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38
소녀 마리야가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머리를 땋아 주었다. 여학생 마루샤 포즈드니셰바가 있었다. 음악 교사는 그녀에게 미래를 예언했다! — 정오였다. 기적은 점심 휴식 시간을 알리고 멎었고, 사이렌들은 발파공들이 풀밭으로 들어갔음을 알리며 울부짖었다. 푸른 햇빛 속에서 노동자들이 물러나는 동안 건설 현장의 소음은 잠시 잦아들었고, 이어 폭발음들이 울렸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아침부터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태양이 이슬을 거두어 가던 그 시간들에 그는 좌안 노동자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노동자 명부를 검토했다. 교대 오 분 전 사디코프가 전화로 라슬로와 노동자위원회 위원장을 지금 곧 자기에게 오라고 불렀다. 기적이 울리고, 사이렌들이 속을 뒤집듯 울부짖어, 대지를 뒤집을 폭발을 예언했다. 사디코프의 사무실에서는 햇빛을 막으려 창의 위쪽 절반에 흰 종이를 붙여 두었고, 열린 창으로는 조용한 바람이 청사진들을 바스락거리게 하며 서늘함을 들여보냈다. 마리야가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떠난 뒤로, 그는 이 작업용 사무실에서 살았다. 구석에는 야전침대가 놓여 있었고, 사디코프는 그 위에서 아주 짧은, 러시아의 칠월과 일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휴식을 때웠다. 라슬로는 노동자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왔다. 사디코프의 셔츠 깃은 풀어져 있었고, 그는 언제나처럼 사무적이고 활기차게 제도대 앞에 서 있었다. 사디코프에게서 조금 떨어진 창가에는 GPU 부대 제복을 입은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사디코프는 들어온 이들을 맞으러 갔다가 문밖을 내다보고 문을 단단히 닫았다. 푸른 작업복 차림의 그 사람이 창밖을 보았다.
— 동지들, — 사디코프가 말을 꺼냈다. — 우리의 미친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가, 자기 형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이 폴토라크 기사와 수상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소. 우리는 그것을 헛소리로 여겼소. 여기 모스크바에서 오신 이 동지와 인사하시오. — 푸른 작업복 차림의 사람이 군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 이 동지는 폴토라크가 실제로 파괴자이며, 어떤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통보를 내게 가져왔소……
사디코프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라슬로의 하녀 다리야가 제도실로 허둥지둥 뛰어 들어와, 숨을 헐떡이며 방 한가운데 멈춰 섰다. 그녀의 말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먼저 보인 것은 그녀의 맨발이었다. 발가락은 뭉툭했고, 그녀는 마치 충격을 기다리는 것처럼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 있었다. 붉은 머릿수건은 뒤로 젖힌 손에 쥐고 있었는데, 때릴 준비를 한 손 같았다.
— 표도르 이바노비치, 당신 아내가 죽었어요, —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리고 라슬로를 향해, 그에게 반말로, 미친 듯한 증오 속에서 외쳤다.
— 야, 너! 집에 가 봐! 네 비둘기가 죽었다! 목을 맸어, 오래도 못 살고!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겁먹고, 결연하고, 사무적이고, 사납고, 경멸하는 얼굴이었다. 무엇보다도 결연하고 사무적이었다. 다리야는 쌕쌕거리며 숨을 쉬었고, 작은 눈은 더 작아졌고, 입은 엄청나게 벌어졌으며, 드문드문한 이빨들은 붉은 피가 돈 입술 너머로 죄다 송곳니처럼 솟아 있었다. 랴잔 아낙 같은 다리야의 위로 들린 배는 부자연스럽게 움찔거렸고, 그 배는 치마를 흔들었다. 치마 아래로는 싸움에 나설 듯 단단히 벌린 두 다리가 박혀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닿기 훨씬 전부터 볼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절망적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집과 방 안에는 낯선 사람들이, 교대에서 나온 노동자들과 여공들이 모여 있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흰 잠옷 차림으로 시트 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머리칼이 얼굴을 덮고 있었고, 볼크는 그녀의 목을 핥으며 인간의 슬픔으로 울부짖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어제 자기 손을 다치게 했던 바로 그 못에 목을 맸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마리야와 볼크 곁 바닥으로 쓰러졌다. 볼크는 처음으로 그에게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죽은 마리야 위에서 라슬로와 볼크가 히스테리처럼 몸부림쳤다. 볼크는 마리야의 목과 가슴을 핥았다. 그리고 아마 이 몇 달의 결혼 생활 동안 처음으로,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에게 마리야를 위한 진짜 말, 정확하고 거짓 없는 말, 아주 단순하고 순진한 말들이 찾아왔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볼크와 함께, 볼크를 방해하면서도 밀어내지는 않고, 늑대 같은 목을 끌어안은 채 마리야에게, 그녀의 목에, 눈에, 어깨에 입 맞추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 내 사랑, 내 사랑, 착한 사람, 내가 바라던 사람, 나의 Galanthus!……
묘지와 화장장에서는 인간 존재의 세월 묶음이 끝난다. 화장장에서는 인간에게 마지막 인간적 경련을 겪는 일이 주어진다. 화장장의 방 안, 레오뮈르 이천 도의 온도 속에서, 관과 인간의 옷은 이 분 만에 무(無)로 타 버리고, 벌거벗은 시신만 남는다. 그러면 벌거벗은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인간적 경련은 형이상학적인 것처럼, 죽음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인간적 경련에는 기묘한 법칙이 따른다. 죽은 자의 다리가 접히고, 그의 손이 목 쪽으로 기어 올라와 가슴 위에서 십자가처럼 포개지고, 머리는 어깨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은 무로 넘어가기 전에, 같은 무에서 생겨나던 때,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취했던 바로 그 자세를 취한다.
— 나의 Galanthus!
소녀 마냐가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머리를 땋아 주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할 겨를이 없었다. 모놀리트의 석조 쌓기는 결코 절대적인 불투수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극이 해를 끼치는 것을 피하려면, 모놀리트를 반드시 균질한 재료로 세우고, 되도록 쥐라기 시대의 비압축성·불투수성 대륙 토양에 물려 닫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놀리트는 침하 때문에 갈라지고, 서로 다른 공극률을 지닌 접합부와 온도 이음매에서 씻겨 나간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마리야의 손에 입 맞추었다. 평온하고 사무적으로. 셔츠 깃은 여전히 풀려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볼크에게 엄하게 외쳤다.
