게 막혀 있다. 그래서 벽돌공장은 언제나 파괴와 신비의 장소처럼 보인다. 부랑자는 자기 광기에 취해 있었다. 그는 겨우 두 발로 버티고 서서, 떨리는 가슴에 두 손을 가져다 댄 채 개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 여기서 뭘 하는 거요? — 폴토라크가 물었다.

— 너를 지키고 있다. 네가 우리 형 야시카와 함께 둑을 폭파하려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우리 형 야시카가 왜 밤마다 여기서 가축을 치는지도 나는 안다.

— 넌 전부 거짓말이야, 바보야!

— 거짓말 아니야!

둘은 입을 다물었다.

— 왔냐? 쫓겨났냐? — 이반이 물었다.

— 뭐가?

— 네 양심에서 네가 스스로 쫓겨난 거다. 견디지 못했냐? — 이반은 비꼬듯 말하고는, 진지하게 덧붙였다. — 울어라!

그리고 이어진 일은, 폴토라크가 살아남았더라도, 그와 이반 가운데 누가 헛소리를 하고 있었는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열병 속에서 이반 오조고프는 속삭이듯, 떨면서, 자기와 같은 이들의 코뮌 이야기를 했다 — 예전에는 어땠는지, 자신이 어떻게 콜롬나 집행위원회의 첫 의장이었는지, 천구백십칠년부터 이십일년까지의 세월이 어떠했는지, 그 무섭고도 정의로운 세월이 얼마나 경이로웠으며 또 어떻게 죽었는지, 이반 오조고프 자신이 어떻게 혁명에서 쫓겨났는지, 사람들을 울게 하려고 콜롬나를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그는 다시 자기 코뮌에 대해, 그 평등과 형제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공산주의란 물건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된 공산주의를 위해 첫째로 있어야 할 것은 — 신뢰, 긴장된 주의,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 사람들이었다. 단정한 작은 노인은 비를 맞으며 떨었고, 여윈 손으로, 역시 떨리는 손으로, 재킷 깃을 만지작거렸다. 벽돌공장 채석장은 파괴를 확증하고 있었다. 이반 카르포비치가 작은 둔덕 위로 올라섰고, 울타리 뒤의 빛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미친 얼굴이었다. 폴토라크는 오조고프가 실제로 콜롬나 집행위원회의 첫 의장이었고, 전시공산주의의 시대가 빠져나간 이십이년에 정신이 나갔으며, 그 주위로 그와 같은 자들이 모였음을 알고 있었다…… 거지, 동냥아치, 점쟁이, 걸립꾼, 나사로꾼, 순례자, 불쌍한 자, 절름발이, 예언자, 위선자, 복된 자, 바보 성자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말한 거룩한 루시 일상의 그 꽈배기들, 영원 속으로 사라진 자들, 거룩한 루시의 거지들, 그리스도를 위한 거룩한 루시의 바보 성자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이 꽈배기들이 일상의 아름다움이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요, 세상을 위한 기도자들이었다고 주장했다. 폴토라크 기사 앞에 서 있는 것은 — 거지 동냥아치, 바보 성자 나사로꾼 — 정의를 위한 소비에트 루시의 바보 성자, 세속 콜롬나의 양심, 공산주의를 위한 기도자였다. 이반 오조고프는 콜롬나의 소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아는 이와 모르는 이를 찾아가 그들에게 — 울라고 청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 불타는 연설과 미친 말을 했고, 시장에서는 그의 연설을 듣고 우는 이들도 많았다. 그는 기관들을 돌아다녔고 — 도시에는, 어떤 토착 우두머리들이 이반과 그의 부랑자들을 통해 자기들에게 필요한 콜롬나의 인기를 얻으려고 양파를 눈에 바르기까지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시민의 콜롬나는 이반을 공경했다. 루시에서 수세기 동안, 그 입으로 진리가 말하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죽으러 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바보 성자들을 공경하도록 길들여진 것처럼. 이반은 술을 마셨고, 알코올로 무너져 갔다. 지금 이반은 진짜 형제애와 공산주의와 우정과 평등의 지하실에 취해 있었다. — 빛 속에 있는 것은 이반의 머리뿐이었고, 그 머리는 높이 들려 있었으며, 눈은 광기로 빛났다.

— 울어라! — 이반이 외쳤다.

폴토라크는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오느라 곧장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 울어라!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 울어라! 울어라, 기사. 지금 당장 울어라. 나는 네가 혁명을 죽이게 두지 않겠다. 울어라!

— 소용없소, — 폴토라크가 대답했다. — 늦었소.

— 소용없다고!? 늦었다고?! — 그렇다면 여기서 어디로든 꺼져라, 악마에게로 가라, 내가 너를 죽이기 전에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가!

— 왜 소리를 지르는 거요?

— 가라, 가라, 멀쩡할 때 가라, 내가 너를 죽이기 전에.

부랑자는 둔덕에서 폴토라크 쪽으로 뛰어내려 그를 밀쳤다.

— 가라, 내 공장에서 꺼져!

폴토라크는 뒷걸음치다 넘어졌다. 부랑자가 발로 그를 툭 찼다. 폴토라크는 서둘러 말없이 옆으로 걸어갔다. 하늘에서는 비가 검은 땅으로 떨어졌다. 폴토라크 뒤로는 걸어가는 강철빛과 잿빛 러시아의 대열이 움직였다. 검사용 붕대가 폴토라크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건설 현장의 불빛은 불길했고, 굴착기들은 불길하게 신음했다. 폴토라크는 땅에 쓰러졌다. 풀밭의 풀은 베여 있었다. 죽이는 자들은 제삼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죽일 수 있고, 죽임당하는 자들도 죽일 수 있다. 폴토라크는 손톱이 아프도록 땅을 움켜쥐었다. 베인 풀이 얼굴을 찔렀다. 폴토라크는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폴토라크는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 또 당신이오?

라슬로 기사가 곧장 폴토라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비가 쏟아졌다. 바람은 더듬고, 검고 잿빛인 공간들을 훑었다. 폴토라크는 땅에 누워 있었다. 라슬로는 그의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았다. 둘은 담배를 피웠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라슬로가 무심하게 말했다. — 건설 현장에 당신이 파괴자라는 정보가 들어왔소.

—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소, — 폴토라크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 그리고 오늘 밤, 새벽 한 시에 우리가 모놀리트를 폭파할 것 같소. 사실 물이 들어올 때까지 한 삼 주쯤 기다렸어야 했는데. 그래야 더 호사스러웠을 텐데 말이오.

라슬로도 폴토라크도 서로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비를 맞은 담배는 잘 타지 않았다. 두 기사는 잠자코 있었다.

— 당신은 총살될 거요, 폴토라크, — 라슬로가 말했다.

— 당신도 총살될 거요. — 폴토라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 아니,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총살됐소. 유쾌한 일이오! — 우리는 이미 총살됐고 — 피 한 방울 없이 말이오! 우리에게 곱셈 인수는 — 영(零)이오, 그렇지 않소? 다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거요.

— 지당하오. 영으로 곱해진 셈이지. 내 조상들은 볼가에서 다뉴브로 떠났고 — 나는 볼가로 돌아왔소. 당신 미쳤소, 폴토라크?

