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1
강(江)은 지구가 천문학적 상태에서 지질학적 상태로 옮아가던 그 시대에 생겨났다. 규석, 화강암, 점판암, 모래, 점토 — 탈베크[1] — 강, 물의 흐름 — 유량, 활단면(活斷面), 수위, 유로(流路) — 여울과 소(沼)와 모래톱 — 오직 물리의 법칙, 힘과 무게와 중량의 법칙만이 결정권을 쥐는 지극히 엄정한 합법칙성. 자연은 직선운동을 알지 못하며, 모든 강에는 경사의 수평면을 따라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두 개의 흐름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나는 충돌하며 위로 솟구치는 흐름, 쐐기 모양으로 한데 모여드는 흐름으로, 항로(航路)의 바닥까지 내려가 그 바닥을 깎아내고 깎인 모래를 양옆으로 흩뿌리며 두 번째 흐름으로 변한다. 두 번째 흐름은 갈라지며 바닥을 따라가는 흐름, 항로의 바닥에서 기슭으로 향하는, 더럽혀지고 짓눌려 제 살아 있는 힘을 잃어버린 흐름이다.
수백 년 동안 그러했고, 또 그러하다.
강의 골짜기는 침식에서 생겨난다. 강은 제 탈베크를 따라 언제나 뱀처럼 굽이치며 가지, 결코 곧은 물길로 가는 법이 없으며 — 강바닥이 떨어지는 수위는 계단을 닮았으니 — 여울, 소, 여울, 소 — 강의 폭포는 강의 발원지 쪽으로 물러나며 살아간다. 물리의 법칙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니, 그러지 않았다면 자연 속에서 소와 여울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의 살아 있는 힘이 풀려나 헤아릴 수 없는 힘과 빠르기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리하여 강은 아무것에도 가로막히지 않은 채 제 물을 죄다 쏟아붓고는 사라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곧은 흐름을 알지 못한다. 물은 제게 장애물을 세우기 위하여 제 물길을 부순다.
이 두 흐름, 갈라지며 바닥을 따르는 흐름과 충돌하며 위로 솟는 흐름, 바로 이 둘이 소와 여울의 운명을 결정한다. 강의 굽이가 가파를수록, 오목한 기슭의 휘어짐이 가파를수록, 충돌하는 흐름은 더 빨라지고, 살아 있는 힘은 더 거세지며, 바닥은 더 깊이 깎인다 — 그리하여 여기 소가 생겨난다. 그러나 물은 지쳐, 제 힘을 부수고 나서, 바닥의 고요한 안식으로 쉬러 나온다. 물은 더 이상 바닥을 깎아낼 힘이 없다 — 그리하여 여기 여울이 생겨나, 소와 소 사이에 모래로 누워 있다. 흐름의 힘이 토양보다 세면, 그 힘은 제 힘을 다 써버리고 균형을 맞추려 기슭을 부수고 깎아낸다 — 그리하여 강은 제 살아 있는 흐름을 넓되 낮은 가로의 수면으로 펼치며 얕아진다.
지구가 천문학적 상태에서 지질학적 상태로 옮아가던 그 시대부터 그러했다. 강의 물은 포물선, 쌍곡선, 타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수력공학 기사들은 강의 흐름의 법칙을, 오차란 있을 수 없는 수학의 공식 속에 담아 놓았다.
쥐라기, 데본기, 석탄기의 지층을 파헤치며 기사들은 강의 나이를, 그 젊음과 늙음을 계산해 낸다. 콜롬나 부근 오카강에 던진 나뭇조각은 카스피해로 떠내려가겠지만 — 거기 같은 자리에 던진 돌은, 충돌하는 흐름의 살아 있는 힘이 그 돌보다 세질 때라야 비로소 물에 들려 올라간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며, 그래서 돌은 강바닥을 어지럽힌다. 직선운동은 영(零)처럼 추상적이다. 수천 년 전 라(Ra)강이라 불렸던 볼가의 사라토프 시 부근에서, 칠십 년 전 벽돌을 실은 거룻배 한 척이 가라앉아 제 뒤의 흐름을 부수고 — 사라토프 맞은편에 모래로 된 섬 하나를 통째로 낳았으니,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볼가를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 물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아, 적은 유량에서 많은 유량으로, 갈수기에서 홍수기로 옮아간다 — 그러나 일단 길을 떠나면, 제 무게에 복종하여 오직 그 무게만으로 움직이는 물은 제 운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수력공학 기사들은 물의 힘을 안다 — 그리고 그들은 이 힘과 싸울 수 있음을 안다. 결코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결코 그것에 맞서지 않으면서, 다만 — 그것을 조율함으로써.
2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는 새 강을 건설하는 공사장으로 레닌그라드에서 가고 있었다.
공사는 여러 현(縣)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콜롬나 부근, 오카강과 모스크바강이 합류하는 지점 아래에서는 오카와 모스크바강의 물을 떠받쳐 뒤로 되돌려 보내는 모놀리트가 세워지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모스크바 부근에서는 모스크바강과 클랴지마강을 잇는 운하가 파이고 있었다. 클랴지마강의 셸코보에서 니즈니까지는 새 물길이 마련되고 있었다. 공사의 목적은, 그 흐름의 길이 콜롬나에서 모스크바강의 옛 물길을 거슬러 모스크바까지, 모스크바 아래 운하를 지나 클랴지마까지,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니즈니까지 클랴지마의 물길을 따라가는 강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 있었다.
공사의 발기인인 폴레티카 교수는 콜롬나로 가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하루를 묵었다 — 고스플란, 최고국민경제회의, 모스크바현 토지부, 교수가 ‘건설 사무소’라 부르는 여러 기관에 들러야 했던 것이다. 폴레티카 교수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으로, 동작이 느리고 엄격하며 등이 굽은, 엄격하고 낡은 원칙을 지닌 노인이었으며, 혁명을 살아온 사람치고는 보기 드문 운명을 지닌 사람이었다. 유럽에 이름이 알려진 학자이자 위대한 이론가요 위대한 실천가이며 건설자인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분열시킨 그 당대회가 열린 날들로부터, 곧 천구백삼년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을 그 볼셰비키적 해석으로 받아들였다. 천구백십칠년에 러시아에는, 교수가 젊은 시절에 그 철학을 받아들였던 바로 그 정의가 찾아왔고,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새로 고쳐 세울 필요가 없었다. 이십사년에도 십사년과 마찬가지로 교수는 옛 정자법으로 글을 썼고, 자신의 강의를 이런 말로 시작했다. —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 러시아 전체에서 두세 십 명 남짓한 이들만이 이십사년에도 십사년의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 권리를, 혁명 이전에 그들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자신의 업적으로 얻어냈으니, 그 업적이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고 제정 러시아 시절의 온갖 다툼 위로 그들을 들어 올렸다 — 또 그들을 알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 권리는, 어떤 시대에도 변함없이 통하는 것으로 드러난 그들의 인간적 품격으로 더욱 굳건해졌으니, 혁명은 그들의 권리를 확인해 주었다. 폴레티카 교수는 노인답고 교수답게 괴팍한 노인으로, 결코 자동차를 타지 않았고 언제나 프록코트 차림으로 집을 나섰으며, 느림을 진보의 근본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떠받들었고, 이십오년에는 레닌의 편지가 든 두툼한 묶음을 레닌 연구소에 기증했다. 십사년의 학생과 기사들이 교수에게 품었던 존경은, 이십사년의 학생과 기사들이 품은 존경과 똑같은 것이었다.
천구백이십육년부터 러시아의 세월을 물들인 그 의지, 곧 산업 건설은 건설자 폴레티카의 여러 설계를 현실로 옮겨 놓았고, 그는 수많은 공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러시아 곳곳을 다녀야 했으나, 피멘 세르게예비치에게 레닌그라드에서 파블롭스크로 가는 채비는 뉴욕으로 가는 채비와 매한가지였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레닌그라드발 급행으로 아침에 모스크바에 도착해 — 삯마차를 타고, 학생 시절부터 늘 묵었고 그를 이름과 부칭으로 알아보는 볼샤야 모스콥스카야 호텔로 갔다. 천구백이십구년에 볼샤야 모스콥스카야는 그랜드 호텔이라 불렸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달걀부침 하나와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들고는 — 역에서 자신을 태워다 주었고 오는 길에 귀리와 직물의 가위[2]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바로 그 삯마차를 타고 — 볼일을 보러 고스플란, 인민토지위원회, 모스크바 토지부로 갔다. 모스크바 토지부에서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모놀리트 공사장에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라슬로 기사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 말을 듣고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눈썹이 엄하게 곤두섰다. 십사년 전 라슬로 기사와 함께 피멘 세르게예비치를 떠나간 것은 그의 아내였던 것이다.
모스크바 토지부에서의 이 대화로부터 이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사건의 사슬이 시작되었다.
사도보-트리움팔나야 거리, 옛 현 젬스트보 청사 건물에 자리한 모스크바 토지부에서, 삯마차는 교수를 골목길로 — 보로트니콥스키, 피메놉스키 골목으로 — 태우고 갔고,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현상의 반복이라는 법칙을 따라 두 번째로 제 아내를 떠올렸다.
