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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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이바노비치 사디코프는 농담으로 ‘선반에서 온 기사’라 불리던 기사였다. 그러나 사실도 그러했다. 노동자의 아들, 노동자 — 기사 표도르 사디코프는 폴레티카 교수의 제자이자 조수가 되었다. 삼 년 전 표도르 사디코프는 공사 예정지로 왔다. 콜롬나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강의 탈베크를 따라 새 종단면과 노선을 잡으며 모스크바 부근 베레야 마을 근처의 콜롬나 정박지까지 가고, 거기서 페호르카 개울의 탈베크를 따라 말라시카 개울 입구로 꺾어, 말라시카를 따라 메드베지예 호수까지, 그리고 메드베지예 호수에서 우차강과 클랴지마강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오카에서 모스크바까지, 클랴지마강의 탈베크를 따라, 사디코프를 마주 향해 라슬로 기사가 자기 조사대를 이끌고 오고 있었다. 수력공학 기사들은, 노동을 아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도덕의 전통을 잃지 않았다면 자신이 다루는 것을 존중하고, 떠받들고, 거의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며, 또 그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줄 알아야 한다. 수력공학 기사들은 강과 물, 그 원소를 자기에게 복종시켜야 한다. 그것을 이기고 복종시키는 일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디코프도 라슬로도, 자신들이 복종시켜야 할 물의 힘이 지닌 반박할 수 없는 합법칙성을 알고 있었다.

강 — 옛것의 물길, 유월의 강, 안개와 열병 속의 강. 새 마을 하나하나, 새 숲 초소 하나하나, 배 곁의 새 하룻밤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운 소식이었다. 유월에는 태양이 많다. 새벽과 새벽이 술래잡기를 하기 때문이다. 방수포 장화를 신고, 제 노동을 아끼는 모든 이들의 도구가 그러하듯 세심한 질서 속에서 번쩍이는 측량 도구를 든 사람들이, 지도 더미 속에서, 옛것에서 남은 판잣배 위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은 강의 유황과 유량, 지하수와 대수층, 점판암의 지질 구조를 연구하고, 새 강의 노선을 설계했다.

그때 즈브로제크와 두바흐와 칸디바와 그 밖의 책들은 햇볕 아래 페이지를 바스락거리며 오두막만 한 크기로 자라났다. 기사들은 노인들에게, 마을 통계에 밝은 이들에게 물었다. 갈수와 큰물에 관해, 홍수와 얼음막힘과 얼음소리에 관해, 옛 물길과 범람원에 관해, 여울과 소에 관해, 물갈림과 여울목에 관해 — 특히 마지막 것에 관해. 그것들이 봄철 큰물 뒤에 해마다 어떻게 자리를 옮기는지, 어디로 미끄러져 가는지, 빠른지 느린지. 기사들은 시굴 구덩이로 홍적층까지, 플라이오세와 마이오세까지 파고들었다. 오카와 모스크바강과 클랴지마강이 누운 이 일대는 한때 바다의 바닥이었다. 그래서 기사들은 쥐라기, 데본기, 캄브리아기, 시생대의 퇴적물, 석회암, 점토, 석탄, 규석, 모래, 진흙, 이탄을 — 토양의 지질 구조를 세심하게 연구했다. 탈베크의 구조가 지각 구조인지 침식 구조인지 구별하고, 토양의 보수력, 불투수성, 지하수의 수리 구배, 집수 유역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은 햇볕에 몸을 녹이며 물의 활단면과 수위와 종단면을 잡았고, 측량기와 육분의로 공간과 하늘을 재며, 다르시관과 오트 유속계로 물의 등속선을 낚아 올렸다. 유량과 평균 수위 반복도와 종단면을 알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은 세기의 지질이 만들어 낸 강의 유황을 연구했다. 인간이 만든 유황을 지닌 새 강을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비를 피하려 지붕을 세운 판잣배 안에는 도표의 와트만지와 트레이싱지가 자라났고, 해 질 무렵 냄비가 데워지는 시간, 빵 부스러기와 생선 냄새가 밴 탁자 위에 그것들이 놓였다.

그리고 생선국 뒤, 쉬는 시간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늘 똑같은 이야기를 노동자들과 실습생들에게 교훈 삼아 들려주곤 했다. 칠십 년 전쯤 사라토프 맞은편 볼가에서 벽돌을 실은 거룻배가 가라앉았는데 —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었으나, 그 거룻배 뒤에 모래섬 하나가 통째로 생겨났다. 흐름의 유황이 부서지며 만들어 낸, 수십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섬이었다. 그것은 사라토프 아래 갈수기의 물길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망쳐 놓았다. 사디코프는 알고 있었다. 어떤 강에서든 그런 자리를 찾아, 봄철 큰물 때 사람 머리만 한 작은 돌 하나를 강에 던져 넣되, 그렇게 던져 강이 제 물길을 바꾸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에서는 모든 것이 오직 물리적 힘과 법칙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흐름의 형태, 물의 양, 하상의 바닥, 그 안정성과 조성으로. 그리고 사디코프는 알고 있었다. 건설하면서는 결코 이 힘들과 법칙들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연과 싸울 때에는 바로 그 자연으로 싸워야 하며, 자연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조사 여행의 밤들은 우연한 밤들이었다. 시골 여관에서, 옛 영지에서, 강가의 모닥불 곁에서, 판잣배 선실의 따뜻한 숨 막힘 속에서.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생선 냄새와, 도구에 칠하는 데 쓰는 피마자유 냄새에 배어 있었다. 그때 이미 공사의 윤곽은 잡혀 있었다. 오카강 슈로보 아래의 모놀리트와, 모스크바강과 클랴지마강을 잇는 운하였다. 조사 여행의 밤들은 언제나 일상과 다르다. 유월의 밤은 하늘이 없는 듯하고, 새벽과 새벽은 안개와 땅강아지 울음 속에서 서로 가까이 있다.

겨울은 라슬로를 모스크바로, 사디코프를 레닌그라드의 폴레티카에게로 보냈다. 요율표와 와트만지와 트레이싱지와, 실시 설계를 위한 러시아와 유럽의 참고서들 위에서 버티는 날들, 그리고 고스플란, 최고국민경제회의, 노동방위회의, 인민토지위원회, 인민교통위원회의 집요함 속으로 보냈다. 각기 다른 규격의 종이 수천 장을 넘기며, 지질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새 강이 존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정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유월, 모놀리트 공사가 이미 시작되었을 때, 사디코프와 라슬로는 모스크바 아래 풀밭, 메드베지예 호수 곁에서 며칠 동안 만났다. 각자의 조사대 작업을 맞물리게 하고, 그런 뒤 둘이 함께 콜롬나로 가기 위해서였다.

에드가르 라슬로도 표도르 사디코프도 결혼한 몸이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는, 더없이 큰 여성적 힘 — 무력할 수 있는 힘 — 을 지닌 계열의 아내가 있었다. 내전의 세월, 전선의 어느 날, 십일월 밤, 돈바스의 약탈당한 공장 마을에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전선이 연결된 참모부 건물에 앉아 있었다. 텅 빈 한밤중, 십일월 바람과 멀리서 들리는 포격 속에, 혼자 있었다. 그는 모르스 신호의 소리와 명령을 기다리느라 잠들지 않았다. 그런데 전선이 놓인 그의 방으로 한 처녀가 들어왔다. 약탈당한 눈을 하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손을 입술에 댄 채 발끝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자기가 이 마을 기사의 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주일 전 이 집에서 살해당했고, 이 집은 아버지의 집이었으며, 여기에는 백군의 참모부가 있었고, 자신은 일주일 동안 지하실에 숨어 이 집 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무력하게 그의 맞은편에 앉아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 원하시면 저도 죽이세요. 제게는 더 할 일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 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처음으로 생각했고, 날카롭게 깨달았다. 삶에서, 특히 혁명에서, 사람들은 죽음과 목숨을 걸고 올인한다는 것을. 살아남은 이들은 과거를 영웅담으로 기억해야 하리라는 것을. 살아남은 이들,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야말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죽은 이들, 살해당한 이들은 삶으로 죽음과 올인했기 때문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때 많은 죽은 이를 보았고, 그 죽은 이들, 살해당한 이들이 만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무엇을 이야기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처녀는 죽음 저편에서 왔다. 표도르 사디코프는 그 처녀에게 참모부 옆방, 자기 방에서 지내라고 명했다. 그 방은 그 처녀의 어머니 방이었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방이었다. 처녀는 그때 고분고분 의자에서 일어나 잠자러 갔다. 다음 날 해 질 무렵, 표도르 사디코프는 처녀가 자기 방, 곧 그녀 어머니의 방에 있던 피아노로 조용히 다가가, 살며시 앉더니 건반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 또한 죽음 저편에서 온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웃었다. 표도르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 웃더니 조용히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그녀는 조용한 호밀빛 머리의 처녀였고, 세상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이었으며, 푸른 눈으로 세상을 놀라워했다. 그녀는 표도르 사디코프의 아내가 되었다. 표도르는 죽음 저편에서, 전선의 피 웅덩이에서 그녀를 건져 올렸다. 쓰레기 구덩이에서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새끼고양이를 목덜미 잡아 끌어내듯이.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른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혁명이 만들어 준 자기 일의 삶이 있었다.