— 아니. 총살됐소. 죽은 사람이오. 그리고 — 피 없이 총살됐소. 오늘 낮, 당신 아내의 장례와 생산 회의로 총살됐지. 삼가 소개하오 — 죽은 사람, 죽은 기사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요! — 폴토라크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땅 위에 좀 더 편히 누웠다. — 영. 피 없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제는 파괴자도 아니라는 거요. 폭약을 작동시킬 힘조차 없으니. 그리고 당신,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내가 이해하기로는 건설자이자 혁명가이기를 그만두었소. 우리는 둘 다 아무 데도 쓸모없소. 물론 당신도 알겠지만, 사람은 어떤 비열한 짓을 했든, 어떤 비열함 속에 있든, 언제나 자기 정당화를 찾아내기 마련이오. 검사용 붕대가 무엇인지 아시오? 모르오? 내가 말해 주겠소. 손가락을 다쳤소. 당신은 기관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소. 진료소에 갔더니 당신을 검사용 의사에게 보내오. 검사용 의사는 붕대를 감아 주고 — 그 붕대를 봉인하오. 집에서 그 붕대를 풀고 자해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일이 생긴 건,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는다면서, 그러니까 결근하면서, 보통 사흘이면 낫는 작은 상처 하나로 한 달씩 빠졌기 때문이오. 자해자들을 위한 조치인 거요. 알고 보니 병자인 것이 선이고 건강한 것은 악이었던 셈이지. 나는 내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되오. 나는 개인이니까. 하지만 개인의 해악 때문에 공장이 멈추게 둘 수는 없으니 —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내게 검사용 붕대를 감기는 거요. 나는 바로 이 검사용 붕대들이, 이제는 베인 손가락이 아니라 우리가 둘 다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영혼에 감긴 그 검사용 붕대들이, 지금 이 밤중에 나를 이 밤의 풀밭으로 끌고 왔다고 생각하오. 예전에는 우리가 혈연의 도덕으로 살았소. 지금은 집단의 도덕으로 살지. 당신도 물론 알겠지. 우리가 피우는 이 담배들, 나와 당신의 장화, 집, 그 밖의 것들은 우리 재산일 뿐 아니라 국가의 재산이기도 하오. 농민이 뿌린 빵과 기관차와 지하자원이 그러하듯 똑같이. 그것들은 많아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소. 지금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바지와 장화와 공장과 빵과 기계를 쌓아 두려 애쓰고 있고 —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모놀리트를 짓는 것이오. 전쟁과 혁명의 세월 동안 우리는 장화와 빵을 아주 많이 잃었소. 그런데 내가 몰랐던 것, 내 시대가 죽었다는 사실 말고는 몰랐던 것, 그리고 아마 당신도 오늘까지는 몰랐을 것이 하나 있소. 알고 보니 장화와 빵처럼, 우리 각자의 도덕도 재산이오. 지금 우리가 조금씩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식이 아니라 — 바로 도덕, 도덕적 자질 말이오. 그리고 알고 보니 도덕도 장화와 빵처럼 잃어버릴 수 있소. 혁명은 그것을 써 버렸소. 도덕은 장화나 파종 구역처럼 다시 복구해야 할 것이오. 도덕은 재킷과 감자 못지않게 필요한, 단순하고도 진짜인 경제적 물건이기 때문이오. 도덕의 비축량이 영까지 고갈될 때, 그때 우리가 나오는 거요. 적어도 나는 그렇소. 도덕적 자질의 마지막 칼로리가 다했을 때 그런 일이 생기오. 그러나 도덕도 천처럼 질 좋은 것일 수 있소. 영국 천처럼. 그리고 우리 천처럼 이등품일 수도 있지.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오. 무식한 나라다, 무지다, 무식한 민중이다, 이건 나쁘고, 저건 망가졌고, 이것은 러시아의 무지와 러시아의 어둠 때문에 더럽혀졌다고. 그러나 틀린 말이오. 나쁘게 하거나 좋게 하거나, 망치거나 더럽히는 일은 무지 때문만이 아니라 — 나쁘고 망가지고 썩은 빵처럼 시큼해진 도덕 때문에도 가능하기 때문이오. 아니면 나처럼 그 도덕이 아예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나는 도덕과 철학 문제에서도 아주 박식한 사람이니까. 검사용 붕대는 도덕의 질서에 속하는 물건이지, 앎과 모름의 질서에 속하는 것이 아니오. 여자에게, 명예와 말에 정직하지 못한 것, 도둑질, 싸움질, 모함, 속임수, 관료주의와 벼슬자리 긁어먹기도 마찬가지요. 우리는 인간을 존중하지 않소. 그러므로 인간의 첫 파생물인 인간 노동도 존중하지 않는 것이오. 노동을 존중하기 전에 인간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오. 우리에게서 인간은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기꾼이라는 수정치를 붙여 취급되고, 인간은 그 수정치에 맞추어 행동하오. 훔치고, 횡령하고, 배신하고, 강간하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조롱하지. 사기꾼이라는 수정치를 붙여 취급된 인간은,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명예가 아니라 물건이라는 수정치를 붙인 존재로 바뀌오. 러시아에서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오. 우리는 사람이 정직하면 놀라는데, 사실은 인간의 불명예에 놀라야 하오. 당신은 이 모든 게 옛 러시아에서 온 거라고 반박하겠지. 내게는 상관없소.

폴토라크는 몸을 일으켜 앉아 젖은 꽁초를 내던지고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당신은 눈여겨보았소? 우리의 — 당신들의 것이지만 내 것은 아니고, 그럼에도 우리의 — 국가성이 사기꾼과 아첨꾼과 배신과 도덕적 붕괴에 어떻게 사레들리고 있는지를. 국가성은 검열·감독 기관들의 군대와 싸우고 있소. 노동자·농민감독 인민위원회는 도덕 기관이오. 거리와 계단과 전차와 선술집과 기관에 붙은 그 포스터들과 똑같이 — 도둑을 조심하라, 침 뱉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변기 물을 내리라, 거짓말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 우리 집 계단 전등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소. “도둑아! 훔치느라 애쓰지 마라, 전구는 납땜되어 있다!” — 모스크바 전차에는 밀고하는 법을 가르치며 이런 걸 붙여 놓소. “시민이여! 납세자를 감시하는 것은 당신의 의무다!” — 보시오, 온 나라가 도덕 포스터로 변해 가는 것을. 이른바 영혼 속에 도덕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도덕의 포스터들이 거리로 나온 거요.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인 거요. 이 모든 말을 하는 건, 어떤 추악함 속에서도 정당화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오.

— 당신은 누구를 죽였소? — 라슬로가 젖은 꽁초를 내던지며 무심하게 물었다.

— 나 자신을, — 폴토라크가 사무적으로 대답하고는, 이번에는 자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 당신은 누구를 죽였소?

— 나? — 기억나지 않소. 전선에서, 내전 때.

— 물론 그것도 추잡한 일이긴 하지. 하지만 그건 셈에 넣지 않겠소. 그때 당신은 피로 죽였고, 당신 피로 값을 치렀소. 지금 당신은 아내를 죽였소?

— 내 아내는 목을 맸소. 나도 당신처럼 나 자신을 죽였소.

— 그렇군. 들었소. 아내가 당신을 죽였군.

두 기사는 잠자코 있었다. 폴토라크는 라슬로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았다.

— 나는 헛것에 쫓기고 있소. 완전히 병든 거요, — 라슬로가 말했다. — 나는 내 뇌가 피투성이 고깃덩어리 두 개로 보이고, 그 고깃덩어리 위로 생각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보이오. 물론 당신 말이 맞소.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풀밭은 물에 이십 미터 높이까지 잠길 거요. 물은 모든 것을 잠그고, 우리도 잠글 거요. 그리고 그 물은 새 삶의 물레방아로 흘러갈 거요.

