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볼가는 카스피해로 흐른다

인물보리스 필냐크

13

콜롬나 승강장에서 폴토라크는 폴레티카에게 나데즈다 안토노브나 사란체바를 소개했고,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폴레티카와 마호가니 세공가들에게 인사하며, 더없이 도도한 여인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근무 후 푸시킨 동상으로 올 때처럼 남자 양말이나 사라사 원피스 차림이 아니라, 여행자의 법도대로 영국제 푸른 정장에 비단 양말, 굽 없는 여행용 부츠 차림으로, 손에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 서른 줄로 보아 줄 만했다. 폴토라크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와 함께, 중세의 개들이 짖어 대는 어둠 속으로 떠났다.

호텔의 잠에 취한 복도지기가, 양초 안 든 손으로 속바지를 추켜올리며 짧게 물었다.

— 방 하나요, 아니면 둘이요?

폴토라크가 엄하게 답했다.

— 이인용 하나, — 그러고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를 묻듯이 흘긋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반쯤 열린 덧창 너머 창밖을 바라보았다. 복도지기는 생쥐와 크레올린,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복도를 따라 앞장섰다. 이 집의 객실들은 백오십 년쯤 된 것이었고, 방은 낮고 벽이 두꺼웠으며, 창은 덧창으로 가려져 있었다. 새벽빛이 덧창 틈으로 기어들었으니, 아마 요새의 능보로 기어들 듯했다. 복도지기는 탁자 위 양초에 불을 붙이고, 재떨이에서 꽁초를 제 손에 쏟아 들고는 가 버렸다. 양초가 도둑처럼 타올랐다.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제 가죽 외투와 제복 모자를 갈고리에 걸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손에 손가방을 든 채 탁자 곁에 서 있었다.

— 한데 당신은 나한테 묻지도 않았네요, — 그녀가 처음으로 너라는 말을 쓰며 말했다. — 나한테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안 물었어.

— 여보, 그게 우리한테 무슨 상관이오!? — 폴토라크가 답했다. — 그래, 당신한테 남편이 있소?

— 네, 있어요, 그것도 여럿,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무심하게 말했다. — 당신은 나를 여보라 부르네요 — 전에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는데. 알아챘어요? —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말은 — 이제 죽어 버렸어요.

— 여보, — 폴토라크가 말하며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를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 내 사랑, — 당신은 늑대 몰이를 본 적 없소? — 새벽에, 숲에서, 이슬을 밟으며, 침묵 속에 사냥꾼들이 제 자리에 선다오 — 몰이꾼들이 숲에 작은 깃발을 둘러 세우고 살아 있는 사슬로 늘어서지. 늑대들은 에워싸였소. 한데 늑대들은 제 둘레에 죽음이 섰다는 걸 모르오, 무엇보다 고요한 그곳에. 숲 위로 새벽이 오지. 당신과 나는, 늑대처럼 — 깃발에 갇혔소 — 삶은 이 방 문턱 너머에 남았소…… 하긴, 두서없이 말하는군. 여보, 삶은 문턱 너머에 남았소 — 나한테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소. 남편도, 과거도, 일상도 —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생활 밖으로 내던져졌다는 게 황홀하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제 어깨를 풀고, 모자와 장갑을 벗고, 덧창을 열고, 양초를 껐다. 그 새벽 시각에 양초는 정말 필요 없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탁자 위에 잠시 서 있다가 창가로 가, 능보 같은 창턱에 앉아 작은 창을 열었다. 창밖으로 새벽이 펼쳐졌고, 땅이 어둠과 안개에서 풀려나며 해 쪽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몹시 지친 방의 벽을 닮은, 잿빛의, 조금쯤 모질고 지친 어스름이 끼어 있었다.

— 새벽을 기다려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 콜롬나가 밤에서 기어 나오는 걸 보는 건 나도 처음이거든요. — 늑대 얘긴 너무 두루뭉술해요. 그래요, 나한테는 남편이 여럿 — 그리고 당신이 오늘 내 다음 남편이 될 거예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반박하지 못하게 했다. — 당신은 남편이라는 말이 무섭죠 — 무서워 말아요, 나는 당신의 자유를 뺏을 생각도, 당신의 종이 될 생각도 전혀 없으니까. 포도주나 꺼내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가방에서 바르사크 한 병을 꺼냈다.

— 당신은 남편이라는 말이 무서워서 늑대 같은 걸 지어내는 거예요. 그럴 것 없어요, 훨씬 단순하니까. 옛날에는 — 몸을 내맡긴다, 네 것이 된다는 말이 있었죠. 죽은 말들이에요! — 나는 누구에게도 몸을 내맡기지 않아요, 나는 남자처럼 취해요. 그리고 그 어리석은 말 — 사랑. 나는 나 자신 말고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한 적도 없어요. 나는 남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나 자신을 섬기는 게 재미있어요. 어느 좋은 날 여자가 되는 게 재미있어져서, 나는 여자가 됐어요 — 그때 나는 열여섯이었죠. 나한테는…… — 그녀가 잠시 말이 없었다. — 하긴, 나도 몰라요. 당신은 내가 몇 살인지도, 어디서 일하는지도, 무엇으로 사는지도 몰라요, 우리는 네 번째 만나는 거예요.

모스크바에서는 새벽이 우리를 자주 덮치지만, 우리는 집들에 가려 그걸 못 봐요. 봐요, 오 분 뒤면 해가 뜰 거예요, 세상이 얼마나 장엄한지, 하늘이 얼마나 너른지, 땅이 이슬로 씻겼어요. 내가 왜 당신과 함께 왔는지 알고 싶어요? — 우리가 강의 벼랑을 따라 걸어, 강에 맞서 요새를 쌓는 풀밭으로 가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당신은 시인처럼 말하는군, — 폴토라크가 말했다. — 포도주를 더 마셔요.

— 나는 기프로메스에서 일해요, 알잖아요, 한데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요, 포도주를 더 따라 줘요. 당신은 혁명을 어떻게 생각해요?

폴토라크가 포도주 따르기를 멈췄고, 그의 눈이 굳어졌다.

— 무엇에 대해서? — 그가 되물었다.

— 혁명에 대해서요. 혁명이 시작됐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어요.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나는 계집아이였죠. 하긴, 이건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는 포도주를 마저 따랐다. 그는 방의 지친 어스름 속에서 창가로 다가가 잔을 건넸고, 그의 얼굴은 잿빛이 돌고 이는 금빛이 돌았다. 그는 창턱 곁에 무릎을 꿇고,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그녀의 무릎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머리 위에 잔을 올려놓고 그것을 받친 채, 제 머리를 창틀로 젖혀 동쪽을 바라보며, 하늘과 안개를 좇았다. 안개에서 크렘린의 탑들이, 가장 멀리 있는 마리나 므니셰크의 탑이 기어 나왔다. 해는 아마 이미 안개 뒤로 떠올랐을 것이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단숨에 포도주를 들이켜고, 폴토라크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를 무릎에서 밀쳐 내며 창에서 일어났다.

— 그래도 우리는 밤의 사람들이에요, — 그녀가 말했다. — 덧창을 꼭 닫아요, 밤이 돌아오게. 우리 삶에 있는 모든 건 아주 적어요. 입 맞춰요 — 도둑처럼 말고, 파렴치하게…… 나는 알아요 — 당신은 여자들로 앓고 있죠. 나는 새벽을 보며 생각했어요, 내 안에서 아마조네스가 깨어난다고, 그리고 짐작도 못 했던 크렘린의 탑들을 봤을 때, 나는 남편들과 함께 싸움터에 나가던 옛 게르만 여인들이 떠올랐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죠. 나는, 나도 모르게, 호민관도 될 수 있고 매춘부도 될 수 있다고. 나는 내가 언제 진짜인지 몰라요. 당신과 있을 때 나는 냉소적인 유럽 여자, 관광객, 무엇이든 허락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에게도 무엇이든 허락돼요. 이건 어릴 적부터예요, 나는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아요, 밤마다 그래요 — 누가 이 방에 들어와야 하는지 나는 몰라요 — 한데 수천의 아는 이들 가운데, 들어온 이가 누구든 나는 알아채요, 머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무언가로, 바로 그것으로, 지금 이 새벽처럼, 세상과 더불어, 해와 더불어, 심장이 유달리 뛰기 시작하는 그것으로. 입 맞춰요.