— 볼크! 이리 와! 이시! 쿠시!
볼크가 옛 주인을 바라보았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눈은 명령했고, 볼크의 눈은 슬픔으로 복종했다. 볼크는 복종했다. 눈을 내리고, 꼬리를 내리고, 일어나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다가가,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웠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시신에게 돌아와 라슬로의 어깨를 잡고 조용히 말했다.
— 일어나, 에드가르, 일어나!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 망자를 받아 주시오.
라슬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볼크 곁,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마리야의 시신 위로 몸을 숙였다. 죽은 여자는 탁자 위에 눕혀졌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지켜보았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탁자 곁, 마리야의 발치에 앉았다. 볼크가 낑낑대다가 울부짖었다. 낯선 사람들은 말없이 문 쪽으로 섰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볼크에게 명령했다.
— 볼크! 나를 따라!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볼크와 푸른 작업복 차림의 남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볼크의 발톱이 내는 뼈 같은 발소리의 고요 속에서. 집 현관에는 다리야가 서 있었고, 현관 아래에는 군중이 모여 있었다. 다리야의 입술과 뺨은 피처럼 붉었다. 증오의 피로 뒤덮인 듯했다. 그녀는 무서웠다. 차스투시카를 부르는 계집애 다리야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서 차스투시카 같은 것은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무섭게 바라보았다. 그 눈은 다리야의 분노와 명예와 인간적 품위와 두려움을 주먹처럼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입은, 싸우려고 벌려 선 맨발의 두 다리만큼이나, 눈만큼이나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명예와 분노로 가득 찬 말들을 입 밖으로 밀어냈다. 다리야가 몹시 두려워하고 있음은 알 만했다. 죽음의 두려움, 자기 세계를 깨뜨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다리야는 장사 같은 손에 쥔 붉은 머릿수건으로 자기 말들을 몰아붙였다.
— 동지들! — 그녀가 외쳤다. — 죽인 건 바로 그자예요! 그자예요! 그자가 그 여자를 제 잔꾀로 몰아 죽였어요! 그 여자는 무서워서 목을 맨 거예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죽었습니까? 혁명은 무엇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동지들! 형제들! 아낙들! 우리가 그자한테 이 일을 그냥 용서해 줄 겁니까? — 그는 깨끗하게 빠져나와, 이제 와서 그 여자의 발에 입 맞추고 있어요!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겁니까! 그러면 그의 비둘기 같은 아내가 죄인이라는 겁니까! — 아낙들아? — 그 여자는 그자에게 편지를 남겼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에드가르, 나는 당신 앞에 아무 죄도 없어요.” 그런데 그자는 오늘 아침에도 나한테 밸브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물었단 말입니다! — 아낙들아, 응?! 우리 아낙들아!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자가 책임 있는 동지입니까, 아닙니까?! —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 여성부는 무엇 하라고 있는 겁니까?! — 겁과 짓밟힌 명예 때문에 사나워진 다리야의 눈이 눈물로 번득였다. — 아낙들아, 응?! — 저자는 물에 빠져도 젖지 않고 깨끗하게 빠져나오려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가 겁을 내야 합니까? 혁명이 헛일이었다는 겁니까?!
집 문턱 너머에는 죽음이 머물러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그것이.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푸른 작업복 차림의 남자와 볼크와 함께 문턱을 내려와 수석기사 사무소로 갔다. 흙빛인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얼굴은 근육의 주먹처럼 단단히 뭉쳐졌다. 볼크는 사디코프 곁을 아주 풀이 죽은 채 걸었다. 낮은 햇볕으로 땅을 가득 채웠다. 건설 현장에서는 묽은 공기가 터지고 있었다.
저녁에, 전등을 눈앞까지 낮춰 걸고, 연필을 부지런히, 사납게 물어뜯으며, 다리야는 벽신문에 낼 글을 쓰고 있었다. — “여성 동지들!…… 책임 있는 동지 E. 라슬로는 자기 아내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처신하였다.” — 다리야는 이렇게 쓰고는 줄을 그어 지웠다. — “여성 동지들!…… 우리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 노동계급을 해방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새 삶을 준 지 곧 십삼 년이 됩니다.” — 다리야는 이렇게 쓰고, 그 생각을 잊지 않으려 문장 옆에 십자 표시를 해 두고는 새 줄에서 다시 시작했다. — “여성 동지들과 여성 시민 여러분.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됩니다. 우리 둘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십시오. 혁명의 법은 모든 노동자를, 남자와 여자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여성들은 마침내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얼마 전 오른쪽 강안의 콘크리트 공장 노동자가 흙일꾼 셋에게 강간당했고, 혁명 법정은 그들을 가장 엄격하게 심판하여 프롤레타리아의 경멸에 넘겼습니다. 남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의 눈물이 흐르고 있는지.” — 이 마지막 문장은, 다리야가 연필을 씹다가 지워 버렸다. — “그렇다면 어두운 흙일꾼들과 달리 기사일 뿐 아니라 공산당원이기까지 한 책임 있는 동지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들이 법의 규정을 피해 갔다 하더라도, 그들을 심판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 다리야의 눈은 경멸과 행동으로 가득했다. 어리둥절함은 그 눈에서 사라져 있었다. 다리야는 사무적인 분노 속에서 연필을 씹었다. 그녀의 붉은 머릿수건은 종이 곁에 놓여 있었다. 집은 고요 속으로 숨어들었다. 라슬로는 서재에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식당에는 관이 놓여 있었다.
그날 밤에는 사디코프도 라슬로도 자지 못했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도, 류보비 피메노브나도 자지 못했다.