— 이제 우리가 둑을 폭파할 거요, — 폴토라크가 사무적으로 말하고는 시계를 꺼내, 성냥을 켜서 문자판을 비추었다. — 그런데…… 두 시 이십 분이군. 스쿠드린은 어디 있는 거요? — 폴토라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그래, 지당하오. 물이 모든 것을 잠그고 우리도 잠기게 할 거요. 아름다운 미래가 오겠지. 스쿠드린은 어디 있소?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기억하오? 내가 젊었을 때, 아나톨 쿠라긴이 나타샤에게 입 맞추는 대목을 읽으며 짓밟힌 순결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전차 포스터 읽어 보았소? — “맥주 대신 모든 잉여금을 저축통장에 넣으십시오!” — 예전에는 저축통장에 맥주를 넣었나 보오!…… 그래, 지당하오. 물이 모든 것을 잠글 거요. 당신을 묻은 아낙들이 남고, 나를 묻은 생산 회의들이 남겠지.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 그 밤, 죽이기 위해 풀밭의 폴토라크에게 왔다. 검은 비가 풀밭을 적셨다. 바람은 공간을 훔쳐 갔다. 구름은 땅으로 내려와 땅 위를 기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동이 아주 조금 밝아 올 무렵 두 기사에게 왔다. 기사들은 땅에 앉아 있었고, 멀리서, 땅에서 조금 갈라져 나온 희미하게 밝아진 지평선을 배경으로 스쿠드린을 보았다. 스쿠드린은 눈먼 사람들이 걷듯, 머리를 위로 치켜든 채 걸었다. 두 팔은 벌어져 있었고, 그는 맨발에 잠옷 바람이었다. 그의 다리는 땅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등 뒤로는 지평선의 틈이 탁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구름에 닿았다. 그는 실제보다 훨씬 커 보였고, 하늘을 떠받치는 듯했다. 땅 위에는, 습기와 바람 속에, 어둠의 거대한 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날 밤 스쿠드린의 집, 중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딸 카테리나는 스테판 표도로비치 베즈데토프와 마주쳤다.

— 네 친구들한테 말해 둬,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 다시 한 번 벌이자고.

카테리나는 베즈데토프를 끌어안고, 장사 같은 몸으로 그에게 들러붙어 그를 짓눌렀으며, 모질고 순종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 왜 그래?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카테리나는 울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테판 표도로비치를 계단 난간에 밀어붙였다. 그가 숨쉬기 어려울 만큼, 아플 만큼 세게 밀어붙여 균형을 잃게 했다.

— 왜 그래, 카테리나?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그러자 카테리나는 목 놓아 울부짖으며 스테판을 놓고는, 머리와 어깨를 무겁게 난간 위로 떨어뜨렸다. 난간이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 나 임신했어! — 카테리나가 울부짖었다.

— 조용히 해, 왜 그래? 뭐가 문제야!? — 스테판이 속삭이듯 외쳤다.

— 임신했다고! — 카테리나는 더 크게 울부짖으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 못 하겠어! 도와줘! — 그녀는 더 크게 외치고 울부짖었으며, 이어지는 말들은 울음 속으로 녹아들었다. — 아빠가 나아아아를 죽일 거야아아, 아아!…… — 카테리나는 온 집에 들리도록 울부짖었다. 아주 무섭고, 둔탁하고, 크게, 사람이 육체의 고통으로 때때로 울부짖듯이.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울음소리를 막으려고 그녀의 입에 손수건을 밀어 넣었다. 카테리나는 손수건과 함께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지만,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단 아래로 점점 더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울음은 개 짖는 소리 같았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육체적 고통으로 그녀를 정신 차리게 하려고 주먹으로 카테리나의 이를 찔렀다.

노인 스쿠드린은 세상을 속여 넘기고, 자기 분노를 바보 성자 흉내로 막아 내며, 그 흉내로 세상보다 더 바보 성자답게 굴려고 했다. 그는 죽이는 바보 성자의 종족에 속한 사람이었다. 볼테르식 고요가 깃든 자기 집에서, 딸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집 안으로 퍼져 나갈 때 그는 아내 곁에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모든 것을 속여 넘기고 바보 성자 흉내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인은 얼굴에 침을 맞을 때에도 기뻐했다. 침으로 더럽혀진 눈 뒤에,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자기만의 명예를 품고 지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 명예 안에는 — 집, 암소, 마호가니, 자기 자신, 아내, 딸이 비좁게 들어앉아 있었다. 딸은 공포와 육체적 고통 속에서, 온 집과 온 세상을 향해, 역겹게, 개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털 빠지고, 더럽고, 악취 나는 늙은이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중이층 계단에서 딸을 보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고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고, 스테판 표도로비치 베즈데토프는 그녀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어머니 마리야 클리모브나에게는 자기 삶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쪽문과 보리스와 글렙 교회로 가는 오솔길로 한정되어 있었다. 노인은 어머니가 딸을 끌어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작고 마른 가슴을 딸의 등에 붙이고, 뼈 같은 손가락으로 딸의 머리칼을 더듬었으며, 딸의 목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어머니는 몹시 진지했다. 제 눈을 믿지 못해, 손가락으로 딸을 더듬었다. 노인은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 카텐카, 카튜셴카, — 그럼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내 삶을 산 거니?

노인은 맨다리를 여자의 숄로 감싸고 있었다. 노인은 울었다. 그는 계단과 중이층의 어둠 속으로 눈먼 듯 머리를 치켜들었고 — 동시에 춤을 추었다. 제자리에서 앙트르샤를 밟으며, 생애 마지막으로. 딸은 계단 틈새로 기어들어 가려 했다. 옆에는 잠옷 위에 프록코트를 걸친 점잖은 파벨 표도로비치가 서 있었다. 생겨난 아이의 아버지 가운데 하나였다. 딸은 개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노인은, 울고 춤추고, 딸처럼 울부짖으며, 그녀를 때리러 달려들었다. 그는 발로, 촛대로, 그녀의 얼굴과 배를 때렸다. 그가 제 얼굴을 들이댔던 그 침들이 이제는 얼굴을 넘어 영혼에까지 뱉어졌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사랑으로 힘이 빠진 채 울부짖고 숨을 몰아쉬던 노인이, 계단 맨 아래에서 경련 속에 잦아든 카테리나의 몸 위로 쓰러졌을 때 — 베즈데토프 형제는 이미 집에 없었다. 늙은 어머니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딸에게 경련하듯 입 맞추는 노인에게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딸은 눈을 뜬 채 누워, 흐린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삶 없이 늘 모든 이에게 복종해 온 여자인 어머니의 눈은 고통으로 맑아지고 있었다.

그때 노인은 집 밖으로 나갔다.

몇 시간 전, 노인은 삶을 누리며 행복 속에 있었다. 죽이는 바보 성자였다. 스탠드 등이 볼테르처럼 깜박일 때, 지방이라는 아낙은 그의 응접실 소파에 귀부인처럼 앉아 있었다. 창턱으로는 부랑자 동생 이반이 기어올라와, 자기 이반도 폴레티카 교수도 명예를 잃지 않았다고, 스쿠드린이 그 상실을 두고 환호하던 바로 그 명예를 잃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삶을 누리며 이반을 쫓아냈고, 폴레티카를 만나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노인은 자기의 이 답답한 시간에 폴레티카를 보았다. 노인은 집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마린킨 탑 아래에서 폴레티카와 사디코프가 스쿠드린을 마주해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폴레티카의 길을 막아섰다.