폴토라크가 덧창을 닫았다. 여자들의 겨드랑이에서는 봉랍 냄새가 난다. 그리고 능보 같은 벽을 한 방, 새벽에서 훔친 어둠 속으로 함몰한 방, 러시아의 군청들을 두루 거쳐 온 군청 소재지 여관방, 아침, 입맞춤 — 모든 것이 정욕의 관청이 되었으니, 군청 소재지 여관 침상의 모든 관청이 그러하듯 몹시 무서웠다. 유럽의 도덕은 이 관청들의 비밀을 제삼자에게 발설하지 말라 명했다.

14

폴토라크는 이 콜롬나의 밤에 잠들지 못했다.

일곱 시 무렵 그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를 홀로 남겨 두고 공사장으로 떠났다. 그녀의 어깨는 드러나 있었고, 손을 머리 밑에 받친 채, 입을 어린아이처럼 반쯤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거리에서는 햇볕이 눈을 부시게 했고, 거리는 텅 비고 먼지투성이로, 간판들에 떠받쳐 누워 있었다. 천 년 된 러시아 셔츠를 입은 마부가, 제 사륜마차 마부석에 앉아, 바로 그 갖가지 러시아 옛것의 천 년으로, 공사장의 도랑과 둑의 참호 속으로 들어섰다. 공사장의 공간이 눈에서 멀어졌고, 멀리서 또 가까이서 굴착기들이 콧김을 뿜고, 사이렌이 울부짖었으며, 멀리서 묽은 공기가 터졌다. 공간들은 사회주의를 위해 싸웠고, 사륜마차는 네 바퀴로 삐걱댔으며, 말의 꼬리뿌리는 지의에 헐벗어 있었다. 모스크바강은 아직 옛 물길을 따라 흘렀고, 천 년 된 부교로 그것을 건너야 했다. 오카는 수력공학 기사들의 말마따나 제 “강의 유황(流況)”을 부수고 — 배수 운하로 흘렀다. 가물막이로 둘러싸인 그 옛 물길은 모놀리트의 콘크리트 능보로 쌓여 올라가 있었다.

숙박소에서 폴토라크는 나르잔 광천수를 청했다.

폴레티카 교수가 사디코프 기사와 앉아 있었다.

— 그분은 콜롬나에서 딸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와 알리사 라슬로와 함께 삽니다, — 사디코프가 말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 스물세 살쯤 된 처녀입니까? — 폴토라크가 폴레티카 교수보다 앞질러 물었다.

폴토라크는 떠올렸다. 콤소몰 단원 류바 폴레티카, 삼 년 전, 삼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와의 만남처럼 평범했으되, 예사롭지 않은 결말. 류보비 폴레티카는 고고학 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세상에는 제 삶을 기이한 것에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삼월에 스무 살의 류보비 폴레티카는, 콤소몰 활동에서 짬을 내어, 제 시간과 생각을 옛 봉분에서 발굴되는 돌 초원 여인상의 어두운 역사를 연구하는 데 바쳤다. 모스크바에서 이 여인상들은 역사박물관 마당에 무더기로 쌓여 보관되었으니, 육중하고, 백 푸드가 넘으며, 무섭고, 바람과 땅의 세월에 갉아먹혀, 광대뼈와 젖가슴과 배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보비 폴레티카는 이 여인상이 생겨난 시대를, 그것을 만든 민족을, 그 역사를 찾았다. 그녀는 볼가 너머로 고고학자 파울 라우에게 가, 여인상들을 발굴하며, 그것들을 만든 민족과 시간과 기억을 잃어버린 채 수백 년 동안 여인상들을 간직해 온 그 헐벗은 초원 풍경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볼가 너머, 의붓아버지의 조상인 웅그르족이 헝가리로 떠나간 그 땅에 있었다. 그때 류보비는 볼가 너머에서, 한때 꽃피고 사람이 북적이던 텅 빈 깃털풀 초원에 대한 상념을, 그 풍경 너머에서 죽어 가며 수천 년과 상념을 위해 — 이 무섭고 돌 같은 여인상들을 남긴 유목민들의 문화에 대한 상념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인상들은 정말 무서웠으니,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가늘고, 소처럼 배가 불렀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그것들의 우아함을 이야기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이 여인상들의 옷 주름에 대해, 텅 빈 초원의 눈을 그린 메마른 선에 대해, 낮은 이마에 대해, 다산의 상징으로 불거진 젖가슴과 배에 대해 몇 시간씩 이야기했다. 이 여인상들은 모권제의 증표로 생겨났다. 여인상을 만든 민족의 미학을 솜씨의 법칙으로 연구하며, 류보비는, 이 여인상들에 제 예술을 남겨 그것으로 시간을 멈춰 세우고 수천 년을 위해 제 미학을 남긴 그 알 수 없는 민족으로부터 인류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곱씹었다. 류보비는 — 이 여인상들로 — 유목민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과 유랑의 세기들을 읽었다. 폴토라크는 처녀들의 머리가 어떻게 입술로 숙여지고 입맞춤 아래 눈이 떨리는지, 어떻게 힘 빠지게 하는 말이 오가는지 잘 알았다 — 그는 류보비 폴레티카의 처녀 방으로, 콤소몰 단원들의 혁명에 대해, 돌 여인상의 세기들에 대해 들으러 다녔다. 류보비는 여인상들이 보관된 역사박물관의 둥근 천장 아래로 폴토라크를 데려갔다. 폴토라크는 이 돌 통나무들을 우상숭배의 잔재로, 로자노프식 성(性)의 신비주의로, 슬라브주의적 스키타이주의로 받아들였다. 폴토라크는 처녀가 제 시간을 신비주의를 위해 이 옛것에 바쳤다고 여기고 싶어, 류보비와 제 자신에게 그렇게 설득했으나, 류보비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류보비는 세기들을 미래에 바치려 그것을 파헤쳤다. 노동으로 가득 찬 이 처녀의 세계는 깨끗하고 맑았다. 붉은 삼월의 해 질 녘은 류보비에게 인류의 초원의 새벽을, 지구상 혁명의 여명을 떠올리게 했다. 폴토라크는 메피스토펠레스로, 그리고 성상화 같은 혁명가로 류보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입술을 제 입술로 숙이려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얹은 저녁이 있었다 — 그리고 그 저녁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하고 메마른 말로, 포옹이라곤 전혀 없이, 눈을 떨구고 손을 늘어뜨린 채, 아주 나직이 말해졌다. 그녀는 그 저녁 그가 자신에게, 손에조차 입 맞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 뒤 그들은 영영 헤어졌으니, 그녀가 사랑을 순결로, 나뉠 수 없는 것으로, 위업으로 여긴 까닭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손에조차 입 맞출 권리를 가지려면, 이 일을, 그들의 사랑을 온 세상에,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 옛 아내에게 부끄럼 없이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류보비는, 아이들과 옛 아내 앞에서 제 행복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제 행복을 위해 남의 삶을 부술 권리가 있는지 결정할 힘이 없어 괴로워했다. 류보비는, 사랑이 떠났다면 거짓이 온 것이고 — 거짓은 달아나야 할 추악함이라는 것으로, 제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한 채 폴토라크를 두둔했다. 그때 사흘 뒤 그들은 헤어졌으니, 그가 아이들을 희생할 힘도 명예의 권리도 없다고 했기에, 그녀가 제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그의 아이들에게 바쳤다. 그녀는 그의 아이들을 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지 말라 했다. 그리고 헤어지며 말하기를, 자신에게 사랑은 하나이며, 평생토록 그를 사랑하고, 그가 자신이 깨끗하며 사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될 때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제 자신을 위해서는 혁명을 남겨 두었다.

기사 숙소의 창밖에서 작은 기관차가 콧김을 뿜고, 기적을 울리며 굴러갔다.

폴레티카 교수는 탁자에 무겁게 기댄 채 앉아 있었다. 폴토라크 기사가 증오에 차 교수를 흘긋 보았다.

— 그 아이가 내 딸이오, 류보비 피메노브나, — 폴레티카가 말했다.

— 몇 해 전에 그분을 알았습니다, — 폴토라크가 공손히 말했다.

— 그 아이는 공사장에서, 고고학 위원회에서 일하며, 물에 잠길 옛 기념물들과 작별하고, 마리나 므니셰크 탑의 역사를 연구하오. 공산주의자요, — 사디코프가 말했다.

