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11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도시에서 돌아와 마당에서 한바탕 춤추고 나서, 서둘러 응접실의 복원가들에게로 갔다. 그는 복원가들을 바닥에서 일으켜 서재로 데려갔다. 그는 등 뒤로 문을 꼭 닫았다. 그의 뒤꿈치를 따라 바닥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노인과 함께 볼테르식 서재로 아시아의 콜롬나가, 흙벽이며 쪽문이며 대문가 작은 걸상이며 해바라기씨 껍질이 기어들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서둘러 스탠드 등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노인은 마호가니 세공가들과 소곤대기 시작했다.

— 오늘 건설 현장에서 폭동이 있었네, 아낙들의 파업이지. 열 시 반 정각, 기적 소리에 맞춰, 때 아닌 기적이 울리자, 현장의 여공들이 죄다 일을 던지고 줄지어 도시로 밀려들었네, 가지런하게, 노래도 부르지 않고. 레핀스카야 거리 모퉁이에서 그들은 사디크 마누라의 관과 마주쳐, 관 뒤를 따라가며 장송곡을 불렀고, 많은 아낙이 흰돌고래처럼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네. 파업이라니 — 별꼴을 다 보겠어!

— 다이너마이트는 자네 풀밭에 있나? — 파벨 베즈데토프가 물었다.

— 오늘 밤, 소란을 틈타서 — 아낙들 치마폭 밑에서!……

복원가들은 선 채로, 근심에 잠겨 말없이 들었다. 복원가들의 얼굴이 엄해졌다. 노인은 끝장난 자의 들뜸 속에서 환호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젖은 발꿈치 자국을 따라 들어온 지방, 아시아의 콜롬나는, 이 파업을 어리둥절해하며 이해하지 못했다. 건설 현장의 손수레꾼인 여자들이 욕설과 고함보다 더 무서운 침묵 속에서 마리야 사디코바를 땅에 묻을 때 — 흙투성이가 되고 돌 같은 노동으로 돌처럼 굳어진 수백 명의 여자들이, 러시아 옛것에서 남은 알록달록한 통치마와 앞치마의 말 없는 줄을 이루어, 콜롬나의 옛 거리들을 메우고 관을 따라 무덤까지 갔다. 스쿠드린은 이 행렬 너머로 아들 알렉산드르를, 그의 지하실과 이마에 박힌 총알을, 짓밟힌 제 시간과 품격을, 목욕간 마룻장 밑에 묻어 둔 카테리나의 혼수인 귀고리와 반지를, 제 십팔세기를, 제 늙음을, 그리고 신문이 자기를 비웃던 도서실의 시간들을 보았다 — 이 여자들의 행렬 너머로 노인은 다이너마이트의 연기와 굉음을, 부서진 사람들을, 모든 것을 부수는 물을 들었다 —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의 연기 너머, 물줄기 너머, 파헤쳐진 화강암 너머에 선 제 자신을 보았다 — 추레한 늙은이인 제 자신을, 베즈데토프 형제를, 폴토라크를, 표트르가 상트피테르부르흐를 걸어가는 세로프의 그림에서와 얼추 비슷하게. 추레한 늙은이가 표트르였다. 추레한 늙은이는 제 자신을 위해, 알렉산드르를 위해, 러시아를 위해, 제 볼테르식 마호가니를 위해 앙갚음하려, 제 종기들을 혁명에 쑤셔 넣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발꿈치를 타고 흘러내린 지방은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 살아 있음을 누리며 살았다.

— 우르릉, 쾅, 히히, 연기와 굉음 너머로 아무도 우리를 알아채지 못할 게야.

스탠드 등이 그을음을 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 기사는 아홉 시 정각에 도착해, 삯마차로 집 앞에 대고는, 서둘러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에서 어깨의 물을 털고, 서재로 갔다. 그 시각 카테리나는 응접실에서 클라브생으로 제 반주를 하며 카스탈스키의 성가를 아주 구슬프게 부르고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서재는 마호가니에 잠겨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책상 위로는 청동에 끼워진 수정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이 군함에 코냑을 부었으니, 군함의 작은 꼭지를 통해 잔으로, 다시 사람들 목구멍으로 흘러드는 알코올을 빌려, 이 군함을 타고 볼테르식 공상의 북동풍 속을 알코올로 항해하려는 것이었다. 마호가니 세공가들은 폴토라크를 기려 군함에 코냑을 부었고, 빈틈없이 단추를 채운 프록코트 차림으로 군함 곁에 말없이 서서, 죽은 듯 깜박이지 않는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창밖의 비가 가을밤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도, 스쿠드린처럼, 이날 저녁에는 예사롭지 않았다. 정연한 유럽식 주의력을 지닌 폴토라크는 이날 저녁 몹시 서둘렀으며, 짧은 대화 속에서 오직 제 자신에게만 귀 기울여, 제 자신을 엿듣고 제 자신을 노렸다. 그는 서두르면서도, 제 시간을 늦추며 그것을 뒤엉키게 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맨발로 폴토라크 둘레를 비둘기처럼 종종거리며, 그에게 들러붙어, 어느 때는 킬킬거리고 흥흥거리며 빤히 잔꾀를 부리다가, 어느 때는 모질고 더없이 평온한 진지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 살아 있었다.

— 들으셨소,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파업 말이오?! — 스쿠드린이 말했다.

— 그래, 들었네 — 항의지.

— 그걸 어찌 보시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어찌 보느냐고? — 나는 오늘 노동자들 생산 회의에 갔었네. 그들은 이제 결정한다네 — 제 봉급을 얼마로 정할지가 아니라 — 나한테 일을 안 넘기기로 결정하고, 기사들 대신 어떻게 일할지를 결정하더군.

— 그래서 아낙들 파업도 — 하나로 맞아떨어지는구려? — 노동자뿐 아니라 아낙들까지 힘을 얻는다? — 스쿠드린이 나직이 묻고는 엄하게 덧붙였다. — 오늘 밤 시작하지, 미룰 것 없네.

— 시작해야지, — 스쿠드린을 따라 손위 베즈데토프가 확언했다.

— 그래, 해야지, — 폴토라크가 맞장구쳤다. — 지금은 물이 없으니, 아주 사소한 것만 망쳐 놓는 셈이지…… — 그러고는 놀란 듯 힘없이 물었다. — 어떻소? 어찌 지내시오, 야코프 카르포비치? — 당신은 — 사람을 죽일 수 있겠소? — 오늘 회의에서 나는, 노동자들의 심리가 이렇게 바뀐 걸 느꼈소, 그들이 — 주인이요, 결정자요, 심판자라고!……

— 어떠냐니 — 어찌 지내느냐고? — 오늘 밤 폭파하지.

그래, 해야지. 지금은 물이 적다고 했지만, 물은 다이너마이트보다 세거든 — 그러고는 다시 폴토라크가 무력에 빠졌다. — 야코프 카르포비치, 당신은 사람을 죽일 수 있소?

— 어떻게 죽이느냐고?

— 어떻게든 상관없소, 다만 — 죽일 수 있소?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살아 있음을 누렸다.

— 죽이느냐고? — 그가 되묻고는 서둘러 킬킬거리며 말했다. — 내가 자네들 줄 생각을 하나 마련해 뒀네, 크흠, 생각을! — 마르크스 이론에 관해서지.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 그저 어리석은 소리요, 머지않아 잊힐 거야, 반드시 잊히지, 프롤레타리아트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한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총살됐소 — 내 아들 셋이 벽 앞에서 죽었고, 오늘은 사람들이 오카강을 떠내려갈 거요. 자, 이게 내 생각이라네, 그래…… 그러니까 혁명도 죄다 헛일이오, 역사의 착오지, 크흠, 우리 등골에 진 사소한 착오야. 두세 세대만 더 지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보다 먼저 미합중국에서, 영국에서, 독일에서 사라질 거요. 마르크스는 근육노동의 시대에 제 이론을 썼고, 근육노동이 영영 그대로 남으리라 여겼지. 한데 알고 보니, 이제는 기계노동이 근육을 대신하오, 머지않아 기계 곁에는 기사들만 남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기사로 변할 거요. 기계 하나에 사람 다섯, 한데 사무실에는 — 마흔이니, 사무원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겠지. 자, 크흠, 이게 내 생각이라오! 한데 기사는 —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오, 사람이 교양 있을수록 허영스러운 욕구가 줄고, 모두와 물질적으로 똑같이 사는 게 편하니까, 물질의 재화를 고르게 해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게 편하거든, 그래, 크흠!…… 착취는 남느냐 물으시겠지? — 남소, 그래, 그건 핏속에 있으니까 — 허나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는 아니오, 아니지. 짐승이라 착취할 수 있는 농사꾼은 — 기계 곁에 못 붙이오, 부숴 버릴 테니, 한데 기계는 수백만 값이거든. 기계는 사람 하나당 오 코페이카 아끼자고 두기엔 너무 비싸오 — 사람이 기계를 알아야 하고, 기계에는 아는 사람이 필요하지 — 그래서 예전 백 명 대신, 단 하나면 되오. 그런 사람은 애지중지해야지! — 노인은 얼간이 흉내를 내며, 흐뭇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를 까딱거리고, 손을 제 탈장에 쑤셔 넣은 채 말했다. — 우리 데서는 말이오 — 장사치와 농사꾼을 견줘 보시오 — 장사치는, 사제처럼, 광대 차림을 하고 으리으리한 집에 살지, 내 왼발이 바라는 게 그거요. 한데 나는 맨발로 다녀도 그 때문에 더 못해지진 않소, 크흠, 그래 — 안 못해지오. 사람은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존중해야 하오. 그러면 죽여선 안 되지.