표도르는 마리야의 첫 남편이 되었고, 표도르는 단 한 번도 마리야에게 사랑에 대해 묻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이 처녀는 무력함이라는 가장 큰 힘으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그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표도르는 소총을 피토관과 암슬러 유속계로 바꾸었으나, 지도와 도면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표도르 사디코프는 여전히 원정 중이었다. 처음에는 지식을 향한 원정이었고, 나중에는 지식을 지닌 원정이었다. 그해 그는 밤 모닥불 곁에서, 강의 승리와 후퇴 속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 속에서 원정길을 걸었다. 표도르는 풀밭과 골짜기를 걸으며 물살과 모래톱의 무게와 힘을 계산하고, 둑을 파고, 여울을 깎았다. 젊은 날에는 육체의 힘이, 장년에는 조직된 신경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천식과, 사회학자 엥겔스와 수력학자 엥겔스의 지식이라는 화강암과, 초당 유량의 절대값과 그 주기성과, 혁명의 총검과, 내전 전선의 마치옙스카야 역에서 그의 두 다리 사이로 터진 유산탄과, 테레크강의 둑 — 얼음 떠내려가는 물에 부서지고 뜯겨 나가, 풀려난 물의 힘이 펼쳐진 수면 위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몇 시간이나 떠밀고 부수던 그 둑 — 이 그의 힘을 빨아 마셨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삶은 병사와 노동자의 삶으로 흘렀다. 그의 임시 탁자는 언제나 작업대이자 제도판이었고, 그 위의 서류들 사이에는 그의 열세 가지 병명을 적은 종이가 깊숙이 밀어 넣어져 있었다. 그의 잠자리는 언제나 야전 침대였다. 마리야는 그를 따라다니며, 자기 몫의 구석들을 우크라이나식 통치마로 조금 밝게 꾸몄다. 그녀는 언제나 고전 음악가들을 연주할 피아노를 찾았고, 그녀 곁에는 그녀의 친구, 양치기개와 늑대의 잡종인 거대한 개, 볼크가 함께 살았다. 표도르는 그들의 삶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마리야에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지 말할 틈을 내지 못했다.

모스크바의 명령을 받는 나라의 나날은 그 시절 혁명의 무거운 맷돌처럼 생겨나, 나라를 지휘하며 나라를 지었다. 그 명령으로 공사들이 생겨났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 시절 나라는 군영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혁명의 맷돌이 내리는 바로 그 명령으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새벽마다 깨어났다. 그는 가래를 뱉고, 끙 소리를 내며, 찬물 한 양동이를 제 몸에 끼얹고, 장화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원정으로, 강의 골짜기들과 벌이는 전쟁으로 떠났다. 넓은 어깨가 무거운 사람, 혁명의 맷돌 곁에 선 방앗간지기 가운데 하나였다. 때로는 강 위의 안개가 유난히 짙고, 행군이 유난히 고될 때가 있었다. 그러면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꺾여, 제 야전 침대에 쓰러졌다. 그의 열세 가지 병이 심장과 폐와 목을 향해 몰려왔고, 이마에는 진땀이 번들거렸으며, 광대뼈에는 수염이 까슬하게 돋고, 목젖이 몹시 날카로워졌다. 표도르는 사랑에 대해 말할 줄 몰랐다.

에드가르 라슬로와 표도르 사디코프, 두 공산주의자는 의지와 일이 같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는 벗으로 살았다. 혁명의 방앗간지기들이었다. 내전은 사디코프의 어깨에 놓였던 것과 똑같이 라슬로의 어깨에도 놓였다. 공병부대의 생활, 죽음과 목숨을 놓고 벌이는 올인 게임이었다. 그러나 라슬로는 ‘선반에서 온 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남의 판돈 패, 곧 죽음의 패를 들여다볼 줄 알았다. 라슬로는 사디코프와 같은 굳은 의지, 적분을 다루는 기사의 굳은 눈과 정확한 손을 지닌 사람으로 삶을 걸어갔다. 다만 그는 고전김나지움과 책들과, 외국계 출신 러시아 인텔리겐트라는 긴 길을 거쳐 적분에 이른 사람이었다.

23

라슬로와 사디코프는 조사 원정 중 메드베지예 호수 곁, 말라시카 개울의 탈베크에서 만났다. 길은 끝나 있었다. 두 조사대는 낡은 지주 저택에 자리 잡았다. 창틀에서는 유리가 사라졌고, 텅 빈 집 안으로 어수선한 바람이 떠돌았다. 그리고 그때 무질서하고도 예사롭지 않은 밤이 생겨났다. 집 뒤에서는 가는 비가 내렸다. 십장들과 실습생들은 만남의 기쁨과 작업의 끝을 앞두고, 이웃 마을에서 보드카를 구해 왔다. 라슬로는 지루해했다. 열세 가지 병은 사디코프를 침대에 눕혔고, 그는 식당에 누워 있었다. 집은 늙고 삐걱거리며 귀먹어 갔다. 십장들이 사디코프에게 보드카를 권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비와 피로의 이름으로 보드카를 마셨다. 실습생들은 마시고 노래했다. 창밖에서는 가는 비가 내렸다. 자연 속에는 고아 같은 쓸쓸함이, 텅 빈 슬픔이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삶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 아마도 — 사랑에 대한 권리도 지닌다. 아니, 그런 권리는 없는 것인가? 표도르의 아내 마리야에게는 더없이 큰 여성의 힘, 곧 무력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표도르는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리야는 표도르의 삶을 두려워했다. 베토벤의 음악이 혁명의 음악이라는 침묵과, 늪지대를 가로지르는 남편의 병사 행군으로 바뀌는 그런 삶을. 러시아화한 네덜란드식 난로의 온기 대신 강가의 모닥불이 타오르고, 등유 램프의 느린 빛 대신 새벽이 비추는 그런 삶을.

밤이 흘렀다. 부서진 지주 저택의 식당에는 탁자 하나만 박혀 있었고, 의자들은 사라져 있었다. 양초는 빈 병에 꽂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술병들이 서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중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진땀에 젖어 헛소리 속에 누워 있었다. 집 안에서는 삶이 죽었다. 여기에는 올빼미와 고요가 살았다. 십장, 노동자들, 실습생들, 그리고 라슬로는 탁자 곁에 서서 무료한 채 술을 마셨고, 벽에는 무서운 그림자로 꺾여 비쳤다.

비 오는 저녁은 지루했다. 의학은 여러 종류의 취기를 안다.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정신의 취기다. 사람이 동작도 말도 단단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취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으나, 대뇌피질은 알코올에 손상되어 의식의 일에서 빠져나가고, 의지는 더 이상 그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되는 취기.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빈방들을 오가며, 아무 일 없는 어둠 속에서 지루해하고, 마시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멀쩡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제 목젖에 짓눌려 누워 있었다.

식당에서 중이층으로 삐걱거리는 작은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삐걱거리는 층계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뒤에 라슬로는 기억하지 못했다 — 아마 마리야도 그랬을 것이다 — 중이층의 먼지 낀 작은 창 너머, 공원 너머, 강 너머로 누런, 축 늘어진 새벽이 안개 때문에 생겨나 누워 있던 것이 저녁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를.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병과 잔을 창턱에 놓았다.

그 시각 창가에는 어떤 상태의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런 사람의 눈은 공간을 바라볼 줄 알되, 공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간 너머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바라본다. 그런 눈은 공간 너머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아주 활동적인 눈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화한 헝가리인의 검은 눈, 선사시대의 볼가에서, 볼가가 라 강이라 불리던 시절에 와서 도나우의 오래된 문화 위에 자리 잡은 자기 민족의 어두운 역사를 제 안에 간직한 눈.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고, 두 팔을 펼치면 양쪽 벽에 닿는 방 안에서,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자기가 혼자라고 여겼다.

그때 구석에서 낡아 빛바랜 소파의 스프링이 댕그랑 울렸다.

— 누가 있소? — 라슬로가 물었다.

— 저예요, — 마리야가 대답했다. — 아시죠, 제가 몰래 보드카 한 잔을 마셨는데, 완전히 취해 버렸어요.

술 속에서 공간 너머로부터 라슬로에게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두개골이 육체적으로 쑤실 만큼의 우울이거나, 등뼈가 저릴 만큼 육체적인 기쁨이었다. 라슬로는 전선에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이 두개골 속에 들어앉을 때의 우울이고, 태양 자체가 심장 속으로 들어올 때의 기쁨이라는 것을. 여자에 대해, 인간 세계에 흩뿌려진 경이로운 여성적인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에게는 이 우울과 기쁨이 생겨났다. 그 축 늘어진 새벽,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에게 찾아온 것은 기쁨이었다.

— 저는 아주 슬퍼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너무 외로워요. 가끔은 너무 무서워요. 온 세상에 저 혼자, 정말 혼자인 것 같아서요, — 마리야가 말했다.

술에 너무 젖은 뇌는 모든 것을 새 자로 다시 잴 수 있다. 기억은 수십 년씩, 혹은 몇 분씩 떨어져 있는 조각들을 꿰맨다. 그리고 그때 아주 자주, 믿을 수 없는 순결, 정결, 모든 거짓 위에 서서 무의 영(零)을 빼앗아 오려는 진실의 감각이 생겨난다.