떠나간 작은 기관차 자리로 새 기관차가 달려와 창 밑에서 콧김을 뿜었다.

무분별한 남성의 다처(多妻)는 병이기에,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는 사랑할 줄 몰랐고, 수백 년 동안 사랑이라는 말을 규정해 온 그 사랑을 알지 못했으며, 그가 사랑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여자들 속의 제 자신이었다.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옳았으니, 폴토라크는 여자들로 앓았고, 그에게는 끊임없이 새롭고 또 새로운 관계가 어른거렸으며, 비정상의 헛것이, 여러 여자가 한꺼번에 뒤엉킨 것이, 수많은 여자의 무릎과 입술과 등과 배가 그를 황홀하게 했다.

모스크바에서, 떠나기 한 시간 전, 폴토라크가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를 역으로 데려가려 서두를 때 — 볼샤야 모스콥스카야 호텔 객실에서 — 영국인 셔우드가 폴토라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 결정됐소?

— 그렇소, 결정됐소! — 폴토라크가 답했다.

— 결정됐소, — 셔우드가 말했다.

둘은 더없이 주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류보비 폴레티카는 피멘 세르게예비치 폴레티카 교수의 딸이었다. 살인자가 살인의 장소로 이끌린다는 이 법칙은 옳다. 그때, 삼 년 전, 류보비 폴레티카는 폴토라크의 삶에 들어왔다가, 폴토라크에게 굴복하지 않은 모욕적인 순결로 그의 삶에서 떠나갔다.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음을 잊지 못하니, 어떤 이들은 순결을 따귀처럼 느낀다. 모든 병이 그러하듯, 사물의 논리란 있을 수 없었다. 폴토라크는 류보비의 무릎을 보았다 — 순결에 침을 뱉는 것은 — 어떤 이들에게는 행복이다. 폴토라크는 잠 못 이룬 밤 탓에 머리가 몹시 아팠다. 세상이 유리처럼 되고 모든 것이 새로 다시 세워지는 그런 두통을, 폴토라크는 삶의 충만으로 여겼다 — 헛소리의 가장자리에서, 불면으로 무거워진 채, 그는 서두르고, 일을 벌이고, 어디에나 닿아야 했으며, 앉아서 저린 팔다리가 마비되듯, 심장이 마비된 듯 지나치게 긴장하여 뛰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해가 빛났으나, 폴토라크에게 세상은 백야 때처럼 잿빛이었다.

식당으로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가 들어왔다.

폴토라크는 시(市)전기궤도국 일로 공사장에 왔다. 전기기계부 부장 사무실에서 폴토라크를 기다린 것은 전기기계부 노동자 생산회의 의장으로, 졸리고 과묵한 사람이었다. 공장 식당의 클럽에서는 작업을 시전기궤도국에 넘기는 문제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의장은 자료를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 노동자 시소예프요. — 서류를 뒤적이고는 서두르지 않고 덧붙였다. — 문화 찻집으로 가시지요.

제이 마을을 지나갔다. 폴토라크의 겨드랑이에는 서류가 든 가방이 놓여 있었다. 머리가 잠으로 가득 찼다. 시소예프가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며 앞장섰으나, 폴토라크가 그를 뒤따라 서둘러야 할 만큼은 빨랐다. 혁명 전 폴토라크는 생산 현장에서 일했고, 혁명 뒤에는 트러스트 위원회들에 박혀 있었다. 풀밭 위에 생겨난 거리 — 공사장의 노동자와 직원만 사는, 가게 주인도 잡계급도 없는 예사롭지 않은 도시의 거리 — 를 걸었다. 거리는 근무 시간이라 텅 비었고, 규격 주택들이 창에 커튼과 제라늄을 단 채 바둑판 모양으로 늘어서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갓 심은 포플러가 푸르렀다. 꽃밭이 둘린 네거리는 운동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퉁이에서는 협동조합 가게 간판이 햇볕에 데워지고, 확성기가 쉰 소리를 냈다.

— 이 집들에는 기사들이 삽니까? — 폴토라크가 물었다.

— 아니요, 상근 노동자들이오, — 시소예프가 답했다. — 나는 저기 저 집에 살지요.

무더운 아침에 수탉들이 서로 울어 댔고, 암탉이 꼬꼬댁거렸다. 운동장에서는 사내아이들이 막대치기를 하며 참새처럼 재잘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벤치 옆 아스팔트에 분필로 음란한 낱말을 정성껏 그리고 있었다. 시소예프가 더없이 엄하게 외쳤다.

— 바시카, 망할 녀석, 그래도 소년단원이라고! 귀를 잡아 뜯어 놓겠다! — 사내아이들이 줄행랑을 쳤고, 시소예프는 발로 아스팔트의 분필을 문질러 지우며 폴토라크에게 말했다.

— 바실리예프, 저 개구쟁이가 내 조카요, 저것 봐, 뒤꿈치에 불이 났구먼 — 어찌 매를 안 들겠소? — 그러고는 까닭 모를 말을 덧붙였다. — 올해 임금이 작년 대비 평균 십팔 점 오 퍼센트 올랐고, 노동생산성은 이십칠 점 오 퍼센트 높아졌소. 사회주의 경쟁이지요, 한데 내 형 바실리는 부랑자로 빠졌소. — 시소예프는 분필이 안 지워지는 아스팔트에 모질게 침을 뱉고, 울타리 너머로 사라진 사내아이를 눈으로 찾으며 말했다. — 두고 봐라, 망할 녀석, 또 단장한테 일러바칠 테니, 본때를 보여 줄 게다, — 그러고는 누그러져 앞으로 걸어갔다.

폴토라크는 읽은 적 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자연에 맞서 그것을 조직하는 데 끝이 없는 기계와 강철과 건설에 관한 — 거기에 절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에 관해 서사시를 지어야 한다는. 폴토라크는 생각했다, 가장 주된 것, 결정적으로 주된 것은 — 사람이라고, 그를 위해 기계가 살고, 그로 인해 기계가 살고 강이 흐르며, 건설하기 위해 사는 그 사람이라고 — 그러면서 폴토라크는 류보비 폴레티카를 떠올렸으니, 그녀를 나데즈다 안토노브나와 헷갈렸다.

공장 식당의 유리 건물은 땅에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현관에서 폴토라크는 제지당해 외투를 벗으라는 청을 받았다 — 폴토라크는 놀랐다. 찻집에는 더없는 청결과, 신선한 공기와, 신선한 빛이 있었다. 폴토라크는 흰 벽과 화분이 놓인 흰 탁자들이 있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탁자에서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신문꽂이에 끼운 신문을 읽고 체스를 두었다. 시소예프는 폴토라크에게 담배를 끄거나 흡연실로 가 달라 청했다. 사람들과 방의 평온함에는 아무런 가식이 없었고, 흰 탁자와 벽의 느림은 요양원을 떠올리게 했다. 시소예프는 식권을 받으러 갔다가 우유와 차와 샌드위치를 가져왔다. 폴토라크와 시소예프는 시간보다 일찍 왔다. 그들 탁자 맞은편에는 깃과 넥타이를 한 셋이 앉아, 먹으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붉은 머릿수건을 두른 처녀가 앉아 있었다.

— 저 양복 입은 자들은 — 누구요? — 폴토라크가 물었다.

— 시추공들이오. 젊은 노동자들이지요 — 여긴 죄다 노동자뿐이오, 둘째 교대요, — 시소예프가 답하고는 정성껏 먹기 시작했다.

— 한데 저 처녀는?

— 전기기계부의 자이치하인데, 역시 여공이오.

폴토라크는, 시소예프도 우크라이나 자수 셔츠에 끈 모양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었음을 알아챘다. 마흔 줄의 노동자 둘이 시소예프에게 인사하고 젊은이들 곁에 앉아, 차를 가져와 드문드문 말을 주고받았다. 폴토라크는 극심한 피로에 잠겨 귀 기울이지 않았다 — 가방에서, 시소예프가 살펴보라고 건넨 회의록 묶음을 꺼내 제 앞에 놓았다.

옆 탁자의 손위 노동자가 말했다.