폴토라크는 제 자신에게 귀 기울이느라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는 코냑을 마셨는데, 아마 생각을 꺼 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가 노인의 말을 끊었다.

— 잠깐, 야코프 카르포비치, 잔꾀 부리지 마시오. 당신은 사람을 죽일 수 있소? —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느냐 말이오?

— 글쎄올시다, — 스쿠드린이 대답하며 얼버무리듯 킬킬거리고, 꿀꿀거리고, 가래를 돋웠다.

— 아니, 당신은 잘못 알아들었소, 아니, 어쩌면 제대로 알아들었나. — 폴토라크의 이가 모진 금빛으로 번득였다. — 나는 누구를 죽이자는 게 아니오. 원칙으로 말하는 거요 —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

— 그래, 오늘 밤 건설 현장에서 작은 폭파가 일어날 거요…… 글쎄올시다…… 나는 풀밭에서 가축을, 젖 주는 소들을 치오…… 기억하시오, 당신이 말했지, 죄다 피 위에서라고. 작은 폭파로, 두고 보시오, 한쪽으로는 머리들이 폭탄처럼 날아가고, 다른 쪽으로는 다리며 팔이 날아가고, 물이 죄다 악마에게로 쓸어 가겠지. 이것도, 따지고 보면, 살인이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의 눈은 평온해지고 거의 젊어졌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사무적으로 마시며 깜박이지 않는 눈으로 들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가 서재를 서성이고,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비가 들이치기 시작해, 창밖에서 후두두거렸고, 바람이 커튼과 스탠드 등의 불빛을 흔들었다. 볼테르식 서재는 볼테르주의에 잠겨 있었다. 스쿠드린의 발꿈치에서 소파로 흘러내린 아낙 같은 지방이 소파에서 제 몸을 긁적였다.

— 아니, 그 얘기가 아니오, — 폴토라크가 외쳤고, 다시 그의 이가 번득였다. — 제 손으로 죽이는 것, 목 졸라 죽이지도, 쏴 죽이지도, 독을 먹이지도 않고 — 죽이는 것, 피 한 방울 없이도.

— 어떤 이는 되고, 어떤 이는 — 안 되지.

— 누구는 — 되고? 누구는 — 안 되오?

— 바로 우리 넷은 되지.

— 넷이 — 뭐가?

— 죽일 수 있다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손을 탈장에서 빼내고 똑바로 섰다. 영영 흐릿한 그의 눈이 똑바로, 모질게 바라보았다. 그는 꿀꿀거림도 킬킬거림도 없이 말했으니, 그의 쉰 저음이 단단해졌다 — 노인은 살아 있었다.

— 어째서요? — 폴토라크가 외쳤다.

— 우리가 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오, 아주 간단하지,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우리는 죄다 알고 죄다 할 수 있소.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킬킬거리고 다시 진지해졌다. — 나는 양심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지 않소.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아. 그까짓! — 벌거벗고 머리로 거꾸로 서 다니기도 했소, 시키니까, 내 나이도 아랑곳없이. 양심과 수치심은 당신과 나한테서 없어졌소, 우리는 죄다 할 수 있소, 훔치고, 배신하고, 죽이는 것. 나는 이따금 생각해도,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소 — 나한테 금지된 게 대체 뭔지. 굳이 꼽자면 딸은 지키고 싶소만, 그것도 어리석은 짓이지. 죄다 할 수 있고, 나는 오직 악만을 바라며, 악에서 기쁨을 얻소. 내 아들들은 —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법이니 — 그들은 새 대문에 들이받는 황소처럼 혁명에 이마를 들이댔다가 죽었소 — 한데 나는 내 머리에, 잔꾀에 기댔지, 죄다 속여 넘기려 했고, 어쩌면 속여 넘길지도 모르오,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킬킬거리고 다시 진지해졌다 — 아니 어쩌면…… 나는 늙은 바보인 척, 정신 나간 척했소 — 나 자신도 러시아도 속여 넘길 작정이었지, 그래, 크흠. 말이 길어져 미안하오. 오늘이 내 영명축일이라 — 내 소들과 함께 풀밭에 숨겨 둔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일 참이오 — 이건 잔꾀랄 것도 없이 솔직한 일이오 — 한번 즐겨 보려고……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모스크바강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건 볼셰비키만이 아니라 — 러시아도, 러시아 루블도, 러시아 손도 그러하오 — 한데 나는 당신 지시와 내 동의에 따라 가축을 치고 있소. 정직해야 하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허나 지금 우리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명예에서가 아니라 파렴치에서 말하고 있소!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꿀꿀거렸다. — 절망에서 정직해야 하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필사적인 정직! 죽일 수 있소, 사람 목숨은 — 헐값이고, 입에 풀칠은 비싸지 — 우리한테는 사람이 없고, 조직만 있소 — 우리는 명예로 사는 게 아니라 목숨 부지에 매달려 사오.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킬킬거리고, 흥흥거리고, 꿀꿀거렸다. — 늪에는, 아마, 등걸들이 있겠지 — 진창이 그것들을 빨아들이고, 거머리가 그 위에 붙고, 가재가 파고들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소들이 거기 오줌을 누고, 악취에, 진창이지 — 한데 나는 살아 있소, 얼간이 짓을 하고, 더럽히며 — 죄다 알고 보면서. 우리는 죽일 수 있소. 명령하시오 — 누구를. 일 얘기를 해야 하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오늘 밤이 — 더없이 좋소, 비가 오니 사내녀석들이 계집들을 풀밭으로 끌고 가지 않고, 죄다 파업을 틈타 넘어갈 거요. 나는 가축을 치러 가겠소, 당신은 베즈데토프 형제와 — 산책이나 나가시구려.

— 한데 나는 죽이고 싶지 않소, — 폴토라크가 나직이 말했다. — 살인자가 될 수 있는 건, 공상이 없는 사람이오……

— 그게 무슨 말이오, 죽이고 싶지 않다니? — 손위 베즈데토프가 엄하게 물었다.

— 옳은 말이오, — 스쿠드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옳은 말이오, 허나 온전히 옳진 않지 — 살인자는 공상이 없어야 하오, 환영(幻影)이, 유추가 그를 괴롭힐 테니. 다만 그건 그에게 명예가 남아 있는 경우에 한해서요. 한데 당신과 나는 바로 그 공상 덕에, 어떻게 펑 터지나 구경하며 즐길 거란 말이오.

폴토라크가 군함에서 코냑을 따라 마시고, 제 자신에게 말했다.

— 나는 죽이고 싶지 않았소…… 가 봐야겠소, 기다리는 이가 있소. 잘들 있으시오. 노동자들은 우리가 되돌리지 못하오……

— 그게 어찌 당신을 기다린단 말이오? — 손위 베즈데토프가 엄하게 물었다.

— 일 얘기를 해야 하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스쿠드린이 다정하게 말했다. — 당신은 갈 데가 없소. 좀 기다려야 하오.

— 나는 한 여인과 함께 왔소. 기다리고 있소. 어릴 때 나는…… 머리가 아프오, 서둘러야 하오…… 어릴 때, 열셋쯤에, 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소 — 그때 나는 얼마나 울었던지, 아나톨 쿠라긴이 나타샤 로스토바에게 입 맞추는 그 대목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 짓밟힌 순결을 위해 울었소, 감히 순결을 건드린 아나톨의 더러움에 치를 떨었지…… 아니, 나한테는 공상이 있소. 짓밟힌 순결을 위해 — 나타샤 로스토바가 아니라 러시아 여인들의 순결을 위해 — 오늘 묘지에서 여자들 스스로 들고일어났고, 회의에서도 한 여자가 나와 맞섰소.