— 모두에게서 벗어나려고 여기 왔어요. 그런데 당신도 여기 왔군요. 이상해요…… 저는 지금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 평생 아무도 제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표도르조차도요. 그리고 저도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 말하겠어요. 가끔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만이 아니에요. 그건 — 진실이에요. 제 아버지도 당신처럼 기사였어요. 당신 머리카락은 검게 물들인 강철 같아요. 당신은 — 까마귀 같아요. 그런데 관자놀이는 벌써 희어지고 있지요. 저는 자주, 당신의 희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다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붙잡아요. 모든 것은 지나가요. 저는 완전히 취했어요. 저는 당신을 아주 많이 생각해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그 누런, 축 늘어진, 이미 가을 같은 새벽이 중이층의 먼지 낀 작은 창 너머, 공원 너머, 강 너머에 누워 있던 것이 저녁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소파의 스프링이 댕그랑 울렸다 — 바로 그 빛바랜 소리로.

— 무얼 하시는 거예요, 에드가르? — 마리야가 물었다. 부칭인 이바노비치를 붙이지 않고. 그리고 그녀는 무력함 속으로 떨어졌다.

— 지금 나는 당신을 사랑해, 마리야, — 라슬로가 말했다.

라슬로가 아래로 내려왔을 때, 표도르 이바노비치만이 자기 야전 침대에서 깨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식당 구석들의 짚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양초들은 다 타 가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침대에서 일어나 맨발로 탁자까지 걸어가, 제게 보드카를 따랐다.

— 자네는 마시면 안 돼, 에드가르. 나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아, 에드가르. 이 집은 아주 크게 고요하군. 올빼미들만 울었어,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우정을 위해 마시세, 에드가르!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두 손을 내리고 눈을 떨구었다.

— 자네야말로 마시면 안 돼, 표도르, —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아니, 왜 안 되나? — 사디코프가 대답했다.

그리고 라슬로는 건배하려는 듯 빈손을 치켜들고 외쳤다.

— 그래, 바닥까지 마시세!

— 하지만 마시려면 자네 잔에도 따라야지!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자네 손은 비어 있네.

창밖에는 축 늘어진 새벽이 내려앉았다. 그 밤이 라슬로의 연애의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두 친구였다. 표도르 사디코프와 에드가르 라슬로. 러시아 혁명이라는 위대한 시대의 사람들이었고, 그 혁명을 자기 조국으로 여겼다. 죽음과 벌인 올인에서 살아남아, 모스크바 크렘린의 세계와 의지들을 지휘하게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맷돌의 방앗간지기들이었다. 이 두 사람, 기사가 된 러시아 노동자와 러시아화한 헝가리인, 러시아 인텔리겐트가 되었고 — 본질적으로는 — 기사로 태어난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들로 걸어갔다. 한 사람은 영원히 보존했고, 다른 한 사람은 획득한 유럽식 주의력과 예의와 청결과 정확성의 태도를 지닌 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각자의 삶은, 혁명에 바친 삶은, 표도르의 경우에는 루바슈카 주머니 속에, 에드가르의 경우에는 조끼 주머니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에드가르는 육체적으로 아름다웠고, 그들 둘에게는 행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눈이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어깨는 무겁게 처져 있었으니, 상처 입은 두 다리의 걸음걸이가 무거운 것과 같았다. 그는 불규칙함의 아름다움으로 눈에 띄었다. 이마의 주름, 사무적인 음울함으로 꺼져 든 푸른 슬라브인의 눈, 붉은 홍조의 가는 혈관 속에 놓인 부드러운 광대뼈, 러시아식 — 시베리아식 — 감자빛 머리의 가르마. 라슬로는 볼가와 도나우 초원의 피를 제 안에 합쳤다. 그 초원들로는 알란, 훈, 고트, 웅그르를 비롯한 아주 많은 민족의 피가 지나갔다. 라슬로의 머리카락은 넓은 이마 뒤로 넘어갔으니, 과거의 바람들과 러시아 공과대학이 그것을 뒤로 젖혀 놓은 듯했다.

창밖에서는 축 늘어진, 이미 가을 같은, 누런 새벽이 빛났다.

— 그래, 바닥까지 마시세. — 에드가르, 지라르동의 원칙을 기억하나?

— 어느 원칙 말인가?

— 예컨대 자연 수류는 제 물로 고체 물질을 끌고 간다는 것, 그러니까 온갖 더러운 것까지도. 그리고 이때 그 고체 입자의 양은 침식에 대한 저항에 달려 있지. 물의 운동은 멈추지 않지만, 떠오른 입자들의 운동은 연속적이지 않아. 연속적인 대신 그것은 끊겼다 이어지고, 내려가다가 여울에 걸려 멈춘다.

— 그래, 아주 맞아, — 라슬로가 대답했다. — 하지만 지라르동은 횡단면에서 수심도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고 했지. 침식 저항이 가장 작은 하상 부분에서 더 깊어진다고. 지라르동은 여울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 자네 취했나, 에드가르?

— 그래, 아주 맞아.

— 하지만 우리는 지금 수문학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 그래, 아주 맞아.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라슬로는 고요하고 곧게 서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눈을 내리깔고 제 침대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24

그리고 다시 노선과 종단면을 창조하는 노동이 있었다. 사회주의를 위한 저 피 없는 전쟁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우선인 것은 인간이었고, 인간의 이름으로 자연과 노동과 인간을 다시 조직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가을, 첫 눈보라가 몰려들 채비를 하고 널판배들이 강 얼음에 얼어붙을 무렵, 사디코프는 공사가 시작되는 콜롬나로 갔다. 라슬로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그리고 라슬로는 일 년 뒤에야, 모놀리트가 이미 놓였을 때 콜롬나로 왔다.

자연의 강들을 트레이싱지와 와트만지 위에 되살리려면 아주 많은 두뇌를 쏟아부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법칙적이고, 모든 것이 서로 종속되어 있으며, 단 일 밀리미터의 오산도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살아 있는 자연을 부술 수 있었다. 미탸예보와 바치마노보 아래의 풀밭으로, 슈로보와 콘스탄티놉스카야의 언덕으로, 호로셰보와 체르노레치예의 숲에서, 골루트빈과 슈로보 역에서, 프로토포포보 화강암 채석장에서 건설 현장으로 들어가는 철도 지선들이 놓였다. 그 길과 수천 마리 농민의 말이 끄는 행렬 위로, 자재들이 공사장으로 끌려왔다. 목재, 화강암, 잡석, 모래, 철, 해체된 굴착기의 무한궤도, 준설 펌프, 천공 도구, 압축공기 공장과 콘크리트 공장과 조립 작업장의 설비들 — 자재와 도구들이. 세 번의 봄 뒤에 모스크바강과 오카강은, 그 수천 년의 세월 가운데 마지막으로 자연의 뜻에 따라 범람한 뒤, 화강암과 인간에게 묶여 그 힘을 인간에게 복종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콜롬나 아래의 풀밭에는 자연과 싸울 전장이 마련되고 있었다. 슈로보 언덕과 콘스탄티놉스카야 부근 언덕에는 노동자 마을, 수석기사 사무소, 기사촌이 생겨났다. 슈로보 시멘트 공장은 공사를 위해 돌아갔고, 오카 바로 위, 모놀리트의 척추 곁에는 콘크리트 공장이 섰다. 포포프카 위로는 쇄석 공장이 연기를 뿜고 우르릉거렸다. 덤프카들은 콘크리트 반죽을 모놀리트로 실어 날랐다. 멀리 숲 가장자리에는 울타리들이 말없이 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다이너마이트와 암모날 대신 압축 산소를 만들어 화강암을 터뜨리고, 둑의 자리를 뚫었다. 골루트빈 기계공장은 공구 작업장 노릇을 했다.

사디코프는 콜롬나에 와서, 오카의 풀밭에 비가 쏟아져 풀밭을 태곳적으로 되돌리던 가을날, 마리야와 함께 골루트빈 기계공장의 숙박소에 머물렀다. 그때 슈로보 산의 소나무숲은 겨울을 기다리며 식어 갔다. 마을의 농민들은 겨울맞이에 들어갔다. 사디코프의 생각과 신문 기사들, 크렘린 기관들의 잇따른 회의, 그리고 한 무더기의 트레이싱지와 와트만지를 빼면, 이 풀밭과 숲에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이곳에 공사가 생겨나고, 수천 명의 사람이 이곳으로 오고, 이곳에 삶이 생겨나고, 지어지고, 살아 움직이리라는 사실을. 사디코프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보라가 몰아친 이 공사장의 풀밭은 사디코프에게 전장이 되었다. 지도 위에 옮겨진 풀밭, 이제 지도에서 내려와 현실로, 자기 자신에게로, 사라질 마을들에게로, 미래로 가야 하는 풀밭이었다. 지도 위에서는 앞으로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었고, 지도 위에는 모스크바 아래에서 바다 기선들이 어떻게 기적을 울릴지, 세르기옙스카야와 보브레네보와 그 밖의 마을들이 어떻게 파괴되어 역사 속으로 물러갈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라슬로와 어머니보다 일 년 먼저 공사장에 온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는, 그때 봉분과 야영지를 파고, 태고의 시대를 헤집고, 강이 부서질 때 물속으로 들어갈 땅을 파헤치기 위해 와 있었다.