—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 스쿠드린이 외쳤다. — 이렇게 만났군요. 이제 이야기합시다! — 내가 당신에게 삶의 진실을 들려주겠소, 그래, 당신 것보다 못하지 않은 진실을! — 나는 이제 수치심을 가지고 말하겠소!

— 실례하오, — 폴레티카가 말했다. — 나는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습관이 없소. 게다가 당신은 아마 병든 것 같소.

스쿠드린이 미친 듯 외쳤다.

— 누가 병들었다는 겁니까? — 내가 병들었다고요? — 그래,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교수 나리, 당신은 오늘 내 동생 이반과 이야기했지요. 나는 그보다 못하지 않소. 나하고도 이야기하시오! 내가 명예에 대해 말하겠소! —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기를 멈추는 때는 대체 언제 올까요!? 폴토라크 나리는 살인을 두려워했는데, 나는 그를 비웃었소. 말하고 싶소. 속을 풀고 싶소!……

사디코프는 스쿠드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당신이 —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이오? — 그가 물었다.

— 그렇소, 스쿠드린이오! 그래, 모두 속여 넘기려 했소!…… 나는…… — 그러나 사디코프는 그가 말을 끝맺게 두지 않았다.

— 갑시다, 피멘 세르게예비치, — 그가 말했다. — 이 노인과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마린킨 탑은 말이 없었다. 밤도 말이 없었다. 폴레티카와 사디코프는 떠났다.

그때 폴레티카는 사디코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다시 한 번 역사로 돌아가 봅시다. 러시아는 언제나 유럽의 전초이자 보호자였소. 삼세기부터 십오세기까지,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우리에게 밀려오던 때를 떠올려 보시오. 지금 류보프가 발굴하고 있는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알란인, 고트인, 훈족 말이오. 우리는 — 러시아 평원에 사는 우리는 — 우리의 살로 그들을 막았고, 우리의 살로 서방이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기회를 주었소. 러시아인들은 그런 일을 몇 차례나 했소. 나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막에 대해 말했고, 그 사막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말했소. 우리는 다시 유럽을 구하며 사막을 막을 것이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살이 아니라 지식으로 유럽을 가로막고 있소.

스쿠드린의 손에는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잔가지가 쥐여 있었다. 그가 풀밭에서 소를 칠 때 쓰던 바로 그 가지였다. 노인은 거리로 달렸다. 맨발에, 맨머리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셔츠 차림으로, 손에는 잔가지를 든 채. 노인의 머리는 위로 젖혀졌고, 노인은 울었으며, 자기 길을 보지 못했다. 그는 마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들을 몰기라도 하는 듯 잔가지를 흔들었다.

45

노인은 눈먼 사람들처럼 기사들에게 다가왔다. 죽이려 했던 이 바보 성자의 다리는 땅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인의 등 뒤로는 지평선의 틈이 탁하게 푸르러졌다. 노인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라슬로가 말했다.

— 박물관지기 그리보예도프를 아시오? — 그는 밤마다 나무 그리스도와 보드카를 마시지. — 그래, 이 풀밭은 물에 잠길 것이고, 우리의 모든 고통도 잠길 것이오. 우리 것 모두는 — 하찮은 일이오. 이 모든 것이 사라질 테니까.

폴토라크가 대답하기도 전에 — 스쿠드린이 다가왔다. 스쿠드린은 폴토라크 앞에 멈춰 섰다. 스쿠드린은 울고 있었고, 소리치고, 울부짖고, 곡을 했다.

—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 고맙소,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폴토라크도 라슬로도 스쿠드린에게 놀라지 않았다. 폴토라크가 말했다.

— 죽은 사람이 하나 더 모였군. 늙은이, 그런데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오. — 폴토라크는 잠시 말이 없더니 역겹다는 듯 물었다. — 그렇다면 폭파는 안 하는 거요? 당신도 파괴자 노릇조차 못 하겠소? 당신의 가부장적 양심도 바닥났소?

노인은 듣지 못했다. 노인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 그래, 그래! — 라슬로가 활기를 되찾으며 외쳤다. — 책들의 카메라 옵스쿠라가 무엇인지 아시오?! — 그래,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오. 몇 해만 더 지나면, 그리고……

폴토라크는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살펴보고, 탄창을 확인하고, 총알을 약실에 밀어 넣고, 장난치듯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끼운 채 브라우닝을 손가락 위에서 빙글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 누가 먼저요?

기사들은 서로 마주 보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하늘에 머리를 박은 채, 손에 든 잔가지를 자신의 울부짖는 감사에 맞추어 흔들며 그들 위에 서 있었다. 비는 서둘러 비스듬한 방울로 빗금을 그었다. 동쪽의 푸른 혼탁함이 커져 갔다.

— 나는 줄곧 궁금했소, — 피 위에서인가, 아니면 피 없이인가? 건설 현장에 죽음은 있었소 — 당신 아내의 죽음도, 우리의 죽음도, — 폴토라크가 말했다. — 그렇다면 피 위에서였군.

라슬로의 눈이 갑자기 행동을 낳기 위한 눈이 되었다.

— 그래, — 내가 당신을 총살하겠소. 당신은 파괴자니까.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죽이겠소.

— 누가 먼저요? — 폴토라크가 웃으며 물었다.

노인은 잔가지를 넓게 옆으로 내던지고, 폴토라크의 손에서 권총을 낚아챘다. 스쿠드린이 쏘았다. 시간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이 노인의 총알이 폴토라크의 얼굴을 때렸다. 라슬로가 자기 얼굴 곁의 권총구를 본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은 행동을 낳기 위한 눈이었다. 새벽이 태어나고 있었다. 노인이 외쳤다.

—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노인의 흰 머리가 하늘을 떠받쳤다. 노인은 자기 입속으로 총을 쏘았다. 러시아 위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위로, 해는 꼬박 여덟 시간에 걸쳐 떠오른다. 블라디보스토크에 한밤중이 올 때 모스크바에는 오후 네 시이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오가 올 때 모스크바에는 새벽이기 때문이다.