— 소책자하고 신문으로는 — 못 배우오. 학술서가 있어야 해, 진지하고, 또 건설 현장에 맞게, 특히 시골에 맞게 값싼 걸로. 알아듣기 쉽고 곱씹을 만한 그런 책이 있어야 하오. 죄다 찬찬히, 구석구석, 신문이나 소책자 식이 아니게. 예전엔 막대기로도 못 끌어들이더니, 이젠 초등 일 단계조차 자리가 모자라오.

폴토라크가 읽었다.

“노동자 발명 지원 세포 사무국 제17호 회의록, 29년 4월 30일. — 덤프카 차체가 저절로 기울어지는 경우에 대비한 장치 적용에 관해, 체르니 동지와 스타로스텐코 동지에게 저작권을 부여해 달라는 신청 검토. — 청취: 1) 체르니 동지에 대한 질문. 이 장치에 대해 차고 책임자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알린 적이 있는가? — 답변: 아무에게도 없으나, 작업 중 적용하여, 분할핀을 받치거나 너트를 조였음. 또 알리지 않은 것은 이것에 큰 의의가 있으리라 내다보지 못한 까닭임. 2) 코르슈노프 동지가 진술하기를, 자신은 1928년 5월부터 덤프카에서 일했고 오멜첸코프 동지가 안전장치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없었으며, 자물쇠공 체르니, 스타로스텐코 동지는 그 뒤에 이 안전장치 제작에 종사했다고 함. 3) 프로코포프 동지가 이 문제에 관해 경위를 진술함. 나는 차고 책임자로서 G부로부터 덤프카 기울어짐의 안전에 관해 개량을 해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나는 오멜첸코프 동지와 의논했고, 그가 같은 날 죔쇠를 만들면 그것이 안전장치가 되겠다고 했다. 4) 핍킨 동지가, 해당 발명은 오멜첸코프 동지와 체르니, 스타로스텐코 동지 모두의 집단적 창작이라고 지적함. 5) 소볼레프 동지, 이 문제에 관해 설명하건대, 덤프카 조립에서 첫째는 오멜첸코프 동지였음. 해당 착상은 합리화가 아니라 발명으로 봄,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니, 단순한 발명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임. — 결정: 코펠식 및 마고르식 덤프카가 저절로 기울어지는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 제작 장치를 — 장인 오멜첸코프와 자물쇠공 체르니, 스타로스텐코의 집단적 창작으로 본다.” —

맞은편 탁자에서 한 젊은이가 한 말이 들려왔다.

— 『신세계』가 너무 비싸져서 구독이 안 되고, 『붉은 처녀지』는 손도 못 대지. 『별』을 신청하자고 청해야겠어. 그리고 술로 말하면, 젊은이들은 이제 새로운 식으로 마셔. 예전엔 어떻게들 마셨는지 모르겠고. 이젠 우리가 사람당 코냑 반 병에 나르잔 두 병을 사. 코냑을 마시고 나르잔으로 해장을 하지.

노인이 말했다.

— 나는 아들하고 손풍금을 걸고 내기를 했네. 도면 없이는 자네들 못 알아들어. 한마디로, 잘린 원뿔 안에 어떤 크기의 공이 들어갈 수 있느냐는 거지. 아들한테서 손풍금을 따낼 것 같아 — 사흘째 앉아서 계산하고 있다네.

— 자네 아들이 기계부에 있나? — 거긴 일하기가 그저 즐겁고 자격이 팔 급까지 올라가지. 한데 절반이 수작업인 토목부에서는 급이 오 급을 넘지 않아. 잘못된 거지. 뻔한 노릇이야, 젊은것들이 기계부로 몰리는 게.

노동자가 몇 사람 더 왔다. 폴토라크가 읽었다.

“……생산회의와 위원회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생산의 합리화로 귀결되었다. 직장 생산위원회 구성원은 559명이었고, 그 가운데 노동자 431명, 직원 52명, 행정·기술 인원 76명이었다. 일월부터 소집된 생산회의는 모두 95회, 참석 인원 9,257명, 그 가운데 적극 회원 3,758명, 노동자 3,362명이었고 — 제안 730건이 제출되어, 그 가운데 600건이 행정부와 합의되었으며, 343건이 실행, 257건이 실행 단계, 57건이 부결되었다. 수석기사부 자료에 따르면, 실행된 제안의 일부에서 30만 7천 루블의 절감이 드러났으니, 수치로 나타내기가 불가능한 일련의 결함 제거는 셈하지 않은 것이다.” — 노동자들이 어느새 많이 모여 있었다.

— 한데 손풍금은 아들한테서 따낼 거야! — 우리 데서 어느 직업학교 학생 하나가 새 굴착기 버킷을 발명했지 뭐요, 기사들이 깜짝 놀라 공업전문학교로 보낸다오 — 그 젊은이가 제 원리에 푹 빠져 얼이 빠져 다니지.

폴토라크의 머리가 불면으로 쪼개질 듯했다. 시소예프는 마지막 찻잔 받침의 차를 마저 마시고, 콧수염을 닦아 매만지며 점잖게 말했다.

— 회원들이 모였소. 시작해야겠소. 당신이 모두 발언을 하시구려, 시전기궤도국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회원들이 몹시 들떠 있소.

도서실로 들어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 보고하시오, 폴토라크 동지, — 시소예프가 말했다. — 회의를 개회합니다. 안건은 공사장 전기설비를 시전기궤도국에 넘기는 건이오. 회의록, 이반 스테파니치, 그가 발언하는 동안 우리 명단을 적어 두시오.

폴토라크는 생각을 그러모아, 머릿속에서 두통을 밀어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발언하고 그들 앞에서 보고해야 하는 까닭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말없이 들었다. 폴토라크에게는 방도, 사람들도, 제 자신처럼 졸린 듯 보였다. 그는 오래 말했고 제 발언을 기억하지 못했다.

— 질문하시오, 회원들, — 폴토라크가 끝내자 시소예프가 말했다. — 질문을 적어 두시오, 이반 스테파니치.

노동자들이 폴토라크와 시소예프와 서기가 앉은 탁자로 다가앉았다.

— 우리가 규정대로 맞추도록 시전기궤도국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겠소? — 시전기궤도국에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싶소, — 젊은 노동자가 물었다.

— 우리 배전공들이 이 일에 자격이 맞는지, 부담은 얼마나 큰지 질문을 적어 두시오. 그리고 — 시전기궤도국이 무슨 보증을 하는지도?

— 잠깐들, 이보게들. 시전기궤도국이 우리 노동력 한 단위의 값을, 또 제 단위의 값을 알고 있소?

폴토라크의 머리가 아픔으로 쪼개질 듯했다. 그는 생산회의가 처음이었고, 그것이 쓸데없어 보였다 — 호텔에서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폴토라크는 자신이 결코 믿지 않던 것을 모질게 생각했다 — 혁명의 세월 동안 노동자들의 심리가 이미 재편되었다는 것을 — 건설이 그들, 노동자들의 소유이며, 이곳에서 살고 건설하고 지킬 사람이 그들이라는 것이 이미 심리의 생물학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건설과 건설의 조건이 노동자의 공적 영역이 되었고, 그 앞에서 그, 폴토라크가 보고해야 했던 것이다.

— 질문을 적어 두시오 — 배전반용 골조는 주문했소?

— 질문에 답하시오, 폴토라크 동지, — 시소예프가 말했다.

폴토라크가 다시 오래도록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참을성 있게 들었다.

— 쿠브시노프 동지, 토론에서 말하시오, — 시소예프가 말하고는 폴토라크에게 나직이 덧붙였다. — 당신 건은 통과 못 하겠소, 내가 보기엔, 폴토라크 동지.

노동자 쿠브시노프가 헛기침을 하고 바지를 추켜올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 우리 데서 시전기궤도국 문제가 논의되는 게 처음은 아니오만, 이번엔 보아하니, 시전기궤도국이 그럴 만한 근거도 없이 일을 가져가는구려. 나는 이제 시전기궤도국에 아무 일도 주지 말자는 쪽이오. 보고자 동지, 시전기궤도국 대표는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하고 제 말을 스스로 뒤집소. 사람 하루치가 우리 공사장에는 팔 루블, 시전기궤도국에는 십육 루블이라면, 곱절로 비싼 셈이고, 사무소가 시전기궤도국 꽁무니에 삼십만 루블을 내던지는 거요. 한데 우리 손을 아낄 필요는 없소. 보태시오, 칼라가예바 동지.