이십오 년 전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갓 학교를 마친 콧수염도 나지 않은 기사로서, 스타리 피멘 교회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때는 젊음이 있었고 모든 것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날, 젊은 기사는 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엄숙하게 제단 앞에, 그리고 모든 순결한 사랑이 그러하듯 성스러운, 신부(新婦)를 향한 사랑 앞에 서 있었다. 그날로부터 십일 년 뒤 아내는 피멘 세르게예비치를 떠나며 아이들을 데려갔고, 인간의 품격에 관한 상념을 남겨 놓았다. 혼례를 올린 그날 이후로 교수는 이 교회에도, 이 골목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교수는 스타리 피멘 교회 곁에 마차를 세우라고 일렀다. 교회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모스크바 전당포 경매장.”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교회 마당으로 들어섰다. 현관 계단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나무 위에서는 까마귀들이 울어댔다. 허리띠를 졸라맨 짧은 외투며 현관의 머릿수건들, 스몰렌스크와 수하렙스카야와 타간카 시장의 분명한 사람들이, 점잖고 사무적인 낯으로 따분해하고 있었다. 그 무지렁이들과는 떨어진 곳에, 서로 몹시 닮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장인인지 인텔리겐치아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묘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대략 오스트롭스키의 등장인물들처럼 — 칠피 장화에 칠피 챙이 달린 차양모를 쓰고 검은 긴 자락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자신도 늘 프록코트를 입는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그들의 프록코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손위로 보이는 자가 가축 장수 흉내를 내며 교수에게 말했다.
— 네 시에 시작합니다. 마호가니에 관해서라면 별것 없습니다. 불(Boulle) 양식 장식장 하나가 있긴 하지요. 들어가서 직접 보십쇼. 필요하시면 한 벌로 맞춰 드릴 수도 있고요.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채 고맙다 하고는, 화가 나 모자를 홱 잡아당기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물건들을 쌓아 둔 창고 같았다. 벽가에는 장롱이며 옷장이며 소파가 나뒹굴었고 재봉틀도 많았다. 성상(聖像)들은 급히 회칠한 벽에서 사라졌고, 제단은 헐렸으나 제단의 벽화는 남아 있었다. 벽은 공고문과 포스터로 덧발려 있었다. —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방위를 굳건히 하자!” — 바닥의 석판은 진흙 부스러기로 뒤덮여 있었다. 제단에서 남은 계단 앞에는, 군청 소재지 극장에서처럼, 흥정하는 자들을 위한 긴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제단 자체는 찬장과 옷장 밑으로 사라져 버렸으며, 그 위로 사람 키 세 길 높이에, 옷장 두 개를 받침 삼고 그 위 식탁 위에, 의사봉이 놓인 작은 탁자와 경매인을 위한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교회 안, 곧 전당포 안에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 그들은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물건들을 살펴보고는, 옷장이며 침대며 안락의자에, 그 안락의자와 소파와 재봉틀의 번호표와 나란히 내걸린, 경매가 시작될 값들을 큰 소리로 따져대고 있었다. 어스레한 빛이 교회 창의 쇠창살과 먼지를 뚫고 떨어졌다. 교수는 다른 이들을 따라, 쓸데없이 이 물건 저 물건을 옮겨 다녔다. 여기서는 전당포에서 기한 내에 찾아가지 않은 물건을 경매에 부치고 있었다 — 온갖 우연으로 얼룩진 가난을 팔고 있었다. 사라사 천을 씌운 푸프 의자며 니켈 도금한 침대며 보리수로 만든 식탁이, 러시아 가난의 역사를 읽어 주고 있었다. 경매에 온 사람들은 장사치들이었다 — 곧 물건의 옛 주인들은, 제 가난뱅이 살림이 헐값에 넘어가는 그 헐값조차 손에 쥐지 못했던 것이다. 전당포 안은 눅눅하고 잿빛이었으며 도무지 거룩하지 않았다.
여드름투성이 젊은이가 모자를 쓰고 외투 앞을 풀어 헤친 채 손가락을 조끼 주머니에 찌르고 옷장 위로 기어 올라가더니, 옷장들 위에 얹은 식탁에서 망치를 두드리며 판에 박힌 가락으로 기운차게 외쳤다.
— 경매 시작합니다! 일 번. 다들 보셨지요?! — 이십! — 더 부르실 분?! — 하나!
손님들은 얼굴을 엄격한 무관심 속에 통조림해 놓고 벤치에 앉았다. — 둘!
— 이십일! — 뒷벤치에서 긴 외투 차림의 사내가 무심하게 외쳤다.
— 왼쪽에서 이십일, — 더 부르실 분!? — 하나! — 여드름투성이 멋쟁이가 기운차게 외쳤다. — 둘!
교수는 교회에서 나왔다. 까마귀들이 나무 위에서 소란을 떨었다. 땅거미가 고요하고 맑게 내려앉고 있었다. 배우 한 패가 보도 대신 깔아 놓은 마당의 널판을 따라 가고 있었으니 — 아마도 스타리 피멘 뒤에 자리 잡은 배우들의 작은 선술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배우들은 한 줄로 걸으며 껄껄 웃었다. 삯을 제대로 못 받은 마부가 큰 소리로 배우들을 나무랐다.
— 내가 전차에서 들은 이야기를 안 했던가? — 앞서 걷던 배우가 말했다. — 전차마다 금주 포스터가 걸려 있잖아. 그중 하나에 이렇게 적혀 있어. “첫 잔은 네가 잡지만, 둘째 잔은 너를 잡는다!” — 내가 전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직공이 그 포스터를 한 번, 두 번 읽더니, 한숨을 쉬고 생각에 잠겼다가 진심을 담아 내게 이러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구먼.” 직공이 말했어. “그런 형편이면 시골에 집을 세 채째 올렸을 텐데 — 그런데 이 망할 것을 마시고 또 마셔서, 그년이 나를 잡을 때까지 암송아지 한 마리를 통째로 마셔 없앤단 말이오!” —
배우들은 다시 껄껄 웃었다. 교수는 자기 마부에게로 다가갔다.
이십오 년 전 젊은 기사는 사륜마차를 타고 바로 이 문 앞에 와서 현관 계단 곁에서 신부를 기다렸으니, 제 이름을 지닌 교회에서 혼례를 올리기로 한 것은 조금은 장난기에서였다. 그때 오월은 꽃이 지고 있었고, 혼례 시각에 땅거미가 내렸으며, 바로 이 나무들 위에서 까마귀들이 — 파괴의 넋들이 — 똑같이 울어댔다. 젊은 기사는 그때 명예도 의무도 행복도 알았고, 평생을 두고 제 손에 받아 든 것, 곧 사랑의 기운찬 무게도 알았으며 — 폴레티카 교수의 사랑은 평생 단 하나뿐이었다. 인간의 노동이 그러하듯 인간의 의지와 명예도 늘 벌거벗은 자연과 싸우니 — 바로 그 자연으로 싸우며, 자연으로 자연을, 노동을, 명예를, 의무를 조직한다. 무엇도 인과의 사슬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진리를, 그에게 진리이고 그의 삶에서 늘 확인된 진리를 알고 있었으니 — 사람은 언제나 사람이 치른 그대로 사람에게 갚는다는 것이다. 고결하지 못한 자에게 고결하게 대하기만 하면 — 그 고결하지 못한 자는 일에서뿐 아니라 생각에서까지 정직해지려 애쓰며 —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없이 고결한 사람을 악당으로 셈해 대하면 — 그는 악당으로 응답한다. 폴레티카 교수는 자연과학자였다 — 고결해야 한다는 인간의 규칙을, 그는 이른바 더 높은 도덕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그저 이롭기 때문에도 필요하다고 여겼으니, 인간에게 고결함이란 더 편하고 더 이롭고 더 이성적이기 때문이었고 — 인간의 이성을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무엇보다 높이 받들었다. 교수는 고결함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병리로 여겼다. 그런 벗어남이 아내와의 결별이었을까 — 아니면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다른 원인들이었을까? — 생물학, 인간 속에 짐승에게서 남은 무의식과 잠재의식, 본능, 피, 유전이었을까? — 그러나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이 모든 것을 인간 속의 어둠이자 인간에게 걸맞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아내는 깨끗한 여인으로, 실러와 투르게네프의 낭만으로 세상을 한정한 조용한 처녀로 왔다. 그녀의 갈색 눈은 푸른 러시아 하늘처럼 맑아지곤 했다. 그런데 피멘 세르게예비치에게 행복하고 힘찬 것으로 보였던 결혼 두 번째 십 년의 문턱에서 — 집안의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남편의 일이 순조롭고, 그의 명성이 쌓이고, 착한 아이들이 자라던 때에 — 아내는 남편을 떠나 대학생과, 아들의 가정교사와 살림을 차렸고, 떠나면서 아이들을 데려갔다. 이 일은 천구백십사년에 일어났다. 교수는 텅 빈 아내와 아이들의 방을 잠갔다 — 그리고 혁명은 이 얼어붙은 방들을 지나갔을 뿐 교수의 서재로는 들어오지 않았으니,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거기 제 강의와 설계와 도면과 공식들과 더불어 홀로, 제 노동과 더불어 홀로 남았다. 천구백십칠년 이후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무엇 하나 고쳐 세울 필요가 없었고, 운명은 그에게 제 개인사, 제 자존심, 삶과 죽음의 문제들을 풀도록 맡겼으니 — 세월의 연대(聯隊)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할 때 누구나 풀어야 하고,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대학생 라슬로는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발자취를 따라 기사가 되었고, 공동의 일이 이따금 그들을 마주치게 했으나, 그들은 영영 모르는 사이로 남았다.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큰아들은 천구백십구년에 내전의 전선에서 전사했다. 아내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모스크바 토지부에서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라슬로가 모놀리트 공사장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들은 떠나간 것으로 돌아가, 시간에 뒤덮인 십 년 세월 속을 파고들었다. 생각은 즐겁지 않게 쌓여 갔다.