베즈데토프 형제가 코냑에서 몸을 일으켜 폴토라크 뒤에 가 섰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킬킬거렸다. 폴토라크는 머뭇거리며 앉아, 알코올 속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 내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리리다, 서두르지 마시오,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흥흥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 나타샤 로스토바라 — 그건 — 그래, 두말없이 공상이오. 러시아에서는 뒤를 돌아봐야 하고, 뒤를 보기가 무섭소…… 내 이야기를 하리다, 내가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들어 보시오, 헤아려 보시오, 이에 관한 책들이 내 장에 있으니 꺼내 올 수 있소. 헤아려 보시오 — 거지, 점쟁이, 동냥아치, 추수 걸립꾼, 나사로꾼, 순례자 남녀, 불쌍한 자들, 거짓 신자, 눈먼 가객, 예언자, 미친 여자, 미친 사내, 위선자, 바보 성자 — 보시오, 거룩한 어머니 루시의 무슨 꽈배기들이오, 거룩한 땅의 거지들, 떠도는 눈먼 가객들, 그리스도를 위한 불쌍한 자들, 거룩한 루시의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성자들 — 보시오, 무슨 알록달록한 꽈배기들인지!…… 그리고 잘 보시오, 이들이 루시에 천 년을 존재했소, 키예프-페체르스크 수도원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작가가 이들에 관해 학문의 펜을 적셨소, 역사가도 민속학자도 학술 논문을 썼지. 이 복된 자들은 작가들과 함께 있었으니 — 미치광이거나 사기꾼이면서도, 교회의 꽃이요, 그리스도의 형제요, 세상을 위한 기도자로 여겨졌소. 우리 콜롬나의 다닐루시카에 대해서나, 나에 대해서나, 내 동생 이바누시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지금은 전 러시아의 이반 야코블레비치에 대해 아뢰게 해 주시오. 그는 칠십 년대에 죽었소, 나는 다 기억하오, 신학원 낙제생이었지. 모스크바의 프레오브라젠스카야 병원에서 죽었소. 그의 장례에 대해서는 기자들도, 시인들도, 역사가들도 썼소. 『모스크바 통보』에 시가 실렸으니, 한번 들어 보시구려.

노란 집은 무슨 잔치를 차리는가?
어이하여 그리로 백성의 물결이 흘러드는가,
짐수레로 사륜마차로, 이륜마차로 또 걸어서,
어이하여 모든 가슴이 어두운 근심으로 가득한가?
그 틈에서 이따금 어렴풋한 소리가 들리니,
가슴 저미는 무거운 아픔으로 가득한 소리라 —이반 이아코블리치 때 이르게 스러졌네,
더 나은 운명에 마땅한 예언자가 스러졌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말을 이었다.

— 풍속 작가 스카브론스키는 『모스크바 소묘』에서 이렇게 전하오, 보시오, 주검이 묻히지 않은 닷새 동안, 주검 곁에서 삼백 번도 넘는 진혼 미사가 올려졌고, 많은 이가 교회 곁에서 밤을 새웠다고.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일요일에 묻기로 정해졌고, 『경찰 통보』에도 그리 공고되었소. 그날 동이 트자마자 숭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소. 한데 정확히 어디에 묻을지를 두고 다투느라 매장이 이뤄지지 못했소. 하마터면 주먹다짐까지 갈 뻔했고, 욕설은 벌써,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오갔지. 어떤 이들은 그의 고향 스몰렌스크로 옮기려 했고, 어떤 이들은 교회 아래 그를 위해 무덤까지 파 둔 남자 포크롭스키 수도원에 묻히기를 바랐으며, 또 어떤 이들은 그의 유해를 여자 알렉세옙스키 수도원에 넘겨 달라 애틋이 청했고, 또 어떤 이들은 관에 매달려 체르키조보 마을로 끌고 갔소. 이반 야코블레비치의 시신을 도둑맞을까 다들 겁냈지. 그동안 내내 비가 내려 끔찍한 진창이었으되, 그럼에도 시신을 옮기는 동안 여자들이, 처녀들이, 크리놀린을 입은 아가씨들이 땅에 엎드려 관 밑을 기어 다녔소.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살아생전, 말씀드리기 송구하나, 제자리에서 오줌똥을 누어 — 그 밑으로 흘러내렸고, 그래서 지기들에게 그 밑 바닥에 모래를 뿌리라 일렀소. 이반 야코블레비치 밑에서 적셔진 이 모래를, 그 숭배자들이 그러모아 집으로 가져갔고, 모래가 의술의 힘을 보이기 시작했소. 어느 아기가 배앓이를 하자, 어미가 죽에 모래 반 숟갈을 타 먹였더니 아기가 나았다지 뭐요!…… 고인의 코와 귀를 틀어막았던 솜은, 영결식 뒤 신자들에게 나눠 주려 잘게 쪼갰소. 많은 이가 작은 병을 들고 와, 관에서 흘러나오는 진물을 거기 받아 모았으니 — 고인이 수종으로 죽은 까닭이었지.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입고 죽은 속옷도 신자들을 위해 잘게 찢었소. 교회에서 내가는 무렵에는 불구자며 바보 성자며 거짓 신자며 순례자며 절름발이가 모여들었소. 그들은 비좁아 교회에 들지 못하고 거리에 남았는데 — 바로 거기서, 대낮에, 백성에게 설교가 베풀어지고, 환영이 나타나고, 예언과 저주가 토해지고, 돈이 거둬지고, 불길한 포효가 울려 퍼졌소…… 자 보시오, 사람이 얼마나 거룩하게 죽었는지.

— 그 얘긴 무엇 하러 하시오? — 폴토라크가 힘없이 물었다.

— 그 얘긴 무엇 하러 하느냐고? — 스쿠드린이 되물었다. 스쿠드린은 살며 누렸다. 아낙 같은 지방이 소파에 주의 깊게 자리 잡고 앉았다. — 들어 보시오! — 스쿠드린이 엄하게 외쳤다. — 그리고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무엇으로 이름났는지 아시오? — 예언이오. 그는 입으로만 예언한 게 아니라 글로도 했으니, 역사 연구를 위한 자료가 남아 있을 정도요. 사람들이 그에게 편지로 물었소 — 아무개가 결혼하겠느냐고 — 그가 답하기를 — “고생 없이는 단물도 없느니!” —

— 그 얘긴 대체 무엇 하러 하시오?! — 폴토라크가 외쳤다.

— 나는 죽음을 앞두고 삶을 누리고 있소,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어쩌면 이게 내 가장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르오! 들어 보시오! — 노인이 모질게 외쳤다. — 치즈를 외국 음식으로 치는 건 전혀 부질없는 노릇이오 — 나는 그걸 양파처럼 민족적인 러시아 음식으로 치오. 양파를 나는 아주 좋아하오. 러시아의 으뜸 치즈는 키타이고로드였고, 그 구더기는 바보 성자들이었으니, 그들이 거기 떼 지어 다녔지. 어떤 이는 시를 짓고, 어떤 이는 수탉이며 공작이며 뻐꾸기 소리를 냈으며, 어떤 이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두에게 쌍욕을 퍼부었고, 어떤 이는 예언으로 여겨져 그 예언자에게 명성을 안겨 주는 한 문장만 알았으니, 이를테면 — “사람의 인생은 동화요, 관은 — 마차라, 가는 길 — 덜컹이지 않네!” —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애호가들도 있어, 짖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예언했소. 거지, 동냥아치, 점쟁이, 추수 걸립꾼, 나사로꾼, 거짓 신자 — 거룩한 온 루시의 불쌍한 자들 — 이 무리에는 농민도, 소시민도, 귀족도, 장사치도 있었소 — 아이들도, 노인들도, 우람한 사내들도, 새끼 잘 배는 아낙들도. 그들은 죄다, 보시오, 취해 있었고 양파 냄새를 풍겼지.

— 그 얘긴 무엇 하러 하시오? 나는 가 봐야 하오, — 폴토라크가 다시 힘없이 말했다.

— 곧 끝나오, — 스쿠드린이 대답했다. — 이 모든 바보 성자들 위에는, 뭐랄까 — 양파 모양의 푸른 러시아 왕국의 위엄이 서서, 치즈와 양파처럼 쓰디쓴 우리를 덮어 주었소, 교회 위 양파 지붕은, 양파처럼, 양파 같은 러시아 삶의 상징이니 — 상징 말이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이걸 당신 생각거리로 말하는 거요, 살인에 대해 당신 스스로 결정하라고. 우리는 갈 데가 없소, 한데 사회주의로는 — 나는 가기 싫소. 작정한 대로 강을 막으면, 우리가 그 둑을 폭파하지 않으면 — 우리 자프루디예가 물에 잠기고, 바로 이 방이 물로 채워질 거요, 우리 대신 여기서 물고기가 헤엄칠 거고, 코냑 마시러 바로 이 작은 배로 헤엄쳐 들어오겠지. 한데 나는 이 작은 집에서 자립했고 내 자식들이 여기서 태어났소. 나는 — 러시아 편이오, 나는 물고기한테 가기 싫소, 사회주의보다는 내 빈대들과 함께가 더 좋단 말이오, 보시오!…… 그리고 이반 야코블레비치를 떠올린 건, 나도 죽어야 할 테고, 그의 죽음이, 그가 받은 영예가 부럽기 때문이오. 내 동생 이반도 부럽소. 나는 — 시샘 많은 사람이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가 모질게 말했다.