겨울 새벽, 눈이 푸르고 하늘이 눈보라가 없으면 날카롭고, 눈보라가 땅바닥을 쓸면 납빛인 때, 썰매가 사디코프를 공사의 탄생지인 풀밭으로 끌고 가는 휴식과 사색의 반 시간, 그 고독의 반 시간 동안, 사디코프는 눈앞의 일들 말고도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슈로보 공동묘지 아래 오카 바닥에 놓인 화강암 덩어리, 콘크리트로 묶인 그것은 인간 삶의 연장이고 해방이고 장식이라는 것을. 새벽마다 썰매는 숙박소 앞에 다가왔고, 양가죽 외투에 몸을 감싼 사디코프는 작업장으로 갔다. 러시아의 겨울 새벽은 느리고, 하늘은 무겁고, 시골길은 태곳적이며, 양가죽 외투에서는 양털 냄새가 났고, 바람은 말꼬리를 옆으로 날렸으며, 길가의 눈길 표시 막대들은 몽골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눈 위로 통나무집 골조와 제재소 탑과 땔감과 목재 더미, 화강암과 벽돌의 사각 진지가 생겨나 태고성을 지워 버리던 그 자리들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일했다. 짐꾼들이 고함쳤고, 제재소가 휘파람을 불었고, 작은 기관차들이 기적을 울렸다. 그리고 — 주홍빛 반코트를 입은 아낙들이 나타났다. 캐러멜과 마호르카와 파이를 들고, 반코트 자락과 넉넉한 엉덩이의 풍성함으로 그 파이들의 온기를 지키며.

갓 켠 목재와 도끼로 다듬은 대팻밥은 서릿속에서 수박 냄새가 난다. 그러나 또 다른 냄새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냄새. 새 삶이 생겨나는 냄새다. 차디찬 판잣집 사무소에서 기술자와 십장들의 언 손, 사람들에게서 나는 마호르카 냄새와 사무소의 쇠난로에서 나는 연기 냄새, 말과 농담의 냄새 — 그래, 그래 — 소리와 인간 말의 냄새, 그리고 태곳적 눈을 짓밟아 뭉개 놓은 사람 발자국의 냄새. 도끼로 다듬은 대팻밥의 수박 냄새 역시, 마호르카와 더불어 새 삶이 생겨나는 냄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고 여름이면 등에 떼 속에서 가축 떼만 풀을 뜯던 곳에서, 주홍빛 반코트들이 장담했다. — “뜨끈한 파이요, 입안에서 김이 나고, 아래쪽에는 기름이 자르르!” — 짐꾼들은 냄새를 감별했다. 파이의 냄새도, 반코트의 냄새도. 그리고 그것 역시 삶의 발생이었다. 눈에 파묻힌 이 장소들, 작은 소나무들 사이, 들과 풀밭의 이 자리들은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싸움의 진지였다. 파이 냄새를 두고 제재공들이 던지는 농담까지도 반드시 활기, 건설의 활기로 울리는 곳이었다. 사디코프는 일이 힘차게 풀릴 때, 만들어지는 것이 힘차게 생겨날 때, 잠마저 방해가 되는 그 노동의 활기를 알고 있었다.

봄이 되자 주홍빛 양가죽 외투를 입은 아낙들은 사라졌다. 목수와 난로공, 칠장이, 유리공, 석공들이 건설 현장에 노동자 식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식당은 공장식 부엌이라 불렸다. 봄에는 막사들이 노동자들로 가득 차 막사가 모자랐고, 군부에서 빌려 온 방수포 천막을 세워야 했다. 그 군용 천막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풀밭에서는 군대들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수 사디코프는 수석기사였다. 날이 시작되는 시각이면, 원수의 썰매는 삶이 생겨나는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달렸다. 한낮에는 본부에, 곧 넓고 따뜻한 빛의 설계실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도면과 계획들 위에서, 그 계획들 속으로는 물뿐 아니라 역사와, 역사를 짓고 시간과 사람과 힘을 짓는 인간 사유가 흘러들었다. 여기서 사유는 화강암 덩어리와 양토의 보수력, 물과 살아 있는 힘의 입방체로 자라나는 지도 위 밀리미터들을 계산했고, 인시(人時)와 기계시, 작업의 순서와 표준량을 계산했다. 낮의 흰빛은 설계실에서 해 질 녘의 밀랍 같은 고요로 바뀌었고, 전등이 켜졌으며, 집 위로는 북극성이 얼어붙었다. 설계실은 사업의 결정을 품고 말없이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루바슈카는 피로 때문에 풀어졌고, 담배는 입술을 지치게 했다. 그리고 사디코프의 루바슈카, 더없이 평범한 그 옷은 아마포가 아니라 가죽으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젊은 시절 사디코프의 광대뼈를 덮었던, 강과 혁명의 시간으로 거칠어진 피부처럼 단단했다. 사디코프의 노동일은 북극성의 시각에 끝났고, 이튿날 아침 같은 북극성의 시각에 다시 생겨났다.

전투는 시작되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건설하고 있을 때 라슬로가 왔다. 그리고 라슬로는 노동경제부와 자재부, 사람과 물건의 지휘를 맡았다. 사디코프가 자연과 작업계획을 지휘하는 동안이었다.

25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가족과 함께 와서 콜롬나의 카피톨리나와 림마 스쿠드리나 자매 집, 쪽문 너머 그 고요 속에 자리 잡았다. 라슬로는 차분하고 일하는 기사다운 생활을 마련하려고 책과 물건들을 가져왔다. 쪽문 너머의 집은 조용했다. 별들 아래 아주 가까이 있는 듯했고, 마룻장은 삐걱거렸으며, 따뜻한 온돌 침상이 있었다. 집은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 스쿠드리나의 고요로 귀먹어 있었다. 작업 뒤에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를 집에서 아내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기다렸다. 새로운 가을이 다가왔다. 의붓딸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발굴 정리 작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 때 공책을 들고 나와, 건설 현장의 소식을 듣고 자기 소식을 가져왔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서재는 책으로 우거졌고, 책들은 식당까지 기어 나왔으며, 서재의 소리들은 책들과 바닥 카펫 속으로 숨어들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집에 내어 준 시간은 별과 달의 시간이었다. 물론 이 집의 방들에는 햇볕도 아주 많았고, 그 햇볕에 대해서는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라슬로는 사디코프와 어깨를 맞대고, 그와 똑같이 끈질기게 일했다. 점심 뒤 휴식 시간에는 질문과 애무가 뒤섞인 소란 속에서, 서재의 책들 뒤로 알리사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차 한 잔 곁에서 신문을 읽고, 딸은 그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 새끼고양이처럼 잠잠해져, 아버지가 신문이라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에게 물리적인 태양은 수석기사 사무소의 널찍한 집무실과 건설 현장의 풀밭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집 안에서 거의 물리적인 태양은 알리사였다. 외동딸, 아버지가 리사라고 부르는 아이였다.

어느 날 알리사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 에드가르, 우리는 살고 있어, 아니면 놀고 있어? — 아이는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이름으로 불렀다.

아버지는 신문의 한 단락을 딸의 질문과 한데 붙여 버린 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리사?

— 우리는 살고 있어, 아니면 놀고 있어? 봐, 아빠하고 엄마는 살아. 그런데 나하고 미시카는, 미시카는 벌써 커서 류바한테 다니고 류바의 동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형놀이를 해. 인형은 살아 있지 않아. 헝겊으로 만들었고, 인형 머리는 엄마가 아직 모스크바에 살 때 굼에서 사 준 거야. 그런데 아빠는 우리가 작으니까 우리랑 같이 놀아 주잖아. 나하고 미샤는 살고 있어, 아니면 놀고 있어?