마부는 트베르스카야 거리로 나섰다. 해는 저녁놀 속으로 지고 있었다. 모스크바에 전시 체제로 배치된 사무원 계층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시각이었다. 거리 청소부들이 거리에 물을 뿌렸다. 인민위원부와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와 그 밖의 숱한 사무 기관들이 그 시절 모스크바에서 저희 임금표 사람들에게 제복을 입혔더라면 — 그 시각 트베르스카야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포스터처럼 제복으로 가득 찼으리라. 사무원 계층은 전차와 버스로 기어올랐고, 자동차로 으르렁거렸고, 검은 중대를 이루어 보도를 따라 쏟아졌고, 운동용 반바지 차림으로 보도 곁 차도를 종종걸음으로 달렸으며 — 빵을, 소시지를, 보드카를, 양배추 든 겹겹 파이를, 영화표를 사려고 가게 앞에 뱀 같은 줄을 지어 섰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사무원 계층을 좋아하지 않았고, 포스터들은 그를 겁먹게 하여 불안하게 만들었다. 스트라스트나야 광장은 영화와, 이오노프의 책의 집과, 로스타 통신사와, 『저녁 모스크바』와, 『이즈베스티야』의 포스터들로 울부짖었다. 푸시킨 동상은 말이 없었다. 스트라스트나야에서 소비에츠카야까지의 트베르스카야는 베이징을, 천 간판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는 중국 도시를 닮았으니 — 출판사, 잡지, 극장, 영화, 복권의 광고가 길을 가로질러 걸려 하늘을 가렸다. 오직 현 집행위원회 광장 위에서만 하늘이 어두워졌고, 칠월답게 지친 금빛 하루가 고요히 저물어 갔다.
삯을 치르며 교수는 마부에게 물었다.
— 그래, 여보게, 결국 삶에 대해서는 뭐라 하겠나? — 골로먀나인가? —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마부에게서 얻어들은 말을 되풀이했다.
— 골로먀나지요, — 마부가 대답했다. — 물론 안경을 안 쓰고 보면 말입니다 — 안경을 쓰면 쥐뿔도 안 보이니까요!
— 아니, 자네가 틀렸네, 여보게, — 교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 삶은 결코 나쁠 수 없네, 그래서는 안 되네.
볼샤야 모스콥스카야 호텔 식당에서는 악단이 연주하고 있었고, 풀 먹인 식탁마다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건설을 이빨로 맛보겠다고 모스크바로 몰려든 외국인, 기자, 사업가들이 앉아 있었다. 폴레티카는 교수를 이름과 부칭으로 부르는 무심한 웨이터에게 마른 빵과 우유 수프를 주문했다.
현상의 반복은 언제나 예사롭지 않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스타리 피멘 교회를 생각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심부름꾼을 불러, 쪽지를 들려 니콜스카야 거리의 고서상 미하일로프에게 보내, 성 피멘의 전기가 실린 『성인전 월력』을 사 오게 했다.
악단은 그 러시아의 세월에 금지되어 있던 폭스트롯을 듣기 좋게 연주했다. 외국인들은 날마다 저녁 식사를 식당 유흥으로 만들어, 솔랸카와 라스테가이로 이름난 옛 러시아 술집을 유럽-미국식 「팔라스」로 바꿔 놓았다. 외국인 남자들은 회색 여행복 차림으로 느긋했고, 여자들은 무도회 옷차림이었다. 흰옷의 웨이터들은 서두르는 느림으로 위엄을 부렸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배부른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그에게는 생화가 놓인 이 풀 먹인 식탁들에서 저질러져야 하고 저질러져 온 악행과 고통이 보이는 듯했다 —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왜 자기가 악행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영미계로 보이는 외국인들의 식탁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며 호령이라도 받은 듯 껄껄 웃었다 — 피멘 세르게예비치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사람이 재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귀에 이런 말이 들렸다. “돈바스, mal, malheur” — 그는 이를 러시아어로 옮겼다. “악, 불행.” — 재담꾼이 돌아보았고 —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폴토라크 기사를 알아보았다. 폴레티카는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였다. 폴토라크가 한 번 더 돌아보자 — 그의 식탁이 잠잠해졌다. 그러자 폴토라크는 일어나 피멘 세르게예비치 쪽으로 걸어왔고 — 외국인들은 눈으로 그를 좇으며 러시아 학자를 살피다가, 피멘 세르게예비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폴토라크 기사는 인사하며 피멘 세르게예비치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 혼자 계시는군요, 교수님 — 제 친구들, 외국인 기사들이 교수님의 명성을 알고 있어서, 저희 자리로 옮겨 앉아 주신다면 영광으로 여길 겁니다, — 폴토라크가 말했다.
교수는 나른하게 외국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사에게 대답했다.
— 고맙소, 그분들께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 나는 피곤하고, 게다가 우유와 구운 빵만 먹소.
— 네, 네, 교수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말을 들은 듯합니다 — 러시아로서는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 폴토라크 기사가 말하며 교수 곁에 걸터앉았다. — 오늘 공사장으로 가십니까? 저도 시전기궤도국 일로 그리 갑니다.
옷차림으로 폴토라크는 외국인 같았으나 광대뼈는 슬라브인이었다. 그의 푸른 재킷은 남들 눈뿐 아니라 임자의 나리다운 평온을 위해서도 지어진 것이었다. 폴토라크의 가르마는 포마드로 번들거렸다. 그의 집게손가락에서는 옛 세공의 다이아몬드가 번쩍였다. 폴레티카 교수의 눈길은 바로 이 반지에 머물렀다가, 그런 다음에야 기사의 더없이 정중한 얼굴로 옮아갔다. 폴토라크의 눈은 실행하는 눈으로, 영리하고 정확했다 — “그래도 점잖은 사람이라면 지니지 말아야 할 그런 눈이야, — 교수는 생각했다. — 다이아몬드 뒤에 감추는 게 옳지.”
폴토라크 기사는 아주 잘 가꾼 사람이었다 — 그리고 교수는 기사에게서 무엇보다 자기를 놀라게 한 것이 정성껏 관리한 금으로 흉하게 된 이빨들이었음을 떠올렸다. 이 사람은 언제나 모든 건설 위원회에 나타났고, 정부 경제 기관 열 곳에 한꺼번에 근무하고 있었다.
기사가 입을 열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 머리가 희고 털투성이인 거대한 노인, 투덜대는 얼굴, 풀 죽은 안경, 구식 프록코트에 수염 밑으로 나온 흰 나비매듭.
— 물론 아시겠지요, 저희가 방금 그걸로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 알고 보니 돈바스에 물이 모자랍니다, 지금 벌써 모자라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공업 중심지의 하나입니다 —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요 — 스탈린그라드에는 트랙터 공장이 건설되고 있는데, 일 년에 노동일이 삼백 일이라면 날마다 트랙터 백서른세 대를 찍어 낼 겁니다 — 돈바스의 엄청난 의의야 저보다 잘 아시겠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설계와 계획을 거슬러 돈바스가 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돈바스는 물이 말랐고, 거기에는 생산만이 아니라 사람과 온갖 부대 시설에 쓸 물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그림을 그려 봅니다. 물 없는 재앙이 불길하게 돈바스로 밀려오고, 공장들이 지쳐 쓰러져 모래에 묻히고, 모든 것이 햇볕에 타 버리고, 공장들이 숨이 막혀 제 용광로로 헐떡이며 외치는 겁니다 — 물, 물!
— 글쎄, 그렇다 칩시다, — 교수가 말하고는 안경과 텁수룩한 눈썹 사이 틈으로 엄하게 바라보았다.
— 돈바스 급수 설계를 만들고 계신다지요? — 말씀 좀 해 주십시오!
— 방책은 아주 많소, — 교수가 엄하게 대답하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 때가 되면 발표하겠소.