— 야코프 카르포비치, 당신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으셨소, 바로 바보 성자들이, 사기꾼이든 미치광이든, 죽이는 자이자 죽임당하는 자였다는 것 말이오. 죽인 건 — 사기꾼들뿐이오. 미치광이들은 — 도리어 죽임을 당했지.

— 지당한 말씀이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사기꾼들은 번성했고 미치광이들은 죽어 나갔소, 잘 기억하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사기꾼이었지. 러시아는 사기꾼을 사랑하오! — 한 가지 더 짚게 해 주시오.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가 드물어서,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나도 한 사람의 시민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시오. 당신 생각에, 세상을 — 문명을, 학문을, 기선을 움직이는 게 뭐요? — 노동이오? 지식이오? 사랑이오? — 아니, 천만에, 크흠! — 기억이오! — 기억이 세상을 움직이오. 한 장면을 그려 보시오. 내일 아침 내가 깨어났는데 — 감각도, 이성도 남았으되 — 기억이 없소. 침대에서 깨어 거기서 떨어지오, 공간을 잊어버렸으니까. 의자에 바지가 놓여 있고, 나는 춥소 — 한데 그걸로 뭘 해야 할지 모르오. 어떻게 걸어야 할지도 모르오, 손으로 갈지 네 발로 길지. 어제를 기억 못 하니, 죽음도 두렵지 않소, 그것을 모르니까. 기사들은 제 도면을 죄다 잊어, 전차도 기관차도 운하도 죄다 악마에게로 가오. 사제들은 교회 가는 길을 못 찾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기억 못 하오. 나한테는 본능이 남았는데, 그것도 일종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칩시다 — 나는 뭘 먹어야 할지 모르오, 의자인지 밤새 의자에 남은 빵인지, 그리고 여자를 보면, 내 딸을 아내로 알겠지…… 기억! 공상! — 기억의 공상이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기억이 당신을 죽일 수 있게 하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한데 기억 없음은 당신 어미를 딸과 헷갈리게 하지. 당신과 나는 비열한 자들이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당신은 감각이 어지러워졌소. 정말이지 가서 쉬어야겠소, 당신은 심란해 있으니 — 나는 아내 잠자리로 가리다. 그런 당신이 풀밭으로 가는 건 위험하오. 거기 지기들이 다니는데, 내가 가축 치는 건 익숙해도 당신을 목동으로 본 적은 없거든. 한 시간쯤 당신 여인한테 가 있으시오, 그다음 내가 당신을 모놀리트로 데려다주겠소. 죽음을 앞두고 좀 쉬시오. 나한테는 기억이 있소, 아들들처럼 빼앗기지 않았지. 나는 이반 야코블레비치를 기억하오 — 한데, 나 대신 물고기가 내 서재를 헤엄쳐 다니는 것은 — 그건 바라지 않소. 하고 싶은 대로들 하라지, 허나 내 집은 내가 지키겠소.

아낙 같은 지방이 제 곤죽을 풀어헤친 채 아주 주의 깊게 들었다. 서재는 볼테르주의에 잠겨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가 엄하게 폴토라크를 제게로 손짓해 불렀다. 폴토라크는 힘없이 형제 곁에 앉았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누리며, 살아 있었다 — 진지해져, 음모자들과 군함 위로 몸을 숙이고, 탈장을 야무지게 받쳐 든 채 아낙 같은 콜롬나의 어깨에 기댔다.

— 집에 변고가 생겼소, 전보를 받았소, — 폴토라크가 말했다. — 아내가 친 거요. 좋소, 일 얘기를 합시다.

— 일 얘기를 합시다, — 손위 베즈데토프가 따라 말했다.

— 일은 짧게 말하겠소, — 스쿠드린이 말했다. — 다 준비됐고, 필요한 데 다 갖다 뒀소. 새벽 한 시쯤 나는 가축을 치러 가겠소. 당신은 당신 여인한테 가시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아니면 내 데서 누우시든가. 이야기는 짧소. 내가 풀밭으로 데려다주겠소, 아무도 못 볼 거요.

— 골루트빈 부교(浮橋)에서 만납시다, — 손위 베즈데토프가 말했다.

— 가시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내 데서 앉아 있기 거북할 테니. 아직 세 시간 남았소. 죽음이나 명예 얘긴 할 것 없소. 다만 두말 않겠는데 — 명예는 누구에게나 남아 있소, 가령 나한테는 — 내 딸 카탸가…… 나도 내 노파 잠자리로 가리다. 나는 카탸를 위해 사오. 그리고 오늘 밤 죽을 생각은 없소.

알코올 군함은 베즈데토프 형제가 조종했고, 군함과 더불어 서재의 마호가니 속, 십팔세기에 — 볼테르 동지가 박혀 있었다. 창으로 스탠드 등을 향해 밤나방들이 날아들었고, 창밖 어둠 속에서는 비가 살랑거렸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폴토라크 둘레를 꼼지락거리며, 비둘기처럼 종종거리고, 터진 틈으로 탈장을 받쳤다. 그의 눈은 여든다섯 해로 눈물에 젖었고, 노인은 부어올라, 핏물처럼 부석부석하고 푸르죽죽하고 행복했다. 육중한 노인은 혀 짧은 소리로, 가래를 돋우고 꿀꿀거리며 얼간이 짓을 했으니, 무섭고 역겨웠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코냑 곁에 말없이 있었다. 폴토라크는 거뭇한 턱을 두 손바닥으로 괴었으니, 그의 생각은 이 볼테르식 서재에 있지 않았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손위 베즈데토프가 점잖게 말을 꺼냈다. — 콜롬나에서 우리와 셈을 치르겠다 하셨지요. 지금이 셈하기에 딱 좋은 때일 듯합니다만.

— 그래, 그래, 돈푼 받는 거야 나쁠 것 없지! — 스쿠드린이 맞장구쳤다.

— 그래,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소, 우리가 잃은 게 많진 않아도 중요한 것 — 양심을 — 잃었다는 게, — 폴토라크가 말했다.

— 한데 나는 안 잃었소. 나는 그걸 안 잃었어! — 창밖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창 쪽으로 돌아보았다.

창밖에서 빗물받이 함석이 덜그럭거리고, 토대의 외장이 우수수 떨어지며, 창이 더 활짝 열렸고, 스탠드 등 불빛 속으로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의 손과 머리와 가슴이 나타났다. 그는 야코프 카르포비치와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다른, 한 핏줄의 막내 동생으로, 스쿠드린에서 오조고프로 제 성을 바꾼 자였다. 이반 오조고프는 두 팔꿈치를 창턱에 괴었다. 모자도 안 쓴 그의 머리가 비에 젖어 머리카락이 빗물에 들러붙었고, 성상화처럼 된 그의 얼굴은 광기 속에 잠겨 있었다. 오조고프는 윗옷 깃을 세웠고, 구멍 나도록 닳은 넥타이가 비뚜름히 흘러내려 있었다. 오조고프는 방 안에 있는 이들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 나는 안 잃었소, — 오조고프가 말했다. — 그리고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도 그걸 안 잃었소. 강과 더불어 가야지, 강을 거슬러서는 안 되오. 우리는 그분과 오늘 속을 터놓고 이야기했소…… 안녕들 하시오! — 오조고프가 잠시 말이 없다가 덧붙이며 인사했다. — 들었소 — 정의가 일어섰소 — 오늘 여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다시 우리 시대가 오고 있소. 사람들이 명예를 바라오!……

오조고프의 인사에는 폴토라크 혼자 답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안절부절못하고 동요하며, 맨발로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아낙 같은 지방이 소파에 손님으로 자리 잡았다. 볼테르가 스탠드 등으로 깜박였다.

— 대체 무엇 하러 오셨소, 동생? 내가 폴레티카 교수를 못 만날 줄 아시오?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물었다.

— 반혁명의 꼴들을 좀 보려고요, 형님, — 오조고프가 대답했다.

— 여기 무슨 반혁명이 있단 말이오?

— 형님으로 말하면, 형님은 생활의 반혁명이오, — 오조고프가 나직이 말하며 미친 듯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 그리고 내가 집행위원장이던 시절에 형님을 벽 앞에 세워 총살하지 않은 게 참으로 한스럽소. 마호가니 세공가들로 말하면, 저들은 역사의 반혁명이오, 저 파괴자 폴토라크 나리와 한패로 조직된. 나는 자네들에 대해 죄다 알고 있소, 개자식들 같으니, 다만 사람들이 나를 안 믿을 뿐이지.

