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17
소년 미샤는 붉은 머리 모트카의 운명이 무서웠다. 아이들은 화가들처럼 오직 구체적인 형상으로만 생각한다. 류보비 폴레티카가 붉은 머리 모트카 이야기를 읽어 준 뒤, 미시카는 햇빛 속에서 갱도의 추위를 알며 오랫동안 정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 알리사와 함께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이 있는 콜로멘카강으로 갔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마리나 탑과 관련된 역사와 전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설들은, 이 높고 모난, 우뚝하고 막힌 크렘린의 요새 탑에서 마리나 므니셰크가 죽었다고 전했다. 연대기는 마리나 므니셰크가 이반 자루츠키, 그리고 아들 보료노크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물러나며 콜롬나를 점령하고 약탈했다는 것을 안다 — 전설은 마리나가 이 모서리의 크렘린 탑 안에 제 보물을 숨겼다고 말한다 — 미시카는 이 보물들을 셰헤라자드의 동화로 보았다. 연대기는 이반 자루츠키와 보료노크, 또는 보로뇨노크라 불리던 아들이 카자크들에게 배반당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을 안다 — 그러나 연대기는 마리나의 죽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전설은 마리나 므니셰크가 이 탑에 갇혔다고 주장한다. 전설은 마리나 므니셰크가 변신하는 자였으며, 까치-까마귀로 변해 러시아 위를 날아다니며 파괴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또 전설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어느 날 서기들과 콜롬나의 군정관 다닐라와 사제들이 주교와 함께, 마리나가 까마귀-까치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탑의 마리나에게 찾아갔을 때, 그녀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창과 총안과 문을 성수로 축성하여, 마리나가 까마귀로 탑 밖을 날아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로써 군정관들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성수를 뿌리던 그 시각 마리나는 잠들어 있지 않았고, 탑 안에는 마리나의 몸만 누워 있었으며, 영혼은 까마귀가 되어 러시아 위를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마리나의 영혼은 까마귀가 되어 탑 둘레를 날며, 오래전에 이미 썩어 버린 제 몸과 결합하지 못한다. 모든 까마귀는 — 마리나의 영혼이다.
미시카는 이 전설을 알고 있었고 탑을 두려워했다.
미시카는 이 탑이 림마 카르포브나의 불행한 밀회 장소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개념과는 다른 개념을 지닌다. 미시카는 이 탑 — 벽돌로 된, 높고 엄하고 막힌 탑 — 이 하나의 여자, 아니 처녀, 여전사라는 것을 알았다. 또 미시카는 불이 풀처럼 자란다는 것도 알았으니, 다만 아주 빨리 자랄 뿐이었다. 미시카는 탑의 신비가 무서웠다.
그날은 햇살이 밝았다. 탑의 기슭에는 붉은 양딱총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탑의 돌에서는 먼지와 무더위의 냄새가 났다. 투명하고, 텅 비고, 고요했다. 오솔길은 성벽의 폐허로, 수도원 마당으로, 탑 입구로 이어졌고, 오솔길은 우엉과 쐐기풀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무덥고, 넓고, 고요했다. 미시카는 리사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은 집중하여 앞을 바라보았다. 탑 입구의 어둠 속에서는 사람의 배설물 냄새가 났다. 거기에는 장작이 놓여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빛은 늘어지고 흐렸다. 통로 위쪽 햇빛 속에서는 커다란 초록 파리들이 날며 윙윙거려, 고요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장작에서는 데워진 썩음의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말없이 멈춰 섰고, 더없이 주의 깊고 골똘했다. 위쪽, 사라진 윗층 마룻바닥의 썩은 가로대 위에는 어린 올빼미들이 앉아 있었다. 미시카는 리사의 손을 놓고, 맨발에 들창코를 한 채 장작더미 위로 기어 올라갔다.
여기, 크렘린 성벽 뒤, 양딱총나무와 잡초가 우거진 인적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더없이 단순하고, 무덥고, 넓고, 고요했다. 신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태초의 상태에 있었다.
— 전보에는 뭐라고 쓰였나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물었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 나데즈다, 피 냄새가 어떤지 아오?! — 그가 힘없이 외쳤다. — 죽을 줄 아는 자는 죽일 줄도 알아야 하오. 하지만 살인은 — 더러운 짓이오, 추악한 짓이오!……
— 하지만 당신이 직접 말했잖아요, 모든 것이 피 위에 있다고 — 사랑의 침상까지도.
— 그래, 나는 바로 피에 대해 말했소 — 하지만 피 없는 살인도 있소 — 들리오? — 피 없는 살인, 누렇고, 핏물 같은, 통계적인, 숫자의 살인 말이오! 노동자들은 회의에서 내게 말했소, 나는 필요 없고, 배 밖으로 던져졌고, 피 없이 죽임당했다고!…… — 폴토라크의 말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 전보를 받았소, 가야 하오. 비가 시끄럽군 — 정말 비인가?…… 피 없이도 죽일 수 있소, 입맞춤으로도, 애무로도, 거짓말로도 죽일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서 훔칠 수도 있소. 당신은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소, 나데즈다 — 나는 러시아인이오, 나는 — 민족주의자요, 솔로비요프의 제자요, 내 러시아를 위해 죽기를 꿈꿨소 — 한데 건설 현장에서는 러시아 농민들이 일하고 있고, 이 댐들은 러시아 농민의 루블과 손으로 세워지고 있소 — 한데 사회주의란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것이라고 시소예프가 말했소. 아모날이 갑자기, 잘못 터질 때 어떻게 찢어 놓는지 본 적 있소? 사람의 머리들이 모래와 장화와 돌과 함께 어떻게 날아가는지? — 수력공학 기사들이 물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소? 물은 헤아릴 수 없이 강하니까 말이오…… 나는 러시아인이란 말이오!…… 나는 러시아의 메시아적 사명을 꿈꾸었단 말이오!……[4] 나는 러시아인이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창턱에서 일어나 탁자로 가, 포도주를 따라 마셨다. 폴토라크는 전보를 손에 든 채 능보 같은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마치 그것에 델 수라도 있다는 듯 전보를 자기 몸에서 멀리 떼어 들고 있었다. 폴토라크의 눈은 아무 데도 보지 않았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침대에 누워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꼈다.
— 아무래도 우리 둘 다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브게니,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 그러면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어 봐요. 나는 당신에게 고대와 세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을 이미지로 받아들이는군요. 아직 나도 정확히는 몰라요. 당신은 여기서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내가 결코, 절대로 내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결정할 수 없으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요, 정말 그 아들이 있다면 말이에요. 창밖의 옛것들의 장례가 내 아들의 장례라고, 당신은 말하죠 — 모르겠어요. 당신은 늑대들에 대해 말했어요. 늑대의 규칙이라는 게 있어요, 내가 브렘에서 읽었는데 — 늑대들은 늙은 늑대가 노쇠하면 잡아먹어요. 늙은 늑대들은 노쇠와 도덕적 붕괴로 힘의 평등이라는 법칙에서 물러났고, 자연은 힘의 불평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말했어요 — 우리는 늑대 같다고.
— 그래, 늑대 같소. 내가 성 소피아와 그 위의 십자가를 꿈꾸었다는 걸 기억하오?……
— 좋아요. 인간은 단 한순간도, 그 한순간의 자기 자신이 진실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최면에 걸리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추악함에도, 고결함에도 최면에 걸릴 수 있어요 — 최면술사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 의해. 늑대들은 힘의 평등에 서로 종속되어 있죠.
나는 그걸 생각했어요 — 그리고 내가 여자가 될 때가 되었다고 결정한 그날, 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나는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내 관심 속에는 내 체험과 나 자신이 놓여 있었죠. 나는 남자들을 골랐어요, 서로 다른 남자들을, 모든 것을 알아보려고. 나는 오직 나 자신과 나 자신으로만 책임져요. 왜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비도덕적이죠? 나는 당신들, 남편들에게서 어떤 의무도 필요 없고, 밤 슬리퍼도 필요 없어요. 나는 그런 생각 없이 임신했어요. 그리고 나는 낳을 거예요, 늑대들이 낳듯이. 당신은 어떤 민족적 러시아가 있다고 생각하죠? — 그런 것은 없어요. 나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 낳는 것이, 젖을 먹이는 것이 이런 행복일 줄 몰랐어요. 내 남편은 세계가 될 거예요 — 아침에 당신이 말한 깃발 뒤에 숨은 세계가 아니라요. 세계는 크지만, 내 안에 있는 듯한 그 아이보다는 작아요. 그리고 세계는 — 아주 크고, 삶은 — 아주 커요. 삶은 사방에 있고, 나는 그것을 잘 분간하지 못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아요. 혁명이 나를 그렇게 가르쳤어요 — 나는 삶을 믿고, 나는 평온해요. 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술을 마셔요. 나는 오직 나와 관계된 것만 이해해요. 나는 절대로 낙태하지 않을 거예요. 낳기로 한 내가 옳다고 말해 줘요.