그때 신문의 모든 단락은 딸의 질문, 딸이 처음으로 때 아닌 순간에 내놓은 생각에 가려졌다. 아버지는 대답을 잃었다. 그는 등뼈와 심장으로, 딸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한지, 자신의 살이고 자신의 삶의 연장임을 깨달았다. 메치니코프와 보로노프와 라자레프의 과학과 기계들로 질서를 세워야 할 살아 있는 삶의 저 무질서 속에도, 죽음의 비극, 인간과 인류의 비극을 푸는 해법은 아직 하나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혈통과 피의 지속. 그래서 아버지는 삶에 몸을 붙이듯 딸을 끌어안았다. 너무 세게 안아서, 딸의 눈에는 육체의 고통과 어리둥절함으로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점심 뒤 휴식 시간, 책들 뒤에서, 리사와 함께, 리사를 따라, 그 웃음과 사순절 그네처럼 부산하게 돌아가는 작은 손들을 따라, 아내이자 벗이자 어머니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왔다. 그녀는 그의 젊음과 함께 그의 삶에 처음 나타난 여자였고, 자기 마지막 것을 모두 그에게 내준 여자였다. 그는 류보비와, 내전 중 그의 부대에서 티푸스로 죽은 아들의 가정교사였다.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 온 삶을 가져와 내주었다. 그때 직선의 대로들이 뻗은 페테르부르크, 폴레티카 교수의 울리는 아파트에서, 그녀가 언제나 문턱에서 라슬로를 맞던 텅 빈 응접실, 바로 그 문턱에서, 어느 햇살 좋은 날, 울리고 넓게 뛰는 심장 속에서, 라슬로는 처음으로 남자로서, 연인으로서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손과 목에 입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에게 입 맞추었다. 그 입맞춤 속에 모든 것을 내주며, 그 울리는 방들과 자기 시간과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내주며. 그는 스물셋이었고, 그녀는 서른둘이었다. 같은 울리는 응접실에서, 역시 햇살 좋은 어느 해 질 녘, 그녀는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에게 자신이 그를 영원히 떠난다고 말했다. 그 시각 그녀의 눈은 행복으로 빛났다. 문턱에서는 에드가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떠남의 시간은 대전쟁의 시간만큼 길게 이어졌고,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 세월은 질주하는 영웅담이었다. 천구백십칠년은 그녀의 늦여름이 되었다. 다만 그 늦여름은 구월이 아니라 칠월에 찾아왔다. 에드가르를 위해 그녀는 에드가르처럼 독일어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전의 총검과 혁명의 굶주림 속으로 걸어갔다. 빵과 신앙과 생활과 풍습을 다시 세우며 러시아가 기어 넘어가던 그 절벽들을 그와 함께 통과했다.

에드가르의 부대에서 그녀는 백군에게 살해된 큰아들을 잃었다. 에드가르의 입맞춤 앞에서, 그녀의 눈은 처음으로 진정한 열정 속에서 세상을 향해 감겼고, 에드가르는 그녀의 눈가에 비친 젊지 않음의 첫 주름을 보았다. 이 자랑스러운 여자, 벗인 여자는 말없이 전선들을 따라 에드가르를 따라갔다. 이 차분하고 맑은 여자는 혁명의 총검을 자기 혼례 침상으로 받아들였고, 인간의 열정이란 반드시 정직하고, 반드시 진실하며, 반드시 러시아 유월의 이슬 맺힌 새벽, 밝고 또렷하고 맑으며 어떤 사람들에게처럼 러시아 화재의 불타는 횃불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새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명예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전선의 마치옙스카야 역에서, 어느 날 표도르 이바노비치 사디코프의 다리 곁에 포탄 하나가 터졌다. 그때 당직실에는 셋이 있었다. 그녀와 에드가르와 표도르. 파편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그녀는 고통으로 입술을 찡그리고 눈썹을 모으면서도 웃으며, 두 손으로 상처의 살에서 파편을 빼냈다. 혁명의 포성이 그치고 에드가르가 강들로 나아갔을 때,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딸 알리사를 낳았다. 자기 마지막 딸이었다. 그녀의 세월은 이미 저녁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시간을 기사다운 질서 속으로 그러모았고, 에드가르의 책과 일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알리사가 잠드는 시간,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손에 양초를 들고 에드가르에게 왔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자정 전 마지막 차는 뜨거웠고, 책벌레 냄새가 영안실 냄새를 떠올리게 하는 서재에서 마셨다. 아내는 남편 곁, 소파에 앉았다. 그들은 서로 독일어로 이야기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삶을 맞이한 언어이자, 그가 리사를 잠자리로 보내는 언어였다.

— Weist du, ich denke, das Lew Trotzki nicht Recht hat, —[5]

그녀는 남편을 돕기 위해 책과 신문에서 읽어 낸 일들에 대해 말했다. 탁자 위의 양초는 파우스트의 양초처럼 타올랐고, 자정은 마지막 차의 휴식으로 고요했다. 남편과 아내는 괴테보다 백 배는 더 장엄한 것, 곧 세계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혁명은 이곳에서도, 이 군청 소재지 집의 벽 너머에서도, 이 남편과 아내의 시간 너머에서도 다가와 역사를 에드가르의 맷돌 위로 쏟아붓고 있었다. 그 시각 남편은 아내와 책들로 시간을 녹였다. 책이라는 납작한 사각형들은 카메라 옵스쿠라처럼 인간과 인간 사유를 어느 시대와 어느 공간으로든,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방식으로 던져 넣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의 목소리와 머리카락과 머리와 어깨, 말과 온기와 애무와 엄격함은, 우주의 고요와 붉은 머리 리사에게 삶을 준 그 경이로운 것이 머무는 순간, 인간 존재로 하여금 제 심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 심장 속에 제 존재를 숨기게 만들 수 있었다. 자정들 속에서, 이 자랑스럽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여자, 혁명 속의 자매인 아내가 잠들고, 양초가 꺼지고, 책들이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갈 때,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팔꿈치로 머리를 받쳐 들었다. 그러면 어둠 속 그의 곁에는 아내의 어깨가 희미하게 희었다. 이미 축 늘어진 냉기가 덮이기 시작한, 익숙하고 믿음직한, 마치옙스카야에서 상처 입은 어깨였다. 그녀의 숨결은 고르고 행복했다. 이 여자는 낮이면 늘 검은 옷을 입었고, 유월에만 흰옷을 입었으며, 그의 삶에서 첫 번째가 된 여자였다. 그것은 사랑의 성사였다. 혁명의 항아리를 쏟아 버릴 수 없듯이 쏟아 버려서는 안 되는 그 항아리였다.

집 뒤, 풀밭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빈 시간이나 빈 밤이 생기거나, 혹은 두뇌가 물러지기 시작하면, 공장에서, 숙박소에서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에드가르에게 왔다. 아니면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그에게 갔다. 우정의 법을 이행하고, 보드카와 보드카가 아니라 심장과 심장, 사유와 사유를 맞부딪쳐 건배하기 위해서였다. 어깨가 무거운 표도르는 그때 방들을 지나가며 병사의 눈으로 둘레를 살피고, 인사를 건네며 농담 사이에 훈계를 끼워 넣었다.

— 공기가 너무 건조하군. 수족관을 놓아야 해.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군.

— 난로를 보여 주게. 어떻게 닫는지 보겠네. 내가 제대로 하는 법을 알려 주지.

— 리사, 눈꺼풀을 열어 봐라. 넌 빈혈이 있어!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쉬기 위해,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기 위해 서재의 소파에 앉았다. 책장 뒤에서는 비장의 병이 꺼내졌다. 표도르는 에드가르의 몸짓 하나하나를 알았고, 에드가르는 표도르의 몸짓 하나하나를 알았다. 표도르는 코냑 한 잔을 따라 놓고 농담을 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소파 한구석으로 기어들어갔고,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살림일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시간들, 그 시간들로 자기 자신과 자기 일과 자기 생각을 검증하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책상 위의 책들은 치워지고, 양초가 많이 세워졌으며, 표도르 곁으로는 접시를 올린 작은 의자가 밀려 왔다. 여자들은 말없이 있었다. 표도르는 자기 어깨를 덜기 위해, 그리고 우정의 이름으로, 에드가르의 무릎에 손을 기대었다. 그리고 표도르는 숫자와 도면판 뒤에서 생겨난 자기 생각들을 내놓았다.

— 자네는 레프 트로츠키 이야기를 하지,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그렇다면 강바닥을 생각해 보세. 특히 강이 뒤로 거꾸로 흐를 때 말이야. 행정을 고려하세. 곧 우리 자신이지. 당 세포를 고려하세. 곧 우리 자신이지. 노동자위원회를 고려하세. 그것도 역시 우리 자신이야. 우리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네. 잘 알려진 것처럼, 강 여울에 놓인 모래톱은 물고기처럼 머리를 물살 쪽으로 두고 누워 있지. 그리고 역시 잘 알려진 것처럼 물고기 모양을, 물고기의 머리와 갈라진 물고기의 꼬리를 지니고 있어. 모래톱이 물고기를 닮은 건 우연이 아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네. 중요한 건 물이 그 물고기 모래톱의 꼬리 쪽으로 흘러들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계산하는 것이지. 우리는 둑을 짓고, 새로이 기후와 지리를 고쳐 만들고 있네. 그러니까 말이야. 텅 빈 풀밭으로 노동자 만 명쯤이 모여들었고, 이 공사에 매여 있고 이 공사에 의존하는 사람은 수백만이네. 알겠지. 싸움터라는 것도 알겠지. 그런데 우리 중 누가 그것을 느끼나? 아주 적네. 기사들은 토요일마다 타자수들을 골루트빈으로 태워 가서 폭스트롯이나 추지. 토공 인부들에게는 ‘취사부’라 불리는 아르텔 아내들이 있네. 우리는 공장식 부엌을 지었지만, 이 아르텔 아내들, 그러니까 취사부들 때문에 노동자들은 막사에서 먹는 걸 더 좋아하고, 막사마다 반드시 밀주 파는 여자가 있네. 그리고 자네와 나는 그 모든 것이네.