46

그 몇 분 동안, 울부짖던 노인이 고통과 사랑의 무력 속에서 경련이 잦아든 딸의 몸 위로 쓰러졌을 때, 베즈데토프 형제는 마호가니 옛것의 집을 떠났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마호가니뿐 아니라 여러 예술의 옛 역사도 알고 있었다. 1744년, 중국 대상(隊商)의 책임자 게라심 키릴로비치 로브라도프스키는 캬흐타 전초기지에 도착하자, 야란스크 출신의 은세공인 안드레이 쿠르신이라는 자를 대상에 받아들였다. 쿠르신은 로브라도프스키의 지시에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인들에게서 도자기 제조, 당시에는 파르첼렌이라 불리던 자기 제조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베이징에서 쿠르신은 견습 장교급 학생들을 통해 천 란, 곧 당시 러시아 돈으로 이천 루블을 주고 황제의 도자기 공장 장인을 매수했다. 그 중국인은 베이징에서 삼십오 리 떨어진 빈 사당에서 쿠르신에게 파르첼렌 제조 실험을 보여 주었다. 게라심 키릴로비치 로브라도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며 쿠르신도 함께 데려왔고, 중국에서 빼내 온 자기 제조 비밀에 관한 보고서를 여제에게 올렸다. 이어 라주몹스키 백작이 체르카소프 남작에게 전달한 최고 칙령이 내려졌으니, 중국에서 온 사람들을 차르스코예 셀로로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쿠르신에게 내려진 예우는 컸으나, 그의 도둑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제로는 그 중국인이 안드레이 쿠르신을 속였음이, 당시 비밀 회람문 표현대로 “교활하게 행동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쿠르신은 매질을 두려워하며 제 고향 야란스크로 돌아갔다. 이와 동시에, 1744년 2월 1일, 코르프 남작은 크리스티아니아에서 크리스토프 콘라트 훈거와 비밀 계약을 맺었다. 훈거는 자기를 만드는 장인으로, 자신이 작센의 마이센 공장에서 배우고 그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훈거는 코르프 남작과 값을 흥정한 뒤, 러시아 프리깃함을 타고 몰래 러시아, 곧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들어왔다. 훈거는 불온한 독일인이자, 사기꾼이며 허풍쟁이로 드러났다. 그는 훗날 황실 도자기 공장이 되는 자기 공장 건설에 착수했고, 실험에도 착수했다. 그러는 한편 러시아인 조수인 광산기사 비노그라도프와 곤봉으로 난동과 싸움을 벌였으며, 1748년까지 아무 소용 없이 이 일을 붙들고 있다가 사기와 무지로 러시아에서 쫓겨났다. 훈거의 뒤를 이은 이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비노그라도프였다. 표트르 대제의 제자이자 방탕한 술꾼이며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그는 — 러시아 파르첼렌 생산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러시아 도자기는 어디에서도 빌려 온 것이 아니라 비노그라도프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러시아 도자기의 시조로는, 사방에서 중국인들에게 속은 야란스크 사람 쿠르신과, 온 유럽을 속이고 다닌 독일인 훈거를 꼽아야 한다.

러시아 도자기에도 황금시대가 있었다. 황실 공장의 장인들, ‘비외(vieux)’[9] — 포포프, 바테닌, 미클라셰프스키, 유수포프, 코르닐로프, 사프로노프, 사바닌, 늙은 가드네르 — 는 농노제와 황금시대 속에서 꽃피었다. 그리고 러시아 광산기사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비노그라도프의 전통에 따라, 도자기 제조 주변에는 애호가와 괴짜들, 술꾼과 구두쇠들이 머물렀다. 지극히 높은 유수포프 가문도, 대대로 내려온 브세볼로시스키 가문도 공장을 꾸렸고, 보고로드스크 상인 니키타 흐라푸노프도 그랬다. 그는 수도사가 볏단의 무게에 허리가 휜 형상을 만든 일로 알렉산드르 1세의 명에 따라 매질을 당했는데, 그 볏단 속에는 젊은 시골 처녀가 숨어 있었다. 모든 장인들은 서로에게서 ‘비밀’을 훔쳤다. 유수포프는 황실 공장에서, 키셀료프는 포포프에게서 훔쳤고, 사프로노프는 밤마다 다락 구멍으로 도둑처럼 ‘비밀’을 엿보았다. 이 장인들과 괴짜들은 — 농노들의 손을 빌려 —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옛 도자기 공장의 모든 표식과 유약과 금장과 ‘붓질’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스쿠드린의 마호가니 십팔세기에서 나온 베즈데토프 형제는, 말없이 사무적인 평온 속에서, 울타리 밑으로 살짝 몸을 숨기듯 하며 점잖게 도시 쪽으로 걸어갔다. 그 점잖음은 남의 사워크림을 훔쳐 먹은 고양이들을 조금 닮아 있었다.

아우가 형에게 말했다.

— 스쿠드린도 폴토라크도 민경에 고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가 파괴 행위를 밝혀냈다고 적어서요.

— 좀 기다리자, — 형이 짧게 대답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 아우 베즈데토프,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호텔에 들러 폴토라크의 방을 두드렸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안 계십니까?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 없어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대답했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집안사람처럼 소박하고, 동지답고, 사무적으로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에게 말했다.

— 제 생각엔, 우리와 함께 떠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폴토라크도 그렇고 스쿠드린도 그렇고, 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차는 사십 분 뒤에 있습니다.

잠옷 차림에 양초와 책을 든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베즈데토프를 놀란 듯 바라보았다. 그의 프록코트와 일부러 꾸민 듯한 점잖음을 바라보았다.

— 당신은 누구고, 어떻게 저를 아세요? — 그녀가 물었다.

— 저는 복원가이자 골동상입니다, — 베즈데토프가 대답했다. — 우리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와 함께 계신 당신을 보았고, 그분에게서 당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동지로서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좋게 좋게 떠나는 게 낫습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고 말했다.

— 뭐, 그럼 가지요. 기다려요, 짐을 챙길게요. 저기 술이 남아 있어요. 돌아서서 마시고 계세요. — 그러고는 물었다. — 무슨 추문이라도 난 건가요?

— 비슷합니다, — 베즈데토프가 대답했다.

널찍한 방에는 양초가 타며 빛을 천장 아치 밑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점잖게 바르자크 포도주를 다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그의 담배불에서 불을 붙였다. 요새 같은 방 안에는 향수와 촛불 그을음 냄새가 났다.

— 저는, 당신 성함을 알 영광은 없지만, 우리는 예술의 동지입니다, — 베즈데토프가 말했다.

콜롬나는 어둠과 텅 빈 것 속에 머물러 있었다. 변두리에서는 러시아 지방의 시인들인 개들이 울부짖었다. 군사 도시 콜롬나의 비 오는 밤은 검게 젖어 갔다. 참모부와 군대의 사람들은 낮의 전투를 앞두고 잠들었고, 활기는 개들과 야경꾼들에게 남겨 두었다. 야경꾼들은 보초의 휘파람과 딱딱이 소리로 밤을 겁주었다. 비 아래 검은 포장도로는 웅덩이 속으로 풀어졌다. 군대와 군대의 물자가 옮겨지는 이 결절점, 역 근처에서는 어둠 속에서 말들이 병사처럼 콧김을 뿜었다. 역 근처에는 어째서인지 러시아 장화들이 산더미처럼 널려 있었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러시아 도로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었다. 수공업은 타르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가 풍기는 타르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 구두장이들이 뛰어다니며, 마부들처럼 마부들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승강장에는 강 쪽의 널찍한 어둠에서 습기가 밀려왔다. 건설 현장은 전등 불빛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콜롬나는 말없음 속에서 무너져 있었다. 역사 속으로 물러나는 도시였다.