—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디 있소? 우리는 어디 있소?! — 폴토라크가 외쳤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렸을 때, 시간은 비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 곁 의자 위에는 포도주 병이 놓여 있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제 잠옷 가운을 여미지 않았다.
— 들어오세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문턱에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가 섰다. 고무 우비를 입고 붉은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폴토라크를 바라보고,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에게 인사했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가 여기 묵고 있습니까?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마치 폴토라크가 방 안에 없는 것처럼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에게 물었다.
— 네, 여기 있습니다,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대답했다.
— 이 방에요?
— 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말을 더듬었다.
— 그리고 당신도 여기 묵고 계십니까? — 그녀가 속삭이듯 물었다.
— 네, 여기요. 나는 그의 정부입니다,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대답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문턱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그에게 무엇을 전해 드릴까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 죄송합니다…… 그에게 전해 주세요, 그의 약혼녀 류보비 폴레티카가 다녀갔다고. 다만…… 더는 아무것도요.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또 전해 주세요. 나는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고요. 부탁드립니다.
— 좋습니다, 전해 드리죠,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명랑하게 말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인사하고 나갔다. 폴토라크는 여전히 전보를 손에 든 채 능보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읽으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능보는 말이 없어졌다.
—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 당신의 약혼녀 류보비 폴레티카가 찾아와,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행복을 방해했다면 참 유감이군요. 나는 질투가 많지는 않지만, 작은 추잡함과 어리석은 상황은 좋아하지 않아요.
— 나는 가겠소, 나댜 — 돌아오지 않겠소. 전보를 받았소. — 폴토라크는 헛소리를 했다. — 나는 가겠소, 나댜, 돌아오지 않겠소.
— 아니, 왜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 당신이 말했잖아요, 이 능보가 늑대들이 깃발 뒤에 모인 곳이라고. 가세요, 가야 할 곳으로.
물장수들은 간판들의 거리를 따라, 제 짐수레와 늙은 말들로 콜롬나의 옛것과 밤을 실어 날랐다. 콜롬나는 객실들과 함께 넓은 솔기의 니콜라이식 죽어감으로 멀쩡히 있었다. 도시 위의 까마귀들, 마리나 므니셰크의 영혼들은 잠잠해졌다. 비가 쏟아졌다.
18
그리고 그 뒤로, 죽음의 그 저녁, 폴토라크에게는 모든 것이 헛것이 되었다. 마부가 콜롬나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의 집을 폴토라크에게로 끌어당겼다. 알코올 군함 뒤에서, 베즈데토프 형제의 어깨 위에서 나타난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셔우드의 눈으로 말했다 — “오늘 밤!” — 그리고 베즈데토프 형제는 벽이 되어 섰고, 살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오늘 한 시!” — 그 말들은 모스크바에서 셔우드가 단단한 눈으로 말한 말들, “결정됐소?” — “그래, 결정됐소!” 만큼이나 단단했다. 생산 회의에서 폴토라크는 인간관계의 지질이 어떻게 다시 세워지는지 보았다. 그의 일들은 죽어 가고 새 힘들이 태어나고 있었으며, 폴토라크는 무력감 속에서 노인에게 물었다 —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 바보 성자는 바보 성자다움과 순결과 양심과 기억에 대해 말했다 — 바보 성자다움으로 헛소리를 했고, 모스크바의 이반 야코블레비치에 대해 헛소리를 했다 — “고생 없이는 단물도 없느니.” 그래, 비열한 자는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바보 성자가 비열한 자는 아니다. 알코올 군함은 베즈데토프 형제가 조종했고, 그들은 주석 같은 눈으로 시간을 멈춰 세워, 십팔세기와 마호가니의 볼테르식 군함 속에 세워 두었다. 형제는 마호가니 속으로 자라 들어갔다. 창에서는 불빛을 향해 밤나방들이 날아들었고, 창밖 어둠 속에서는 비가 소리를 냈다. 폴토라크는 베즈데토프의 붉은 나무 불빛 위에 앉은 나방이 되었다. 노인은 폴토라크 둘레를 꼼지락거리며, 비둘기처럼 종종거리고, 바지 터진 틈으로 탈장을 받쳤다. 그의 눈은 여든다섯 해의 세월로 눈물에 젖어 있었고, 그 세월들은 썩은 핏물처럼 부어오르고 푸르죽죽하고 무섭고 역겨웠다. 폴토라크는 헛것 속에서 깨달았다. 자신이 실제 그대로의 자신으로,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야코프 카르포비치와 함께였을 때뿐이었다. 나데즈다의 큰 수의 법칙 바깥에서. 베즈데토프 형제는 주석 같은 눈으로 짓누르며 단단히 말했다 — “한밤 한 시, 골루트빈 부교 근처.” — 그때 창밖, 비 내리는 어둠에서 부랑자 오조고프가 나타났다. 명예를 잊지 않고 양심을 잃지 않은 바보 성자였다. 부랑자는 맞아 쫓겨나겠다는 협박을 받고 쫓겨났다. 부랑자는 겁먹은 듯 창밖으로 꺼져 갔다. 그 시각 폴토라크는, 죽이는 자들이 제삼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죽일 수 있고, 죽임당하는 자들도 자기 죽음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까? — 하지만 폴토라크는 그날 밤, 그의 마지막 밤에, 죽음이 피 없이 찾아올 수 있음을 아주 잘,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건설이 오직 피 위에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듯이.
폴토라크는 스쿠드린에게서 떠나 — 헛것 속으로, 밤에 타 버린 듯한 — 새벽 한 시 — 부교로 갔다. 거기서는 베즈데토프 형제의 주석 같은 눈이 헛소리를 하고 있었고, 셔우드의 눈만큼이나 무거웠다. 눈들은 풀밭의 사막에서 바라보았고, 하늘의 불기둥과 비명과 공포와 물의 살랑거림에 주석 같은 평온으로 맞닿아 있었다. 둘레에는 — 무력, 아나톨 쿠라긴의 입맞춤, 무혈, 무가정, 죽음, 공허, 황폐, 두려움 — 피 없는 죽음이 둘러섰다. 폴토라크는 한 시를 향해 자신을 모았다. 폴토라크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변두리로, 모스크바강 기슭으로, 마린킨 탑을 지나, 크렘린 아래를 걸었다. 크렘린의 내리막길로 폴토라크는 풀밭으로 나갔다. 모든 것이 부서졌고, 내일은 유년처럼 멀어졌다. 밤은 검었다.
앞쪽에서는 건설 현장의 불빛들이 타올라, 풀밭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일 년 뒤면 물에 잠길 풀밭에서 평화로운 뜸부기들이 울었다. 베라, 나데즈다, 류보비 — 폴토라크의 아내 이름은 소피야였다 — 폴토라크는 죽임당하는 바보 성자의 무리를 헛소리처럼 되뇌었다. 믿음, 희망, 사랑, 지혜 — 헛것,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피 위에 있다 — 그런데 이제 무혈이 찾아왔다. 베라는 피 없는 죽음으로 죽었다. 나데즈다는 말했다 — 자신이 언제 진짜 자신인지 모른다고 — 그리고 폴토라크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무엇이든 허락된 여자가 되고 싶었다고 — 왜? — 폴토라크는 스쿠드린과 함께 있을 때 진짜였다. 류보비는 떠나겠다고 말하러 왔다. 사디코바의 장례는 생산 회의와 한몸이 되었다. 몰이사냥의 깃발 뒤에 있는 늑대들은, 숲속 어두운 새벽에 깃발을 펼치고 나무 뒤의 고요 속에 사냥꾼들이 죽이기 위해 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죽음은 고함치는 몰이꾼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저 말없는 자들에게서 온다. 늑대들은, 깃발과 몰이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그 몰이꾼들이 외치고, 울부짖고, 야유하기 전까지는 평온하다 — 그러나 몰이꾼들이 울부짖고, 삶은 몰이꾼들 뒤, 깃발 뒤에 남았다 — 자연스럽고 보통의 삶이. 베라, 나데즈다, 류보비! 밤은 어둠으로 헛소리를 했다. 폴토라크는 풀밭을 달렸다. 앞쪽에서 굴착기들이 건설 현장의 불빛이라는 헛것 속에서 쉭쉭거리고, 쌕쌕대고, 울부짖고, 흐느끼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굴착기들은 공포에 사레들렸다. 폴토라크는 쓰러졌다.