베즈데토프 형제는 주석 같은 눈으로 경계하며 말이 없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보랏빛 분노와 승리감으로 동시에 차올라, 순무 대신 삶은 비트 꼴이 되어 — 창가로 가, 예의와 승리감 속에 킬킬거리고, 두 손을 부산히 놀려, 추위에 떨 듯 서로 부지런히 비벼 댔다.

폴토라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야코프 카르포비치, 바보 성자들 가운데 비열한 자가 죽이고 미치광이가 죽임당한다 하셨는데, 혹 틀린 게 아니오?

스쿠드린은 폴토라크에게 답하지 않았다.

— 이보시오, 동생, —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아주 정중하고 아주 의기양양하게 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 당장 악마에게로 꺼지시오. 진심으로 부탁하오!

— 미안하오, 야코프 형님, 나는 형님한테 온 게 아니오, 형님 집에는 내 발 한 짝도 들이지 않겠소, 나는 중립 지대에 — 창턱에 있소. 나는 역사의 반혁명을 보러, 그것과 이야기 나누러 왔소, — 이반이 대답했다.

— 그러니 부탁이오 — 악마 어미에게로 꺼지시오. 오늘은 우리 거리에 사육제요! 폴레티카는 내가 직접 만나겠소.

— 한데 나는 그 여자한테 안 갈 거요!

파벨 표도로비치가 주석 같은 눈으로 동생 스테판을 천천히 흘긋 보고 엄하게 말했다.

— 바보 성자와는 말을 섞을 수 없지 — 안 나가면, 스테판한테 네 목덜미를 잡아 내쫓으라 이르겠다.

스테판이 형과 똑같은 눈으로 보고는 의자에서 고쳐 앉았다. 부랑자는 음흉하게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꼼짝하지 않았다.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마지못해 군함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부랑자는 겁먹은 듯 창턱에서 내려가, 불빛 속에 머리 하나만 남겨 두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의기양양하게 킬킬거렸다. 스테판이 창가로 다가가자 — 이반 오조고프는 얼굴을 찡그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집 너머로 비가 요란했다. 어둠 속에서 부랑자가 말했다.

— 나한테서는 못 벗어나오, — 그러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집 너머로 비가 요란했고, 숲속이 그러하듯 고요했다. 밤에 밀려든 숲이 콜롬나로 다가들었다. 마린킨 탑에서는 올빼미들이 탑의 세기들을 지키며 울었다. 콜롬나는 말의 땀 냄새를 풍겼다. 올가 파블로브나 투치코바는 그 시각 이미 제 마을에 다다라, 의자와 안락의자를 팔아 준 나자르 시소예프 영감에게 고마워하며 행복하게, 반 시간 뒤 의자들을 싣고 도시의 기차로 떠나려, 나자르의 오두막 짚단 위에서 반 시간 눈을 붙이고 있었다. 카라진은 그 시각 노인성 히스테리 발작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마린킨 탑가에서 올빼미들이 울었다. 부랑자는 가 버렸다. 의기양양한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이때가 무섭고 긴 제 생애의 마지막 시간 가운데 하나임을 그 시각 도무지 알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비가, 벌써 가을답게, 여러 시간 동안 쏟아졌다.

— 가 보겠소,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힘없이 말했다.

— 새벽 한 시까지, — 손위 베즈데토프가 말했다.

— 새벽 한 시까지, — 스쿠드린이 말했다.

— 그래, 한 시까지.

12

비 내리는 도시 위로 밤은 이곳의 역사처럼 미동도 없이 새카맣게 흘렀다. 스쿠드린의 집은 어둠 속으로 함몰하여, 풀밭의 물길을 앞두고 말이 없었다. 스쿠드린 노인은 행복과 활기 속에 잠겨 있었다 — 그리고 침실의 시큼한 고요 속으로 노인의 슬리퍼가 —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잠자리로 — 철벅철벅 다가갔다. 양피지 같은 노파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잠들어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손에서 양초가 떨렸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킬킬거렸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양피지 같은 어깨에 손을 댔다. 그의 눈은 쾌락 속에 눈물이 비어졌다. 아낙 같은 지방은 서재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가 속삭였다.

— 마류시카, 마류시카, 그래, 크흠, 이게 인생이야 — 이게 인생이지, 마류시카, 그렇고말고!…… — 그러면서 노인은 폭발의 굉음을 들었고, 솟구치는 그 불꽃을, 연기를, 냄새를, 사방으로 날아가는 돌을, 물의 쉭쉭거림을 보았다. 노인은 잠자리 곁에서 한바탕 춤을 췄다.

십팔세기가 러시아-볼테르식 어둠 속으로 함몰했다.

그 시각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손아래 베즈데토프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카테리나와 마주쳐, 말처럼 단단하고 소처럼 고분고분한 그녀의 어깨를 만지고, 취한 손으로 더듬으며 속삭였다. 카테리나는 고분고분하고 힘없이 서 있었다.

— 너희 식구들한테 말해 둬, — 스테판이 말했다. — 다시 한판 벌이자고. 자리를 알아봐, 너희 목욕간이든 어디든.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또 올 거야. 너는 지금 곧장 목욕간으로 가.

카테리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 같은 그녀는 두 손을 늘어뜨린 채 고분고분하고 힘없이 베즈데토프 곁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베즈데토프를 끌어안아, 그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를 짓눌렀다.

지난 몇 차례 베즈데토프 형제가 다녀가는 동안 그들에게는 하나의 관례가 생겼으니, 소시민 후방에서 흔하디흔한 것이었다 — 카테리나가 동무들을 불러 모으면, 형제가 술을 구해 왔다 — 스쿠드린 노인이 카테리나의 혼수를 보관해 두던 목욕간, 정원 깊숙한 구석의 그 목욕간에서, 창에 휘장을 치고, 목욕간 선반을 탁자 삼아, 처녀들이 선반 위에 삶은 소시지며 정어리 통조림이며 사탕이며 절인 사과를 늘어놓으면, 베즈데토프 형제가 술병을 땄다. 목욕간에는 술판이 벌어지는 첫 한 시간 동안 등잔이 켜졌다가, 이내 꺼졌고, 목욕간에서의 모든 시간 내내 말벗이자 술벗들은 속삭여 이야기했다. 목욕간은 집과 마찬가지로 십팔세기에, 볼테르식의 홀린 듯한 마법 속에 잠겨 있었다. 처녀들은 마시고 취했다. 형제는, 취한 사람들에게서, 특히 여자들에게서, 그들이 몹시 취하면 알코올이 빚어낸 똑같은 표정이 얼굴에 오래도록 들러붙어 있다는 것을 흥미로워했다. 림마 카를로브나의 딸인 보육교사 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가 사내처럼 손으로 머리를 괴기 시작하고, 이가 드러나고, 입술이 경멸 속에 돌처럼 굳고, 담배를 하나씩 잇달아 피우며 코냑을 물처럼 마시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때 — “내가 취했냐고? — 그래, 취했어 — 그래서 어쩌라고! 내일 나는 또 학교에 가르치러 가 — 한데 내가 뭘 알아? 뭘 가르쳐? — 당신들 마호가니를 사들이지? 옛것을? — 당신들 우리도 술로 사들이고 싶은 거야? 내가 인생이 뭔지 모르는 줄 알아? — 아니, 알아!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라고! — 한데 내일 여섯 시에 나는 보육 회의에 가, — 자, 여기 내 수첩, 다 적혀 있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 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의 이가 드러나고 그녀가 추하도록 아름다워지는 이 시각에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비꼼이 가득한 다정한 말로 카테리나를 꾀기 시작했으니 — “한데 너는 블라우스를 못 벗을걸, 카튜샤, 못 벗을 거야!” — 그러면 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가 짧게 깎은 머리를 헝클며, 사내처럼 머리를 괴고, 멈춰 선 제 눈을 탁자에서 떼지 않은 채, 짓눌린 속삭임으로 외쳤다 — “보여 줄걸! 카치카, 저들한테 가슴을 보여 줘! 보라 그래! — 나도 벗을게, 그럴까? — 당신들 내가 술꾼인 줄 알아? — 나는 오늘 인사불성으로, 인사불성으로 취하려고 왔어 — 알겠어? — 인사불성으로!…… 될 대로 되라지!…… 카치카, 벗어, 보라 그래, 우리는 낡은 관념 따위 부끄러워하지 않아!” — 그러면서 클라브디야 이바노브나가 제 블라우스 깃을 잡아 뜯기 시작하면, 카테리나가 늘 똑같은 말로 달래며 단추 푸는 것을 거들었다 — “클라바, 옷 찢지 마, 집에서 알면 큰일 나 — 화내지 마, 차라리 내가 벗을게……” — 그러면 손위 파벨 표도로비치가 등잔을 껐다.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은 어두웠다. 카테리나가 베즈데토프를 끌어안아, 장사 같은 제 몸으로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짓누르며, 모질고도 고분고분하게 울기 시작했다.