볼크를 빈 서재에 남겨 둔 채,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온종일 건설 현장에 있었다. 의지는 주먹처럼 쥐어져 있었다. 갇힌 볼크는 그 몇 시간 내내 울부짖고 흐느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오늘 하루가 자기에게 그저 노동일일 뿐임을 알고자 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돌아왔을 때도 볼크는 울부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볼크에게 고기를 가져다주었으나, 볼크는 먹지 않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한참 동안 볼크 곁에서 부산을 떨었다. 푸른 밤이 땅 위로 내려왔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광대뼈는 늑대 털처럼 잿빛이 돌았다. 볼크는 구석에 몸을 처박고 울부짖었다. 그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볼크를 데리고 콜롬나로 갔다. 볼크는 순순히 따랐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마 거리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스쿠드린 자매 집 쪽문을 두 번이나 지나쳤다. 쪽문이 인사처럼 노래하고 삐걱거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 무력하게 웃어 보이고는 개 이야기를 꺼냈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무력과 공포의 히스테리 속에 누워 있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젖은 수건을 든 채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나왔다.
— 엄마가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해요. 제가 못 가게 하고 있어요.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은 고요하게 어두워졌고, 정원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테라스 맨 아래 계단에 앉아, 개를 제 발치에 눕혔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집에서 나와 맨 위 계단에 앉고는, 추운 듯 어깨를 움츠렸다.
— 개가 말입니다,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울부짖기만 하고 제 손에서는 먹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혼자 삽니다. 제 곁에는 아무도 없고, 저는 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 마리야는 죽었습니다. 이 개는 — 그녀의 기억입니다. 이 개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개를 당신에게 선물로 데려왔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먹여 주고, 쓰다듬어 주십시오. 계속 울고만 있습니다.
— 물론이에요,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지금 곧 우유를 가져올게요.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추운 듯 서둘렀다.
— 아니, 잠깐만요, 류보비 피메노브나…… 이 개는 마리야의 가장 충실한 친구였습니다. 아마 유일한 친구였을 겁니다. 당신은 — 이 개를 사랑해 주십시오. 충직한 친구입니다. 제가 왔을 때 이 개는 마리야 위에서 울고 있었고, 그녀의 목을 핥고 있었습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말을 멈추었다.
—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표도르?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물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 오직 당신에게만 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가 대답했다.
— 그러지 마세요, 표도르 이바노비치.
— 알겠습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 —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잠시 말이 없었다. — 가야겠습니다. 물론, 모든 건 더 단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볼크는 영리한 개고, 좋은 개입니다. 모든 건 더 단순해야 합니다. 가야겠습니다.
— 조금만 더 있다 가세요, 표도르,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나직이 말했다. — 그리고 너무 단순하게 만들지는 마세요.
마당으로 부랑자들의 개 아랍이 나와, 볼크를 놀란 눈으로 보고는 꼬리를 말고 눈을 교활하게 만들었다. 아랍은 큰 반원을 그리며, 산책하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곁눈으로만 흘깃거리면서 테라스 가까이 다가와 잠시 서더니, 털북숭이 꼬리를 흔들고는 제 개의 언어로 볼크에게 말을 걸었다. 서로 알기 위해, 아주 다정하게 볼크의 냄새를 맡았다. 볼크는 슬프지만 우호적으로 — 인사의 표시로 — 꼬리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놓았다. 저녁은 칠월답게 어두워졌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잠시 방 안을 들여다보고 나왔다.
— 저는 가겠습니다,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가, 생각에 잠겨 잠시 서서, 볼크의 줄을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 건넸다. — 오늘 밤 당신 아버님이 건설 현장에 오십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볼크와 함께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쪽문까지 배웅했다. 쪽문이 노래하고 닫혔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마당에서 외쳤다.
— 내일 꼭 오세요, 표도르 이바노비치. 꼭요.
건설 현장으로 돌아온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를 위해 방을 세심하게 정리했다. 머리맡 탁자 위에는 양초를 놓고, 침대 밑에는 요강을 밀어 넣고, 베개 위에는 수건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폴레티카가 도착하기 전 잠들려고 자기 작업실에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나 그는 담요 귀퉁이를 손에 쥔 채 침대에 앉아 버렸고, 그대로 담배를 피우고 기침을 하고 침을 뱉으며, 역으로 나갈 시간이 올 때까지 밤을 보냈다. 사람마다 제 운명이 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자 교외의 먼지 나는 거리에서, 여윈 포플러 아래서, 어두운 복도들 속에서 소년으로 자랐다. 처음에는 막사였고, 그다음에는 분필과 기계유 냄새가 나는 공장 학교였다. 오조고프에게 그랬듯, 공장 기적 소리는 그에게도 첫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오조고프의 삶보다 더 복잡하고 더 책임이 무거운 것으로 드러났으니, 그 삶이 이십 년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공장 정문은 교외의 어린 시절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여윈 포플러들은 그의 운명 속에서 한 번 더 되풀이되었다. 사랑을 해야 했고 사랑의 시간이 왔던 오월 밤, 바로 그 포플러 아래서 청년 표도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혁명에 관해 들었기 때문이다. 표도르에게는 혁명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삶 속으로 이끌어 넣을 몫이 떨어졌다. 청년 표도르는 아버지를 떠나, 젊은 노동자들이 사는 셋방으로 갔다. 그들은 그의 동지들이었고, 혁명 이전부터 이성적인 삶과 공산주의를 건설하던 사람들이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있기는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동의 명예와 삶의 명예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유형, 전쟁, 혁명, 내전, 고등기술학교, 기사라는 직업, 혁명, 공산주의였다. 이 모든 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아주 복잡했다. 그것은 모두 어제의 일이자, 여러 시대 전의 일이었다. 공장 담장 밑의 작은 놀이, 페레코프 부근의 전투, 숲속과 젊은 시절의 모임, 측량 조사대, 감옥의 대문 통로와 유형 한 시간 전 협동조합 셋방에서 플레하노프와 메링을 소리 내어 읽던 일 — 이 모든 것은 있었고, 이 모든 것은 지금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뒤에는 자기 삶이 없었다. 오늘 죽은 아내,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겨를도, 말할 줄도 없었으나 그가 사랑했고, 친구와의 배신 속에서 꼬박 한 해 동안 그 여자를 위해 싸웠던 아내의 죽음이 있었다. 그가 거짓을 끝내기 위해 에드가르와 마리야를 자기 집으로 불렀던 그날, 그는 자기 젊은 시절의 전통, 협동조합 셋방과 코뮌의 동지애 전통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삶에서 모든 것이 단순하다는 것, 모든 것은 단순해야 하며 사람들은 제 단순함 속에서, 제 일과 생각 속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삶은 시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것은 겨우 어제 지나갔다. 