일 년 뒤 이 풀밭은 물에 잠길 것이다.
19
그날 밤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는 풀밭에서 폴토라크 기사와 만났고, 이야기는 이 만남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폴토라크와 헤어진 뒤, 자기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이반은 강 건너, 곤차리와 미탸예보 아래의 어두운 풀밭을, 그 혼자만 아는 오솔길을 따라, 공장 장작더미 뒤로, 통나무들 사이로, 공장의 기선 도크 곁을 오래 걸었다. 이반은 흥분하여 중얼거리며 자기 자신과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 벽돌 공장으로 가고 있었다.
벽돌 공장은 음울한 울타리 뒤, 채석장 폐허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반은 사람 키보다 높이 쐐기풀이 우거진 구덩이들을 지나 울타리 틈으로 기어들어 갔다. 공장 가마 곁에서 이반 오조고프는 가마 아궁이로 통하는 지하로, 뜨거운 온기와 어두운 숨 막힘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덧문 틈에서는 붉은빛이 타올랐다. 숨 막힘 속에서는 연기와 타르와 씻지 않은 사람과 물고기 냄새가 났으니, 바다 배의 선원실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가마 아궁이 둘레의 지하실 진흙 위와 어둠 속에는 누더기들이, 머리카락이 펠트처럼 엉긴 자들이, 이반 오조고프의 공산주의자들이 굴러다녔다. 이들은 벽돌 공장 책임자들과 말 없는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 아무 협약 없이 공장 가마, 곧 벽돌을 굽는 불이 타는 그 가마를 때고, 아무 협약 없이 가마 곁에서 사는 사람들, 자기 시간을 전시공산주의 시대로 멈춰 세우고 이반 오조고프를 의장으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소성 가마는 이반 오조고프의 공산주의의 화덕이었다. 이 지하는 연기와 진흙과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동굴에는 전시공산주의 몇 해의 가정적 정착 장치가 있었으니, 밧줄에는 누더기가 말랐고, 구석의 짚은 침대이자 소파 노릇을 했으며, 짚 곁의 널빤지는 탁자를 뜻했다.
그 탁자 노릇을 하는 널빤지 곁 짚 위에는 셋이 누워 있었다. 쉬고 있는 누더기들, 소비에트 루시의 거지와 바보 성자들 — 오그네프, 포자로프, 포드조고프였다. 오그네프는 ‘항목’으로 화성 주민들과의 서신 왕래를 삼았으니, 인류는 지구에서 로켓을 쏘아 행성 간 기지를 세운 뒤 화성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포자로프(나자르 시소예프의 아들)는 오카강과 볼가강의 다 자란 물고기를 모조리 잡아 그 물고기로 셈을 치르며, 농민들을 위해 시골길마다 철교를 짓자고 제안했다. 각 구역에 잡힌 물고기 수만큼 다리를 짓자는 것이었다. 포드조고프는 콜롬나 군(郡) 일대의 전차망 계획을 만들고 날마다 고쳐 만들었다. 가마 불의 붉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불길하고 비범했으니, 이 누더기들의 삶 자체가 사실은 비범했기 때문이다. 오조고프는 오그네프 곁에 앉아, 사람들이 비를 맞고 나서 몸을 녹일 때 오한에 떠는 것처럼 부르르 떨고, 탁자 위에 돈을 올려놓았다.
— 울지는 않았나? — 오그네프가 물었다. — 망을 봤나?
— 안 울었다, — 오조고프가 대답했다. — 망봤다.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수염과 콧수염이 펠트처럼 엉긴, 찢어진 가난 차림의 둘이 더 지하의 진흙 속으로 기어 들어와, 윗옷을 불가에 걸고, 널빤지 위에 돈과 빵을 올려놓고, 몹시 지친 채 땅에 누웠다. 손아래는 곧 코를 골았다. 포드조고프와 포자로프도 자고 있었고, 역시 코를 골았다.
— 자네 차례야, 오그네프 동지, — 오조고프가 말했다. — 자네가 망보러 갈 차례야.
어두운 온기 속에 엎드려 누워, 화성이라는 환상으로 자신을 멈춰 세운 오그네프라는 사람이 낡은 신발을 신고 병사 외투를 걸친 뒤, 지하에서 위로 기어 올라갔다 — 비와 풀밭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머지는 잠들어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손위가, 내일 아침 건설 현장으로 갈 쇠보가 실린 거룻배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포자로프가 깨어나 모두를 둘러보고, 탁자에서 코페이카와 루블 지폐를 긁어모아, 옷도 입지 않고 맨발에 모자도 없이 지하에서 기어 나갔다. 부랑자들이 깨어나 컵들을 꺼내고 널빤지 둘레에 둥글게 앉았다. 포자로프는 곧 돌아왔다. 젖은 몸으로, 바지 허리띠에 체르케스카의 탄약통처럼 보드카 병들을 꽂고 있었다. 포드조고프 동지가 보드카를 따랐고, 그들은 잔을 맞댄 뒤 말없이 마셨다.
— 이제 내가 말하겠다, — 오조고프가 말했다. — 다시 십구년이 돌아오고 있다. 오늘 여자들이 명예와 정의를 위해 기도하듯 일어났다. 나는 오늘 폴레티카 교수와 이야기했다 — 알고 보니 그는 늙은 라슬로 여자의 첫 남편이었고, 폴토라크 기사는 내가 방금 풀밭에서 때렸다…… 다시 십구년이 오고 있다!…… 라이트 형제라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날기로 결심했고,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부딪혀 죽었다. 그들은 죽었다 — 나도 낙하산을 타고 날아 본 적이 있다 — 그러나 사람들은 라이트 형제의 일을 버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하늘을 붙잡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 새처럼, 독수리처럼 땅 위를 난다! 그리고 그들은 화성으로 날아갈 것이다, 오그네프 동지가 말하는 것처럼.
— 반드시 날아간다, 그리고 그런 행성 간 기지들이 생길 거야, — 어둠 속에서 한 젊은이가 외쳤다.
— 기다려라, 플라먀, 오그네프 대신 외치지 말고. 그가 망을 보고 돌아와 직접 말할 것이다, — 오조고프가 계속했다. — 나는 우리 도시에서 첫 집행위원회 의장이었다. 이십일년에, 우리를 당에서 쫓아냈을 때, 그때 모든 것이 끝났다. 진짜 공산주의자는 도시 전체에서 우리뿐이었는데,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곳은 지하뿐이다. 이제 십구년이 돌아오고 있다. 오늘 여자들이 시위를 했다. 나는 여기서 첫 공산주의자였고, 살아 있는 한 그대로 남을 것이다. 우리의 사상들이 다시 새로 오고 있다, 그 사상들이 어떤 사상이었던가…… 우리는 — 라이트 형제와 같다.
포드조고프 동지가 보드카를 두 번째로 따라 돌렸다. 그리고 포드조고프가 오조고프의 말을 끊었다.
— 이제 내가 말하겠다, 의장! — 그때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어떻게 싸웠는가!…… 나는 빨치산 부대를 지휘했다. 우리는 숲을 하루 걸었고, 밤을 걸었고, 또 하루를 걷고, 또 밤을 걸었다. 그때 나는 나라 전체를 전차로 뒤덮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런 행군이 없도록 말이다. 그러다 새벽에 우리는 들었다 — 기관총 소리를.
포드조고프의 말을 포자로프가 끊고 엄하게 외쳤다.
—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벤다는 건가? — 손가락은 어떻게 잡는지 보여 줘!