— 저는 여전히 위원회 백 곳에 있습니다, — 기사가 빈정거리듯 말하고는 재빨리 물었다. — 콜롬나에는 오래 계십니까? — 어마어마한 설계지요! — 그러고는 제 말을 끊었다. — 눈여겨보신 적 있습니까, 피멘 세르게예비치, 모든 건설이 언제나 피 위에 서 있다는 것을요. 하기야 살아 있는 모든 삶이 그렇습니다만. 우리 인간은 피 속에서 태어나고, 피가 멈추기 때문에 죽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납니다. 저는 피가 없었던 건설을 하나도 모릅니다 — 집을 지으면 노동자가 서까래에서 떨어지고, 공장을 지으면 기계가 직공을 갈아 버리고, 철도를 놓으면 기차가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운하를 파면 둑이 터져 노동자들이 물에 잠깁니다. 신비스러운 말입니다만 사실입니다 — 모든 것이 피 위에 있습니다. 사방이 피, 또 피입니다. 그리고 붉은 — 피의 — 혁명의 깃발은 피 흘리는 탄생의 상징이지요. 그런데 피가 사라지면, 그때 돈바스는 물 없는 모래에 묻힐 겁니다. 교수님 공사장에는 아직 피가 없었습니까? — 폴토라크는 조용히 묻고는 입을 다물었다.
— 오늘은 내게 현상이 반복되는 날이오, — 폴레티카가 놀라서 말했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그건, 뭐, 별것 아니오.
— 그래서 교수님 공사장에 피는 아직 없었습니까?
— 없었소, — 폴레티카가 대답했다.
— 있을 겁니다, 있을 겁니다! — 폴토라크가 외쳤고, 금으로 흉하게 된 그의 이빨이 바로 그 금으로 표독하게 번쩍였다. 그는 잠시 아주 진지해졌고, 눈이 과녁을 겨누기라도 하듯 재더니 사무적으로 말했다. — 오늘은 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으시군요. 양쪽 다 흥미로웠을 텐데요.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내일 콜롬나에서 뵙지요.
폴토라크 기사는 언제나 빈틈없이 깨끗해 보이는, 다부진 사람이었으나 — 폴레티카 교수에게는 언제나 더럽고 끈적한 느낌을 일으켰다.
폴토라크는 일어나 제 식탁으로 갔다. 외국인들이 폴레티카에게 고개를 숙였다. 웨이터가 구운 빵과 우유 수프를 가져왔다. 교수는 엄하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이들이 하듯 뒤로 묶어 냅킨으로 수염을 가리고 — 천천히 화난 듯 먹기 시작했으니 —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화난 기색이 실은 아주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럽 러시아로 밀려오는 사막에 관한 생각은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것이었고, 그의 궁리는 두세 사람의 동료와 제자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 그런데 폴토라크가 그의 말로 이야기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이를 현상의 반복 탓으로 돌렸다.
외국인들과 유럽인 흉내를 내는 러시아인들의 이 홀에서 교수는 이질적인 현상이었다. 악단이 위층 회랑에서 쿵쾅거렸다. 이 흰 홀에 전깃불이 아주 넉넉하게 켜졌다.
심부름꾼이 팔월의 『성인전 월력』을 가져와 수고비를 받으며 말했다.
— 그 피멘 성인들이 알고 보니 열 분쯤, 어쩌면 더 된다고 합니다요. 다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전화를 드린답니다.
기차 시간까지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제 방에서 『성인전 월력』을 보며 보냈으니, 평생 영어와 독일어와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된 건설 서적과 순수 수학 서적의 수학 페이지를 수만, 수십만 장 넘겼듯 그렇게 주의 깊게 넘겼다. 그 순수 수학은 끝이 없고 인간이 알지 못한 것에 맞닿아 있으며, 인간에게 별의 계산으로 운하와 새 강과 공장 기계를 세우고 원자를 가려낼 권리를 주는 수학이었다. 책을 앞에 두면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노인 같지 않았다.
한번은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 폴레티카 교수 동무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피멘 세르게예비치. 골동품상 미하일로프입니다. 팔월 월력을 보내 드렸고, 다른 것은 아직 못 구했습니다만 구하는 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우선 정교회 성인 피멘 몇 분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팔레스타인의 수도 성인으로, 마우리키우스 황제 때 루바 사막에서 수행했습니다. 오백팔십이년에서 육백이년까지입니다. 축일 팔월 이십칠일. 둘째. 대(大) 피멘. 사백오십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집트의 아바입니다. 대 파이시오스와 요한 콜로보스의 동료입니다. 제 죄와 남들의 죄를 두고 늘 울었습니다. 가르침을 주는 말로 둘레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셋째와 넷째. 병 많은 피멘과 수도 성인 피멘으로, 키예프 동굴 수도원의 수도사들입니다. 그들의 유해는 안토니 동굴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중 뒤의 분은 수도 성인 쿠크샤의 벗으로, 예언의 은사를 지녔습니다. 축일 팔월 이십칠일. — 우선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며칠 안으로 글로 알려 드리고 책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고서상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교수는 책상으로, 월력으로 돌아왔다. 왜 성인이자 수도 성인인 피멘들이 필요해졌는지 그는 분명히 알지 못했다. 피멘들 뒤로 라슬로 기사가 떠올랐다. 책에 익숙한 학자의 버릇으로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출판자 — 키예프 동굴 수도원을 기억에 넣어 두었다. 키예프는 피멘 세르게예비치의 고향이었고, 김나지움 학생 시절 그는 어둠 속에 흔들리는 초와 등잔의 공포 속으로, 드네프르강 위 동굴의 축축한 서늘함 속으로 자주 달려갔으니, 거기 성골함 속에는 무섭지 않은 성인들의 시신, 유해가 누워 있었다. 동굴의 축축함은 페테르부르크 집의 환한 너른 공간을, 복도를, 피멘 세르게예비치가 올가와 작별한 문턱을 떠올리게 했다.
폴레티카 교수는 슬라브 장식 글자를 읽었다.
“오늘 그대를 무어라 부르리, 피멘이여. 수도자의 본보기요 치유를 스스로 행하는 이요, 절제의 상처로 영혼의 정념을 찌른 이요, 천사들의 시민이자 벗이요, 지극히 높은 대도시의 주민이요, 덕의 이웃이요, 경건한 이들의 버팀이여. 우리 영혼이 구원받도록 기도하소서.”
“분별의 등불이 되어, 믿음으로 그대에게 나아오는 영혼들을 비추고 그들에게 삶의 길을 보이시니, 지혜로운 이여. 그러므로 찬양으로 그대를 기리며, 그대의 백 번째 축일을 올리나이다, 피멘이여, 교부들의 자랑이요 금욕자들의 꾸밈이여. 우리 영혼이 구원받도록 기도하소서.” 월력의 돋을새김 검은 장정 표지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
교수는 책을 옆으로 치우고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어린 시절, 동굴 수도원의 동굴, 스타리 피멘 교회, 아내, 결혼 생활, 혁명의 십 년, 스타리 피멘 곁의 전당포 — 이 월력은 순진하고 노쇠하고 또 — 죽어 있었다. 삶은 결코 그리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인간 정신의 이 강은 죽었고, 기독교는 끝났다. 거기서는 참으로 모든 것이 피 위에 있었다. 그 피가 러시아에서 질 나쁜 캅카스 카고르 포도주와 체로 친 밀가루의 누룩 없는 빵으로 변했다 해도 말이다. 이십오 년 전 그 시절의 도덕은 교수의 사랑을 축복했고, 이제 전당포의 찬장에서는 응유와 과자를 판다 — 교수이자 건설자인 폴레티카의 봄은 라슬로가 대신했으나, 노동을 교수는 사회주의에 바쳤다. 성에, 사랑에, 피에 — 사람은 누구나 제 삶에서 많은 것을 바친다. 전당포 경매에서는 재봉틀과 수하렙카풍 모던 찬장을 팔고, 긴 외투의 사내들이 그것을 거간한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하나다 —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하고 깨끗해야 한다. “덕의 이웃”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파멸이다 — 그리고 누구나 저마다의 명예를 지녀야 한다. 성 피멘들, 그 죽은 자들은 본보기가 되지 못했다. 안토니 동굴, 키예프 동굴 수도원은 춥고 어둡고 무섭다 — 소년 폴레티카는 동굴에 들어가면 늘 무력해졌고, 모든 것이 쓸모없어졌다 — 거기서는 영원에 맞닿은 등잔과 초가 타올랐고, 초들은 공포와 쓸모없음을 — 이 동굴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의 쓸모없음을 — 확인해 주었다. 삶에서 모든 것이 쓸모없어질 때가 그러하니 — 이것은 병이고 죽음이다. 폴레티카 교수는 영원을 기운과 건설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 생명의 물리 법칙을 파고들어 인간 불멸의 물리적 토대를 쌓던 라자레프 학술원 회원은 인간의 지각이 스무 살에 가장 예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 그렇다 치자. 스무 살까지 얻은 것을 사람은 평생 견주어 본다 — 그리고 견주어 보려면 정직하게 해야 한다 — 물리 법칙과 인간 생활의 건설을 위하여.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과거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폴토라크가 떠올랐다. 동굴의 한기 뒤로 사막의 무더위가 다가왔다. 그리고 사막 뒤로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이, 사회주의 건설이 다가왔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창가로 다가갔다. 땅은 어두워져 있었다. 크렘린은 제 탑들을 하늘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고, 별들은 칠월답게 지친 빛으로 하늘에서 빛났으며, 중앙집행위원회 건물 위에서는 붉은 불이 타올랐다. 크렘린 아래에는 천구백이십구년의 모스크바가, 거대한 일들과 구상들의, 거대한 용기와 거대한 긴장의 모스크바가 누워 있었다. 온통 긴장하여, 경련이 일 만큼 긴장하여, 모스크바는 온 소비에트 연방이 그러하듯, 승리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를 향한 출정의 군대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역사는 걷지 않고 달렸으며, 흐르지 않고 건설되었으니, 온 러시아가 건설되던 것과 같았다. 정말이지, 건설자 직종의 제복이 도입되었더라면 러시아는 군대를 이루어 다녔을 것이다. 또 정말이지, 그해 모스크바는 군영(軍營)의 생활을 살았으니, 병사의 외투처럼 잿빛이고 영웅적인 일상 속에서,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포위 상태의 영웅적인 명령 속에서, 줄지어 늘어선 — 그러나 무섭지는 않은 — 식량 배급의 요새살이 속에서 살았다. 비군사적이던 도시가 요새로 변했고, 도시에는 노인들과 아이들, 역사의 출정에 쓸모없어 거기 매달려 있는 이들만 남았다. 도시는 요새의 과밀 속에 살았다. 요새와 출정에서 늘 그러하듯, 역사를 이끌고 나아가는 빙하와 빙하의 의지 때문에 — 그 빙하 때문에, 그 빙하로부터, 그 빙하 아래로부터, 불만과 불신과 피로와 배신과 오물과 진창과 악취의 눅눅함과 곰팡이가 기어 나왔으니, 요새에서는 쓰레기를 내다 버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또 요새에서 흔히 그러하듯, 바로 그 쓰레기가 전쟁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했다. 모든 것이 이해할 만했다. 역사란 건설될 때면 바로 그렇게 건설되기 마련이다. 쓰레기는 잊어야 한다. 일찍이 없던 것을 향한 새 길을 닦아야 하니, 그 길을 따라 삶이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역사 속으로 몰아넣어야 하니, 무릇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자갈은, 건설의 자갈을 그러하듯, 지질 속에 파묻어야 한다.