그러나 어깨 뒤에는 이미 서른일곱 해가 쌓여 있었다 — 역사, 시대, 노동, 노동자 예비대학과 고등기술학교에서의 암기, 관자놀이의 흰머리, 흔들리는 심장. 그런데 자기 삶은 없었다. 협동조합 셋방의 날들에서 이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사적인 삶, 가정의 삶은 없었다. 삶은 혁명에, 다른 일들에 바쳐졌다. 페레코프에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마지막 상처를 입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보로디노 수도원 이야기를 했었다. 거기에는 정말 기념물이 없다. 마리야에게서 남은 것은 볼크, 그녀의 기억이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볼크를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 주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도 자기 개인의 삶은 없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왜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 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었는지, 그리고 왜 결국 그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했다. 그는 류보비 피메노브나를 사랑했고,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고요와 굴착기의 밤 시간 내내 — 매 순간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침대에 누우려 했으나, 담요로 몸을 덮으려고 담요를 손에 쥔 채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폴레티카를,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아버지를, 그리고 그 시각 그의 의붓아버지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아내 시신 곁에 앉아 있는 그 아버지를 맞으러 역으로 가야 할 시간이 올 때까지, 담배를 피우고 기침을 하고 침을 뱉으며 밤을 보냈다. 밤의 궤도차 길은 습기로 몸을 떨게 했다. 기차는 안개 속에서 기어나와, 등불을 켠 채 철길을 더듬으며 환영처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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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떠난 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오래도록 테라스 계단에 앉아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앉았던 맨 아래 계단이었다. 집에서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나와, 위쪽 계단에 앉았다. 어머니와 딸은 침묵과 고요 속에 앉아 있었고, 밤이슬에 옷이 젖을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마리야의 죽음은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고통을 마무리했다. 마리야의 운명이 그녀의 운명이 되었다. 류보비는 아래 계단에 앉아 볼크의 발치 가까이에 먹을 것을 놓아 두었다. 단순하고, 맑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선을 행하기 위해 산다. 모든 인간은 순수와 정결을 향해 나아간다. 순수가 곧 생물학인 사람들이 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삶과 생각의 세계는 늘 맑고 깨끗했다. 어머니의 슬픔을 지켜야 했다. 한 사람이 죽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한 여자가 죽었다. 그리고 죽음과 시간과 인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사디코프를 생각했다. 그녀는 왜 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는지, 또 왜 그 개가 그토록 소중한지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가 숨어 있었고, 바로 그곳에는 평생 그에게 주어진 말도 간직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음이라니 —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섭다. 그러면 자기 삶과 자기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폴토라크가 가져가 버렸다. 그런 생각 속에서는 사람은 외롭고, 자기 자신이, 자기 삶이, 자기 고독이 가엾어진다. 그리고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리야를 생각하며, 사디코프를 생각했다. 사디코프가 자기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사랑에 관한 생각을 자기 안에서 꺼뜨렸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자기 고독에 대해, 지나가고 있는 자기 젊음에 대해, 그리고 모든 사람처럼 세계를 껴안고 싶었던 자기 두 손에 대해 생각했다. 그 세계는 폴토라크에게 주어졌으나, 폴토라크는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다. 또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자신이 기운차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자정이 지나자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를 침대에 눕히고, 그 뒤 오래도록 볼크 곁에 앉아 있었다. 그의 털을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먹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랍도 볼크를 달래는 데 그녀를 도왔다. 부랑자 이반도 테라스에 올라와 앉아 말없이 졸았다. 그리고 밤새 정원에서는 울새가 노래했다. 사람과 땅을 이어 주려고.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동트기 얼마 전에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른 시각, 태양이 땅에 아침을 부어 사람이 땅과 친구가 되게 하는 때에 깨어났다.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기운차게 있고,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날 자신에게 닥칠 잔혹한 어려움, 그녀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결정적인 날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른 시각, 어머니가 잠든 동안, 그녀는 볼크와 함께 강으로 갔다. 고로디시체 너머, 타보리 쪽으로, 발굴 현장으로. 혼자 있고, 자기 활기를 그러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아침이 자기 처녀 시절의 마지막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편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자정까지 자기 서재에 앉아 있었다. 자정까지 사람들이 죽음에 절하러 찾아왔기 때문이다. 자정이 되자 곳곳이 열려 있던 집은 텅 비었다. 다리야는 저녁부터 부엌에서 종이를 붙들고 앉아 있었으나, 자정 무렵 집을 나갔다. 자정 무렵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마리야의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손들이 관에 넣고 꾸며 놓은 마리야의 시신이 붉은 관 속에,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방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다. 아주 밝고 성가셨다. 관 둘레 바닥에는 진흙 부스러기들이 박혀 있었다. 마리야가 목을 맨 그 못에는, 다리야가 잘라 낸 밧줄 조각들이 걸려 있었다. — 전등 아래에서는 무서웠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전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는 더 무서웠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양초를 가져와 관 곁 탁자와 마리야의 화장대 위에 켰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관 곁에 앉아, 관의 모서리에 머리를 얹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관에 못질을 하고 장송곡을 연주하는 악대 아래 그것을 묘지로 옮길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밤새 굴착기들은 제 삐걱거림과 울부짖음의 노래를 불렀고, 흙에 사레들리며 대지의 내장을 찢어 놓았다. 그러나 밤은 어둡고 안개 끼었으며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마을에서는 사람의 노래가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야는 그 밤 여자 막사로 갔다. 새벽은 주인 없이 발을 디뎠고, 양초들은 새벽이 한참 지난 뒤 다 타서 꺼졌다. 동이 트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관 곁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그 밤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눈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공간 뒤에서 생겨나듯, 묘지에서야 처음으로 열렸다.