— 동지들, — 오조고프가 나직이 말했다. — 사상을 끝까지 말하게 해 주시오. 들으시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성탄도, 부활절도, 일요일도, 밤도 낮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스물네 시간, 일 년 내내 일할 것이고, 기계들도 멈추지 않고 스물네 시간, 일 년 내내 일할 것이다. 낮과 밤은 하나가 될 것이다. 밤은 전기로 태양보다 더 밝게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밤에도 낮처럼 살 것이다. 공장, 식당, 영화관, 전차, 사람들……
— 아니, 벨 때 손가락을 어떻게 잡느냐니까, 구부려? 아니면 펴? — 보여 줘!
— 날 위에. 펴서, — 포드조고프가 대답했다.
— 전부 날 위에 둔다고. 보여 줘 봐. 여기 칼에 대고 보여 줘. 자네는 물고기 머리도 못 쳐내겠군!
포드조고프는 빵을 자르던 구둣칼을 집어 들고, 엄지손가락을 날 위에 어떻게 올리는지 보여 주었다.
— 자네는 잘못 베고 있어! — 포자로프가 외쳤다. — 그러다 손가락을 날려 먹겠어, 그렇게는 물고기를 못 벤다고! 나는 칼을 그렇게 잡지 않아 — 면도칼처럼 베는 거야. 줘 봐, 내가 보여 주지! — 자네는 잘못 베고 있어!
— 동지들, — 오조고프가 말했고, 그의 얼굴은 광기의 아픔으로 일그러졌다. — 우리는 사상에 대해 말해야 한다. 위대한 사상에 대해, 베는 법이 아니라. 지금은 벨 줄 알아야 할 때가 아니라, 공작기계에서 일할 줄 알아야 할 때다 — 지금은 피 없는 혁명, 건설이 시작되었고, 피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때다. 우리는 칼과 피가 아니라 명예로 이겨야 한다!…… 나는 옛것을 생각하고, 새것을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는 셀 수도 없다.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선원이었고, 낙하산병이었고, 식자공이었고, 금속 선반공이었다 — 그리고 평생 나는 내가 선반공인지 식자공인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배워지고, 더 고결해질지 걱정했다. 우리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되어 있다. 사람 안에 더러운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되어 있다. 사람을 믿고 사람 안의 것을 믿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감시하고 믿지 않고, 그가 정직하면 놀라는 것처럼 되어 있다. 혁명은 명예 편에 섰다 — 이십일년에 나는 당에서 쫓겨났다 — 이제 십구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정의가. 우리는 정직하게 이겨야 한다, 노동과 정신으로, 칼과 피가 아니라!……
오조고프의 말을 네 번째 사람이 끊었다. 그가 외쳤다.
— 포자로프 동지! 자네는 제3사단에 있었고 나는 제2사단에 있었지 — 신키 마을 근처 도하를 자네들이 놓친 것 기억하나?!
— 우리가 놓쳤다고?! — 아니, 놓친 건 자네들이지, 우리가 아니야.
— 우리가 놓쳤다고?!
— 동지들! — 포드조고프가 외쳤다. — 그래서 새벽에 우리는 기관총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불쌍해졌고, 그들을 전투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때 이겼고, 백군 놈들을 몰아냈다. 하지만 저녁에 전투원을 세어 보니…… 의장이 옳은 말을 한다. 길을, 다리를, 공장을, 사회주의와 사상을 건설해야 한다!……
— 사상에 대해 들으시오, 동지들!…… 나는 배우였소, 유랑극장에서 — 더 나쁜 데는 없지 —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도 고결함의 배역을 연기했고, 모두 고결한 사람들을 아주 사랑했소……
20
깊은 한밤중이 지나, 가마 곁 지하실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자기들의 명예를 벽돌 공장의 가마 곁 지하실에 보존할 권리를 찾아낸 이 누더기들은, 서로 한 사람의 머리가 다른 사람의 무릎 위에 놓인 채, 제 누더기를 덮고 한덩어리로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깨어 있던 것은 그들의 의장 이반 오조고프였다. 그는 오랫동안 가마 아궁이 곁에 배를 깔고 누워, 종잇조각을 땅 위에 놓고 있었다. 그는 연필을 침으로 적시고 깨물며 시를 쓰려 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 동지와 그분의 부친 교수 동지께” — 그는 이렇게 썼다. — “우리는 세계를 이겼다” — 그는 이렇게 쓰고 지웠다. — “우리는 세계의 불을 붙였다” — 그는 이렇게 쓰고 지웠다. — “피 묻은 손을 데우는 당신들” — 그는 이렇게 쓰고 지웠다. — “똑똑하고 정직해야 한다” — 그는 이렇게 썼다.
말이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선을 그어 지운 종잇장 위에 머리를 떨군 채 누워 있었다. 그의 둘레에서는 전시공산주의 징집과 천구백이십일년 해산의 공산주의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멈춰 선 사상의 사람들, 미치광이와 술꾼들, 자기 지하실과, 거룻배를 부리고 장작을 톱질하는 자기 노동 속에서 가장 엄격한 형제애, 가장 엄격한 공산주의를 만들어 낸 사람들. 그들은 제 것이라고는 돈도, 물건도, 아내도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 하기야 아내들은 그들의 꿈과 광기와 술 때문에 스스로 떠나갔지만. 이제 이 사람들은 건설 현장에 일하러 갔고, 건설의 사상이 — 자기들의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지하실은 몹시 숨 막히고, 몹시 따뜻하고, 몹시 가난했다.
이반 오조고프는 오래도록 땅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러고는 흥분한 채 땅에서 일어나 동지들을 깨웠다 — 그들은 땅 위에서 천천히 긁적이며 뒤척였다.
— 동지들! — 이반이 외쳤다. — 나는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고 여자들에 대해 생각했소. 동지들, 여러분도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나는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여자 막사에 가 본 적이 있소. 그 막사에는 여자 일흔한 명이 살고 있소. 보고 있자니 — 단번에 알겠더군, 거기에는 일흔한 개의 슬픔이 살고 있다는 것을. 거기 아낙들은 이렇게 나뉘오. 결혼한 여자는 하나도 없소 — 서른 넘은 여자들은 모두 이혼녀이거나 과부이고, 서른 아래 여자들은 — 아아, 동지들, 그 입술에 연지를 발랐더군! — 물론 스물둘쯤까지의 젊은 여자들은 빼겠소, 그들에게는 미래가 있으니까. 아이들은 탁자 밑과 침상 밑을 기어다니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흔한 개의 슬픔을 바라보면, 그들이 운명에 굴복했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게 보인다는 것이오. 우리 건설 현장에는 여자가 많소. 하지만 남자보다는 적소. 그런데 사내들이, 생각해 보시오, 더듬고 희롱하오. 우리 노동자들은 대개 계절노동자요, 목수, 흙일꾼, 굴토공, 석공이지 — 아르텔을 이루어 사는데, 계산해 보면 아르텔의 취사부는 취사부일 뿐 아니라 아르텔의 아내이기도 하오. 그렇게 고용되는 것이고, 아니면 쫓겨나지. 기술자들, 때로는 십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십장보다 위인 현장감독들까지도 영화관으로, 붉은 구석으로, 체육장으로 부르오 — 그리고 나면 처녀가 뛰어다니며 울지. 아이를 배게 되었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인간이 짓밟혔기 때문에, 자기 안의 인간이 버려졌기 때문에 우는 것이오. — 부랑자 오조고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 생각해 보시오. 굴토공 셋이 처녀를 강간했소 — 아마 그 막사에서는 얼마나 들썩였겠소, 틀림없이 모두가 함께 그 처녀를 두고 울었을 것이오. 여자들은 라슬로 기사를 용서하지 않았소. 여자의 몫은 어렵소. 여자는 더 빨리 늙고, 힘은 더 적고, 아이들은 그 손에 남는데, 임금 등급은 같소. 여자들은 우리 사내들보다 낫소. 그리고 사무실 처녀들을 심판해서도 안 되오. 그 여자도 살고 싶고, 입술에 연지를 바르면 골루트빈 역으로 저녁 먹으러 데려가 주겠지 — 그런데 치마 밑으로는 모든 여자에게 똑같이 아이를 불어넣는 것이오. — 그래, 막사에 들어가 단번에 일흔한 개의 슬픔을 보았고, 그 슬픔과 비탄이 모두 같다는 것을 보았소. 내가 여자들에게 한마디 했더니, 그들이 울었소.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어선 것은 옳았소.