도시와 크렘린은 그 시각 밤의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고, 중앙집행위원회 건물 위에서는 깃발의 붉은 불이 타올랐다. 크렘린에서, 키타이고로드에서, 옛 먀스니츠카야였던 제일오월 거리에서, 그 시각 역사를 사회주의로 밀고 가는 기관들의 유리벽 사무실들이 텅 비어 갔다. 사람의 모스크바는 집들의 비좁음 속으로, 극장으로, 영화관으로, 서커스로, 공원으로, 선술집으로, 맥줏집으로 흘러들어, 전쟁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은 채 — 가부키에 관해, 고리키에 관해, 동청철도에 관해, 그리고 봉급표에 관해, 마리야 이바노브나들과의 밀회에 관해, 인원 감축에 관해, 오늘 자 『석간 모스크바』에 관해 떠들어댔다. — 그래도 좋다. —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자신의 일을 생각했다. 몇 달 뒤면 모스크바 아래로, 오카의 물을 제 안에 받아들인 새롭고 젊은 강이 흐를 것이다.
그, 피멘 폴레티카 교수는, 제 노동과 지식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혁명의 의지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힘과 노동으로 이 젊은 강의 설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이었으니, 폴레티카 교수가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방식대로, 인간의 노동이 제 의지로 강을 다시 세우며 그 강으로 요새의 쓰레기를 씻어내고 새로운 노동의 관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강은 역사와 더불어 맑은 물의 빙하가 되어, 군영의 비좁음도, 불만의 피로도, 시간마저도 씻어내야 한다 — 인간의 장수(長壽)를 만들어 내는 것은 라자레프나 보로노프나 슈타이나흐 같은 학자들만이 아니라, 해방된 노동, 곧 사색과 이성과 여가를 위하여 인간을 제게서 풀어 주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어둠을 뚫고 보았다 — 화가들이, 있는 것뿐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까지 볼 줄 알 때 지니는 그런 눈으로 —
봄밤, 강, 강의 너른 펼침, 물 위의 불빛들, 모스크바 아래의 바다 기선들, 화강암 둑. — 물 위에서는 언제나 소리가 유달리 퍼져 나가니, 마치 소리가 물기에 젖는 듯하다 — 교수는 강에서 처녀의 웃음소리를 들었으니, 물기에 젖은 젊은, 콤소몰 단원인 딸의 웃음이었다. 웃음은 젊음과 더불어 영원히 인류의 행복으로 남으리라. 그러나 웃음이 또렷해졌고,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 그것은 이십오 년 전 그때, 올가의 웃음이었다. 천구백이십구년에 러시아에서는, 건설하느라, 사람들이 별로 웃지 않았다. 그래, 그래 — 웃음이 인류의 행복이라면, 긴장으로 이마에 모인 근육은 — 인류의 긍지다. 교수의 텁수룩한 눈썹이 엄격하게 모였다.
교수는 계산서를 청하려 벨을 울렸다.
교수는 수첩에 적어 넣었다.
“사막과의 투쟁 설계에 관하여. 봄철 물에 씻겨 나가는 부식토의 계산, 그것이 바다로 흘러드는 비율.”
3
폴레티카 교수의 기차는 열 시 사십오 분에 떠났다.
역에서는, 시큼한 냄새와 희끄무레한 불빛 속에서, 늘 그렇듯 사람들이 부산을 떨었다. 가스등 불빛 너머로 철길이 따뜻한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가, 어두운 러시아의 공간을 더듬었다. 침목에서는 칠월답게 메마른 바람이 불었다. 공간은 중세에서 물러나며 누추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기차는 완행이었고, 근교의 사람들이 제 가난을 객차로 끌고 들어왔다.
승강장 군중 속에서 폴레티카 교수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를, 그의 제복 모자와 가죽 외투의 어깨를 보았다. 폴토라크는 교수에게서 눈을 숨겨 군중의, 사람들 뒤통수 너머의 어딘가로 돌렸다 — 폴토라크의 눈은 아주 주의 깊게,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 교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폴토라크 기사는 화사한 차림의 여인과 함께 군중 뒤로 사라졌고, 교수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어느 객차에 탔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객차 안, 폴레티카 맞은편 좌석에는, 오늘 스타리 피멘에서 본 그 두 거간꾼이 앉아 있었으니, 긴 자락 프록코트로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 검은 모자가 파괴의 영혼인 칠피 부리의 까마귀를 닮은 자들이었다.
손위가 교수에게 고개를 숙여 공손히 말했다.
— 아까 피메놉스키 골목 경매장에서 뵌 듯합니다만?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대답하지 않고, 현상이 어색하게 겹친 탓에, 옆 사람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그러자 그 옆 사람들도 교수를 잊었다. 기차는 철길의 너른 공간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모스크바의 불빛이 아주 빠르게 스러졌다. 들판은 태곳적 같은 모습과 고요로 누웠고, 그 고요가 객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제 가난뱅이 보따리를 머리맡에 쑤셔 넣고 잠들었다. 객차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일었고, 잠든 사람들의 냄새와 장화 가죽 냄새와 갓 탄 그을음 냄새가 풍겼다. 흐릿한 등불 속의 양초는 객차를 말 마구간으로 바꿔 놓았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책을 읽으려고 탁자에 양초를 맞춰 세웠다 — 그러나 차장이 와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서 있다가 양초를 끄라고 일렀으니, 정해지지 않은 자리에서 양초를 켜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피멘 세르게예비치가 객차의 어둠을 들어 반박해 보려 하자 — 차장은 서두르지 않고 다시 설명했다.
— 객차는 책 읽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 타고 다니라고 만든 겁니다. 벌금 물지 않으시려거든 끄십쇼.
기차는 러시아의 마을들 사이로 시간을 끌고 가며, 역으로 그 시간을 멈춰 세웠다. 폴레티카는 베개를 머리에 받치고 졸았다. 그의 길동무들, 야로슬라블계 슬라브 혈통이 분명한 이 두 형제는 깨어 있었다. 길동무들은 차양모를 벗었고, 둘 다 한가운데 가르마를 탄 머리였다. 그들은 가는 내내 코냑을 마시며 드문드문 말을 주고받았다. 대략 반 시간마다 손위가 은제 술병집을 열어 먼저 제가 한 잔 들이켜고, 이어 아우에게 따라 주었으며, 아우가 마시면 — 손위는 술병집과 병을 가방에 넣었다 — 아우가 물었다.
— 유리구슬은 사들일까요?
— 반드시, — 손위가 대답했다.
반 시간을 그들은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마시고, 아우가 물었다.
— 자기(瓷器)는 사들일까요?
— 반드시, — 손위가 대답했다.
다시 반 시간이 지나 아우가 또 물었다.
— 이른바 러시아 고블랭은 사들일까요?
— 반드시.
기차는 밤을 끌고 가며, 불빛으로 — 붉은빛, 노란빛, 초록빛 — 그리고 역의 외침으로 시간을 멈춰 세웠다. 객차는 밤의 성스러운 의식 속에서 평화로이 코를 골았다. 창밖에서는 야윈 초승달이 하늘로 먼지를 피워 올렸다. 칠월은 숨 막히는 먼지를 일으켰다. 창밖으로는, 통나무집의 시골 어머니 러시아가 뒤로 던져졌다 — 들판, 숲, 늪, 브론니치와 콜롬나의 땅들, 시골의 미덥잖은 마찻길들. 기차는 달의 이슬 같은 메마름에도 아랑곳없이, 침목 위 제 소음 너머로 먼지 회오리를 일으키며, 메아리로 우르릉거렸다.