— 내가 답해 보지, 표도르, —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온 성서의 모세 동지를 보게. 그자는 어리석은 농사꾼이 아니었어. 그는 바다 밑바닥을 여행했고, 무에서 하늘의 만나를 만들어 냈으며, 우리가 트로츠키주의에서 헤매듯 사막에서 헤맸고, 소비에트 대회와 시나이산 접견을 열었네. 사십 년 동안 자기 주거공간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위해 싸웠지. 그리고 약속의 땅에는 이르지 못했네. 태양을 멈추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말이야. 늙은 모세는 논리상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없었네. 소돔을 아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을 수 없어. 그들은 약속의 땅에 적합하지 않네. 순경이 무엇이고, 그의 콧수염이 어디서 자라나며, 리페츠크 시의 성찬용 빵 굽는 여자 프라우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지. 늙은이는 새 세대를 위해 뼈를 눕혀야 했네. 순경을 모르는 새 세대, 새 세대들만이 약속의 땅에 적합하니까. 내 생각에 우리는 지금 모세 노릇을 하고 있네. 바다 밑바닥 여행은 끝냈고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것도 그만두었지만, 자네와 나는 새 삶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아. 그 삶에서는 내 리사가 살겠지. 나는 소령들이 하사관들의 낯짝을 후려치던 일을 기억하네. 행정, 공장위원회, 당 세포에 관해서라면, 성서에서도 괴짜 하나가 왼손이 모르는 순간 오른손이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 바 있지. 여자들이야 — 뭐, 누구든 원하는 대로 즐기게 두게.

— 의학에서는 그런 흩어짐을 열병이라고 부르지,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대답했다. 그는 느리고 힘겹게 말했다. 어깨가 무거운 사람이었다. 양초들은 괴테처럼 타올랐다. 책장들은 사유의 영안실로, 인간 시간과 지식 속으로 열린 카메라 옵스쿠라로 고요했다. — 그래. 하지만 모세는 율법판을 썼네. 나는 이런 종류의 논의를 들은 적이 있네. 내게 사람들은 말했지. 역사 시대마다 그 시대가 낳은 도덕이 있다고. 증명의 막대기는 부러질 수 있지만, 증명과 함께 부러질 정도로 지나치게 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시대의 사회적 도덕은 정치적 도덕이라고들 하지. 화학이라는 학문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이미 폐지된 야트 문자로 ‘소’를 쓰는 무식한 사람이어도 된다는 거야. 무지렁이고 술꾼이어도 된다는 거야. 약속에 충실하지 않아도 되고, 말하자면 물건에 대해 가리지 않는 사람이어도 되고, 여자에게, 남편에게, 가족에게 정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가족적 청결에 대한 모든 관념을 잃어버린 사람이어도 된다는 거야. 어쨌든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옛 도덕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과 매춘이 서로의 개념을 뒤섞어 버린 셈이지. 중요한 건 정치적으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거야. 아주 도덕적이거나 아주 교양 있을 필요도 없고, 다만 — 정통이어야 한다는 거지. 정치적으로 무식한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고. 바로 이 사람들이 또 말하네. 정치적 재능도 배우의 재능, 작가의 재능, 화가의 재능처럼 태어난다고. 그들은 훌륭한 음악가라도 정치적으로는 무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약속과 교양과 여성에 대한 명예에 충실한, 더없이 정직한 천문학자도 있을 수 있다고. 그런데 여자들은, 그 사람들 말로는, 남자들의 불명예에 제 불명예로 아주 기쁘게 응답한다고 하더군. 천문학자는 세계적인 이름을 지닐 수 있어도, 그런 천문학자는 우리 사회성의 초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하네. 이런 부류의 철학자들은, 그 천문학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에 관심을 두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 별들 때문에 바빠서 말이야. 이 철학자들은 누가 옳은지 결정하지 못하네. ‘제발 봐주십시오, 그는 술꾼에 여자를 밝히는 자 아닙니까, 그의 집에는 국가 소유 가구가 있고 박물관 표찰조차 떼어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문맹입니다!’ 하고 호소하는 천문학자들이 옳은가. 아니면 그 천문학자들에게 맞서는 자들, 국가 가구 위에서 살지만 혁명을 만들 줄 아는 자들, 천문학자들이 별을 지킬 줄 알듯 혁명을 만들 줄 알고, 만들 줄 알았고, 혁명을 위해 죽을 줄도 알았던 자들이 옳은가. 그 사람들은 거대한 의지와 판단력과 합리주의와 두뇌로 살아야 한다고들 하지. 모든 것을 이성에 종속시키고, 이성 너머에 놓인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고. — 나는 그런 대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런 대립은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한 모세에 대한 자네 논의를 떠올리게 해. 그래, 그는 이르지 못했지. 하지만 그는 율법판을 썼네. 우리는 — 살아야 하네! 우리는 우리의 피로 씻겨야 할 미래의 율법판을 써야 하네. 자네는 조금 허무주의자야. 자네는 이 율법판들이 어떤 소스 위에서 지져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자네와 나, 우리는 사람들의 뒤통수에 총을 쏜 적이 있네. 이 모든 것은 우회로야, 아주 맞아. 그런 소스는 새 삶에서는, 약속의 땅에서처럼, 알려져서는 안 되네. 바알들과 보디발의 아내의 술책들이 잊혀야 했던 것처럼 말이야.[6]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단번에 결정하지. 공산주의 도덕도 특히 그렇네.

— 표도르 이바노비치, 당신은 물고기에 대해 말씀하시네요.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어요,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조용히 말했다. — 지금 옛 식으로는 사순절이라 얼린 나바가 생선을 팔아요. 제가 시장에서 돌아오는데 갑자기 제비꽃 냄새가 났어요. 아주 좋은 냄새였어요. 저는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찾기 시작했어요. 거리는 텅 비고 서리가 맺혀 있었고, 저는 향수 같은 건 아무것도 쓰지 않았어요. 장바구니 쪽으로 몸을 숙였더니 — 나바가 냄새가 났어요. 고개를 들었더니 — 제비꽃 냄새가 났고요. 마침내 저는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깨달았어요. 묽어진 나바가 냄새는 제비꽃 냄새와 닮아 있어요. 나바가 생선에서 제비꽃 냄새가 났던 거예요. 삶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요. 나바가의 생선 냄새가 봄 냄새로 바뀌는 일 말이에요.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생선은 상해 있었어요.

— 아주 맞는 말입니다. 대단히 고맙소. 류보비 피메노브나, 나바가의 제비꽃을 조심하시오!

벗들은 심장과 심장으로 건배했다. 그 항아리들은 쏟아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표도르와 에드가르의 생각은 러시아의 마을들과 추바시인들 사이로, 공장들과 건설 현장들 사이로, 영국의 탄광 곁과 양쯔강 골짜기들로, 슈틴네스 콘체른 곁과 맥도널드의 경력 주위로 떠돌았다. 이 사람들에게도 일상이 있었다. 상관, 부하, 동료, 벗, 무심한 사람들, 적들, 성공과 실패가 있었다. 그리고 괴테의 양초와 책이라는 카메라들의 고요가 있는 이 시간들에, 에드가르와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들의 온갖 일상에 대해 말했다. 어제와 그제의 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고, 그들의 일이며, 그들의 여론을 만들어 내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괴테에게서 태어난 양초들이 타올랐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일어나 떠날 시각까지. 그 별들이 살아 있는 시간에,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죽은 듯한 거리의 눈길을 지나 사디코프를 배웅했다.

26

딸 리사는 자기 질문을 계속 밀고 나갔다. 리사는 책들 사이의 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 에드가르, 아빠가 말했지, 아빠하고 엄마하고 나하고 미시카하고 —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산다고. 우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런데 인형 밀라는 — 헝겊으로 만들어졌는데 — 그 애도 살아 있어?

리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 동화 하나 해 줘.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인형이 왜 살아 있지 않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리사는 지루해졌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곰이 자기가 앉아 있는 바로 그 나뭇가지를 자르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좋아. 하지만 엄마가 아빠보다 동화를 더 잘해, — 리사가 말했다.

— 왜?

— 엄마 동화는 그림 있는 책 속에 있는데, 아빠가 말하는 건 곰이 나뭇가지를 자르다가 떨어지는 게 하나도 안 보여. 엄마 건 책에 다 그려져 있어.

리사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맞은편 탁자 위에 앉아, 책들 속으로 자라 들어가고 책들에서 자라 나왔다. 작고, 붉은 머리에, 명랑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리사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이는 무서운 가위처럼 손가락을 쫙 벌리고, 혀처럼 두 다리를 흔들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리사가 카펫 위에서 노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카펫은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서재를 덮고 있었다. 카펫의 고향들, 카슈가르와 시라즈에서는 카펫 짜는 사람들이 카펫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카펫 앞에는 장기판 앞에 앉듯 앉아, 무늬와 시간의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유럽인들은 이 문자를 알지 못하고,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리사에게는 카펫 위에 하나의 온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 강, 바다, 들, 도시들이. 이 카펫은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에게 아버지들에게서, 어린 시절에서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도 리사처럼 이 카펫의 세계들을 보았으나, 이제는 잊어버린 것이었다. 리사는 아버지에게 카펫 위 어디가 콜롬나이고 어디가 모스크바인지, 어디가 건설 현장이고, 모스크바에서 콜롬나까지 카펫 위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강으로, 그리고 철도로.