부랑자 이반은 생각에 잠겨 머리를 무릎 위로 떨군 채 입을 다물었다. 그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누구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둘이 비가 오는 바깥으로 나가, 위에서 장작을 더 얹고 가마를 채웠다. 지하실은 다시 숨 막히는 잠 속에서 코를 골았다.
그때 부랑자 이반은 지하실에서 기어 나왔다. 동트기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었고, 비는 성겨졌으며, 날은 차가워지고 안개가 피어올랐다. 부랑자는 천구백십구년 이후 다시 세워지지 못한 집들의 폐허를 지나 도시 변두리를 걸었다 — 자기 목욕간으로 가는 길이었다. 풀이 우거진 마당은 어둠과 침묵 속에 있었고, 류보비 피메노브나와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방 창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개 아랍이 마중 나와 다리께에 몸을 비비고, 손을 핥고, 앞장서 목욕간으로 가 문을 열고 침대로 뛰어올라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친구를 제 곁으로 불렀다. 부랑자는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창가에 잠시 서 있었다. 커튼은 희고 막막하게 빛났다 — 부랑자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고는 개를 따라 목욕간으로 들어가, 개 곁에 누워 그 개를 끌어안고, 잠들기 전 한숨을 몇 번 쉬다가 잠들었다. 개는 오조고프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오래도록 고요와 친구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갈색 눈은 주의 깊었다. 그러고는 귀를 내리고 눈을 감더니, 그도 잠들었다.
이 둘은 친구였다 — 부랑자와 아랍, 충성으로 시험받고 서로 사랑하는 친구. 거리에서는 평범한 잡종개처럼 보이는 그 개도, 부랑자와 함께 있을 때는 사람처럼, 친구처럼 영리했고, 노예가 아니었다. 아랍은 부랑자가 옳을 때면 부랑자에게 양보했다. 개는 친구에게 성냥과 마호르카를 물어다 주었고, 부랑자가 취해 있을 때면 문을 닫았다. 부랑자가 바닥에서 잠들려 할 때면, 개는 그를 흔들어 깨워 침대로 올라가도록 도왔다. 부랑자가 즐거우면 개도 즐거웠고, 부랑자가 슬픈 시간에는 개도 슬퍼했다. 개는 탁자 위의 빵을 결코 다 먹지 않고, 절반은 친구에게 남겨 두었다. 그리고 부랑자도 집에서 보드카를 마실 때면 결코 혼자 마시지 않았고, 아랍에게도 먹였다. 크게 취하는 날이면, 술 취한 부랑자와 아랍은 뜨거운 대화와 눈물 속에서 입을 맞추었다. 아랍은 부랑자 곁에서 늘 자랑스러워했다 — 그리고 부랑자가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문턱에서 그리워하며 울부짖었다.
아랍의 삶은 거리로 난 쪽문까지로 한정되어 있었고, 혁명가이자 탐구자이며 인간인 이반 카르포비치의 삶보다 훨씬 단순하고 짧았다. 그러나 이반의 삶은 컸다. 그것은 미샤 소년의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사십 년 전에 생겨났다. 이반 소년의 첫 기억은 공장의 기적 소리였고, 그 뒤로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복잡하고, 몹시 알록달록하고, 몹시 흥미로운 삶이 이어졌다. 러시아 농민과 러시아 귀족이 자기들 이전에 만들어진 전통과 생활양식 속에서 살며 그 생활양식을 확인하는 존재였던 반면, 십구세기 말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는 언제나 그 생활양식을 부숴야 했고, 그들 가운데 더 나은 다수는 더 나은 것과 명예를 위하여 그것을 부수어야 했다. 이반이 태어났을 때, 손위 형 야코프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겼고, 아버지는 쉰을 넘긴 사람이었다. 훗날 이반은 자기 아버지가 콜롬나 기계공장 노동자 식당에서 빵을 자르고 크바스를 빚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기억은 단편적이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공장 건물들, 레일, 야윈 나무들, 그리고 자기 자신 — 바지도 없이, 겨드랑이 아래를 졸라맨 붉은 셔츠 하나만 입은 작은 사내아이 — 그리고 천둥 같고, 팽팽하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리며 평생을 규정한 공장의 기적 소리. 이반은 기억했다. 그는 달렸으나 다리가 엉켰고, 그 기적 소리에서는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다. 한 인간의 탄생은 이 공장 기적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 그리고 한 인간, 바로 인간의 탄생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선한, 바로 선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그리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조금 자란 뒤, 이반은 이런 일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크바스 통에서 크바스가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 며칠 전에는 관급 양가죽 외투 하나가 사라졌다. 크바스 통은 가득 차 있었으므로, 장대로 그 안을 휘저어 보았더니, 크바스에 푹 불은 양가죽 외투가 거기서 나왔다. 그때부터 이반 소년은 제 삶을 이어진 기억으로 떠올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거지 같은 골방에서부터, 그리고 아버지의 세 번째 아내이자 그의 어머니가 서게 된 직기들에서부터. 아버지는 양가죽 외투와 크바스를 망친 일 때문에 콜롬나 공장에서 쫓겨났다. 직조 작업장의 하루는 흐릿한 작은 등불로 시작되었고, 그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직기 위에 세워진 선반 침상에서 기어 내려왔다 — 그 선반 침상 위에서 많은 어머니와 많은 아버지와 아이들이 살며 태어나고 죽었다. 그곳, 그 선반 침상 위에서 이반 소년은 차르의 종과 차르의 대포에 대해, 강도 추르킨에 대해, 여름을 겨울로 만들고 수하레프 탑에서 별을 헤아렸다는 마법사 브루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반의 아버지도 바로 그곳에서 죽었다 — 그때 가난은 끝났고 진짜 삶이 생겨났다.
이반 소년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반 침상 위에서 수군거리던 일을 기억했다. 아래, 선반 침상 밑의 식당 탁자 곁에서 —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영원히 기억에 새겨진 장면이었다 —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험하게 외쳤다. — “왜 말이 없어? 소란 피울 때는 선수더니, 이제는 말이 없네? 갈 거야?!” —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아들의 셔츠를 바로잡아 주고, 다정하게 말했다. — “바뉴샤, 내 귀한 것아, 아버지하고 너희는 동냥 조각을 구하러 가거라. 내가 너희에게 자루도 마련해 두었다. 어린것에게는 잘들 준다더라.” — 이 동냥살이 속에서 이반은 처음으로 명예라는 개념을 익혔다. 이반은 마당개들을 지나 어느 사나운 지주의 창 밑으로 갔다. 거친 지주는 실내복 차림으로 보드카를 마시며 이반에게 은 오 코페이카를 던져 주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개들보다 더 사납게 이반에게 달려들어, 명예에 관한 말을 하며, 이반의 아버지를 못된 놈이라고 부른 데 이반이 모욕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여 이반을 개자식이라 욕했다 — 이반은 동전들을 거친 노인의 얼굴에 던졌다. 바로 그때 이반은 처음으로 지친 이들을 도왔다. 그는 오두막에 들어갔고, 거기에는 건장하지만 놀고 있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반이 동냥을 청하자,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줄 것이 없고, 어쩌면 그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자기들은 공장에서 쫓겨나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이반은 그들에게 무르초프카를 대접했다.
아버지는 선반 침상 위에서 죽었다. 이반은 아버지의 장례를 보지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뒤 선반 침상과 직기들이 사라졌고, ‘옛 우체국’이라 불리던 새 거처의 다락에는 종이 묶음들, 보내지지 않은 편지들, 잊힌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 그때 이반은 처음으로 인간의 문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반이 처음 읽은 책이자 그 책으로 글을 배운 책은 — 『병사 야시카, 놋쇠 버클』이었다. 옛 우체국의 다락과 다락의 안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뒤 짧은 한동안 하루들은 포효와 고함 속에서 생겨났다. 새벽녘 여자 침실 앞을 걸어 다니던 무서운 사람들의, 그러니까 공장 막사를 그렇게 침실이라 불렀는데, 그 문을 두들겨 패며 여공들이 기적 소리에 맞춰 일어나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의 포효와 고함 속에서. 그때 짧은 한동안 따뜻한 물이 있었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배수, 더없이 더럽지만 따뜻한 물이 흘러드는 곳이었고, 거기서 사내아이들은 목욕을 하고 노인들은 병을 고쳤다. 그리고 그때 삶이 시작되었다. 이반 스쿠드린의 어린 시절의 러시아는 현대 중국을 닮았다.