붉은 머릿수건을 두른 처녀 칼라가예바가 머릿수건을 고쳐 매며 말하기 시작했다.

— 내 생각엔, 이 문제에 아주 신중히 다가가야 하오, 말하건대, 전기기계부 행정부가 문제에 잘못 접근했고, 그래서 아래로부터 이런 소동이 생긴 거요. 사정인즉, 우리가 기한 안에, 물론 빈말이 아니게 해내겠다는 보증을 해야 한다는 거요. 그러면 시전기궤도국이 우리 데서 할 일이 없다고 보오. 우리는 직장의 이익이 아니라 건설의 이익을, 건설의 금고를 지켜야 하오.

시소예프가 폴토라크에게 몸을 숙여 다정하게 말했다.

— 당신 건은 안 되겠소, 폴토라크 동지. 노동자들이 우리를 속여 넘기게 두지 않을 거요. 당신 수작은 통하지 않소. 들어 보오, 저 아가씨가 어떻게 깔끔히 베어 내는지.

폴토라크가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이 사람들에게 매여 있음을 모질게 깨닫기 시작했다. 어디 그 따위 아가씨의 말을 듣는 것이 모질게 느껴졌다. 가장 주된 것은 사람, 가장 주된 것은 — 인간의 삶이다. 노동자라는 사람을, 그 일상과 근심과 영웅적 면모 속의 그를, 폴토라크는 이론으로만 알았거나, 아예 알지 못했다. 폴토라크는 옛 공장의 러시아를 알았다 — 거기서는 노동자와 말을 섞지 않았다. 폴토라크의 머릿속이 증오로 차올랐다. 노동자들은 담배가 금지되어 몹시 피우고 싶은 이 문화 식당에 주인으로 앉아, 주인으로서 — 공적 인간으로서, 혁명에 의해 세계관이 재편된 사람들로서, 지어지는 모든 것이 — 그들의 것, 그들의 일, 그들의 노동, 그들의 근심이라는 것으로써 논하고 있었다. 폴토라크 앞에는 적들이 앉아 있었으니, 이 사람들은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설계를 심판하며, 그를 제 생활에서 내쫓아 제게 굴복시켰다. 머리가 아픔으로 쪼개질 듯했다. 처녀가 발언을 마쳤다. 처녀의 얼굴은 곱고 사무적이었다. 폴토라크는 듣기를 그쳤으니, 분노가 목을 막았고, 폴토라크는 고함이라도 지를 듯했으며, 처녀의 얼굴이 증오스러워졌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폴토라크를 잊었다.

회의가 끝났다. 시전기궤도국의 제안은 부결되었다. 노동자들이 문 쪽으로 갔다. 시소예프가 서류를 챙기며 다정하게 말했다.

— 죄다 넉넉해야 아무도 골내지 않소, 양동이며, 냄비며, 기계며, 빵이며, 고기며. 우리 데는 부자가 없으니, 아무도 안 뺏어 가오. 한데 그러려면 아껴야 하오. 그리고 서로 존중하고,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오.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서로를 가엾이 여겨야 하는 법이오.

— 무슨 말을 하는 거요? — 폴토라크가 물었다.

— 바로 사회주의 얘기요, — 시소예프가 답했다. — 우애야말로 참된 공산주의지요. 한데 당신은 — 시전기궤도국이라니! 언짢아 마시오, 당신도 알잖소 — 다 일을 위해서요.

그들은 한낮의 무더위 속으로 나왔다. 폴토라크에게는 해가 검게 비치는 듯했다. 삼 년 전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순결로 폴토라크를 떠나갔다. 살인자는 살인의 장소로 이끌린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연구하던 돌 여인상들은 폴토라크의 병이었다.

15

류보비 피메노브나 폴레티카는 콜롬나에서 어머니와 함께 스쿠드린 노파들의 집에 살았으니, 어머니의 둘째 남편 에드가르 이바노비치 라슬로가 어머니를 떠난 뒤로 어머니와 함께 들어와 살며 — 어머니와, 배다른 동생 알리사를 보살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일하며, 야영지와 옛터를 발굴했다. 한편 집은 쪽문까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마당 정원 쪽문 곁 목욕간에는 이반 카르포비치 오조고프가 개 아라프와 함께 살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반 카르포비치는 벽돌 공장 가마 곁 제 콤뮨으로 옮겨 살면서, 목욕간의 개에게 들르기만 했다. 개 아라프는 이반 카르포비치의 잠자리, 곧 그의, 그리고 그들 공동의 목욕간에서 살았다. 이 이야기의 그날 하루 전, 표도르 이바노비치 사디코프 기사가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죽음 뒤 남겨진 볼크라는 두 번째 개를 쪽문 안으로 데려왔다. 볼크는 사디코프의 손에서 먹기를 마다했고, 사디코프는 그 개를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 주었다. 개들은 서로 냄새를 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마당의 집은, 비스듬히 기울고 푸른 이끼에 뒤덮인 채, 테라스로 정원에 기대 있었고, 마당은 풀로 우거졌으며, 풀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었다 — 쪽문에서 현관으로, 현관에서 헛간으로, 또 현관에서 정원으로, 정원 쪽문으로.

그리고 테라스가 포도 덩굴에 뒤덮이듯 모든 것이 고요에 뒤덮여 갔다. 울타리 위 새집에는 찌르레기가 살았다. 거리로 난 쪽문은 삐걱이며 열렸다가 도르래로 쾅 닫혔다. 정원에서는 사과가 익어 갔다. 집은 고요와 햇볕으로 데워졌다. 여름이면 이런 집에서는 몇 주씩 창을 열어 두어, 칠월의 잔잔한 바람에 밀려, 야생으로 돌아간 포도밭과 옛 정원의 보리수에서 풀물 들고 서늘해진 공기가, 비뚜름한 방들을 떠돌게 한다. 야생으로 돌아간 포도가 그런 날 방들을 황금빛 무더위에서 숨겨 준다.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는 마지막 남편을 잃은 어머니 곁에서 보낸 힘겨운 나날과, 마리야의 죽음을 곱씹은 힘겨운 밤 — 마리야가 남긴 볼크 곁에서의 — 이 있었다. 사디코프가 떠난 저녁부터, 새벽에 나무들이 새벽빛 속에 검어지고 옷에 차가운 이슬이 앉던 그때까지,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볼크와 함께 있었다. 볼크는 텅 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 눈 속에서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마리야의 죽음을, 볼크가 목격자였던 그 마지막 경련을 보았으며, 마리야가 목을 맨 바로 그 라슬로에게 삶을 송두리째 앗긴 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어머니를 보았다. 볼크의 눈 속에서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죽음에 관해 읽었다. 새벽이 보리수와 흰 옷을 — 뼈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아직 잘 무렵에 일어나, 볼크와 동생 알리사를 데리고 콜로멘카 강으로 멱을 감으러,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스타리예 고로디시차로 갔다. 거기 교회에는 마마이 타타르의 낙인이 간직되어 있고, 그곳을 고로디시차(옛 성터)라 부르는 것은 정말로 삼백 년쯤 전에 여기 콜롬나의 성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디시차 너머, 타보르 숲에서는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다. 콜로멘카의 물은 서늘했고,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머리를 적시지 않으려 단단히 묶었다. 마리나 므니셰크가 이곳에 진을 쳤다 하여 그 이름이 붙은 타보르 숲에서, 노동자들이 봉분을 발굴하며 옛것의 흙을 체에 던졌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어머니가 일어날 무렵에 돌아왔다. 알리사에게 그 동무 미시카가 왔으니, 노동자 시소예프 형제 가운데 하나의 아들이요, 아카티예보의 나자르 영감의 손자였다. 테라스에서는 사모바르가 끓어올랐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어머니에게서 주의 깊은 눈을 떼지 않았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힘없이 장례 이야기를 꺼냈다 —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어머니를 장례에 보내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어머니는 손에 구겨지지 않은 흰 손수건을 쥐고 용기를 그러모으는, 환한 여인이었다.

— 나는 마리야와 가까웠다, — 어머니가 말했다. — 그리고 그 사람은 아무 죄도 없어, 가엾은 사람. 게다가 죽은 이는 심판하지 않는 법이지.

— 엄마,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도 엄마 자신도 심판하지 마세요, — 류보비가 말했다.