— 왜 그래?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카테리나는 울며 대답하지 않았다 — 그녀가 스테판 표도로비치를 계단 난간에 어찌나 세게 밀어붙였던지, 그는 숨쉬기가 괴롭고 아파 균형을 잃었다.

— 왜 그래, 카테리나? —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울부짖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스테판을 놓아주며 머리와 어깨를 난간에 무너뜨렸다. 난간이 그녀 밑에서 삐걱이며 흔들렸다.

— 나 임신했어! — 카테리나가 울부짖었다. 마린킨 탑이 밤 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시각 아카티예보 마을에서는 — 모놀리트 공사가 끝나면 물에 잠길 그 마을에서 — 나자르 시소예프 영감이 올가 파블로브나를 깨워, 그녀 위에 쪼그려 앉아, 소매를 잡아당기며, 음울하고 백발이 성성한 영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파블로브나, — 그가 말했다. — 어이, 파블로브나! 나는 말을 매러 가겠소, 떠날 때가 됐으니, 일어나오, 우유는 광에 있소. — 그가 잠시 말이 없었다. —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요, 올가 파블로브나?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요, 응? 한번 들어 보오, 땅에 귀 기울여 보오 — 고요하지. — 무엇 때문일꼬? —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기를 그쳤소, 다들 으르렁대니, 영락없이 전쟁 통 같소. 내 아들들은 — 바실리는 전쟁터에서 곧장 부랑자로 빠졌고, 스테판과 표도르는 — 공산주의자가 되어 건설 현장으로 갔소.

— 네? 그래요? — 일어나야 하나요? — 올가 파블로브나가 잠결에 물었다.

— 아니, 자오, 좀 더 자오, 내가 말 매는 동안. 나는 늙었고, 게다가 외톨이라오, 그 아들들은 — 보다시피, 저 모양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오. 우유는, 말했듯이, 광에 있소, 새색시. 나는 말 매러 가겠소. 그러니 나를 기다리오…… 한번 들어 보오!…… 할아버지도 사셨고, 증조부도 사셨고, 우리 아카티예보 마을에는 가업이 있었소 — 우리는 볼가로 뗏목을 몰았소, 천 년을 몰았지, 어쩌면 더 됐을지도, 어릴 적부터 익혀, 언덕 하나하나, 여울 하나하나를 다 아오, 랴잔 부근이며, 카시모프 부근이며, 무롬 부근이며. 아득한 옛날부터 강으로, 뗏목으로 살았소. 한데 들리는 말로는, 우리 삶이 끝난다오, 이제 랴잔 부근에도 블라티마 부근에도 오카가 없어진다, 강이 끝나고, 모스크바로 흘러 새 터로 옮겨 간다…… 한번 들어 보오! — 내 생각엔, 거짓말이오, 그런 강은 없을 거요, 말도 안 되는 일이지 — 천 년을 살았는데 느닷없이 우리 삶이 끝난다니. 강 얘긴 거짓말 같소, 정말로 짓고들 있긴 해도. 우리가 뗏목 모는 걸 그치는 것도 모자라, 아카티예보 자체가 키테시 마을처럼 물밑으로 들어간다니, 믿을 수가 없소…… 한번 생각이나 해 보오!……

콜롬나의 마린킨 탑가에서 올빼미들이 울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가 그 시절의 모스크바를, 새 러시아로, 지식으로, 평등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군대의 군영 같다고 한 것은 옳았다. 모스크바는, 지나간 세기도 지금의 세기도 다가올 세기도, 죽어 가던 거리도 새로 짓던 거리도, 사람들도 죄다 단련되고 파헤쳐진 건설 현장 같았다. 그러나 폴레티카 교수는 제복을 헤아리며 한 가지를 놓쳤다. 그해 제복은 수백만의 목과 발에 똑같은 무늬로 걸린 톨스토이 셔츠, 먼지막이 외투, 챙모자, 양말, 넥타이의 대량 규격으로, 똑같은 액수로 벌어들이는 루블과 똑같은 가능성으로 도입되고 있었다. 새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군대식 카키 차림에, 지휘관의 가죽끈을 가슴에 엇갈려 둘렀다. 무더운 칠월, 여름이 대개 그러하듯, 모스크바의 트베르스카야와 사도바야 거리는 하수도 도랑으로, 변두리는 자갈 포장으로 파헤쳐져, 크라스니예 문과 교회들을 역사 속으로 파묻었다. 젊은이들의 카키가 미래로 밀고 들어갔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는 역사의 도랑 너머에 살았다. 그리고 그는 병들어 있었다.

그는 저 전문가들의 삶을 살았으니, 남의 눈에는 시류를 거슬러 사는 듯 보이는 자들이었다. 십여 개의 산업 위원회와 더불어 그는, 참호 너머에서 시류에 휩쓸려 사는 모스크바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몇 안 되는 모스크바 술집의 단골이었다 — 점심은 볼샤야 모스콥스카야, 저녁과 폭스트롯과 새벽의 만남은 피메놉스키 골목의 배우 모임(바로 경매장 뒤편), 일요일의 휴식은 경마장, 토요일의 카드 형이상학은 카지노. 그러나 폴토라크에게는 옛말이 뜻하던 그대로의 가정도 있었으니 — 아내, 아이들, 흰 앞치마를 두르고 세기 초에 유행하던 머리 모양을 한 하녀, 좁고 격식 있는 집안의 벗들, 양탄자, 청동, 그림, 마호가니, 가르드네르 그릇 세트, 통화의 용건과 누구인지 캐묻는 데 시간을 더 쓰는 엄격한 전화기가 있었다. 폴토라크는 집 밖에서는 헤프게 쓰고 집 안에서는 인색했다. 아이들은 영어를 배웠다. 손님은 초대받았을 때만 집에 왔다. 그럴 때면 포도주와 과일과 캐비어와 철갑상어가 사들여지고, 자기가 차려졌으며, 안주인이 새로 들어오는 이를 두고 일러두었다 — “아무개 수력공학 기사, 비당원인데, 쉿, 그들과 가깝다오!……” — 폴토라크의 집에 공산주의자들은 드물게, 그래도 오긴 했으니, 폴토라크가 혁명의 신뢰받는 전문가로 여겨진 까닭이었다 — 그럴 때면 폴토라크는 작업복 블라우스를 입었다. 폴토라크의 아내는 늙어 갔으니, 지치고 격식 있는 여자로, 집안의 체면을 지켜야 하는 그 빠듯한 루블의 셈속 속에서 거리로부터 집에 숨겨져 있었다.

폴토라크는 병들어 있었다. 그는 제 병이 언제 시작됐는지 몰랐고, 그 병을 무어라 부를지도 몰랐다. 그는 서두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그를 다그쳤다. 그는 혼자 있지 못해, 어디에나 있어야 했다. 그는 제 본능을 풀어헤친 채 여자들로 앓았다. 그는 제 병을 알지 못했다. 영국인 셔우드의 눈도 그의 병에서 운명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풀밭에서의 파멸은 사물의 논리로 드러났다. 건설 현장으로 떠나기 한 주 반 전, 아내의 자매를 진료하던 의사에게서 크림으로부터 전보가 왔다. 의사는 처제에 관해 전보를 쳤다 — “가망 없음, 환자를 도로 데려가도 좋다고 봄.” — 의사들은 환자가 제 손에서 죽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의료 윤리의 규칙상 이 전보는 환자가 곧 죽을 테니, 가까운 이들의 손에서 숨을 거두도록 의사에게서 데려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이 전보를 숨겨, 아내에게 보이지 않았으니, 아내를 심란하게 하고 죽어 가는 이를 옮기는 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전보가 왔다 — “환자를 속히 데려가시길 청함” — 그리고 그것이 아내의 손에 들어갔다.

아내는 마호가니 탁자 — 그 위에서 회신 수령증에 서명한 — 곁에서 전보를 손에 든 채 한 시간 넘게 서서, 눈으로 제 자신과 시간을 멈춰 세웠다 — 그러고 나서 몇 시간을 더, 그리핀이 새겨진 파벨 양식 침대에 누워, 눈물에 젖고, 죽음의 무의미와 아픔을 달래려 이로 깨문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죽어 가고 있었다, 무의미 속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 자매가, 어린 시절부터 삶에 남은 단 하나, 온 삶을 함께 지나온, 가족과 핏줄과 혈연의 사랑으로 맺어진 그 사람이.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기운차고도 지친 모습으로 돌아와, 아내를 알아채지 못한 채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굳어진 입술로 말했다.

— 죽어 가요.

그러고는 아내가 남편에게, 살붙이에게 매달렸으니, 그 살붙이의 친근하고도 낯선 온기로 제 자신을, 두려움과 무의미 앞의 제 무력함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남편이 여비가 모자란다 하자, 아내는 그래도 힘을 내어 가서 제 처녀 시절 혼수인 시계와 브로치를 전당 잡혔다 —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폴토라크는 크림으로 떠났다. 아내가 배웅하며 딱딱한 좌석 차표를 사 주었다.