비 내리는 승강장에서, 모자를 쓰고 비뚤어진 코안경을 낀 러시아 인텔리겐트 하나가 온화하게 비 오는 후방의 이야기, 영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영화관은 직업조합 정원 안의 단열된 헛간에 있었고, 영화관에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 대신 발전소가 온 도시에 한꺼번에 신호를 보냈다. 첫 번째 신호는 차 마시기를 끝내라는 뜻이고, 두 번째 신호는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오라는 뜻이었다. 발전소는 한 시까지 돌아갔다. 하지만 집행위원회 위원장이나 산업콤비나트 위원장이나 수석 기술자의 영명축일, ‘10월식’ 같은 예기치 못한 축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전기가 때로 밤새도록 늦게 꺼졌다. 그러면 나머지 주민들도 미리 그 일정을 알아보고 자기네 축하 행사를 그 밤에 맞추었다. 또 한번은 영화관에서 내무상업 위임관인지, 사츠인지 카츠인지 하는 자가 완전히 맨정신으로, 어쩌다 서툴게 집행위원회 위원장의 아내를 밀쳤다. 그 여자는 경멸에 차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쿠바르지나예요!” 그 성이 지닌 힘을 알지 못하던 위임관은 놀라 사과했고, 뒤에 그 놀람 때문에 군에서 말소되었다. 인텔리겐트는 ‘상부’에 관해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상부라고 불렀다. 상부 사람들은 서로 빽빽하게 모여 살며, 나머지 주민들의 본능적인 의심을 경계했고, 공공성을 대신해 파벌 싸움을 벌였으며, 그 파벌의 형편에 따라 해마다 자기네를 한 군 지도 자리에서 다른 군 지도 자리로 다시 뽑아 앉혔다고 했다. 인텔리겐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에 대한 책임을 자기 양심에 떠맡듯 장중하게, 사정을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산업콤비나트가 경제를 맡았는데, 콤비나트 이사회 구성원은 집행위원회 위원장 쿠바르진, 곧 그 아내의 남편과, 노동농민감찰 위임관 프레스누힌이었고, 의장은 네도수고프였다. 인텔리겐트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혁명 재산을 천천히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트리슈카의 카프탄 식 원칙으로, 얼간이 행정과 애정을 섞어 경영했다. 제재소는 적자, 착유 공장은 적자, 압연장은 적자, 제혁소는 적자는 아니었으나 이익도 없고 감가상각 계정도 없었다. 겨울 눈길에 말 마흔다섯 필로 군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 사십 베르스타쯤 되는 거리를 끌어, 그 제혁소에 놓을 보일러를 운반했다. 가져다 놓고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버렸고, 그 값은 손익계정으로 처리했다. 그때 나무껍질을 부수려고 볏짚 절단기를 샀다가 내버렸다. 나무껍질은 볏짚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장부에서 털었다. 노동자의 생활을 개선한다며 주택 건설을 했다. 이층짜리 목조 주택을 사서 공장으로 가져온 뒤 — 땔감으로 켜 버렸다. 다섯 입방사젠의 장작을 만들었으니, 집이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쓸 만한 통나무는 열세 개 남았다. 그 열세 개의 통나무에 구천 루블을 더해 집을 지었다. 마침 그때 공장은 문을 닫았다. 다른 기업들처럼 적자는 아니었지만 수입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집은 텅 빈 채 서 있다. 인텔리겐트는 흥분했다. 콤비나트는 놀고 있는 혁명 이전 기업들의 설비를 팔아 적자를 메웠고, 또 이런 조합으로도 적자를 메웠다. 위원장 쿠바르진이 구성원 쿠바르진에게 고정가격에서 오십 퍼센트 할인하여 이만오천 루블에 목재를 팔았다. 구성원 쿠바르진은 바로 그 목재를 주민들과, 특히 위원장 쿠바르진에게, 할인 없는 고정가격으로 오만 루블이 넘는 값에 팔았다. 한번은 쿠바르진에게 모노그램이 박힌 서류가방을 선물했는데, 그 가방값은 회계 처리해야 할 돈에서 가져왔고, 나중에는 그 돈을 메우려고 토착민들 사이를 서명부 들고 뛰어다녔다. 인텔리겐트는 흥분하여, 비에 젖은 작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기차가 천천히 들어와, 제 불빛으로 어둠을 더듬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부산해졌다.

그날 밤 자정부터, 아카티예보의 나자르 시소예프 노인은 투치코프가의 소파와 안락의자들을 역으로 실어 날랐다. 저녁부터 비가 퍼부었고, 진창은 반 시간 만에 수레바퀴 축까지, 말 무릎까지 불어났다. 길은 오카 강가 구릉의 점토 위로 뻗어 있었다. 비는 끈질기게 쏟아졌고, 나자르 노인은 앞자리에서 늙고 말없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올가 파블로브나는 나자르 뒤쪽 수레 위에 앉아 있었다. 들판은 음울하고 젖고 말없이 펼쳐졌다. 그들은 기차를 향해 서둘렀다. 말은 지친 숨으로 옆구리를 부풀렸다. 진창은 호수처럼 번졌다. 그들은 오백 년 전과 다름없는 들판을 지나갔다. 지노비예비 고리 마을을 돌아, 그 십칠세기의 진창 변두리를 지나, 데카브리스트 루닌 후손들의 영지 옆을 질질 끌려 갔다. 프로토포포보 마을 아래에서 길은 골짜기로 내려갔다. 점토길을 따라 다리까지 내려가 다리를 건넜다. 다리 너머에는 웅덩이, 깊은 바퀴 자국이 어둡게 고여 있었다. 웅덩이로 들어갔다. 말이 힘껏 당기다가 주저앉았다. 나자르 노인이 채찍으로 말을 때렸다. 말은 움찔했으나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진창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수레는 웅덩이 한가운데 박혔고, 왼쪽 앞바퀴가 차축 쐐기 위까지 잠겼다. 나자르 노인은 앞자리에서 몸을 비틀어 말 엉덩이를 장화로 찼다. 말은 몸을 뒤틀더니 쓰러져, 채를 깔아뭉개고 멍에까지 진창 속으로 빠졌다. 나자르 노인은 고삐를 잡아당기고 입으로 달래는 소리를 냈다. 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자르는 말을 풀어 주려고 진창 속으로 내려갔다. 한 발을 디디자 다리가 무릎까지 진창에 들어갔다. 다른 발을 디뎠다. 그러자 그는 박혔다. 점토에서 발을 빼낼 수 없었다. 다리는 장화에서 빠져나오려 했고, 장화는 점토에 빨려 들어갔다. 노인은 균형을 잃고 웅덩이에 주저앉아, 팔꿈치까지 점토 속에 박혔다. 그리고 노인은 울었다. 쓰디쓴, 목이 찢어지는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투치코프가의 안락의자들과 소파는 기차에 맞춰 도착하지 못했다.

기차는 텅 비어 있었다. 객차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위쪽 선반에서는 자라이스크 농민들이 자며 묵직한 냄새를 풍겼다. 전선 가까이 가는 기차에서 늘 그렇듯, 잠과 조용한 속삭임이 안식하고 있었다. 형제는 나란히 앉고, 맞은편에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를 앉혔다. 피로 속에 졸며 위 선반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베즈데토프 형제의 가방에는 마지막 코냑 한 병이 남아 있었다. 후방 열차의 졸음 속에서, 생각에 잠기는 긴 간격을 두고, 형제는 은제 술병집에서 코냑을 마시고, 끙 소리를 내고, 길동무에게 권하고, 다시 코냑을 치웠다. 기차는 러시아 옛것들의 넓은 공간을 지나갔다. 아우 베즈데토프가 형의 귀로 이성적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여 물었다.

— 살인까지는 안 갔겠지요?

— 아마 죽였을 거다, — 형이 아우의 귀에 속삭이며 대답했다.

— 아이는 당신 아이거나 제 아이일 겁니다, 아마도.

— 아마 그럴 테지.

기차는 콜롬나에서 모스크바로 잠과 후방의 무거운 냄새를 실어 갔다. 반 시간 뒤, 코냑을 마신 다음, 스테판이 물었다.

— 우리는 고발하지 말까요? 강간 사건으로 재판까지 가면 곤란합니다.

— 기다리자. 아마 강간 사건은 안 될 거다, — 형이 대답했다. — 사흘이나 나흘 기다렸다가 고발장을 쓰든가, 아니면 숨어 버리자.