차를 마신 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를 정원으로 데려갔고, 정원에서,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땅과 벗하여 그 냄새 속에서 — 휴식의 관례대로 — 그들은 두둑 곁을 파헤쳤다. 어머니와 딸은 정원을 거닐고, 테라스와 집에 드나들었다 — 붉은 머릿수건을 두르고, 흙을 묻히지 않으려 두 손을 엉덩이에서 떨어뜨린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낮에 그들은 테라스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광의 우유를 마셨다. 알리사와 미시카는 빈둥대며 노는 데 싫증이 났고, 미시카는 알리사를 두고 잠깐씩 쪽문 밖 거리의 공간으로 달려 나갔다.

오후 늦게, 하늘이 유난히 푸르러지고, 빠르게 녹았다 다시 생겨나는 구름 아래 무더위가 유난히 금빛으로 물들 무렵,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알리사와 미시카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사내아이는 조용했고, 파란 눈에 주근깨가 있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집에서 가위를 가져와 미시카의 손톱을 깎아 주었다. 미시카는 더러운 손을 내민 채 생각에 잠겼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옆에서 두둑을 파헤쳤다.

미시카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 나 방금 저쪽 거리하고 큰길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마리야 표도로브나를 묘지로 모셔 가더라고요.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그리고 그러는데, 공사장 여공들이 죄다 일을 던지고 묘지까지 배웅하러 갔고, 묘지에서 집회가 있을 거래요. 에드가르 이바노비치가 고개를 숙이고 검은 모자를 쓰고 가더라고요. 기마 경찰이 묘지로 지나갔어요.

미시카는 제 손과 깎이는 손톱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었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눈이 애원하는 빛이 되었다. 한 달 반 전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는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를 떠나 마리야에게로 가며,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녀의 늙음을 남겨 놓았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에게는 남편에 대한 기억과 온갖 기억 말고는 제 삶이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리고 마리야 사디코바가 목을 맸다.

— 알겠어요, 엄마, 제가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말했다.

— 아니다, 류바, 너는 아무 데도 가지 마라, — 어머니가 엄하게 말했고, 그 눈은 용서를 구했다.

— 아니에요, 갈게요, 엄마, 곧 돌아올게요.

그러나 이때 거리로 난 쪽문이 노래하듯 삐걱이고 쾅 닫혔다. 림마 카를로브나는 온갖 소식을 다 알고 있었다 — 그래, 파업이지, 그래, 관을 무덤까지 배웅한다지, 그래, 살인자라고 에드가르 이바노비치를 배척하자 외친다지. — 미시카의 손톱이 다 깎였다.

— 이제 우리한테 읽어 줘요, — 미시카가 말했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방으로 들어가, 제 방 침대에 누웠다.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눈은 단단했다. 그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그녀는 알리사와 미시카를 제 곁 긴 의자에 앉히고, 어제 읽다 멈춘 자리에 끼워 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읽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갱에서 일했다. 빨간 머리의 작은 모치카가 일하는 아버지를 거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등을 대고 누워 곡괭이로 광석을 쪼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땅속 가스에 불이 붙는 것을 막아 주는 촘촘한 철망에 끼운 흐릿한 등불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갱을 따라, 땅속을 뒤흔드는 무서운 굉음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곡괭이를 던지고 귀를 곤두세우며 일어나 앉아 굉음에 귀 기울였다. 빨간 머리 모치카가 아버지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아버지와 아들 둘레로 땅이 떨렸다. 아버지가 서둘러 출구 쪽으로 기어갔고, 아들이 그 뒤를 기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흙덩이가 떨어져 내려 아버지를 덮쳐, 그 밑에 묻어 버렸다. 빨간 머리의 작은 모치카가 아버지를 구하려 달려들었다. 흙은 위에서 계속 쏟아져 내렸다. 사내아이는 제 가냘픈 작은 손으로 아버지를 파냈다. 그는 울며 숨이 막혔다. 그의 손가락에서 손톱이 떨어져 나갔다.

— 그만요, — 미샤가 말했다. — 더 읽지 마요.

— 왜?

— 둘이 파묻히는 게 너무 무서워요, 더 읽지 마요! — 사내아이가 말했고, 그 얼굴에 당혹감이 비쳤다.

정원에서는 사과가 익어 갔다. 사내아이는 맨발에 머리가 부수수하고, 주근깨에 파란 눈으로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미시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미시카는 눈을 땅으로 떨구었다. 그는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정원에서는 따뜻한 흙냄새가 났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미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은 보지 못하는 눈이 되었다. 그녀는 사내아이가 갱과 어둠과 공포의 숨 막힘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했다 — 그리고 사내아이가 인간의 온기를 느끼려 제 무릎에 달라붙었음을 이해했다. 마리야 사디코바는 그 시각 이미 땅에 묻혔다. 어머니는 그 순간 마음으로 마리야 사디코바와 함께 있었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무덤의 어둠을 보았다. 해가 검게 보였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이 순간 거리로 난 쪽문이 삐걱이고 쾅 닫혔다. 마당의 약초 카밀러를 밟으며 폴토라크가 걸어왔다. 무덤의 흙 속에서 사람에게 구더기가 달려든다. 폴토라크가 마당의 푸른 풀밭을 걸어왔다 —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해가 검게 보였다 — 류보비 폴레티카는 문득, 단번에 사내아이도, 어머니도, 정원도, 땅도 잊었다. 그녀는 폴토라크에게로 달려가,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떨구었다.

— 당신이 왔군요, — 그녀가 속삭였다. — 당신이 — 왔어요! 나는 너무 힘들어요.

— 그래, 내가 왔소, — 그도 속삭여 말했다. — 영영!…… 영영, — 그가 되뇌었다 — 그리고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제 의지 바깥에서 생겨난 일이, 아마 해가 검어지고 모든 소리가 사라졌을 때 류보비 피메노브나에게서 옮아온 일이 닥쳤다 — 머리가 핑 돌고, 생각이 무너져 내렸다.

폴토라크가 땅으로, 무릎으로, 류보비의 무릎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는 류보비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의 의지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생각이 무너져 내렸으니, 뇌가 미끄러진 듯했다. 류보비는 그가 쓰러지지 않게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땅에 주저앉았다. 미시카가 류보비 피메노브나를 도와 폴토라크를 붙잡았다. 미시카는 아주 진지했다.

쪽문이 또 한 번 노래하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부랑자 이반 오조고프가 울타리 곁 한쪽에 섰다.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눈이 행복과 희생 속으로 사라졌다.

목욕간의 쐐기풀과 우엉 뒤에서 개들의 머리가 비어져 나왔다.

— 영영, — 폴토라크가 속삭였다. — 무슨 헛소리람. 곧 일어나겠소.

그는 류보비 피메노브나를 붙들고 일어났다.

— 미샤, 물 좀 가져오렴,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말했다.

— 그래, 물을, — 폴토라크가 말했다.

폴토라크가 미덥잖게 발을 내디뎠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그를 정원으로, 방금 미샤와 함께 앉아 있던 그 긴 의자로 데려갔다.

그녀는 온 존재로 폴토라크에게 달라붙었다.

— 당신은 자유로워졌어요, 당신은 사랑하고, 당신은 왔어요, — 그녀가 말했다.

— 기억하오, 당신이 보리스와 글레프에 대해 썼던 걸, — 폴토라크가 말을 꺼내고는 스스로 끊었다. — 머리가 핑 도오, 밤에 못 잤소…… 가 봐야겠소, 나 자신을 가눌 수가 없소. 호텔로 가겠소. 공사장에 가야 하오. 거기 당신 아버지가 있소. 나한테 아는 영국인이 있는데, 그자의 눈은 구두창처럼 단단하오 — 구두창 같은 눈이지.

—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예브게니? 당신은 아무 데도 안 가요,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말했다. — 공사장에 아버지가 계신 건 나도 알아요 — 아버지는 우리 데 안 오세요 — 원하시면 직접 오시겠죠. 당신은 왔으니, 내게 다 말해야 해요. 우리한테 큰 불행이 있어요, 엄마한테 — 오늘이 라슬로 아내의 장례예요. 말해 봐요. 당신 아이들은 어디 있어요?

— 당신은 공산주의자요?

— 네.

— 당신은 내 사람이 되겠소?