40
이튿날 아침, 때 아닌 기적이 울리고 여자들이 일을 던진 채 관 쪽으로 가기 십오 분 전, 오카를 가로막는 모놀리트 곁에서, 여분의 노동자 ‘한 손’을 두고 십장과 이야기한 뒤, 폴레티카 교수는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 표도르 이바노비치, 나는 당신에게 내 새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소, — 폴레티카가 하늘을 심란하게 둘러보고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디코프와 폴레티카는 파헤쳐진 흙덩이 위에 서 있었다. 페테르부르크를 걸어가는 표트르를 그린 세로프의 그림을 전혀 되풀이하지 않는 두 원수였다. 그들 아래에서는 기계와 사람들이 땅과 화강암과 콘크리트와 물을 조직하고 있었다. — 우리가 지금 짓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수력공학 기사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오. 지구를 떠올려 보시오. 인류에게 아틀란티스에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소. 그것은 태양에 타 버리고 모래에 묻혔으며, 지금 그곳은 사하라요, 사막이요, 무더위요, 모래요. 인류의 기억 속에서 꽃피던 나라들이 사라졌소 — 아시리아, 바빌론,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지상의 낙원,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었소. 지금 그곳은 모래와 무더위와 사막이오. 아라비아는 위대한 학문과 철학과 이슬람의 종교를 만들어 냈고, 그 종교는 곳곳에서 오늘까지 살아 있소. 그러나 아라비아 자체는 지금 모래와 무더위에 넘겨져 있소. 한때, 그것도 그리 오래전이 아닌 때 정원이 꽃피던 그곳에서 이제 베두인이 떠돌고 있소. 더 나아가 봅시다. 몽골 전설에는 호랑이가 몽골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발을 먼지에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소. 실제로 그랬소. 지금 그곳에는 모래와 무더위가 있고, 알라와 붓다의 그 정원들에는 사막이 샤모에서 아랄해까지 누워 있소. 우리는 기억하고 있소. 그것은 우리의 역사적 기억 속의 일인데, 그 사막에서 티무르가 온 아시아를 지휘했소. 러시아와 중국이 하나의 나라였던 때였지. 몽골에서 우리에게 타타르인들이 왔소. 몽골에서 스키타이를 거쳐 수많은 민족이 지나가, 불과 칼로 유럽을 다시 그렸소. 학문은 민족대이동의 원인에 대해 마땅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소. 몇 분만 기다리시오. 내가 그 원인을 설명하겠소. 유럽에 대한 마지막 침입은 튀르크인의 침입이었소. 가장 마지막 침입은 — 러시아인의 침입이 될 것이오. 우리가, 수력공학 기사들이 싸우지 않는다면 말이오. 떠올려 보시오. 이것은 아주 가까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일인데, 사백 년, 오백 년 전 볼가 하류에는 강력한 국가, 금장한국이 있었소. 아랍 학자이자 여행자인 이븐수아드는 한국의 수도를 묘사했소. 거대한 도시였고, 하수도와 궁전과 공원이 있었으며, 중국과 인도와 페르시아와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아라비아의 물산이 그곳으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는 철학과 종교에 관한 학문적 논쟁이 벌어졌소. 지금 금장한국이 있던 곳에는 — 모래와 사막과 죽음이 있소. 나는 그곳에 가 보았소. 하수도에서 남은 수로 곁에 칼미크인 하나가 낙타 두 마리와 살고 있더군. 거기서는 우리 눈보라 속의 눈처럼 모래가 걸어 다니오. 사막은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소. 지금 사막은 카스피해 쪽에서 밀려와 아랄-카스피의 모래를 싣고 서시베리아와 유럽 러시아로 다가오고 있소. 돈바스의 문턱에 사막이 왔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오. 돈바스에는 물이 없소. 물이 모자라오.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막은 바로 모스크바 아래까지 다가오고 있소. 이른바 건조 지대, 사막의 전조가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랴잔과 오룔을 지나 키예프와 루마니아로 이어지는 곡선을 따라 지나가고 있소. 사막이 사람들에게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했소? — 사막에서 달아났소. 아랍 문화의 번영, 이슬람은 이미 말 위에 있었소. 아랍인의 말은 무어인이 되어 스페인으로, 셀주크가 되어 발칸으로 돌파했소. 몽골은 더 느리게 죽어 갔고, 다섯 세기 동안 사막에서 달아났소 — 중국으로, 조선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그것을 민족대이동이라 불렀소.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그런 이동을 보고 있소. 그래서 나는 어쩌면 러시아도 서쪽으로 달아날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오. 우리는 거대한 민족대이동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목격하고 있소. 천팔백구십일-구십이년, 볼가 유역의 기근 때, 이른바 가뭄 때, 아랄해에서 불어온 먼 안개가 볼가 위를 덮었을 때, 기근은 칠백오십만 명을 땅에서 들어 올려 파산시켰소. 이십일년의 기근은 삼천만 명을 파산시키고 들어 올렸고, 그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달아났소. 볼가 너머의 독일인들은 국경 밖, 독일까지 이르렀지. 그 삼천만 명은 러시아를 기어 다니며 사람을 잡아먹고 길에서 죽었소. 때로는 부유한 살림을 지닌 채로 말이오. 볼가 너머는 부유했기 때문이오. 나는 계산해 보았소. 우리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십일년에 같은 기근이 든다면, 그것은 땅에서 들어 올려 몰고 갈 사람이 삼천만이 아니라 칠천오백만일 것이오. 그런데 칠천만의 인간 덩어리는 그 어떤 티무르에게도 없었소. 그 굶주린 칠천만이 수레 행렬과 함께 몰려온다면 — 그게 무엇인지 당신은 알 것이오 — 그들은 아틸라 못지않게 유럽을 지나갈 수 있소. 서로를 잡아먹는 굶주린 자들, 그들의 손에 총검이 쥐어진다면 — 그것은 세계대전보다 무섭소. 우리는 이십일년을 기억하고 있소.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말을 멈추고, 하늘의 해가 제 적이라도 되는 듯 심란하게 바라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말이 없었다. 둘레의 풀밭에서는 수천 명이 건설하고 있었다. 준설기와 흙빨이배의 행렬이 종대처럼 줄지어 서서, 손수레꾼 여자들을 위해 땅을 갈아엎고 있었다. 손수레꾼 여자들은 말라붙기 시작한 진흙을 덤프카로 실어 날랐다. 굴착기들이 풀밭의 소리를 덮어 버렸다.