그때 삶이, 인간의 창조가 시작되었다 — 이반은 구두장이 견습, 인쇄소 견습, 선반 작업장 견습을 거쳤고, 오몽 극장의 엑스트라였으며, 유랑극장 배우였고, 낙하산을 타고 날았고, 시를 지었으며, 제 빈약한 여가를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에게 바친 사람이었다 — 낙하산병으로 그는 기구에서 땅으로 뛰어내렸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군대에서 콜롬나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글을 아는 노동자였고 — 물론 정직한 사람이었다. 사회주의자, 볼셰비키가 — 정직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공장에서 보낸 첫해가 이반을 사회주의적 혁명 전 대학으로 보냈다 — 곧 유배로. 그 유배는 이반에게서 여섯 해를 빼앗았고, 그 시간 동안 이반은 자기에게 아주 많은 것을 결정했다. 자기의 일과 품행과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가, 세계를 인간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을. 이반 존재의 의미는 인류를 조직하는 데 있었다. 그의 첫 기억이었던 공장의 기적 소리는 그에게 세계를 영원히 기계로 맞물린 것으로 규정했다.
이반 스쿠드린은 자신의 등골로 낡은 러시아를 알았고, 그것을 저주했다. 그는 지난 삼십오 년 러시아 노동운동의 역사를 자신의 등골로 알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 그리고 이반은 단단히 알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품격에 대한 봉건적 멸시, 노동에 대한 몽매한 태도가 지배하던 낡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가 태어난 것은, 온갖 요새에서 밀려 나오며, 무엇보다 먼저, 결정적으로, 명예 위에,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 노동에 대한 결정적 존중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이반의 운명은 사회주의의 발생, 명예의 발생 그 자체였다. 그것은 봉건제와 몽매주의와 천박한 착취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 위에 세워진 명예였고, 거짓과 배신과 도발과 몽매와 무지에 영원히 맞서는 지식 위에 굳어진 명예였다. 이반은 무엇보다 높은 것이 인간과 인간적인 것임을 알았다. 집에서, 가족 안에서, 아내와 함께할 때에도, 노동과 말에서도 그러했다. 노동과 말에 대한 배신은 그것들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여자를 배신하는 것 역시 그 여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과 꼭 같기 때문이었다. 이반 카르포비치는 콜롬나 기계공장의 기관차 작업장에서 혁명을 맞았다 — 실제로 그는 10월 이후 콜롬나 집행위원회의 첫 의장이었고, 콜롬나의 10월을 건설했다 — 그는 혁명을 이해했고, 영원히 이렇게 이해했다. 그것은 루블에 대한 권리를 다시 나누는 것만이 아니었다. 루블이 노동의 한 조각이라면, 혁명은 인간의 명예와, 사랑과 삶에 대한 권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기도 했고 — 인간관계와 인간 자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기도 했다.
바깥사람이라면, 미샤가 그토록 즐겨 찾고 류보비 폴레티카가 문턱에 자주 앉아 있던 부랑자의 목욕간을 역겨워했을 것이다. 이곳은 한낮에도 어둡고 축축했다. 초록 곰팡이가 작은 창들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이곳에서는 사람 냄새보다 개 냄새가 더 났고, 침대도 사람의 잠자리라기보다 개의 보금자리 노릇을 더 많이 했다. 선반 위에는 부랑자의 책상이 있었고, 침대 옆 탁자에는 마호르카가 흩어져 있는 가운데 아랍이 다 먹지 않고 이반 카르포비치에게 남겨 둔 빵이 놓여 있었다. 목욕간은 부랑자 이반이 — 미치광이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 시각 부랑자와 아랍은 서로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고, 아랍은 부랑자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있었다. 마당 건너 큰집에서는 류보비 폴레티카의 창이 빛나고 있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잠들지 못한 채 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여러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다리를 꼰 채, 깍지 낀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을 감싸고, 머리와 어깨를 떨군 채, 멈춰 선 눈으로 여러 시간 내내 깜박이지 않았다. 그 눈은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비통했다. 등불의 빛이 그녀의 맑은 이마와 반듯한 가르마 위로 떨어졌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방에서는 그 시각 탁자 곁에 — 그녀,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와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가 앉아 있었다. 그 시각 폴토라크 기사와 라슬로 기사는 풀밭에서 죽어 가고 있었고, 그들 위로 늙은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이 몸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시각 사디코프 기사는 일하러 가기 위해 깨어나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찬 우유를 마시고 찬물로 몸을 끼얹고, 장화로 마룻바닥을 쿵쿵 울리며, 자기 작업수첩을 들여다보았다 — 그리고 사디코프 기사는 행복했다.
21
건설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공사의 설계는 폴레티카 교수의 것이었다. 실시 설계는 사디코프 기사와 라슬로 기사가 맡았다. 오카강과 모스크바강과 클랴지마강의 종단면, 그 탈베크와 하상, 지질 기반, 활단면, 유량, 유황, 그 힘 — 강에 관한 지식이 주는 모든 것이 계산되었다. 모스크바강의 종단면, 모스크바시와 콜롬나시 부근의 그 수위는 겨우 칠 미터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곧 모스크바시 아래의 모스크바강은 콜롬나 아래의 모스크바강보다 — 해수면을 기준으로 — 칠 미터 높았다. 그러므로 콜롬나 아래에서 둑으로 모스크바강을 단 팔 미터만 떠받쳐도, 모스크바강의 물은 거꾸로 흐를 것이었다. 콜롬나 아래의 둑 — 모놀리트 — 은 오카강과 모스크바강이 합류하는 지점 아래에 이십오 미터 높이로 세워지고 있었다. 오카의 물이 모스크바강의 물을 거슬러 몰아붙여, 모스크바강의 탈베크를 따라 흐르게 하려는 계산이었다. 모스크바 아래, 베레야 마을 근처에서는 운하가 뚫리고 있었다. 운하는 페호르카와 말라시카 개울의 탈베크를 따라, 모스크바강 수계와 클랴지마강 수계의 분수령이 되는 — 따라서 새 운하의 수위 구간이 되는 — 메드베지예 호수를 지나갔다. 운하는 공장 마을 셸코보 근처에서 클랴지마강에 닿았다. 이 운하로 오카강과 모스크바강의 물이 클랴지마강으로 흘러들어, 그다음에는 클랴지마강의 탈베크를 따라 흐르게 되는 것이었다. 오카는 제 물길을 바꾸었다. 모스크바강은 거꾸로 흘렀다. 오카는 모스크바 아래를 흘렀다 — 모스크바시 아래로는, 최신 수력공학이 만들어 낸 크고 항행 가능한 새 강이 흘렀다.