비몽사몽 속에서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생각했다. 티무르 시절에 정원과 들판이 꽃피던 그곳이 — 지금은 사막이요 모래요 무더위요 돌이라는 것을, 일찍이 러시아에, 이 콜롬나 땅에 와 있던 타타르인들이 아랄해와 카스피해의 초원에 — 절멸뿐 아니라 몽골의 모래까지 알리는 사자로 왔다는 것을, 아라비아의 사막이 한때는 더없이 풍요롭고 꽃피던 문화와 학문과 종교의 나라였다는 것을 — 이집트의 붉은 모래도 한때는 그처럼 꽃피었다는 것을 — 한데 타타르인들은? 다섯 세기 전, 러시아의 역사적 기억 속에서는 아주 최근에, 볼가 하류에는 타타르인들의 더없이 풍요로운 도시들이 서 있었고, 아랍과 제노바의 학자들과 노르만의 상인들이 그에 관해 썼다 — 한데 지금 그 도시들은 모래 속에서 제 자취조차 잃어버렸다 — 모래의 물 없는 무더위가 볼가 유역으로 니즈니까지, 돈바스로, 쿠반으로 밀려들었다 — 모래, 무더위, 죽음, 타타르인들의 얼굴을 모래처럼 누렇고 메마르게 만든 그것들이.
— 후기 알렉산드르 양식은 안 사들일까요? — 아우가 물었다.
손위가 대답했다.
— 불가능해.
기차는 동이 트기 한 시간 전, 밤이 먼지로 자욱해지고 푸르스름한 동녘으로 차가워질 무렵 콜롬나에 닿았다.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터인 건설 현장은, 공기마저, 그 무엇까지 다 뜯어고치는 불빛과 소음과 활기로 사방에 누워 있었다 — 그러나 역은 아직 후방의 버려짐 속에 머물러 있었다. 객차에서 내리니 기운이 났다. 폴레티카를 사디코프 기사가 맞았다.
승강장에 — 폴토라크와 그 길동무 여인도, 폴레티카도, 거간꾼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둘레의 침목 너머로는 건설 현장의 어수선한 불빛들이 타올랐으나, 역 현관 너머로, 역의 부속 건물들 너머로 도시 쪽으로는, 텅 빈 광장이 도시 자체를 어둠 속으로 함몰시켰다. 그곳에서는 늙은 개들이 짖었다. 광장의 어둠 속에서 말들이 콧김을 뿜었고, 도시 쪽에서 불어오는 밤은 말의 땀 냄새를 풍겼다.
폴토라크가 말했다.
— 당신도 이 기차였습니까? 객차가 다른 게 유감이군요. 서로 모르는 사이시죠? 나데즈다 안토노브나 사란체바, 여배우입니다. 아, 당신들도 여기 있었군, 골동의 기사들이여? 이쪽은 제 벗이자 납품업자들입니다 — 마호가니 세공·복원가인 파벨, 스테판 표도로비치 베즈데토프 형제이지요.
그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어둠 속을 향해 외쳤다.
— 어이, 마부!
교수를 맞으러 나온 사디코프 기사는, 잠 못 이룬 밤 뒤라 으슬으슬 떨면서도, 피멘 세르게예비치를 정성껏 부축했다. 사디코프의 광대뼈는 흙빛이 돌았고 어깨는 구부정했다. 교수가 건설 현장에 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농담 삼아 ‘선반에서 온 기사’라 부르던 사디코프 기사는, 이 노인에게 모인 지식을 존경할 줄 알게 된 사람이었다. 노인은 싸움터의 원수(元帥)처럼 기운차게 걸으며 제 가방을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다. 사디코프는 보고서처럼 무미건조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침목 너머에서 궤도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궤도차는 건설 현장의 불빛 앞이라 유독 새카만 어둠 속을 나아갔다. 협궤가 더듬어 가는 그 어둠 너머에서, 밤일의 쇳소리가 날아들었다. 궤도차는 가로등 불빛 속으로 들어가, 창고의 육중한 짐들 사이를 지나, 흙더미 둑 아래 막사들 곁에 섰고, 궤도차로 불어들던 바람도 궤도차와 함께 멎었다. 사디코프는 둑길을 따라 앞장서 갔으니, 파헤쳐진 흙더미 곁으로, 시멘트 통과 벽돌과 목재와 잡석이 든 도랑을 따라, 가로등 불빛에 오려지고 베인 그 길을 따라, 화강암과 콘크리트가 자연에 맞서고, 땅과 강과 숲이 쇠와 인간의 노동으로 재갈 물린, 싸움의 참호를 지나갔다. 거대한 모놀리트가 가로등의 사슬을 이루며 오카 너머 몇 킬로미터로 뻗어 들어갔다.
교수를 기다린 것은 푹신한 침대, 머리맡 탁자 위의 양초, 잡지 『건설』의 최근 호였다 — 침대 밑 바닥에는 요강 하나가 어렴풋이 소시민의 자취를 풍기고 있었다. 사디코프는 작별 인사를 했다. 창을 열어 둔 방에는 칠월의 밤과, 솔향이 나는 고요, 곧 새 공사장의 경계하는 듯한 고요가 살랑거렸다. 창밖에서는 덤프카의 작은 기관차들이 기적을 울렸고, 준설선들이 일찍이 없던 늪의 새들처럼 콧김을 뿜었으며, 바로 창 밑에서는 야경꾼들이 서로 휘파람을 주고받아 고요와 밤을 도드라지게 했다. 전기는 언제나 생기 넘친다. 숙박소는 전등 불빛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포스터가 붙은 고요한 복도는 솔향을 머금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는, 일하러, 기계를 조립하러 건설 현장에 온 스웨덴인과 독일인과 미국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곧장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낡아빠진 작은 가방에서 그는 두툼한 방수포 공책을 꺼냈으니, 가장자리가 붉고, 학생들이 흔히 쓰는 이른바 ‘통합 공책’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 교수는 그 안에, 모래의 무더위에 관한 생각이 숨겨진 수학 공식을 적어 넣었다.
4
……더없이 오래된 러시아의 땅, 오카 유역, 오카강, 모스크바강 — 랴잔 지방, 옛 타타르의 길, 옛 모스크바의 길, 도적의 길 — 무롬, 메랴, 랴잔, 메셰라로부터, 분국(分國) 시대로부터 철도에 이르기까지의 러시아 역사 — 크림 침략과 동란의 세월에 맞선 방어의 기념물, 죽음을 잃어버린 여인 마리나 므니셰크의 마지막 남편이었던 카자크 이반 자루츠키의 기념물 — 리만 대령의 원정 — 그리고 그 이전, 러시아 이전에는 — 사르마트인, 알란인, 핀인, 스키타이인, 석기와 청동기 시대. 예부터의 러시아 풍경이다. 모스크바강은 들판을 지나 오카로 흘러들고, 오카 위로는 소나무가 우거진 구릉의 기슭이, 슈로보와 체르노레치예의 숲들이 펼쳐진다 — 풍경은 음울하다 — 들판, 구릉, 나무, 풀, 돌, 모래, 표석(漂石), 옛이야기 같은 오카의 물, 쥐라기의 시대들. 체르노레치예의 숲에는 — 산불, 늪, 늑대들. — 여름, 유월의 희고 하늘 없는 밤이던 삼 년 전, 이곳에서는, 두 강이 합류했고, 포병 창고로 바뀐 골루트빈 수도원이 말없이 서 있었으며, 콜롬나 공장이 연기를 뿜었고, 러시아의 브뤼헤인 콜롬나가 죽어가고 있었으니, 카잔카 철도가 깔린 날들로부터 죽기 시작한 도시였다 — 카잔카의 침목들이, 오카와 모스크바강을 건너는 다리들이, 소나무가, 모래가, 하늘이, 그리고 여자들이 감자를 심고 풀밭을 베고 가축을 치던 비셀키와 보브레네보 농민들의 노래가 있었으며, 사내들은 콜롬나 기계공장으로 쇠를 두드리러 다녔다.