— 나는 사막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알고 있소, — 피멘 세르게예비치가 말했다. — 사막이 다가오는 것은……
때 아닌 시각에 기적이 울렸다. 손수레꾼 여자들이 기적 소리의 명령에 따라 손수레를 내던졌다. 여자들이 줄을 짓기 시작했다. 일 킬로미터쯤 떨어진 가물막이 근처에서도 알록달록한 여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 저게 무슨 일이오? — 폴레티카가 물었다.
— 모르겠습니다, — 사디코프가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여자들은 도시 쪽으로 갔다. 서둘러, 말없이, 사무적으로 떠나갔다. 풀밭 위에는 해가 비치고, 하늘에서는 구름이 곱슬곱슬 피어났다. 칠월은 풀밭의 빛깔을 바래게 하고 무더위를 끼얹었다. 바로 그 시각, 기적이 울렸을 때, 라슬로의 집에서는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관이 들려 나와 도시 쪽으로 옮겨졌고 — 건설 현장 사방에서 여자들이 그 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 전날 밤 여자 막사들에서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밤 여자 막사들에서 오간 말들, 그리고 그 말들이 낳은 감정들을 그 어떤 표준 공식으로도 정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슬로 기사가 죽인 것은 — 아내가 아니라 비둘기 같은 여자였고,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명예였으며, 그렇게 죽였기 때문에 마리야의 죽음은 여성 운명의 상징이 되었다는 말들이었다. 밤, 막사의 어둠 속, 전등이 꺼진 뒤, 죽음의 도덕과 죽음의 고아 됨이 이야기되던 그 외로운 어둠의 공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이런 말들이었다.
— 이게 대체 뭐야, 얘들아, 응?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아낙들아, 응?
— 자기 손으로 죽게 만든 거잖아, 응?
일흔하나의 아낙의 슬픔이 인간의 이름으로 갈피를 잃었다. 그러나 곧 이 갈피 잃음 속으로, 라슬로가 연구하던 바로 그 법칙들의 개념이 섞여 들어왔다. 계절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로 다시 태어나게 하던 그 법칙들이었다. 여자 막사들은 그 밤 말들의 떼 때문에 잠들지 못했다.
— 그럼 혁명이 있었던 거야, 없었던 거야?
— 그럼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해? 흙일꾼들한테야, 라슬로한테야?
— 여성 시민 여러분! 우리 일을 보십시오!…… 그가 그 여자를 따라다니고, 일에서 봐주고, 그 여자가 그에게서 임신하고, 그가 그 여자를 버리면, 그 여자는 아이를 안고 고생합니다. 혁명은 우리에게 모든 권리를 주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비둘기 같은 여자를 그렇게 장사 지낼 겁니다. 그가 평생 제 추잡한 짓을 잊지 못하도록. 우리는 그 여자를 그렇게 장사 지낼 겁니다. 그자 자신이 관에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일흔하나의 아낙의 슬픔은 이튿날 아침 항의로 쏟아져 나왔다.
41
라슬로는 관 뒤를 걸었다. 그는 해도 관도 보지 못했다. 다만 여자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의 곁에는 다리야가 걷고 있었다. 경멸에 차고 절망적인 얼굴로, 머리에 미처 두르지 못한 바로 그 머릿수건을 손에 쥐고서. 라슬로의 등 뒤로 여자들이 — 라슬로에게는 그렇게 보였는데 — 납 같은 침묵 속에서, 납 같은 무게로 걸어왔다. 풀밭에서 도시 쪽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여자들에게서 흙과 땀과 산패한 소 버터 냄새의 납빛 냄새가 났다. 햇볕 아래 여자들의 얼굴은 구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자들의 옷은 금속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진사빛, 양파빛, 유약빛이었다. 구리 얼굴을 한 이 납빛 여자들의 옷은 러시아 중세의 성상 행렬 그림들과, 루살카 주간에 벌어지던 고대의 잔치들을 떠올리게 했다. 프롤레타리아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계절노동자들의 수공 통치마와 앞치마였다. 아낙들의 맨발이 땅을 둔탁하게 찰싹거렸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검은 재킷에 검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관 뒤를 걸었다. 관 뒤의 여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도시의 거리들이 그 행렬을 조여 왔고, 거리들은 여자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묘지, 무덤가의 몇 분을 라슬로는 고대처럼 받아들였다. 첫 흙덩이가 묘지의 나무들과 군중의 침묵 속에서 둔탁하게 관 뚜껑을 때렸을 때,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눈은 공포 속으로 열렸다. 마리야, — 마리야는 구덩이에 누워 있었다. 아무도 되돌려 줄 수 없는 곳, 결코 돌아오지 못할 곳, 무(無)에 넘겨진 곳에.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수백 개의 얼굴을 보았다 — 구리 얼굴과 돌 얼굴들 — 그 얼굴들은 그가 텅 빈 자리라도 되는 듯 그를 비껴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고대의 장례 제의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에게는 그 구리 얼굴과 돌 얼굴들이 음욕에 차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그 생각을 떨쳐 냈다. 그는 성이 탄생뿐 아니라 죽음과도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그 생각을 몰아냈다. 그는 왜 이 여자들이 여기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마리야처럼 자기도 땅에 묻히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자리에 있다고 느꼈다.
라슬로의 가슴을 누군가 밀쳤다. 그의 앞에 다리야가 서 있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은 무서웠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자기가 음욕을 떠올린 것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다리야의 얼굴도, 다른 여자들의 얼굴도 증오와 경멸을 드러내고 있었다.
— 저놈도 악마에게나 처넣어 구덩이에 밀어 넣어 버려! — 다리야가 외치고 다시 라슬로의 가슴을 밀쳤다. — 우리는 구덩이 없이도 너를 땅바닥과 한평면으로 만들어 줄 거야!…… 얘들아, 아낙들아! — 이게 대체 뭐야, 응?! — 저자가 그 여자를 죽였잖아! — 일이 어떻게 된 건데, 저자는 물에서 빠져나와도 깨끗하고 마른 채로 나온단 말이야! — 이게 대체 우리 운명이란 말이야! — 그리고 다리야는 라슬로를 잊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들이 외쳤다. 크게, 무섭게 외치며 무덤 쪽으로 밀려갔다. 여자들의 얼굴은 더 이상 돌도 구리도 아니었고, 인간의 얼굴이 되었다. 나무들은 침묵으로 무덤을 둘러섰다. 무덤 파는 사람들은 군중을 겁먹은 눈으로 보며 서둘러 관을 묻었다.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잊혀졌다. 다리야는 눈물을 다스렸다.