모스크바시는 새 강 위에 놓이게 되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유럽 최초로, 인간이 만든 강 위에 놓이는 도시가 된 것이다.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바쿠에서 증기선이 올라올 수 있고, 볼가-돈 운하가 완성되면 세계 어느 구석에서도 배가 올 수 있었다. 볼가와 카스피해용 톤수와 형식의 증기선뿐 아니라, 모든 해상 상선까지도 말이다. 연방의 남동부 전역에서 나는 화물은 환적 없이 모스크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와 모스크바 사이의 수로 거리는 팔백칠십 킬로미터 줄어들었다. 예전 길의 칠 분의 사가 넘게 줄어드는 셈이었다. 예전 길은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실어야 했고, 러시아 초원을 빙 돌아 콜롬나에서 랴잔으로, 다시 탐보프현으로, 옐라트마를 지나갔다. 그러나 이제 길은 거의 직선으로, 대러시아의 가장 산업적인 지대를 지나갔다 — 보고로드스크, 오레호보-주예보, 블라디미르, 코브로프를 지나서. 모스크바 아래에서는 카잔 철도, 무롬 철도, 니즈니노브고로드 철도, 셸코보 철도가 운하를 가로질렀고, 모스크바의 프레오브라젠스카야, 세묘놉스카야, 레포르토프스카야, 로고시스카야 관문 뒤에서 운하까지 이어지는 수십 제곱킬로미터의 땅이 공장과 제조소와 산업에 내주어졌다. 주택과 박물관과 공원의 모스크바는 도로고밀로프스카야, 프레스넨스카야, 트베르스카야, 부티르스카야 관문 너머로 밀어내려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새 강의 새 하상을 계산하기 위해, 모스크바 땅의 속을 실루리아기와 데본기 지층까지, 대륙암까지 시굴하고 시추했다. 새 강은 오래된 모스크바, 랴잔, 블라디미르 땅의 지리를, 강들의 수문학을, 기후를 다시 세우고 있었다 — 바로 그럼으로써 인간관계를 사회주의로 다시 세우고 있었다. 옛 도시 로스치슬라블 아래, 콜롬나 아래, 브론니치 아래에는 새 강의 저수지인 거대한 호수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콜롬나는 절반이 물에 잠겨 반도 위에 놓이게 되었다. 수십 개의 촌락과 마을이 제 오래된 자리에서 떠나갔다. 이 호수들은 물을 비축하여, 모스크바 아래의 물이 홍수기와 갈수기 사이에서 요동칠 수 없게 하는 새 강의 유황을 만들어 냈다. 이 호수들 둘레의 땅은 새로 세워질 산업, 채소 재배, 기술적 농업에 내주어졌다. 이 호수들은 모스크바에 물을 먹였다. 모스크바 아래에서는 바다 배들이 웅웅거렸다. 바다 배들은 콜롬나를 지나 카시라까지 올라가며, 돈바스에서, 마르세유에서, 카스피해에서, 우랄에서, 베틀루가에서 오는 원료와 반제품, 금속, 광석, 목재, 광물 연료를 싣고 블라디미르와 셸코보를 지나갔다. 화강암으로 묶인 모스크바 아래 운하 위로는 기중기가 드리워지고 철도 다리가 걸렸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 바뀌었다. 인간과 인간 노동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에서 요구하는 그대로, 지리는 경제를 바꾸었고, 노동은 지질을 다시 세웠다. 폴레티카, 사디코프, 라슬로 기사와 그들의 조수 기사 수백 명, 러시아인과 외국인들은, 실루리아기의 암석과 오카가 흘러나오는 늪 같은 작은 호수에서 출발하여, 강의 움직임을 이루는 중력의 법칙만이 아니라, 지하수의 움직임에 관한 계산, 토지의 늪화와 배수에 관한 계산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계산해야 했다 — 새 강가에 설 작은 공장과 제조소들까지, 석유와 석탄과 광석과 금속과 목재의 새로운 푸드-킬로미터까지. 이 공사와 이 계산은 노동의 수억, 수십억, 수백억 인시(人時)를 해방하고, 인간 노동과 인간 시간을 해방하고 조율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사회주의 건설은 바로 그것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스크바강 — 모스크바 국가가, 러시아의 분국 시대와 루시의 수집, 차르와 동란과 황제들의 역사가 생겨난 바로 그 모스크바강 — 이제 그 모스크바강은 거꾸로 흘렀다. 그것은 새로운 러시아의 의지의 상징이었다. 10월의 러시아는 인간에서부터 지리와 지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세우고, 새로 다시 창조하고자 했다. 이 러시아는 기계를 통해, 노동을 위해, 인간이 서로 맺는 관계와 노동에 대한 관계와 자연에 대한 관계를 다시 창조했다. 그리고 모스크바강의 흐름이 부서지고 오카가 새로 흐르게 된 것처럼, 낡은 러시아를 부수었다. 강의 흐름의 법칙을 아는 기사들, 거기에는 우연이 있을 수 없음을 아는 기사들은, 데본기 지층과 루블에 동시에 기대고 있는 자기들의 공사가 강의 흐름의 법칙만큼이나 합법칙적임을 알고 있었다. 오카와 모스크바강은 이 봄에 마지막으로, 수천 년 동안 범람해 온 바로 그 지질학적 물길을 따라 범람했다. 인간의 수명은 인간 유기체에 관한 과학만으로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함으로써도 길어질 수 있다. 새 강은 인간 생명의 연장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사디코프 기사와 라슬로 기사는 콜롬나 아래 모놀리트 공사에서 일했다. 모놀리트 공사는 끝나 가고 있었다 — 물을 떠받치고, 멈추게 하고, 뒤집어 새 물길로, 사회주의 건설로 던져 넣으며 그 힘들을 다시 복종시킬 바로 그 모놀리트 말이다. 이 화강암-콘크리트의 거대한 덩어리에는, 수백만 톤의 물 무게가 이 모놀리트에 들이받을 그 힘에 맞먹을 만큼의 기사들의 두뇌가 가장 많이 부어졌다. 모놀리트 공사는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의 사령부였다. 모놀리트는 원초의 자연이 만들어지듯 세워졌다. 오카강과 모스크바강은 흙일꾼들과 흙펌프와 무한궤도의 단일 버킷 굴착기들이 파낸 우회 운하로 제 물길에서 밀려났다. 물은 이미 이 년째 우회 운하를 따라 흐르고 있었으니, 모놀리트가 세워질 자리를 비워 주기 위해서였다. 모놀리트의 바닥은 대륙 화강암과 납땜되듯, 한 몸으로 붙어 갔다. 그 대륙 화강암에 닿기 위해서는 하상 아래로 사십 미터, 쥐라기와 페름기의 퇴적층 아래까지 파내려가야 했다. 그곳에서 대륙의 화강암과 인간 의지가 가져온 화강암은 지질 속으로, 원초성 속으로 하나가 되어 붙었다. 이 화강암과 콘크리트의 덩어리들은 적분 계산의 공식으로 쪼개지고 계산되었다.
모놀리트 내부, 지하에는 중세 요새의 통로 같은 길들이 뻗어 있었다. 배수로, 어둠, 전등, 둔탁하게 울리는 물소리, 대지의 심부, 점검 터널, 검사실들이 있었다. 모놀리트를 물에서 지키는 가물막이의 목재 구조물은 주철 시트파일을 고슴도치처럼 곤두세웠다. 모놀리트 주위의 풀밭에서, 가물막이 곁에서, 우회 운하 곁에서, 보조 공장 곁에서, 새 강의 새 하상 곁에서 만 명의 노동자, 하나의 군대 전체가 일하고 있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부수고 다시 세우기 위해, 그것에 싸움을 걸고 승리한 뒤, 여기에 기술자 셋과 기사 하나, 그리고 노동자 스무 명 남짓만 남겨 두고 떠나기 위해서였다. 모놀리트는 슈로보 언덕에서부터 오카를 건너 콘스탄티놉스카야 마을까지, 몇 킬로미터를 가르며 뻗어 있었다. 콘스탄티놉스카야는 세르기옙스카야, 파르펜티예보, 아메레보, 차이키, 보브레네보, 그리고 콜롬나의 절반과 함께 제 오래된 자리에서 떠나갈 마을이었다. 그 자리들은 물에 잠길 것이기 때문이다.
모놀리트 공사는 끝나 가고 있었다.