이곳에서 나라는 옛 러시아, 라세야, 루시와 —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삼 년 전 유월, 이곳 풀밭으로 사람들이 왔으니, 땅을 재고 시추하며, 공간과 미래를 들여다보았고, 쥐라기와 페름기의 시대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강가와 풀밭을 거닐고, 일찍이 유목민들이 그러했을 법하게 모닥불을 피웠다 — 그리하여 이곳에서 역사와 지질을 다시 세우는 사회주의를 위한 싸움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보브레네보도 파르펜테보도 아메레보도 세르기옙스카야도 그 밖의 많은 마을도 더는 없으리라는 것이 알려졌으니, 그 땅들이 물 밑으로 잠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브레네보 사람들은 새 터로 옮겨 가야 했다. 사내들은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 응하지 않았다 — 그러나 측량기를 든 사람들 뒤로 수천 명이 왔고, 사람들은 싸움에 쓸 자재를 실어 나르며 길과 전초와 보루와 능보(稜堡)를 쌓았으니, 사람들과 더불어 풍요와 활기와 일거리가 왔다 — 그리하여 일 년 뒤 보브레네보 사람들은, 물론 자기들이 찾아온 자들을 속여 넘긴 거라고 여겼다. 찾아온 자들은 보브레네보를 유럽식으로, 모범적인 마을로 새로 옮겨 세워 주겠노라 제안했다 — 아낙들은 보브레네보를 옮기되 있던 그대로 똑같이 세워 달라 요구하며, 새끼줄로 천장과 문과 창과 처마의 너비와 높이를 재어 매듭으로 표시해 두고는, 그 매듭대로 한 치도 틀림없을 것을 요구했다 — 한편 사내들은 꾀를 부려 건설 현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건설 현장에서는 보브레네보를 ‘두라키노(바보골)’라 별명 붙였다 — 두라키노는 늑대처럼 네 발로 기어 건설 현장에서 호로셰보 숲으로 달아났으나, 호로셰보 마을도 두라키노를 따라 기어갔다 — 한데 두라키노 사람들은 건설 현장에서 집으로 루블을, 새로운 셈속의 잣대를, 책을, 배부름을, 일찍이 없던 일들에 관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끌고 왔다. — 이곳에서는 지질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젊은 강이 건설되고 있었다.
모스크바강, 오카강, 오카 유역. 강은 지질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강은 마을과 역사뿐 아니라 고고학까지 없애고 있었다. 마을들은 새 터로 옮겨 갔다. 기사들은 지반을 시추하고 파헤쳤다. 고고학자들은 수천 년과 작별했다. 고고학자들은 영영 물에 잠길 수십 제곱킬로미터를 자기네 조사대와 발굴로 헤집으며, 원시인의 야영지를, 옛 메셰라의 토성(土城)을, 봉분과 묘지를 찾아 — 선사(先史)를 그러모았다. 가물막이가 오카의 바닥을 드러내자, 고고학자들은 물에 잠겨 있던 세기들을 찾았다.
기사들은, 어느 건설 현장에서나 있기 마련인 그 새것의 탄생이 주는 활기를 잘, 아주 잘 알았다 — 고고학자들은 작별의 활기를 알았다. 피 위에서 일어나는 탄생이라는 신비를 믿어서는 안 되었다. 시골 마을과 콜롬나의 옛것 속에서는 아시아의 아낙 같은 러시아가 결핍과 죽어감의 줄서기로 구걸하며 살았다 — 그러나 이곳 건설 현장에서는, 삼 년 전, 수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풀밭의 고요가 있던 이곳에서는, 지금 승리의 쇳소리와 소음 너머로 새 삶이, 일의 활기가, 끈질기고 즐거운 노동이, 이성과 풍요가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옛 러시아의 옛이야기들은 두라키노 사람들에게로 물러갔다. 오카, 모스크바, 클랴지마 강의 종단면이, 그 탈베크와 하상(河床)과 지질 기반과 활단면과 유량과 유황(流況)과 그 힘이 — 강에 관한 지식이 주는 모든 것이 계산되었다. 모스크바강의 종단면, 모스크바시와 콜롬나시 부근의 그 수위는 겨우 칠 미터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 곧 모스크바시 아래의 모스크바강은 콜롬나 아래의 모스크바강보다 — 해수면을 기준으로 — 칠 미터 높았다 — 그러니 콜롬나 아래에서 모스크바강을 단 팔 미터만 떠받쳐도 모스크바강의 물은 거꾸로 흐를 것이었다. 콜롬나 아래의 둑 — 모놀리트 — 은 이십오 미터로 세워지고 있었으니, 오카의 물이 모스크바강의 물을 거슬러 몰아붙여 모스크바 쪽으로 흐르게 할 셈이었다. 옛 도시 로스치슬라블 아래, 콜롬나 아래, 브론니치 아래에 거대한 호수들이, 지리를 다시 세우는 새 강의 저수지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모놀리트 아래의 굴착 구덩이는, 고고학자들의 세기와도 같은 강바닥을 드러냈다. 고고학자들은 세기들을 떠나보냈다.
5
칠월의 하루가 낮의 황금빛으로, 이슬과 하늘의 가벼운 구름으로 밝았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피멘들의 경매는 메말라 가도록 어제에 남겨 두었다. 식당에 들기 전에,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혼자서, 슬그머니 옆길로, 상설 수준점(水準點)을 둘러보고 점검하러 갔다 — 폴레티카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었으니, 그는 수준점의 질서를 작업 질서의 첫째 징표로 여겼다. 콘크리트로 된 건설 현장의 파수꾼은 풀밭을 더없이 정연하게 지키고 있었다. 건설 현장은 노동으로 일상을 보냈다. 노동자 마을에서는 밤새 켜 둔 확성기들이 요란했다.
일곱 시 무렵 숙박소 식당으로 한 기운찬 노인, 건설자, 일을 만드는 사람이 나왔다. 식당의 십장과 기사들, 가랑이까지 오는 방수 장화를 신은 골똘한 사람들이, 말없이 달걀부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싸움터로 떠났다. 집 뒤에서는 노동의 무더위로 굴착기들이 쉭쉭거렸다. 흰 가운을 입은 날랜 하녀들이 그릇을 절그럭거렸다.
식당 벽, 게시판에는 명령의 일상이 걸려 있었다. 교수는 늘 이 일상을 주의 깊게 읽었으니, 그 질서가 수준점만큼이나 중요함을 알아챈 까닭이었다. 만 명의 건설자 군대는, 경찰관에서 라디오 송신탑에 이르기까지, 만 명의 인간 사회가 지니는 모든 것을 제 안에 지니고 있었다. 벽신문은 활판으로 찍은 것이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사디코프를 기다리며 읽기 시작했다.
촌평 기사는 두라키노 사람들에게 바쳐져 있었다. 기사에는 건설 현장에 영화 기사(技士)가 왔다는 소식이 실렸으니 — 본보기 무단결근자를 촬영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본보기 무단결근자 가운데 하나가 그 자리에 사진으로 붙어 있었으니, 한 젊은이가 머리를 구덩이에 처박고 다리와 등을 위로 한 채, 손에 단장을 쥐고 잠들어 있었다. 무단결근자 선발 대회가 공고되어 있었다. 여성부는 멋쟁이 차림의 여자들을 비웃었다. 풍자화는 기사인지 기술자인지 모를, 모표 달린 모자를 쓴 자의 합성된 얼굴을 그렸으니, 열 개의 손으로 포도주 병과 머릿수건 두른 여공과 모자 쓴 아가씨와 수준기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있었다. 사설은 건설이란 노동의 해방이며 인간 시간의 해방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썼다. 건설 현장에는 영화관 둘과 ‘푸른 작업복’ 극단과 살아 있는 신문과 열일곱 개의 순회 도서관이 있었다 — 이들은 벽신문으로 제 존재를 알렸다. 두 번째 사설에서는 인부 셋이 여공을 강간한 일과, 골루트빈 역에서 열린 기술자들의 토요일 무도회를 다루며 낙인찍었다. — 기사용 게시판에는 열 개 사회단체의 열 개 회합 소식, 노동자에게 행하는 강연 시간표, 수석기사의 통지, 기술국의 업무 지시, 외국 건설 잡지의 새 호가 들어왔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긴장된 노동, 절도 있는 분주함의 명령이 풍기는 이 기운찬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좋아했으니, 그 공기는 모든 것이, 이 숙박소의 솔향 나는 식당처럼, 새것의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 새 벽, 새 탁자, 새 식탁보, 틀에 황금빛 끈적한 송진이 배어 나온 새 진열장. 여공 강간, 추바롭시나 같은 폭행은 — 추악한 일이었다 — 철도역에서 화장한 타자수들과 벌이는 멍청한 무도회는 — 속물근성이었다 — 이 모든 것은 주된 것, 결정적인 것, 이성적인 것 — 건설 속으로 가라앉았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사디코프 기사를 기다렸다. 기사와 기술자들은 흩어졌고, 교수는 혼자 남았다. 교수는 흰옷 입은 하녀에게 물었다.
— 그런데 내가 신문에서 읽은 게, 어떤 못된 자들이 처녀를…… 욕보였다더군. 대체 어찌 된 일이오?
— 그게 다가 아니에요! — 하녀가 엄하게 대답하며 접시를 골나서 절그럭거렸다. — 우리 데서는 어느 기사의 아내가 목을 맸어요. 혁명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본때를 보여 줄 거예요. 우리 여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러고는 입을 다물어, 더 말하기를 마다하고, 칸막이 너머 큰 솥 쪽으로 가 버렸다.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그녀가 동료에게 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 꼭 가야 해, 그자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거야, 어떻게…… 우리는 조직적으로 항의할 거라고!……
표도르 이바노비치 사디코프는 늦게 왔다. 하녀들은 피멘 세르게예비치에게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채, 칸막이 뒤에서 저희끼리 소곤대며 치웠다. 사디코프는 침울하고 사무적이고 지친, 그러나 활동적인 모습으로 왔으니, 장화는 복사뼈까지 갓 묻은 진흙으로 들러붙었고, 이마는 햇볕에 젖었으며, 모자챙 자국으로 이마가 그을음에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이 기사는 건설 현장의 수석기사였다 — 그러나 사디코프는 수석기사다워 보이지도, 원수다워 보이지도 않았으니, 선반에서 온 기사였다. 수석기사들은 수만 명의 사람을, 수백만 톤의 화강암을, 수천만의 돈을, 그리고 두뇌들을 지휘해야 하기에 — 비서들과 보고서로 둘러막힌 사무실 사람들이다 — 사무실은 통통하게 살진 흰빛을 만들어 내고 부드러운 양복을 입힌다 — 그러나 사디코프에게서는 흙냄새가 났고, 풀어 헤친 셔츠 깃 사이로 쇄골이 드러났으며, 그는 장인을 닮았고, 비서들이 그를 따라다니지도 않았다. 폴레티카 교수는 곧은 생각과 곧은 행동을 지닌 이 사람을 좋아했다.