기차가 들이받듯 들어선 모스크바는 소음과 포효와 아우성 속에 있었다. 수도였다. 역전 광장에서는 화물차와 짐마차가 줄줄이 기어갔고, 그 말들은 화물차보다 더 강해 보였다. 사람들의 무리는 기차와 전차와 버스로 흘러들었다. 기관차와 전차와 버스는 사람들뿐 아니라 포스터와 소음도 실어 날랐다. 그 소음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들으려고 소리쳐야 했다. 포스터들이 하늘을 떠받쳤다. 사람들의 팔랑크스가 거리를 짓눌렀다. 자동차의 팔랑크스가 사람들의 무리를 짓눌렀다. 돌 속에 틀어박힌 거리들은 먼지 낀 창들의 우울 속에서, 고요 속에서 힘을 긴장시켰다. 모스크바는 일과 착수와 성취를 실은 화물차들로 우르릉거렸다. 건설로 파헤쳐지고 새로 다시 세워지는 도시였다. 자동차들은 집들을 향해 밀고 들어가, 자동차를 방해하는 거리들의 부동성을 붙잡아 두려 했다. 아침의 노동하는 모스크바는 강철빛이고 잿빛이었다. 인류의 미래를 향한 이 전초기지였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군중 속에서 밀리며 늙은 가드네르와 사바닌에 관해 말했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엄지를 프록코트 옷깃 뒤에 끼운 채 가르치듯 설명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커피를 마시러 베즈데토프 형제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택시는 크렘린의 명령을 받는 모스크바, 노동자와 화물차 일의 모스크바를 비껴 달려, 옛것의 빙하가 녹지 않은 채 현재로 흘러들 수 있다고 여기는 삶과 사람들의 지보데르카로 향했다. 베즈데토프 형제의 지보데르카는 옛것 속의 빙하였다. 마호가니 예술은 한 세기에서 무명의 예술, 물건의 예술로 남았다. 장인들은 술에 빠지고 죽었으나 물건들은 남아 살았고, 살아 있었다. 그 곁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고, 늙고, 슬픔과 사랑과 일과 기쁨의 비밀을 그 안에 간직했다. 옐리자베타, 예카테리나 — 로코코, 바로크. 파벨 — 몰타 기사단원, 파벨 — 엄격함, 엄격한 안식. 짙게 광낸 마호가니, 초록 가죽, 검은 사자와 그리프와 그리핀. 알렉산드르 — 앙피르, 고전, 그리스. 사람들은 죽었으나 물건들은 산다. 옛 물건들에서는 지난 세월의 옛스러운 ‘플뤼이드’가 흘러나온다. 1929년 —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와 지방 도시들에는 — 옛것을 사고파는 골동품 가게들이 생겨났다. 전당포, 국영상업, 국가기금, 개인상인들이 옛것을 사고팔았다. 1929년에는 ‘플뤼이드’를 모으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의 천둥 뒤에 옛 물건들을 사들이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그 옛것을 어루만지며 — 죽은 물건들의 살아 있는 삶을 들이마시고 — 죽은 물건들의 죽은 삶을 되살렸다. 구매자들이 높이 친 것은 파벨 양식, 몰타 기사단원 파벨이었다. 병영이 응접실로 바뀐 듯, 청동도 곱슬 장식도 없이 곧고 엄격한 양식이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블라디미로-돌고루콥스카야, 지보데르카에 살았다. 골동상이며 복원가였다. 그들의 지하실은 시간을 멈춰 세웠고, 알렉산드르, 파벨, 예카테리나 양식의 옛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형제는 황제들처럼 옛것과 솜씨에 관해 말할 줄 알았다. 그들의 지하실에서는 어루만지고 살 수 있는 옛것의 숨결이 들이마셔졌다. 복원가들은 예카테리나 시절 술병으로 옮겨 담은 코냑을, 옛 황실 다이아몬드 잔으로 마시며 제 대화를 적셨다. 파벨 표도로비치가 클라비코드로 베토벤을 연주했다. 열두 시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일곱 시까지 깨우지 말라고 부탁하고 소파에서 잠들었다. 형제는 더러운 수도꼭지에서 몸을 씻고, 스타리 피멘의 경매장으로 갔다. 교회, 곧 전당포 안에는 늘 하던 일과 늘 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플뤼이드’를 풍기는 물건들의 가난과 불행을 경매로 팔았다. 고물로 가득 찬 교회의 제단에는 경매인이 앉아 있었다. 형제는 익숙하게 일했다. 다섯 시가 되자, 형제는 포도주와 단것과 먹을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기운차고, 즐겁고, 사무적으로 깨어났다. 시간은 혁명의 참호 너머에서 흘러갔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전화로 친구에게 말했다.

— 크사나, 나는 대홍수 이전의 것들 속에, 대홍수 이전 지하실의 마호가니 속에 앉아 있어. 우리는 십칠세기 술잔으로 코냑을 마시고 있어. 여기서는 목공풀과 겔랑 냄새가 나. 우리한테 와. 우리는 십팔세기 양치기 아가씨들처럼 난장판을 벌이고 즐겁게 놀 거야. 주인장이 클라비코드로 양치기 목가를 연주해 줄 거야. 여기엔 둥근 천장과 거미줄과 습기가 있고, 주인장들은 프록코트를 입고 다녀. 주인장들은 옛것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두 마디도 제대로 잇지 못해.