포돌스크에서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딱딱한 좌석칸을 국제 침대칸으로 바꿔 탔다. 길동무는, 몇 마디 나누자 공통의 지인이 생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잠들기 전 그들은 식당칸으로 가, 백포도주를 마시며, 혁명을 거치며 전문가로 변하고 그 탓에 거세당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인텔리겐치아의 사회적 봉사가 혁명에 의해 셈에서 지워진 일에 관해서였다.

세바스토폴에서 얄타까지 폴토라크는 자동차로 실려 갔고, 크림은 아름다웠다. 바다, 산, 길, 사람들의 들뜸, 칠월 — 모두가 황홀했다 — 그래서 폴토라크는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에게 갈 때 애써 눈썹을 슬픔으로 모았다.

크림은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를 바꿔 놓았다. 폴토라크는 테라스 안락의자에 앉은 그녀를 보았으니, 그녀는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이마에 입 맞췄다. 폴토라크는 늘 그대로의 자신이 되려고 제 주름을 풀었다.

그녀가 말했다.

— 잘됐어요. 의사 선생님이 내가 완전히 좋아졌대요. 모스크바로, 비소키예 고리 요양원으로 가야 해요, 거기서 새 방식으로 새로 기흉을 넣어 준대요, 게다가 여기선 더위가 내게 안 좋아요. 한 달이면 나는 일어날 거예요 — 그리고 가을부터는 다시 무대에 서고요!

이것이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한 첫마디였다.

이월에 크림으로 떠난 뒤, 그녀는 — 좋은 쪽으로 — 몹시 달라져 있었다. 햇볕에 그을고 살이 올랐으며, 거뭇한 홍조가 돌고, 눈은 더 깊고 아름다워졌으며, 눈 밑 그늘이 매혹적이었다. 신체의 변화 외에 정신의 변화도 있었으니, 그것이 문득 폴토라크를 들뜨게 하고 그의 마음에 들었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부끄러움과 호기심을 잃었다 — 그녀는 모스크바에 대해 거의 묻지 않고, 대뜸 체온을 몇 시에 재는지, 어떻게 땀이 나는지, 위가 어떻게 소화하는지, 무엇을 먹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살붙이를 몹시 반가워하며 농담을 했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도 장단을 맞춰 답했다.

의사답게 근심하고 근심스레 농을 던지는 의사가 폴토라크를 공원으로 데려갔다. 공원 작은 벤치에서 의사는, 결핵이 장으로 옮아갔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고 그 시한은 며칠, 아니 몇 시간 단위라고 말했다. 폴토라크는 눈을 떨구고 주름을 모았다. 의사는 비꼬듯 흘긋 보고는 잠시 말이 없다가 농을 던졌다.

— 뭐, 뭐, 다들 가는 데지요!

폴토라크가 빙긋 웃었고, 둘은 의사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 모스크바에 새 소식은 뭐가 있소? — 의사가 물었다.

해 질 녘에 폴토라크는 바다로 갔으니, 바다는 푸르렀고, 바위에는 수영복 차림의 남자와 여자들이 한데 뒹굴고 있었다. 폴토라크는 벌거벗은 기사 부인 둘과 마주쳐,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농을 쳤다. 저녁은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의 잠자리 곁에서 보내며, 그녀의 손을 제 손에 쥐었다. 밤늦게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잠들자, 폴토라크는 의사의 안내로 의사와 함께 붉은 포도주를 마시러 그리스 식당으로 갔다 — 의사는 시원찮은 길동무였고, 아는 기사 부인들은 집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와 폴토라크는 세바스토폴로 떠났다. 세바스토폴 호텔에서 기차 시각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에게 관장을 도와 달라 청했고, 그는 식당으로 따뜻한 물을 가지러 갔다. 세바스토폴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는 밤에 떠났다.

환자는 얄타에서 오는 자동차에 기진하여, 옷도 벗지 않은 채 역에서부터 잠들었다. 침실칸은 배부른 고요와 밤 등불의 보랏빛 속에 점잖게 잠겨 있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깨어 있었으니, 산과 자동차의 하루는 그를 조금도 지치게 하지 않았다. 그는 객차가 잠들 때까지 따분해하며, 담배 피우러 복도로 나가고, 코냑 한 잔 마시러 식당칸에 들렀다. 잔코이 부근에서 환자가 깨어 물을 청하고,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에게 옷 벗는 것을 도와 달라 했다. 그는 그녀의 부츠 끈을 풀고 양말을 벗겼다. 그러자 그는 제 병의,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그 병의 불안한 발작을 느꼈다.

— 나머지는 내가 벗을게요, — 그녀가 말했다. — 나를 좀 붙잡아 줘요.

그녀가 블라우스를 벗고 치마의 후크를 풀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주었다.

— 가방에서 슬리퍼하고 잠옷을 꺼내 줘요, — 그녀가 말했다. — 씻는 걸 도와줘요. 돌아서요. 수건을 줘요.

그녀는 의사에게 말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 말하기가 힘겨웠다.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세면실 칸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씻으려 어깨에서 잠옷을 내렸다. 그녀가 잠옷을 입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그녀를 잠자리로 데려가 눕히고, 그녀의 다리를 홑이불로 감쌌다. 그녀는 물을 청하고, 베개를 고쳐 달라 하고, 손을 머리 밑에 받친 채, 빙긋 웃으며 쉬었다. 그는 그녀의 발치에 앉았으니, 씻고 흡족한, 무탈하게 평온한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는 크고 아주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제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쉬고 있는 그녀의 눈은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침실칸을 좇았고, 그녀에게서는 불안한 향수 냄새가 났다. 국제 침대칸의 밤이 풀먼 객차로 평온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뛰어난 변호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으니, 그의 두 손 밑에 무릎이 놓인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에게로 몸을 숙였다. 그는 아마 고해할 때 쓸 법한 그런 어조로, 더없는 진실로, 더없는 솔직함으로 말했다. 그는 발작 중이었다.

— 사랑이란 무엇이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 — 그리고 삶이란 무엇이오? — 죽음이란 무엇이오? — 누가 알겠소? — 그리고 진실이란 무엇이오? — 나는 거짓인 진실을 많이 아오! 그리고 크나큰, 아주 크나큰 정의가 된 거짓도 아주 많이 아오. 갖가지 미덕이며 정절이며 의무 따위는 말하지 않겠소 — 죽음 앞에서 그건 죄다 부질없으니! — 당신은 몹시 아프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 — 몹시 아프오! — 당신은 알 거요, 당신이 싸우는 게 — 병이 아니라 — 죽음 그 자체와 싸우는 것임을!…… — 죽음은 —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거기 무언가 있으리라 믿지 않소 — 당신도 그걸 알 거요, 베라 그리고리예브나. 모든 진실, 모든 정의, 온갖 도덕은 죽음 앞에서 — 아무것도 아니오, 바로 죽음이 무(無)요, 영(零)이기 때문이오 — 한데 영을 곱하면 모든 것이 제 자신으로 변하지. — 사랑이란 무엇이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 — 사랑이란 무엇이오? — 갖가지 진실로 차려입은 사랑이 많이 있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천 번씩 되뇌어야 하는, 그것뿐인 사랑이 있소. 기도 같은 사랑이 있소. 몽상의 사랑이 있소. 자연은 죽음처럼 잔혹하오. 이 모든 사랑은, 자연이 준 단 하나, 중세 기독교에서 남은 우리 도덕이 더럽혀 놓은 그것으로 가는 서곡일 뿐이오 — 단순하고 육체적인, 물질적인 — 나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소 — 육체의 쾌락으로서의 사랑으로 가는 서곡 말이오. 죽음의 영 앞에서는 — 죄다 헛소리요, 영이 오기 전까지는 육체의 사랑이 남소 — 이 하나 말고 다른 모든 진실은 그르오. — 나를 심판하시오, 허나 나는 정직하오. 나는 죽음 앞에서 말하고 있소 — 당신은 그걸 아오. 한 달 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소? — 나는 정직하게 말하오 — 나는 당신의 손에, 눈에, 가슴에 입 맞추고 싶소, 아무것도 영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당신은 여자요,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여자요. 나는 당신에게 — 우리에게 — 행복이, 육체의 행복이, 기쁨이, 쾌락이 있기를 바라오, 그것으로 우리는 죽음과 싸우는 거요. 나는 말도, 도덕의 인습도 두려워하지 않소. 나는 지금 당장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소 — 당신을 위해. 이 모든 게 진실과 도덕 바깥에 있게 하시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더없이 능란한 웅변가처럼 말하며, 눈을 떨구고 손바닥으로 가렸다 — 그리고 그는 이미 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더없이 부드럽게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의 겨드랑이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밀쳐 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얹었다. 그는 말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머리 뒤로 젖혀진 채 놓여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가 속삭였다. 그녀는 몹시 가쁘게 숨 쉬었으나, 심장은 거의 뛰지 않았다.