— 동지들! — 다리야가 목소리를 끊어 가며 외치고, 붉은 머릿수건을 흔들었다. — 여성 동지들! 우리는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여성입니다. 법정은 어쩌면 저자를 무죄로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 우리 아낙들은 살아야 하고, 우리 삶을 우리가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저자를 심판할 겁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니 — 우리가 심판해야 합니다!……
라슬로는 잠시, 생산 회의에서 폴토라크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리야의 말을 한 노파가 끊었다. 라슬로는 그녀의 얼굴을 곧장 알아보지 못하다가, 당 세포 총회에서 그녀를 만난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파란 저고리에 보랏빛 물방울무늬가 찍혀 있고, 자루천 앞치마를 두르고, 거대한 발에는 새끼줄로 엮은 짚신을 신은 노파였다. 러시아식으로 말해 노파였다. 잔혹한 노동이 그녀의 사십 년을 먹어 치우고, 얼굴에 주름과 청동빛 그을음을 보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노파는 눈물을 이기고, 점잖게 말하기 시작했다.
— 여성 동지들! 우리는 노동하는 인민이고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도 공산주의자라니, 우리에게는 저런 당원이 필요 없습니다. 저 사람을 통해 우리는 방탕을 보이콧하고 우리의 운명에 항의합니다. 그는 책임 있는 동지였고, 그런데 그 때문에 사람들이 목을 맵니다. 흙일꾼들 재판이 있었잖습니까. 우리는 이제 완전한 권리를 가진 여성이고, 우리 자신과 혁명을 위해 스스로를 지킬 것입니다. — 그를 구덩이에 밀어 넣지는 맙시다! — 노파가 외쳤다. — 우리는 그를 조직적으로 심판할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이야기했듯, 여성 동지들, 우리가 우리의 의식성을 보여 주겠다고 했듯, 우리 동지들이……
무덤 파는 사람이 라슬로의 소매를 잡아당기고는 그의 귀에 몸을 숙여, 보드카 냄새를 내뿜으며, 동지답고도 빈정거리는 투로 속삭였다.
— 가요, 가요, 여기서 나가요, 나리. 내가 말하잖소, 가요! 안 보입니까, 저 여자들이 당신을 사적으로 심판해 버릴 거요. 안 보이오? — 가요, 저쪽에 뒷문이 있소. 저들이 연설하는 동안 가시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이 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그에게 마리야의 죽음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마리야 곁 구덩이에 있는 것은 무섭게 여겨지지 않았다. 해는 아주 밝게 빛났고, 비 오기 전이라 후텁지근했다. 나무들은 말이 없었다. 소년 시절 에드가르는 책을 읽고 미래를 들여다보려고 묘지에 다녔다. 모든 과거가 지금 손바닥 위에 놓인 듯 떠올랐다. 장례는 집회로 변해 갔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그가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 집회를 추도 잔치로 받아들였다. 사상의 집회가 아니라 감정의 집회, 본능의 집회로.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여자, 두 번째 여자, 일곱 번째 여자, 서른한 번째 여자 — 통치마, 앞치마, 사라판 — 다리, 가슴, 배, 눈, 광대뼈 — 땀은 봉랍 냄새가 난다 — 설명할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사무실, 여자들, 여자들, 세계와 심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그 근원 — 마리야, 마리야 — 아낙들의 머리칼은 상한 소 버터 냄새가 난다 — 한데 리사의 머리칼은 따뜻한 참새 냄새가 난다 — 너무도 무섭다!……
— ……그리고 여성 동지들,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 가요, 나리!
나무들은 푸른 하늘을 따라 떠갔다. 구름이 하늘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들 뒤로 묘지 교회의 십자가가 솟아 있었다. 고대! — 여자들의 얼굴이 음욕에 차 보이는 것은, 그들이 집단적 증오와 집단적 모욕의 공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자기 운명을 향한.
—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아니오! — 라슬로의 귀와 코가 양파와 보드카로 막혔다. — 들으시오, 라슬로, 농담할 때가 아니오! 내가 기마경찰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소. 갑시다!
라슬로가 돌아보았다. 그의 귀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박물관지기 그리보예도프였다. 겁먹고, 진지하고, 땀에 젖은 모습이었다.
— 이 납작배들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게 안 보이시오!?
— 가요, 나리, — 무덤 파는 사람도 확인하듯 말했다.
그리하여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마리야에게 제대로 작별하지도 못한 채, 도둑처럼 무덤가에서 물러났다. 도둑처럼 무덤 파는 사람 뒤로, 나무 그리스도의 친구인 박물관지기에게로 뒷걸음질쳤다. 몰래 관을 실어 온 수레 뒤로 돌아갔다. 말은 평온과 싱싱한 풀 냄새를 내쉬었다. 여자들의 군중은 무덤 위에서 터져 오른 거대한 종기 같았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언제 묘지 깊숙한 곳으로, 박물관지기와 함께 뛰기 시작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박물관지기의 헐렁한 외투 자락이 박쥐처럼 날았다. 박물관지기는 공포로 창백했다. 박물관지기는 묘지 뒤쪽 땅에 쓰러졌다. 라슬로도 그 곁에 쓰러졌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라슬로가 본 장례는 그런 것이었다.
42
장례에 와 있던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의 특파원은 자기 신문에 이렇게 전보를 쳤다.