— 네.

— 당신은 혁명을 믿소?

— 네. 당신 아이들은 어디 있어요?

— 공사장에 파업이 일어났소. 당신은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과 마호가니 세공가 베즈데토프 형제를 아오? — 무슨 헛소리람, 나는 해야 할 말이 아닌 걸 하고 있소……

— 당신 아이들은 어디 있어요?

— 내 아이들? — 없소, 모스크바에 있소.

미샤가 물을 가져왔다. 폴토라크가 마셨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폴토라크를 끌어안았다. 정원에서는 열매가 익어 갔고, 햇볕이 나무 위로 떨어졌다. 해도, 미샤도, 세상도 — 없었다. 부랑자 이반은 정원으로 난 울타리 곁에 서서, 두 손을 울타리에 얹고 그 위에 머리를 얹은 채 익살을 부리고 몸을 비틀었다. 미샤가 이반 카르포비치에게로 갔다. 테라스에는 알리사를 뒤따라 어머니가 나타났다. 세상은 소리 없음 속에 잠겨 있었다.

— 가 보겠소, — 폴토라크가 말했다. — 당신이 나를 어떻게 맞을지 몰랐소. 당신이 여기 있는지도 몰랐소.

— 내가 여기 있는지 몰랐다니요? —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되물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맞을지 몰랐소 — 당신을 만날 수 있을지 몰랐소…… 가 보겠소, 저녁에, 한 시간 뒤에 오겠소 — 나는 혼자 있어야 하오, 호텔로 가겠소. 깨끗해야 하오. — 폴토라크가 일어나 정원 안쪽으로 갔다. — 아니, 그쪽이 아니지. 나를 바래다주오. 오겠소, 류바, 오겠소 — 영영.

폴토라크가 서둘러 쪽문으로 갔다. 류보비 피메노브나는 영문을 몰랐다. 류보비 피메노브나가 그를 문턱까지 바래다주었다. 개 아라프가 짖었다. 폴토라크는 쪽문에서 머뭇대지도, 작별하지도 않고 달려 나갔다. 쪽문이 노래하며 요란하게 쾅 닫혔다. 세상은 이 쪽문 소리로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정원으로 난 울타리, 나무들, 씻는 것을 잊은 흙 묻은 두 손으로 테라스에 선 어머니 — 하늘, 미샤, 이반 카르포비치.

이반 카르포비치는 익살을 부리고 몸을 비틀었다. 이반 카르포비치가 류보비 피메노브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 내 환한 아가씨, 류보비 피메노브나 동지! — 이반 카르포비치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 안 돼요, 안 돼요! — 당신한테 하는 말이오 — 안 돼요! 그를 사랑하지 마요! 그는 와서 앉지도 않고 여관으로 내뺐는데, 여관에는 그가 모스크바에서 데려온 화장한 계집이 있고, 그 여자가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소. 내 사랑스러운 아가씨, 류보비 피메노브나 동지, 우시오! 그는 몽매한 자요, 그는 내 형 야시카와 함께 모놀리트를 폭파하려 하오!…… 기뻐하시오, 동지들, 사람들이 명예를 위해, 공산주의를 위해, 고결함을 위해 일어섰소!…… 당신도 우시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 그리고 너도, 미시카!……

—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해요?! — 류보비가 외쳤다.

— 이반 카르포비치,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 올가 알렉산드로브나가 분개하여 외치며, 용서를 구하는 눈빛으로 부랑자에게 다가갔다.

부랑자는 몸을 비틀며 두 손을 가슴에 댔다.

이제 전쟁에 들어선 도시 콜롬나는 — 니콜라이의, 니콜라이 일세의 도시였으니, 니콜라이 시절부터 콜롬나가 죽어 간 까닭이다. 아스트라한스카야 거리의 호텔은, 마찬가지로 돌로 지어져 땅에 묵직하게 들어앉은 다른 집들과 한 줄로, 넓은 솔기의 니콜라이식 죽어감으로 멀쩡히 서 있었다. 호텔의 객실들은 침침한 능보 같은 작은 창으로 콜롬나를 바라보았다. 객실 맞은편 광장에서는 크렘린의 폐허가 죽어 갔고, 크렘린의 옛 드보랸스카야 거리에서는 박물관지기 그리보예도프가 밤이면 그리스도와 함께 보드카를 마셨다 — 한편 묵직한 집들과 어두운 대문 통로의 아스트라한스카야 거리는, 러시아가 치르던 그 전쟁을 조직하는 간판들의 줄로 지어져 있었다. 땅이 저녁을 향해 기울었고, 도시 위로 까마귀들이, 파괴의 영혼들이 하루를 흩어 갔으며, 종소리가, 옛것의 통곡이 신음하기를 그쳤다. 해 질 녘에 바람이 불기 시작해 먹구름을 몰고 왔고, 땅이 잿빛으로 변했으며, 비가 팔월답게 내렸다. 땅에서는 이따금, 단번에, 사소한 것에서, 십 분 전만 해도 알아챌 수 없던 봄이 오거나 가을이 오는 일이 있다.

폴토라크는 니콜라이식 집들의 관 아래에서 아주 작아 보였다. 폴토라크는 콜롬나의 옛것을 떠받쳤다. 폴토라크는 사회주의라는 붉은 간판에 부딪치며 아주 느리게 걸었다. 거리들은 비를 앞두고 텅 비어 갔다. 폴토라크는 거리에 가로막혔다.

폴토라크가 능보 같은 객실의 고요 속으로 들어섰을 때,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 너무하네요, — 나데즈다 안토노브나가 말했다. — 당신은 공사장을 보여 주려고, 함께 있으려고 나를 불러 놓고는, 줄곧 어딘가로 가 버려 나를 혼자 두는군요.

폴토라크는 아무 대답도 않고 제게 포도주를 따랐다.

— 하긴, 우습네요 — 이 고독이. 이 관 같은 호텔, 도시 위 이 태곳적 같은 울부짖음, 이 태곳적 같은 광장 — 이건 다 내 거예요. 나는 무슨 태곳적 같은 장례를 봤어요. 행렬이 창 밑을 지나갔죠. 앞에서 관을 메고, 뒤로는 여자들이, 천 명도 넘게 줄지어 갔어요. — 들어 봐요 — 이 태곳적 같은 광장, 이 태곳적 같은 종소리의 울부짖음, 그리고 — 이 태곳적 같은 여자들, 이 프롤레타리아 여자들. 나는 봤어요, 저 아낙들은 돌로 만들어졌어요. 얼굴과 손의 그을음이 자두처럼 거뭇해요, 전혀 흰 살결이 아니에요. 그들은 천 년 된 옷을, 통치마와 앞치마를 입고 있었어요. 그들은 맨발이었어요. 태곳적 같아요, 저 아낙들은. 이건 스키타이인의 행렬, 그 자체로 — 태곳적인. 앞에서 관을 메고 — 저들이 관을 따라갔다면, 통치마를 입은 저 아낙들이 침묵 속에 관을 따라갔다면, 대체 무슨 옛것을 묻은 걸까요? — 나는 온종일 졸며 생각했어요.

나데즈다 안토노브나는 반쯤 옷을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어깨에 잠옷 가운을 걸치고 일어나, 포도주를 마시고, 창가에 앉았다.

— 오스트롭스키와 고골에게서 지방의 창은 줄거리의 발단이자 모스크바 ‘석간’의 노릇을 해요 — 그리고 정말이지 이 창이라는 시대의 신문이 아주 흥미로워요. 당신한테 말 안 했죠, 예브게니. 저 여자들이 옛것을 묻는다는 건 분명해요. 아직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 나는 도덕이 뭔지 잘 몰라요, 아니면 나만의 도덕이 있거나. 이 장례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거기 누군가 죽었지만, 나한테는 아들이 생길 거고, 나는 그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거라고 — 여럿이었거든요, 그리고 나는 임신했어요. 아버지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요. 이게 내 도덕이에요. 나는 어머니예요 — 그리고 이건 아주 태곳적인 일이죠. 묻힌 이 죽은 이, 내가 모르는 이 사람이 — 어쩌면, 내가 그 아버지를 모르는 채로 아이를 가질 권리를 내게 준 그것일지도 몰라요. 내가 임신했을 만한 상대가 여럿이었으니까요.