리사는 아버지 등에 올라타 식당을 지나 침실로 갔다. 아버지가 제 작은 침대 곁에 잠깐 앉아 있게 하려고. 스쿠드리나 노파들의 집 낮은 창 너머로는 눈에 덮인 정원이 자라고 있었고, 때로는 부랑자 오조고프의 목욕간 창문에 불이 켜졌으며, 하늘에서는 별들이 아른거렸다.

라슬로의 집이라는 세계는 단단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27

사랑이란 무엇인가, 베라 그리고리예브나?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라는 영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하찮은 것, 바로 영이라는 곱셈인자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하던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의 연설의 법칙들, 곧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를 정당화하던 그 법칙들은, 인간이 저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이 무엇인지, 명예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결단하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인간의 개성이 지워지는 시대, 죽음의 영들이 사슬로 변하는 듯 보이는 시대에도, 그 사슬은 결코 목숨을 건 도박의 족쇄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자기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세에 관한 이야기들도 여기에 이어진다.

인간 세계에서 일부일처의 사랑은 생물학적 법칙이 아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와 영원히 묶여 있었다. 올가는 그가 한 인간으로 형성되어 가는 길을 함께 걸었고, 그에게 딸, 곧 그의 사랑과 미래를 낳아 준 여자였다. 그러나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육체적으로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은 아니었다. 그 시대의 아주 많은 남자들이 그러했고, 많은 여자들이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난방 화차 안에서, 침목 위에서, 우연한 도시들에서, 우연한 밤들에, 그때는 생활의 질서가 부서지고 누구의 등 뒤에도 목숨을 건 도박의 영이 서 있었으므로, 아무런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 여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여자들은 여자라는 자기 존재로 기쁨을 주었고, 그 기쁨은 등 뒤에 선 영을 쓰러뜨리는 영원처럼 보였다. 혁명의 화재는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여지를 머릿속에 남겨 두지 않았고, 여자들은 새벽과 새로운 길들 속에서 사라져 갔다.

내전의 세월은, 비탈 아래에서 치워진 난방 화차들과 함께 사라졌다. 나머지는 일상의 도덕으로 정당화되었다. 삶은 둘이었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 두 번째 삶은 숲속 늑대의 오솔길, 눈에 띄지 않는 굴, 은밀한 표식과 자국과 길표를 닮아 있었다. 첫 번째 삶은 혁명 건설의 일들, 책이라는 카메라 옵스쿠라, 가정의 관습, 우정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삶에서 사람은 두 번째 삶으로 자기 자신을 꺼내 놓을 수 있었고, 또 그래야 했다. 낮 동안의 백 가지 업무 대화와 건설 현장에서 걸려 오는 야전 전화들 가운데 하나, 전화 한 통이거나 단둘이 나누는 말 하나가 있었다. 어느 시각, 어느 장소, 모스크바행 열차에 관한 말이었다. 그러면 그 시각과 그 장소에서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신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오직 기쁨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곳. 애인 노릇에는 피로의 일상도, 루블도, 성격의 뒤꼍도 없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비밀이라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모두에게 숨겨진 그 은밀한 길과 눈에 띄지 않는 표식과 만남의 장소가 아주 많은 것을 정당화해 준다. 여기, 일과 시간에서 떼어내 두 번째 삶으로 옮겨 놓은 이 시간들에는, 여자에게서 얻는 향락의 기쁨만이 있었다. 여자의 손바닥이 남자의 눈 위에 놓이면, 때때로 온 세계를 가릴 수 있다. 그것은 시각에 관한 물리 법칙 때문만이 아니다. 손바닥이 세계보다 더 커지는 방식으로 세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여자의 무릎은, 전투에서 총탄 아래 죽음을 생각할 때와 똑같이 심장을 죄어 올 수 있다. 죽음과 사랑은 영일 뿐 아니라 등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측량 작업 중 맞은 희끄무레한 새벽의 밤이 그 연애의 시작이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 사디코바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를 사랑했고, 그가 건설 현장에 왔을 때에도 그의 애인으로 남았다. 마리야는 자기 안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바치려고 그를 향해 나아갔다. 그녀는 고전 음악가들의 길 속으로 자기 사랑을 내려놓은 채 사랑했다. 아무것도 변명하지 않았고, 변명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조가 제 머리를 제 날개 밑에, 혹은 야생의 타조가 사는 뜨거운 사막의 모래 속에 숨기듯,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가슴에 머리를 숨겼다.

모든 남자는 여자를 소유하는 행복을 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그보다 더 큰 행복, 한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는 행복을 안다. 모든 뜻과 모든 생각이 바로 여기,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는 행복을. 시간에서 떼어낸 만남의 시간은 오전 열 시이기도 했고, 밤 열 시이기도 했으며, 오후 네 시이기도 했다. 은밀한 길 역시 기계공장 쪽 숙박소이기도 했고, 풀밭과 슈로보 숲이기도 했으며, 모스크바행 열차이기도 했다. 그 은밀한 길의 시간들은 언제나 비범하게, 자기 자신에게서 훔쳐 낸 시간처럼 찾아왔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 입맞춤 뒤로, 현관 계단 뒤로, 골목의 사거리 뒤로,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 곧 업무와 행위와 걱정과 토목·암반 하위 부서의 작업 지시와 화강암과 ‘인력’의 삶 속으로 다시 켜졌다. 골목 사거리 너머로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돌아가, 마리야 표도로브나에게, 곧 남의 여자이자 친구의 아내에게 인사하고, 건강을 묻고, 아내의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인간의 일들에서는 아주 자주, 은밀한 일들이 도덕의 저울 위에 올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골목들 너머, 진짜 첫 번째 삶에서는 어깨가 다시 일에 메어 들어갔고, 나날은 납빛으로 펼쳐진 풀밭, 명령, 회의, 계산, 업무와 의지 속으로 녹아들었다. 거기서는 생각을 흘려 버려서는 안 되었고, 역사의 출정 속에서 그것들을 지휘해야 했다.

숲속 사냥꾼들은 몰이로 늑대를 잡는다. 포위꾼들은 늑대의 길을 추적한다. 사냥꾼들은 늑대가 빠져나갈 길목에 서고, 숲 사이에 깃발을 둘러친다. 숲은 고요하고 느리며 말이 없다. 그 말 없는 숲속에서 몰이꾼들이 야유하고 고함을 질러 늑대를 일으키고, 사냥꾼과 깃발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몰아간다. 늑대의 삶은 죽음이 된다.

림마 카르포브나의 삶이 나바가 생선 냄새가 제비꽃 냄새로 변한 운명을 닮은, 스쿠드리나 노파들의 집에서는 책들 뒤에서 붉은 머리 리사가 나타났다.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눈은 행동을 낳기 위한 눈이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의 눈도, 공간 너머에서 돌아올 때면, 행동하기 위한 눈이었다. 이 사람들은 행동하기 위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위해 죽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건설의 마지막 해가 왔다.

봄은 아주 큰 태양으로 다가왔다. 눈보라는 겨울 속으로 물러났다. 눈이 밤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태양은 눈 밑에서 찾아왔다. 이 봄에 오카강과 모스크바강은 자연이 만든 천 년의 옛 탈베크를 따라 마지막으로 범람했다. 모놀리트의 등뼈는 이미 오카를 파헤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오월의 하루가 있었다.

정오, 점심 휴식 시간이었다.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사람이 풀밭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신호표지가 내걸렸다. 발파공들이 압축 산소로 화강암을 터뜨리러 풀밭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도와 도면과 표로 뒤덮이고, 바닥 구석구석에 암석 표본이 굴러다니며, 오월의 햇빛이 아주 많이 들어오던 작업실에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전화로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와 마리야 표도로브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마리야에게 말했다.

— 마리야, 중요한 일로 십오 분 뒤에 내게 와 주오. 꼭 부탁하오.