“……라슬로 기사의 아내 장례와 관련하여 여성들이 작업장을 무단 이탈한 원인. 여성들의 대중적 항의는 계급의식의 각성으로 보아야 한다. 항의의 계기는 라슬로의 아내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 밖의 여러 사건들, 곧 펜자 출신 세 사람에 의한 폭행 사건(현재 유죄 판결을 받음), 십장과 현장감독들이 여공들에게 들러붙는 일, 여성 직원들과의 가벼운 관계, 노동자와 행정 담당자 양쪽에서 있었던, 애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부 사례 등이었다. 이 집단적 항의를 서술하면서……”
43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집은 잠겨 있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집은 곰팡이가 슬 수 있는 그런 고요로 말이 없었다. 서재는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시간이 몇 시인지 알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그는 책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책들을 보았다. 선반의 책들이 거대한 턱처럼 이를 드러냈다. 모든 책은 진짜 인간 삶의 모조품이며, 생각의 경련이다. 책들은 시체안치소요, 영안실이다. 거기에는 진짜 삶과 생각과 인간의 열정들이 화장장에 묻히듯 묻혀 있다. 무의식은, 침대칸 열차에서 불투명한 커튼이 등불의 유리를 가리듯, 뇌의 고깃덩어리를 감쌌다. 의식에게는 작은 틈 하나만 남아 있었다. 무의식의 어둠 속은 아주 따뜻하고, 평온하고, 아늑하고, 고요했다. 사람 안의 모든 사람은 그 사람에게만 고유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장례 뒤 무의식 속에 남은 것은 알리사의 감각, 그녀 머리칼의 냄새였다. 두 개의 삶이 있었다. 커튼의 어둠 속 삶과, 생각의 쥐들이 뛰어다니는 또 하나의 삶. 쥐들은 의지에 거슬러 달렸고, 그때 의식은 그 도주를 뒤쫓았다. 생각은 순간적인 재주로 기억 속으로, 이 기억과 저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억은 하나로 이어졌고, 가장 먼 곳에서 환영이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의식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올가의 어깨였다. 지금 그 곁에 누워 있던 그대로의 어깨이면서, 동시에 저기 내전의 전선에서 올가가 손가락으로 그 어깨 살 속의 수류탄 파편을 빼내던 어깨였다. 무의식의 어둠 속은 아주 따뜻하고, 평온하고, 고요했다. 인간은 무의식 속으로 숨고 싶어 했다. 눈을 감은 채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물리적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보았다. 마리야가 들어와, 문턱에 잠시 서 있다가 책장으로 다가가는 것을. 흐릿한 것이 닫혔다. 마리야는 관 속에서처럼 감긴 눈을 뜨지 않았다. 마리야는 작아지고, 납작해지기 시작했다. 납작해져 책이 되었다. 마리야의 책은 공중으로 떠올라, 볼테르와 『캉디드』 곁 선반에 꽂혔다. 곁에는 칸디바가 서 있었다. 칸디바의 카메라 옵스쿠라가 강의 흐름 법칙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으로는 강들이 흘렀다. 그 안에는 비법칙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흐릿한 뒤엉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방은 존재하지 않는 강으로 벌어지고, 모스크바 크렘린의 안드레옙스키 홀로 펼쳐졌다. — “공산주의자 라슬로는 더 이상 없다!” — 마리야는 서 있다가 책이 되었다. 어깨가 무거운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책장으로 다가가 마리야의 책을 집어 들고, 펼치고, 넘기고, 표지에 입 맞추고, 서툴게 제자리에 꽂았다. 책이 떨어졌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것을 주워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 책은 또 떨어졌다. 무의식에서 — 한꺼번에 수백 개가 — 감각이 아니라 생각과 환영들이 달려 나왔다. 그리고 무의식 전체, 뇌 전체, 몸 전체가 믿을 수 없는 무게와 비좁음과 무력과 고통을 느꼈다. 의식은 힘차게 커튼을 활짝 밀어젖혔다 — 뇌 전체에 걸쳐.
건설 현장의 작업은 끝나 가고 있었다. 새 강,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이 현실 속에 생겨나고 있었다. 러시아 수백 마을과 촌락의 수십 개 강과 작은 개울들이 천 개의 둑에서 물을 내려보냈다. 모놀리트의 오른쪽 어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슈로보 쪽 공장에서 온 덤프카들이 능선을 따라 마지막 콘크리트 몇 톤을 실어 날랐다. 모놀리트는 마리온들을 향해 다가섰고, 마리온들은 액체 공기에 부서진 땅을 파고들며 물러났다. 가물막이의 널말뚝 줄들은 이미 걷히고 있었다. 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굴착 구덩이는 ‘마른 콘크리트’로 채워지고 있었다. 호수로 변한 새 하상의 흙둑은 섶단으로 둘러싸인 채, 브론니치까지 백 킬로미터 너머로 뻗어 갔다. 전화가 울렸다. 건설 현장에서는 온종일 전화가 울렸다. 해 질 무렵, 수석기사 사무소로 라슬로 기사가 왔다. 죽은 사람처럼, 튼튼한 각반을 차고, 챙 넓은 검은 모자를 쓰고, 겨드랑이에는 서류가방을 낀 채 — 그는 장례에서 돌아왔다. 그의 눈은 행동하기 위한 눈이었다. 사무소의 사람들은 근무 시간이 끝났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모든 공장과 건설 현장의 사무실들은 언제나 넓고 밝으며 조금은 점잔을 빼지만, 그곳에서는 언제나 죽음이 조금씩 떠오른다. 계산기의 소리가 뼈 소리와 닮았기 때문이고, 사무실에서는 일이 아니라 일의 관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라슬로는 의지의 주먹으로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라슬로 뒤를 따라 여자들이, 수백 명이, 사무소로 들어왔다. 여자들은 평온하고 사무적으로 걸었다. 그들은 엄격한 남성성 속에서 사무소를 짓눌렀고, 알록달록한 치마와 자기들 자신으로 사무소의 넓음과 점잔을 깨뜨렸다. 맨 앞의 여자가 말없이 여자들의 결의안을 칸막이 너머로 내밀었다. 결의안은 사디코프가 받았다. 결의안에는 여자들이 라슬로 기사를 보이콧한다고 쓰여 있었다. 라슬로가 자기 방에서 나와 사디코프 곁에 섰다. 사디코프가 소리 내어 읽었다.
— 그래, 에드가르, 끝까지 마셔 버린 셈인가? — 내가 사라토프 아래에서 가라앉은 그 거룻배 이야기를 즐겨 한다는 것, 기억하나? — 사디코프는 사무적이고 평온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언젠가 썩었지만 제비꽃 향기가 나는 물고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지. 아무튼 결의안을 읽게. 일 얘기를 하자.
여자들, 여자들은 말없이 사무소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