베즈데토프 형제는 가드네르 식기로 점심상을 차렸고, 보드카와 백포도주는 차게 식히고, 적포도주는 데웠다. 남쪽에서 처음 보내온 배 위에는 즙의 눈물이 반짝였다. 둥근 탁자에는 네 개의 안락의자가 당겨졌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의 친구는, 계절을 거슬러 한여름에도 모스크바에서 모피를 입고 다니는 그런 부류의 여자였다. 입술은 카민으로 칠했고, 해 질 무렵 쿠즈네츠키 다리에서, 밤에는 무도 모임에서 만나는 여자였다. 여자들은 십팔세기를 연기했고, 시간을 멈추었으며, 남자들과 나란히 보드카를 마셨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탁자에서 빠져나와 클라비코드로 갔다. 옛 황실 다이아몬드 세트의 수정잔은 아브라우뒤르소의 금빛으로 묵직해졌다. 다시 커피가 나왔다. 리큐어와 코냑을 섞은, 터키식의 진한 커피였다. 목공풀 냄새는 현재의 향수와 옛 향수 냄새에 지워졌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손님들에게 옛 펠러린, 로브 롱드, 튀르뉘르, 숄, 부채를 보여 주었다. 낡은 비단과 벨벳과 태피터와 레이스와 상아와 고래수염에서는 이전 시대의 시든 향수가 풍겼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다리를 꼬고, 취기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환상적인 삶을 산 세르게이 예세닌의 전기에서는 — 잘 들어요, 내가 강의하는 거야! — 이 사람이 오직 감정만으로 살았다는 점이 강조될 거예요.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 단호하게 달라요. 들어요, 들어! — 세르게이 예세닌은 비극적으로 죽었어요. 지금 나는 이사도라 덩컨과의 치명적인 만남에 대해 말하려 해요. 세르게이 예세닌은 세계적인 여배우, 자신의 열정을 끌 힘이 없고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쉰 살 여자의 애인이 되었어요. 세계 곳곳의 숱한 머리를 미치게 만든 여자, 인류에게 백만 루블 이상의 값을 치르게 한 여자, 호놀룰루와 뉴욕에서 러시아의 이르비트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여자, 제 몸을 지키려고 온 세계의 화장품 공장을 다 알고 있던 여자 — 그 여자가, 앞으로는 그의 마을 콘스탄티노보 아래로 더는 흐르지 않을 오카강의, 랴잔 청년에게 몸을 내주었어요. 우리 보헤미아의 도덕으로는, 통역을 통해서야 이야기해야 하는 그런 애인을 둔 것이 세르게이 예세닌의 명예였지요. 그것은 오늘 밤 우리처럼 즐거운 장난이자 영광이었어요. 하지만 예세닌은 이사도라 덩컨과 결혼했고, 그녀의 남편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예세닌의 파멸이 되었지요. 들려요? — 파멸! — 그들의 관계에서도, 취한 보드카에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것은 파멸이 되었어요. 모든 것이 진지해졌기 때문이에요.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청년 곁에, 그의 언어를 모르는 쉰이 넘은 여자가 진지하게 섰기 때문이에요.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남자의 열정과 명성을 마시고, 지구에게 사랑받고, 지구에서 지치고, 밤에 자는 법도 사람다운 옷을 입는 법도 잊어버리고, 우리처럼 러시아 보드카, 러시아의 쓴 술을 잔으로 들이켜던 그런 여자가. 그런 여자는 사랑해서는 안 돼요. 들리나요?! 세르게이는 더 이상 예세닌이 아니라 세르게이 덩컨이 되었고, 이사도라는 이사도라 예세니나가 되었어요. 호밀밭의 서정시인, 아름다운 인간 세르게이 예세닌은 이사도라 덩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배를 발로 찼어요. 그는 자기 자신을 때린 거예요. 그는 그녀에게, 그녀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를 읽어 주며 그녀를 암캐라 불렀고, 그녀와 함께 러시아의 쓴 술을 잔으로 들이켰어요. 그 잔들로 제 삶과 피와 시를 들이킨 거예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친구와 마찬가지로 취해 갔고, 알코올 속에서 십팔세기 마르키즈가 되려 애썼다. 복원가들은 술이 깨 갔다. 복원가들은 옛것을 펼쳐 놓았다. 열 시가 되자 자동차가 왔고, 네 사람은 페테르부르크 가도를 따라 교외로 나갔다. 열한 시 반에는 스타리 피멘 근처, 전당포 뒤편의 배우 클럽에 있었다. 피멘 위의 푸른 밤하늘에는 십자가 대신 별들 속으로 긴 막대가 솟아 있었다. 배우 클럽의 하인들은 십팔세기를 좇지 않고, 자기네 습관대로 좋은 1913년을 간직한 채, 복잡한 저녁상을 내고 백포도주에 담근 딸기를 대접했다. 여자들은 재즈밴드에 맞춰 춤추었고, 형제는 프록코트의 뒷자락을 폈다. 두 시 반, 낮의 전투를 앞두고 잠든 거리들의 먹먹한 공허와 어둠 속에서, 그들은 다시 자동차를 타고 블라디미로-돌고루콥스카야로 돌아왔다. 모두 취해 있었다. 형제는 주석 같은 눈으로 커피를 끓였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여자들에게 옛 드레스로 갈아입으라고 설득했다. 십팔세기 그림 속처럼 되라고, 그 위에서 쉬라며 소파에 옛 비단들을 펼쳤다. 여자들은 옷을 벗었으나 다시 입을 힘은 모으지 못하고, 알몸으로 나란히 서로를 껴안은 채 소파에 누웠다. 형제는 의사들처럼 프록코트를 벗고, 여자들의 발치에 앉아 입 맞추었다. 깊은 밤은 마호가니 속에서 느릿느릿 머물렀다. 마호가니 안에 촛불이 비쳤다. 리큐어와 커피는 제 진득함으로 들러붙었다. 취해 알몸이 된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 나는 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라. 그리고 그건 나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아. 나는 임신했고, 낙태하지 않을 거야. 나는 삶이 두렵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이야. 민족들은 죽어 가지만, 나에게는 시대가 낳은 내 아들이 있을 거야.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건 좋은 일이야. 이것이 — 새로운 도덕이야. 나는 어머니야 —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 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마셔. 아침에는 의사에게 갈 거야.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다정하게 촛불을 끄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의사에게 갔다. 사도바야에서 의사에게서 나온 그녀는 보로트니콥스키와 피메놉스키 골목을 걸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의 눈은 공간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당포 곁에는 되팔이들의 누비외투가 몰려 있었다. 바로 그 피멘 곁이었다. 폴레티카 교수가 확인했듯, 정교회의 성자 피멘은 여러 명이었으니, 첫째는 팔레스타인의 성자로 마우리키우스 시대 루바 사막에서 수도했고, 둘째는 이집트의 아바로서 자기와 남들의 죄를 두고 끊임없이 울었으며, 셋째와 넷째는 키예프-페체르스크의 수도자들이었다. 미네이에는 그들에 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 우리가 그대를 무엇이라 부르리오, 피멘이여, 수도자들의 본보기요 치유의 자행자여, 금욕의 상처로 영혼의 정욕을 찔렀고, 덕성의 이웃이여.”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의 눈은 공간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스크바 위에서는 하루의 전투가 건설되고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이 군사 도시 위에서, 연방이 사회주의를 위한 전투를 벌이던 때였다. 피 없는, 포성 없는 전투였으나, 모든 전투의 규칙을 따른 전투였다. 모스크바는 전선이자 후방으로 동시에 우르릉거렸다. 일과 착수와 성취를 실은 트럭들로 우르릉거렸다. 모스크바는 하나의 포스터, 하나의 구호였고, 참모부와 군대의 명령 속에 있었다. 강철 같고, 잿빛이며, 패배하지 않는 러시아였다.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는 농민 둘이 사슬에 묶인 곰을 끌고 갔고, 곰은 버스들을 음울하게 바라보았다. 트베르스카야는 다시 포장되는 도로의 참호로 파헤쳐졌다. 모퉁이마다 구두장이들이 앉아, 그 자리에서 신발을 고치고 있었다. 아낙들은 전투의 등 뒤로 사라져 버린 재봉실과 전기 플러그를 구할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전투들은 — 드네프로스트로이, 투르크시브, 소로코-코틀라스-옵 철도, 마그니토고르스크 콤비나트, 오카의 건설이었다. 나라는 인민의 곡물 경제를 다시 세우고 있었으므로 식량 배급책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라는 모스크바처럼 진군 중이었다. 모스크바는 승리를 향해 갔다. 나라의 역사는 —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선으로 살았다. 사람들은 표준 외투와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똑같이 차려입었다. 모스크바는 일들과 일들의 성취로 우르릉거렸다. 인간 생명, 각 개인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 곧 의학의 길을 아는 것은 슈타이나흐와 보로노프와 라자레프 같은 학자들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인간의 시간을 해방하고, 인간과 그의 노동을 해방하는 길, 인간이 삶을 사유하고 제 의지로 삶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길. 이 길은 사회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투르크시브와 드네프로스트로이와 이 건설의 전투들로 건설되고 있었다.

진찰을 마치고 손을 씻던 의사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에게 말했다. 그녀가 실제로 임신한 것은 맞지만, 또한 매독에 걸려 있다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위로 해는 여덟 시간에 걸쳐 떠오른다.

* * *

이 대목에서 독자께서는 신문 『새 강』을 살펴보시기 바란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