— 입 맞추지 말아요, — 그녀가 말했다. — 내가 당신을 옮길 거예요.

— 멋진 사람! 우리는 세균보다 강하오! — 그가 황홀하여 외쳤다.

그녀의 입술이 아픔으로 오므라들었고, 그녀가 그의 이마에 입 맞추자, 그녀의 손이 그의 목으로 떨어졌다.

— 이건 추악한 짓이에요, 예브게니,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말하고는 문득 흠칫하더니, 떨기 시작하고, 휘파람처럼 숨을 몰아쉬며, 아마 평생 처음으로 제 자신을 가눌 능력을 잃었다.

그리고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서둘러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이튿날 낮에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의 상태가 나빠졌다. 아침부터 체온이 사십 도에 다다랐고, 맥이 사라졌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땀 웅덩이에 누워,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폴토라크는 기차를 뒤져 의사를 찾다가 딱딱한 좌석칸에서 의대생을 찾아냈다. 의대생은 환자를 하리코프에서 객차 밖으로 내려야 한다고 했다 — 폴토라크는 거절했다. 하리코프에서 환자에게 장뇌 주사를 놓았고, 저녁 무렵 죽어 가는 여자는 잠 속에 잠잠해졌다. 폴토라크는 차장에게 지켜봐 달라 부탁하고 점심을 들러 식당칸으로 갔다 — 답례 삼아 의대생에게 보드카와 백포도주를 대접했다. 이미 대(大)러시아에 든 깊은 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위쪽 침상에서 자고 있을 때,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그를 깨웠다. 그녀는 그의 잠자리에 머리를 기댄 채 서 있었다.

— 여보, — 그녀가 속삭였다. — 당신을 깨웠네요, 한참 전부터 당신을 불렀는데, 못 듣는군요…… 내게로 와요, 한 번 더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어요 — 죽기 전에…… 나 자신에게도, 언니에게도 부끄러워요…… 너무 무서워요. 나는 죽어요…… — 그녀는 들러붙은 입술을 겨우 움직이며 말을 뱉었다. 그녀의 입술은, 새파랗게, 떨렸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답했다.

— 왜 이래, 왜 이래, 진정해, 누워!…… 곧 갈게……

—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예브게니?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 무슨 짓을 한 거예요? —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 당신이 나를 사랑하긴 해요? — 언니에게 부끄러워요. 온 세상 앞에 무서워요.

모스크바에는 비가 쏟아졌다. 역에서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의 아내와 아이들이 맞았다. 자매가 울며 입을 맞췄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짐꾼과 함께 가방을 날랐다. 여자들과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택시를 탔고, 아이들은 전차로 갔다.

— 예브게니에게 고마워요, 그이가……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말했다. 그녀는 전에 한 번도 폴토라크를 부칭 없이 부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낯선 눈으로 흘긋 보며, 그 눈을 매질 아래 들이댔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숨을 그러모았다. — 예브게니에게 고마워요, 그이가…… 그이가 아주 자상했어요, 그이가…… 밤마다 내 곁에 앉아 내 안식을 지켜 줬어요,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말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의 눈은 여전히 낯선 채였다. 아내가 남편을 고맙게 바라보았다.

집, 블라디미로-돌고루콥스카야의 집에서 수위와 청소부가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를 삼층으로, 폴토라크 집의 마호가니의 묵직함 속으로 들어 올렸다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여기서 다시, 마지막으로 — 관에 담겨 내려가게 하려고. 아내가 서재 문턱에서 혼절하여 비틀거렸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서재의 소파에 뉘어졌다. 아내가 자매를 거들러 서재에 들어갔다가, 복도에서 소리 없이 울려고 거기서 나왔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환자에게 갔고, 그녀가 눈으로 그를 불렀다.

— 여보, — 그녀가 속삭였다. — 언니는 어디 있어요? — 당신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 알아듣지 못한 채, 문 쪽을 흘긋 보고는 서재에서 나왔다. 그는 비극적으로 두 손을 비틀며 아내를 제게로 손짓해 불렀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 끔찍하오 — 죽음이란! — 그가 말했다. — 나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진이 빠졌소. 사흘 밤을 못 잤고, 게다가 당신은 나를 궤짝짝에 태워 거기로 보냈지. 그녀는 가는 내내 헛소리를 했소, 음란한 헛소리를. 그녀는 정상이 아니오. 산 채로 썩어 가는 시체요, 끔찍하오!…… 게다가 그 음흉한 꼴, 그녀는 미인이지, 젊은 시절 당신처럼. 허나 그건 부질없는 소리고. 끔찍하오, 죽음이란!……

아내가 남편을 끌어안았으니, 끔찍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낯설고도 친근한 인간의 온기에 매달려 제 자신을 지키려 끌어안듯이. 아이들은 가방 위에서 울었다. 아내가 히스테리의 경련으로 떨기 시작했다.

— 어쩌겠어요, 어쩌겠어요 — 이게 인생인걸! — 아내가 속삭여 말했다.

— 나는 모질지, 나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소,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침울하게 말했다. — 사람이 죽어 가는 걸 기다리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아내가 공포로 떨었다.

— 네, 그럼요, 네, 어서 끝나기를……

— 나는 집에 있을 수가 없소. 여기가 무섭고, 사흘 밤을 못 잤소. 아는 사람들한테 가 있겠소.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손에 손수건을 든 채, 머리를 벽에 기대고, 무력과 슬픔 속에 서 있었다. 아내가 그를 끌어안고 그에게 매달렸다. 복도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고, 벽에서 죽음의 텅 빈 눈구멍을 한 뿔 달린 사슴 두개골이 폴토라크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내가 서재 문을 열고, 잠시 문턱에 서 있다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욕실로 갔다.

이것이 병이었다. 반 시간 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헐렁한 여름 양복에 말끔히 면도하고, 즐겁고 기운차게 계단을 내려갔다. 모스크바 위로 비가 지나가, 아스팔트를 적시고 김을 피워 올렸다. 지보데르카는 짐마차들로 요란했다. 폴토라크는 활기 속에 베즈데토프 형제의 골동 지하실로, 중세와 눅눅함 속으로, 옛 향수와 아교와 광택제 냄새 속으로, 마호가니와 자기와 청동의 옛것 속으로 갔다. 파벨 표도로비치가 작업대 위에 코냑이 든 — 황실 다이아몬드 그릇 세트의 — 유리병을 올려놓고, 파벨 양식 소파의 비밀 서랍들을 보여 주었다.

— 파벨을 두둔하시오? — 베즈데토프가 물었다.

— 그렇소, 안 그럴 이유가 있소. 파벨은 — 몰타 기사단원이라, 귀신이나 알 노릇이지, 군대식 형이상학이오. 게다가 파벨 양식 소파에서 여인과 저녁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소, 세기들에서 기운이 흘러나오거든. 세기도 현대도 동시에 네 밑에 있는 셈이지.

— 여인한테는 예카테리나 침대도 좋소 — 한데 알렉산드르는, 아무래도 — 좁지, —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코냑을 한 잔씩 마셨다.

— 셔우드는 왔었소?

— 왔었소. 콜롬나에 다녀오라더군.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전화를 걸어, 나데즈다 안토노브나 사란체바를 수화기로 불렀다.

— 나댜, 당신이오? — 나 왔소. 우리 볼까요? — 푸시킨 동상 앞에서?

마호가니, 그 부서진 조각들이 구석마다 쌓여 있고, 또 그 부서진 조각들이 엄격하고 오래된 질서로 정돈되어 옛 시대를 되살리며, 옛것으로 닦여 빛났다 — 지하실의 어스름 속, 잿빛 거미줄 속에서 중세를 이루었다. 뼈 부스러기로 만드는 목공용 아교는 언제나 죽음 냄새를 풍긴다. 한편 옛 향수는 — 고결하니, 이 파출리는.

모스크바에는 이백만의 사람이 살았으니, 거대한 인간의 숲, 밀림이었다. 한 사람과 수많은 사람이 결코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아주 많은 이들이 제 어우러짐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숲 — 그리고 이 백만의 숲에는 저마다의 사랑이, 일이, 옷이, 탁자가, 의자가, 잠자리가 있었다. 백만이 사는 도시에는 침대와 수건이 얼마나 많아야 할 것인가!

폴토라크는 여자들의 머리가 어떻게 입술로 숙여지고 입맞춤 아래 눈이 떨리는지, 어떻게 힘 빠지게 하는 말이 오가는지 잘 알았다 — 알코올의 소음과 속삭임 너머로 의식이 무너질 때, 어떻게 여자들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머리로 치마를 밀어 무릎을 드러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