사디코프 기사를 뒤따라, 콜롬나에서 온 폴토라크 기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 사디코프가 크게, 힘겹게 말했다. — 어제 제 옛 아내가 죽었습니다. 저와 헤어진 뒤 라슬로 기사의 아내가 된 사람이지요. 목을 맸습니다. 오늘이 장례입니다. 곧 사무소로 옮기시면, 보고를 받으실 겁니다. 모두에게 이미 알려 두었습니다.
사디코프는 탁자 곁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탁자 위에 놓았다. 햇볕이 그의 빡빡 깎은 머리 위로 모자를 가지런히 잘라 냈다. 하녀들은 그릇 소리를 멈추었다. 햇볕은 여전히 빛났다.
현상의 반복! 올가는 이제 라슬로의 아내가 아니었다 — 아내, 스타리 피멘, 스타리 피멘의 전당포, 페체르스크의 동굴, 체티미네이 — 이 모든 것이 어제로, 수십 년 속으로, 무(無) 속으로 가 버렸다 — 안토니 동굴의 무력함은 병이다 — 그러나 긴장으로 이마에 모인 근육은 긍지란 말인가?!
피멘 세르게예비치는 제 눈을 눈썹 아래로 숨기고, 긴 의자에 좀 더 단단히 앉았다. 우연의 겹침이, 반복이 체계를 이루어 갔다.
덤프카 열차가 곁을 스치며 기적을 울렸다. 사이렌이 울렸다.
— 어떻게 목을 맸습니까? — 교수가 물었다.
— 복잡한 사연입니다, — 사디코프가 대답했다. — 저는 라슬로를 만나 그가 장례에 올지 물어야 했습니다. 안 온다면 제가 장례에 가야 했으니까요. 이 일을 말씀드리기가 괴롭습니다, 피멘 세르게예비치.
사디코프는 잠시 말이 없었다.
—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라슬로의 첫 아내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당신의 아내였지요?
— 그렇소, — 피멘 세르게예비치가 대답했다.
— 그분은 콜롬나에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 그리고 알리사 라슬로와요.
폴토라크 기사가 놀라 서둘러 물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라면, 스물세 살쯤 된 처녀입니까?
— 그렇소, 그 둘은 — 내 아내와 딸이오, — 폴레티카가 말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일합니다. 공산당원이지요, — 사디코프가 말했다.
이 대목에서 대화가 끊겼으니, 건설 현장의 경비원이자 미친 눈을 한 사내,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가 식당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하녀들과, 사디코프와, 폴레티카와 황급히 악수하며, 저마다에게 따로 자신을 소개했다. — “천구백이십일년까지의 진정한 공산주의자 이반 오조고프올시다!” — 그는 폴토라크 앞에 멈춰 서서, 경멸을 드러내는 끔찍한 상판을 짓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두 손을 등 뒤로 숨기고 말했다. — “당신하고는 인사하기 싫소, 내 동생하고나 입이나 맞추시오, 파괴자 같으니!” — 그러고는 다시 한번 눈을 흘기고 입술을 멍청하게 늘이더니, 폴레티카에게 돌아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감격하여 외쳤다.
— 이분이 바로 그 늙은 볼셰비키,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십니까?! 우리 이야기 좀 나눠야겠습니다!
낮 열 시 반쯤, 폴레티카 교수와 사디코프 기사는 건설 현장을 둘러보러 사무소를 나섰다.
작업은 수십 제곱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모스크바강과 오카강이 아득한 옛날부터 흐르던 풀밭에서 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 밤낮으로 작업에 매달려서. 칠천 명의 흙일꾼, 손수레꾼 사내와 아낙, 석공, 목수, 칠장이, 소목장이, 광부 따위의 노동자들이 기계와 나란히 자연을 파헤치고 다시 세웠다. 러시아제 ‘나미’ 자동차가 사디코프와 폴레티카를 모놀리트로 데려갔으니, 폴레티카는 모놀리트가 지질 속으로 박혀 드는 그 자리, 곧 어깨와 잠금부가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는지 보고 싶어 했다. 기중기들이 ‘응축된 공기’라 불리는 화강암 줄을 쌓아 올렸다. 수백 명의 손수레꾼 아낙들이 굴착기의 토사 배출관을 대신하여 흙을 실어 날랐다. 밀짚모자를 쓰고 흰 셔츠에 가랑이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십장이 사디코프 기사에게 노동자 ‘한 손’[3]을 더 달라고 설득했고, 기술자의 이가 햇볕 아래 번득여, 모놀리트의 잠금부가 박혀 드는 바로 그 화강암을 깨물 기세였다. 오카는 제 물길을 부수고, 여기서 이 킬로미터 떨어진 우회 운하로 흘렀다. 가물막이에서는 펌프들이 물에 사레들리며 쉭쉭거렸다. 굴착 구덩이는 오카의 바닥을, 모래와 화강암과 조개껍데기를 드러냈다. 거대한 굴착기들이 무게에 삐걱이며 흙을 퍼내고 그 속을 파고들었다. 폴레티카 교수는 화강암 위로 기어 올라가, 눈을 눈썹 아래 숨긴 채 살펴보고 둘레를 둘러보았다. 그 위로는 기중기들이 등을 굽혔고, 그 아래로는 둑의 기슭으로, 굴착 구덩이로 화차의 궤도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거대한 굴착기들이 석회암을 깨물었다. 궤도 곁에서는 손수레꾼 아낙들이 일했다. 햇볕 아래 파헤쳐진 흙과 콘크리트의 냄새가 났다. 폴레티카 아래에서, 알록달록한 통치마를 입고 붉은 머릿수건을 두른, 맨발에 소매를 걷어붙인 수백 명의 우람한 처녀와 아낙들이, 하나씩 차례로 판자 위로 손수레를 밀어, 화차에 흙을 쏟아붓고는, 다른 판자를 따라 빈 손수레를 끌고 새 흙을 가지러 갔다.
옛 러시아에 맞서 새 러시아를 위해 싸우는 이 싸움터에, 폴레티카와 사디코프가 원수로 서 있는 이 풍경은, 표트르가 페테르부르크를 걸어가는 세로프의 그림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때 아닌 시각에 기적이 울렸다.
그러자 손수레꾼 아낙들이 기적 소리의 명령에 따라 손수레를 내던졌다. 여자들이 줄을 짓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작업장을 떠나 말없이, 엄숙한 줄을 지어 갔다. 여기서 일 킬로미터 떨어진 콘스탄티놉스카야에서도 알록달록한 여자들의 행렬이 생겨났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가물막이에서 출발했다. 여자들은 도시 쪽으로 떠나갔다.
— 저게 무슨 일이오? — 폴레티카가 물었다.
— 모르겠습니다, — 사디코프가 어리둥절하여 대답했다. 여자들은 말없이, 사무적으로, 병사처럼 떠나갔다.
십장이 자전거를 타고 여자들을 뒤쫓아 가, 앞질러 자전거에서 내렸다. 여자들은 멈추지 않고 말없이 그를 지나쳐 갔다. 십장은 밀짚모자를 뒤통수로 밀어 올린 채 돌아왔다. 여자들은 떠나갔다. 들판으로는 그런 행렬이 몇 줄이나 가고 있었다. 십장은 야전 전화기로 달려갔다.
— 파업인가 뭔가요?! — 십장이 달리며 외치고는 모자를 휘둘렀다.
사디코프는 ‘나미’로 갔다. 폴레티카가 그 뒤를 달려갔다. 기술자는 전화 수화기를 내던지고 ‘나미’로 내달렸다. 제자리 아닌 곳에 내던져진 수화기가 갑자기 삑삑거리다가 이내 끊겨 버렸다. 풀밭을 가로질러, ‘나미’를 마주하며 노동자위원회 위원장이 달려왔다. 때 아닌 기적의 명령에 따라 건설 현장 전체에서 여자들이 일을 던지고 콜롬나로 갔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던 노동자위원회 위원장은, 땀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며 땅에 쓰러져, 터질 듯한 심장을 안고 누운 채, 자기도 영문을 모르는 일을 사디코프에게 보고했다. 사무소에서는 모두가 발칵 일어섰고, 전화 수화기들이 갈고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콜롬나 집행위원회로 버스가 떠났고, 집행위원회에서는 들판을 가로질러 오토바이가 내달렸다. 굴착기들이 쉭쉭거리기를 멈추었다. 햇볕은 한낮으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