에드가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 에드가르, 지금 곧 내게 와 주게. 아주 중요한 일이야. 부탁하네. 내 사무실로.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 전화들에서부터 마리야 표도로브나와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사이의, 이 이야기에 진정 필요하고 진짜인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네 시에 일어나 작업장으로 갔다. 십장과 조장들의 부주의 때문에 물이 가물막이의 모래와 파시나[7]를 씻어 냈고,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닌데도 잠수복을 입고 물속, 강바닥으로 내려가 수면 아래의 작업 부분을 살펴보았다. 잠수부 둘이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고무 몸통 속으로 밀어 넣고, 신호줄을 감아 조이고, 납 신발을 신겼다. 스카판드르, 곧 웰스가 그린 화성인의 해골을 닮은 알루미늄 투구는 밀폐 마개처럼 나사로 죄어 붙이고, 그 마개 뒤에서는 불어 넣는 공기가 웅웅거린다. 땅은 끊어지고, 척도는 바뀌며, 물은 머리 위로 닫히고, 머리 위로는 빠져나간 공기의 희끄무레한 거품들이 달린다. 물속에서 물리의 법칙은 빛과 시야와 압력을 바꾼다. 인간에게 물속은 낯설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파시나를 살폈다. 파시나는 싹을 틔우고, 서로 얽히고, 자기 자신으로 숨이 막혀 있었다. 물속은 어둡고 차가웠으며, 멋대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이 잠수복 유리 너머를 들여다보려 했다. 압축되어 휘파람처럼 새는 공기가 귀를 울려, 물속의 고요를 듣는 것을 방해하면서 오히려 그 고요를 도드라지게 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보트 위로 올라왔을 때, 태양은 거대하게 보였다. 바로 그 태양과 물속에서 부풀어 오른 파시나가 불안한 생각을 낳았으나,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것을 의식 속에서 알아보고 정리할 수 없었다. 그는 가물막이에서 우회 운하로 쓰이는 콘스탄티놉스카야 옛 물길을 따라, 보트로 운하를 건넌 뒤, 수석기사 관리소, 자기 사무실로 걸어갔다. 콘스탄티놉스카야를 지나며, 길에서는 새 하상 기슭의 파시나 덮개가 업무상 필요한 경사를 제대로 이루고 있는지 점검했다. 하루는 넓고 햇빛 가득하게 밝아 왔고, 구름들은 푸른 하늘 속에서 녹아 사라지려고 생겨났다. 파시나 쌓기 작업에는 여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통치마를 입은 초원의 처녀들이었다. 땅에는 막 베어 낸 검은 버드나무와 갯버들 가지들이 굴러다녔다. 여자들은 버들가지를 가는 가지끈으로 조여 버들 땋은 다발을 묶고 있었다. 그들은 활기차고, 기사를 향해서도 그의 등 뒤에서도 즐겁게 웃었다. 파시나들은 줄줄이 강바닥에 깔리고, 역시 버들로 만든 갈고리 말뚝으로 땅에 박혔다. 검은 버드나무와 갯버들은 물속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로 붙들려, 그 뿌리로 바닥 흙을 붙들어 두도록 파시나에 쓰인다. 그리고 그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감각을 알아차렸다. “이 모든 것이 물에 잠길 것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를 향해, 또 자기 뒤에서 웃는 우람한 처녀들과 아낙들을 흘끗 보다가, 갑자기 자기 자신을 갯버들 한 그루의 자리에 보았다. 이것은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는, 버들 끈에 천 개씩 묶이고 조여진 그 가지들의 삶이 남아 있었다 — 물이 그것들을 덮쳐도 그것들은 삶을 간직하고 — 한 가지의 뿌리는 다른 가지의 몸을 파고들며, 가지들은 먹을 즙을 찾고, 흙을 찾고, 서로를 죽인다 — 가지는 흙에 닿아 배가 부르다 — 그러나 숨이 막힌다 — 그리고 숨이 막히면서, 이웃을 죽이면서, 수종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태양을 향해 뻗는다 — 이것은 잠수복을 입고 물 밑바닥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물고기가 공기 속에서 죽는 것과 꼭 같다. 이 파시나 깔개의 참호들을 따라 선 알록달록한 여자들과, 통 넓은 푸른 바지에 가슴을 드러낸 토공들은 삶과 러시아의 옛것을 대표하고 있었다 — 둘 다 아주 피와 살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고동이 울리고 사이렌들이 울부짖었고, 사람들은 공사장에서 물러 나갔으니, 발파공들이 공사장으로 가서 액체 산소로 화강암을 깨뜨리려는 참이었다 — 물속의 버드나무들에게 모자라는 바로 그 산소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공장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노동자들 틈에 끼어 덤프카를 타고 자기 사무실로 갔고 — 아내와 친구를 기다렸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표도르를 아주 주의 깊게 쳐다보고, 창가로 가서 창턱에 걸터앉았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평온하고 맑은 모습으로 탁자 곁에, 표도르 이바노비치 맞은편에 앉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궐련을 빨고 있었다. 사이렌이 다시 울부짖었고, 곧이어 첫 폭발이 쿵 울려 집을 뒤흔들고 유리창을 쟁쟁 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들었다.

— 그래, 내게 무슨 말을 하겠나, 에드가르?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 무엇에 대해서 말인가? —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되물었다.

— 자네와 마리야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자네들 사이에 있는 그 관계에 대해 알고 싶네, — 사디코프가 말했다.

라슬로의 눈이 행동하려는 눈이 되었다. 그는 굽은 선을 그리며 방을 가로질러 지도 탁자를 돌아 탁자 곁에 섰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의자에서 일어났고, 그녀의 얼굴을 눈여겨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밖에는 해가 비쳤으니, 어찌나 강한지 날카로운 빛살이 사무실 안의 그림자를 까맣게 만들었다. 집 뒤에서는 굴착기가 울부짖고 쉭쉭거리고 숨 막혀 했고, 누군가 외치고 있었다. “미-타-아-이! 어이 미타아아이, 나 점시이임 먹었어!” — 비극의 순간에 사람에게는 언제나 몸짓이 적다.

— 좋아, 내가 말하겠네. 자네들에게는 힘든 일이니까. — 그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 오늘 네 시에 회의가 있네, 에드가르. 자네도 알지.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가 아니야. 탐보프의 어느 사제가 프레페랑스 카드놀이를 하다가, 짝의 판을 망쳐 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프레페랑스판에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형제다!” 좋은 말이야. 물속 파시나의 상태에 관한 고찰도 덧붙일 수 있겠지. 그것 때문에 내가 대화를 미루지 않기로 했으니까. 우리는 의식적으로 살아 있는 가지들을 물에 빠뜨리고 있거든. 그러나 지금 내게는 알레고리를 늘어놓을 여유가 없네. 내가 자네들을 부른 까닭은 이렇네. 삼 년 전, 팔월 팔일, 스파스코예 영지에서 자네들, 곧 마리야, 내 아내인 자네와, 에드가르, 내 친구인 자네가, 내게 숨긴 채 서로 맺어졌네. 나는 아팠고, 우리 관계가 아주 복잡해지리라는 것을 알았네. 나는 그것을 우연으로 여겼지. 나는 영혼들의 지배자가 결코 아니네. 내게도 그런 모험들은 있었고, 누구에게나 그런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네. 하지만 일 년 전, 자네, 에드가르가 마리야에게 돌아왔네. 나는 정확히 아홉 달 동안 일기들을 읽었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열정이거나, 그것이 진지한 것이라면 자네들이 내게 말해 줄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네. 그때 스파스코예에서 자네, 에드가르, 빈손으로 나와 잔을 부딪치려 했지. 그러나 자네는 내 친구야, 에드가르. 우리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성을 건설하고 있네. 따라서 새로운 도덕도 건설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는 일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해 일에 바치기 위해 온 힘을 긴장시켜야 하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났네. 그래서 나는 자네들과 말하고 있네. 내게 아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지 않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리야를 사랑했으니까. 시간은 내게 이것이 일시적 열정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네. 나는 일부다처나 일부다부가 공산주의 도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정직함은 공산주의자의 의무라고 생각하네. 다만 지금은 논의하지 말고 행동할 것을 제안하네. 에드가르, 지금 내 마음으로 자네를 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이해할 걸세. 우리는 새로운 사회성과 새로운 도덕을 건설하고 있네. 그리고 내 생각에, 에드가르, 우리에게는 싸울 까닭이 없네. 그러나 자네도 이해할 걸세. 나는 내 아내가 욕보임당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네. 자네들이 사랑한다면, 불필요한 거짓 없이 결혼하라고 제안하네. 나는 이것이 사물의 자연스러운 진행이라고 보고, 그리하라고 주장할 것이네. 우리 집 열쇠는 자네에게 있네, 마리야. 나는 이 사무실에서 살겠네. 자네, 에드가르, 자네는 스칼니 마을의 건설 현장에서 아파트를 받을 권리가 있네. 마리야, 자네가 우리 물건들을 정리하고, 자네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나는 이 사무실에 남겠네. 물건들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네. 잘 가시오. 가시오.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오. 에드가르, 네 시에 회의가 시작되지만, 세 시에 들러 주면 좋겠네. 흥정을 좀 해야 하거든.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판결을 듣고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사디코프의 말 항아리를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받아 냈다. 그의 눈은 날카로워졌다. 초원에서 적을 살피던 그의 유목민 조상들의 눈이 날카로웠던 것처럼.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 아니야, 에드가르, 우리는 적이 아니야, 아니네.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지. 나는 마리야에게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네. 미처 하지 못했어. 겨를을 내지 못했지. 모든 것을 단번에 다 생각할 수는 없네. 나중에 이야기하세, 에드가르. 마리야, 손을 주시오. 입 맞추겠소. 가시오.

전화가 울렸다.

— 네,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접니다, 사디코프. 5번 궤도식 굴착기 말입니까? 좋습니다. 네. 아니오.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내게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네. 아니오, 나는 그저 거짓된 처지를 필요하다고 보지 않을 뿐입니다. 그녀는 결혼합니다. 에드가르 이바노비치와. 네. 회의는 세 시 반입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수화기를 걸었다. 업무용 사무실은 사무적이고 작업 중이었다. 벽은 도면들로 바라보았다. 창은 풀밭을 바라보았다. 창밖에서는 태양이 빛났고, 바람은 젖은 흙과 풀과 꽃의 냄새를 실어 왔다. 이런 날에는 인간은 땅과 벗이어야 한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머리를 탁자 위, 도면 위에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 여기는 업무용 사무실이오, 마리야, —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 그만하시오. 가시오. 다음 사람들을 부르겠소.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소.

사디코프는 벨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