기사들은 새 강의 하상과 그 노선과 종단면을, 콜롬나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니즈니노브고로드까지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수확기의 날들이 다가왔다. 오카와 모스크바강으로 흘러드는 오룔현, 툴라현, 칼루가현, 랴잔현, 모스크바현의 강과 개천들 — 크로마, 누그라, 주샤, 플라바, 우파, 지즈드라, 우그라 강 — 에서는 모든 보와 방앗간 둑을 열어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예비로 저장된 모든 물이 모놀리트 뒤로 흘러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닫고, 멈추고, 물을 붙잡아 두어, 모놀리트 아래 오카와 모스크바강의 하상을 일찍이 없던 갈수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수확기처럼 한 시간 한 시간이 귀한 이 날들에, 우회 운하의 마지막 화강암들을 원초성 속에 납땜해 넣고, 모놀리트를 수세기 동안 봉하고 닫은 뒤, 가물막이를 걷어 내고 물을 새로 던져 넣기 위해서였다.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는 모놀리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려고 공사장에 왔다. 그는 모놀리트가 어떻게 터질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물이 반죽처럼 콘크리트와 쇠를 뒤집어엎고, 그 뒤에는 급행열차의 속도로, 마천루 같은 파도가 되어 길 위의 모든 것을 쓸어 없애며 나아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물의 힘을 알았다. 모든 수력공학 기사들이 그러하듯 그는 그 힘을 조금은 두려워했다. 그는 오카를 붙잡아 두던, 러시아 동화 같은, 물귀신이 사는 소와 방앗간이 딸린, 오룔과 툴라와 칼루가와 모스크바의 수백 개 개울과 강을 볼 줄 알았다. 이제 그 개울과 강들은 모놀리트에 의해 멈춰 서서, 사회주의를 세우고 있는 이 텁수룩한 노인의 의지와 모놀리트에 제 물을 밀어붙이게 될 것이었다. 교수는 모놀리트와 그 아래의 굴착 구덩이들을 음울하게 살펴보았다.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이 꿈틀거렸고 기계들이 으르렁거렸다. 굴착 구덩이는 세기처럼 강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의 책장들은 — 책의 책장들과 같다. 인간 세월의 책장들은 책들과 같다. 책 하나하나가 인간의 경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 천재의 경련, 인간 사유의 경련, 죽음의 법칙을 어기고, 화장장의 경련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경련.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때로 밤중에, 제 서재에서, 책장 위의 책들을 마주하고 — 바라든 바라지 않든 — 이 책들 앞에서 몸서리쳐야 한다. 책 하나하나가 인간의 참된 삶을 흉내 낸 가짜임을, 책 하나하나가 죽음을 속이는 사유의 경련임을 느끼고 몸서리쳐야 한다. 밤, 책장 위의 책들이 거대한 턱처럼 내려다보고, 노이마이어의 『지구의 역사』가 잇몸 속 금빛 송곳니를 번쩍일 때 — 머리가 지치고 밤에 지나치게 재어져 버렸을 때 — 사람은 몸서리치며 깨닫게 된다. 이 방과 이 책들이란, 오늘 마리야를 묘지로 실어 간 영안실의 죽은 자들이며, 이곳에 묻힌 것은 자기의 삶과 죽은 생각들,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진 생각들, 화장장 속의 그것과 같은 경련이라는 것을. 저 책장에서 요한 볼프강 괴테의 사상과,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베르테르의 형상이 기어 내려온다. 레싱, 헤겔, 뷔히너 — 울란트, 빌란트, 슈필하겐 —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젊은 날의 친구들, 젊은 날의 죄들. 카를 모어는 하이네의 조롱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시대 이전에, 10월 이전에 남겨졌으나, 관성으로 책 상자 속에 담겨 마을들 사이를 기어 다닌다. 마르크스, 라살, 레닌, 플레하노프 —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와 러시아와 세계의 노동운동 발전사는 이제 시대들이 되었다. 그리고 노동의 책들, 건설의 책들 — 알렉세예프, 아쿨로프, 칸디바, 두바흐, 즈브로제크, 제라르동, 사회학자가 아니라 기사였던 엥겔스 — 공학, 건설, 노동. 레닌은 죽었으나 그의 책들은 자라고 또 자란다. 집 뒤, 건설로 파헤쳐진 땅의 참호 너머로 자연을 다시 세우는 모놀리트가 솟아난다.
그런 밤이면 사람은 죽은 자들의 고요 속에서 몹시 외롭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두 삶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뇌와 의무와 명예와, 의식의 커튼을 열어 둔 삶이 주는 삶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안의 무의식, 본능, 피, 태양이 주는 삶이다. — 그 밤, 그 시각, 집 뒤에서는 가을비가 어둠과 고아 같은 쓸쓸함과 습기 속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 책들이 화장장의 죽은 자로 변하는 밤은 사람에게 아무 대가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라슬로는 그 장례가 있던 저녁, 제 서재의 책장 아래 가죽 소파에 누워 있었다. 시간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창의 커튼은 방 안으로 밤도, 가로등 불빛도, 소음도 들이지 않았다. 라슬로는 육체적으로는 책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알지 못했으나, 자기의 뇌와 자기의 생각을 육체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뇌를 영안실에서 보게 되는 바로 그런 것으로 보았다 — 날고기 두 덩이 같은 것으로. 왼쪽 귀 뒤, 베개 곁, 두개골 아래에서 생각 하나가 태어나더니, 쥐처럼 뇌를 타고 위로 달려갔다. 뇌의 주름을 더듬으며, 육체적으로 그것을 긁으며, 이마 아래 의식의 영역에 멈춰 서서 형체를 얻었다. — “노동자들이 나를 거부했다 — 그래도 내일은 일하러 가야 한다, 마리야는 지금 땅속에 있다, 일하러.” 무의식은 침대차의 수면칸에서 뚫을 수 없는 초록 커튼이 등불 유리를 덮듯, 뇌라는 고기 덩어리들을 감쌌다. 의식에는 작은 틈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의지의 힘으로 그 커튼을 젖힐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의지는 커튼이 마침내 완전히 닫히기를 바랐다. 자야 했기 때문이다. 커튼 뒤에는 모든 것이 안식과 온기와 아늑함과 고요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의지에 거슬러, 생각들은 의식의 틈에서 뇌의 어둠 속으로 달아났고, 의식은 그 도주를 지켜보았다. 순간적인 재빠름으로 생각은 기억 속으로, 이 기억에서 저 기억으로 뛰어들었다. 기억들은 서로 이어져 의식으로 돌아왔고, 바로 그때 가장 먼 곳, 뒤통수 아래에서 환영 하나가 다가왔다. 환영은 첫 번째 기억과 두 번째 기억에 묶였다. 그것은 첫 아내의 눈이었다. 그가 그 눈을 처음 보았을 때와, 아내와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동시에 겹친 눈이었다. 그리고 그 눈은 늙은 폴레티카의 눈과 둘로 갈라졌다. 그러자 관 뒤를 따르던 여자들의 불길한 발소리 속에서, 마리야의 죽은 눈이 공포로 보였다. 무의식의 어둠 속은 아주 따뜻하고, 평온하고, 고요했다. 의식에게서 달아나야 했다 — 달아나, 숨어, 몸을 감춰야 했다 — 뇌 속에 단 하나의 생각도 남지 않도록, 뇌가 누워 잠들도록. 무의식은 제 커튼을 끌어당겨, 생각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게, 제자리에 눕히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했다. 바로 그때 아내의 방 쪽에서 문이 삐걱거렸다. — “아내는 무덤 속에 있다!” — 의식이 통증으로 확인했다. 라슬로의 눈은 감겨 있었고, 육체적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헛것은 또렷했다. 라슬로는 보았다. 아내, 그의 두 번째 아내 마리야가 문을 살짝 열고, 문턱에 잠시 서 있다가, 책상으로 다가왔다. 흰 잠옷 차림으로 어깨를 떨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고, 머리는 밤에 하듯 굵은 다발로 땋아 두었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어깨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 곁에 무거운 어깨의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친구인 표도르 사디코프가, 마리야의 남편이 섰다. 의식은 기록했다. — “아내다, 두 번째 아내다, 오늘 장례를 치렀다, 모두 끝났다.” — 그러자 무의식에서 한꺼번에 수백 개가 달려 나왔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들이었다. 그리고 무의식 전체가, 뇌 전체가, 몸 전체가 견딜 수 없는 무게와 답답함과 통증을 느꼈다. 육체의 통증은 아니었으나, 사람의 머리를 세게 만드는 그런 통증이었다. 책들은 화장장 같고, 생각들은 죽은 자 같았다. 그런데 아내는 — 살아 있었다. 화장장 속이 아니라, 인간의 시체가 벌레에게 먹히는 콜롬나 묘지의 땅속에서 살아 있었다. 의식이 커튼을 힘껏, 세계와 뇌 전체를 향해 활짝 젖혔다. — “악몽, 악몽이다!” — 밤, 텅 빈 방, 고요, 작은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고 지나갔다. 커튼은 내려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 마리야! — 올가! —
고요. 아무도 없었다.
“책을 치워야 한다. 정말이지 무슨 납골당 같군, 책벌레 냄새까지 나는 것 같다 — 아니면 나 자신을 죽여야 하나?” 고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의식은 커튼을 닫으려 애썼다. 무의식 속은 아주 따뜻하고, 어둡고, 고요했다. 마지막 생각의 쥐가 긁으며 지나갔다. — “아내, 두 번째 아내, 땅속에 누운 마리야는 책들과 닮았다.” — 단 하나의 생각도 없었다. 사람은 헛것 속에서 잠든다. 사람의 얼굴은 통증으로 일그러져 있다. 통증과 헛것은 잠재의식 속으로 물러났다. 사람은 곧 깨어나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 묘지의 벌레들은 시체를 먹어 치운다. 밤에만이 아니라 낮에도, 매 순간, 땅과 관과 몸의 어둠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