— 어제 아침 목맨 라슬로 기사의 아내를 묻은 거요, — 폴토라크가 침울하게 말했다.

— 그 여자가 목을 맸다고요? 왜요?

— 모르오. — 당신은 당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오? — 당신은 저 아낙들이 무슨 옛것을 묻었는지 모르오? — 저들은 우리를 묻은 거요 — 당신을, 나를, 우리 문화를!……

— 내 아들한테는 더 안 좋네요.

폴토라크가 나데즈다 안토노브나 곁에 앉았다.

—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나데즈다? — 그가 말했다. — 당신은 잤고, 나는 깨어 있었소. 저들은 우리를 묻었소. 그래, 당신 아들한테는 더 안 좋소, 저들은 그 아이도 묻었으니까. 허나 마찬가지요. 나는 깨어 있었고, 무섭지 않소, 불면 속에서는 이 장례처럼 알 수 없고 환상적인 것이 찾아오거든. 당신은 시대의 신문을 읽고 있소. 우리에게는 호프만식의, 페스트 속 향연의 밤이 있을 거요, 아침에 내가 말한 그 깃발 너머에서. 나는 완전히, 완전히 병들었소. 나는 헛소리를 하오. 나는 오늘 노동자들과 이야기했는데, 그들이 바보 다루듯 내 어깨를 툭툭 쳤소 —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독으로 물들인 호프만이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급사가 들어왔다.

— 전보입니다.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방금 베라가 죽었음 우리 둘 다 당신에게 말함 저주받아라 비열한 자.”

16

모스크바 블라디미로-돌고루콥스카야 거리,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 폴토라크의 아파트에서는 마호가니와 엄격한 안식과 고요가 위엄을 부리고 있었다. 지보데르카의 아파트는 — “집”이었다. 서재의 책상 위에서는 청동 촛대들과, 역시 청동으로 된 잉크병 받침의 나이아스들이 책상을 짓눌렀다. 그 촛대들에는 양초가 타고 있었다. 서재의 파벨 양식 소파 위에서는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죽어 가고 있었다. 커튼들은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소파 곁 작은 탁자 위, 약병들 사이에도 양초 하나가 타고 있었다. 작은 탁자 위에는 알렉산드르 양식의 은종이 놓여 있었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혼자였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다. 평온한 고요가, 움직이지 않는 밤 속에서 서재에 얼어붙어 있었다. 미인인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더없이 평온하게, 꼼짝 않고 누워 있었고, 그녀의 두 손은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그때 그녀가 종을 울렸다. 눈을 뜨지 않은 채, 힘겹게 손을 뻗어, 아주 희미하게 오래도록 울렸다.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가 잠옷 가운 차림으로, 손에 양초를 들고 들어왔다. 손위 누이는 손아래보다 훨씬 더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 네가 불렀니, 베라?

— 그래, 나는 죽어 가고 있어, 소피야. 죽음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져.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소리 없이, 깊은 속삭임으로, 입술만 조금 움직이며 말했다. —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니야. 지금이 인생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져 — 그녀는 그 말에서 잠깐 걸려 넘어지듯 되풀이했다 —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종을 잡았다는 게.

베라 그리고리예브나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한 채였다.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고, 입술만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누이가 그녀 위로 몸을 숙였고, 누이의 입술은 아픔의 경련으로 비뚤어졌다. 누이는 제 양초를 소파 곁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불을 껐다. 꺼져 가는 양초의 빛이 죽어 가는 여자의 얼굴을 스쳤다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아주 조금 미소 지었다.

— 예브게니를 불러 줘, 그는 여기 있어, 들려, —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속삭였다.

— 그는 없어. 일 때문에 콜롬나로 갔어, —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가 대답하고 방을 돌아보았다.

책상 위에서는 양초들이 타고 있었고, 더는 처방전을 쓰지 않게 된 의사가 두고 간 뒤로 잊힌 채 다 타들어 가고 있었다.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는 양초를 끄려고 몸을 일으켰으나,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 그녀가 다시 속삭이며 웃고 있었다.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는 누이 위로 몸을 숙였다.

— 모든 것은 처음에는 무서운 법이야, 듣고 있지, 예브게니. 네가 그렇게 말했지 — 너는 틀렸어.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예브게니? — 무슨 짓을 한 거야? —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네가 나를 사랑하기나 해? — 나는 소피야 앞에서 부끄러워, 온 세상 앞에서 부끄러워…… 내가 너를 깨웠고, 너는 자고 있었어…… 나는 그렇게 오래 너를 불렀는데……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는 누이 위로 더 낮게 몸을 숙였다. 누이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 너는 말했지, 예브게니, 덕목도, 충실함도, 정의도 — 이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영(零)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 아니야, 너는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소피야와 아이들 앞에서 틀렸어. 죽어 가는 내가, 죽은 내가 너에게 몸을 내준 것은 추악한 일이야 — 네가 내게 한 짓은 추악한 일이야, 예브게니,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고 내가 너를 수컷으로 생각한다는 것도 추악한 일이야.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가 외쳤다.

— 베라, 너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 그만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베라 그리고리예브나가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은 또렷하고 주의 깊었으며, 결코 잠든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 아니, 나는 헛소리하지 않아, 소피야, — 그녀가 크고 단단하고 모질게 말했다. — 나는 죽어 가고 있어, 소피야. 그리고 기차에서 예브게니 예브게니예비치가 나를 범했다는 것은 헛소리가 아니야 —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야, 나는 영(零)이니까 — 네 삶이, 네 명예가 무서워, 소피야. 그는 겁쟁이고 도둑이야. 그에게 전해, 그는 비열한 자라고. 네 앞에서 부끄러워, 소피야 — 네가 무서워.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숨이 막혀 눈을 감았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한밤중이었다.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땅은 이미 한낮을 지나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책상 위와 소파 곁의 양초들은 다 타 버렸고, 그을음마저 사라져 있었다. 베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죽어 있었다. 살아 있는 누이는 죽은 누이의 가슴에 머리를 떨구었다.

그리고 소피야 그리고리예브나가 정신을 차리고 맨 먼저 한 일은 — 전보를 써서 그것을 들고 전신국으로 간 것이었다. 지보데르카에는 비가 쏟아졌고, 보도의 아스팔트는 집들을 비추었으며, 아스팔트에 비친 집들은 플라톤의 그림자 같았다. 거기서는 실제 거리의 실제 집들이 — 이데아였다. 비는 젖은 묵 같은 구름으로 모스크바를 에워쌌다. 라디오 확성기들은 러시아 고팍을 미친 듯이 외쳐댔다.

죽음!…… — 사람이 있었다, 소녀 베로치카가 있었다, 여학생-소녀 베라가 있었다, 모스크바 필하모니 학교의 학생 베라 살리셰바가 있었다, 지방 극장의 보통 여배우 베라 폴레바야가 있었다 — 유년이 있었고, 처녀의 젊음이 있었고, 여인의 스물일곱 해가 있었다 — 십계명을 순서 없이 묻던 신앙 과목 시험이 있었고 — 금메달이 있었고 — 필하모니 입학시험에서 읽은 크릴로프의 우화 「두루미와 왜가리」가 있었고 — 첫 무대, 군청 소재지 아마추어 연극의 소피야 파무소바가 있었고 —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 첫 박수갈채, 첫 입맞춤, 첫 내어 줌 —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바간코보로(모욕적인 말이다 — 바간코보!) 실려 가 땅에 묻히고, 인간의 시신은 벌레들의 느림에 넘겨진다 — 아니면 돈스코이 수도원으로 옮겨져 그곳 화장장에서 불태워진다. 그리고 화장장에서 인간에게는 마지막 인간적 경련을 겪는 일이 주어진다. 화장장의 방, 레오뮈르 이천 도의 열기 속에서, 관과 사람의 옷은 이분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타 버리고, 벌거벗은 시신만 남는다 — 그러면 벌거벗은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죽은 자의 다리가 접히고, 두 손이 목 쪽으로 기어가며, 머리가 어깨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 이천 도의 레오뮈르가 사람을 없애는 것을 볼 수 있는 작은 창가에, 신경이 부서진 살아 있는 사람이 서 있다면 — 그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은 세어 버리고, 마지막 인간적 경련은 그에게 죽음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는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한다 — 그리고 십오 분 뒤 사람에게서 남는 것은 한 줌의 재뿐이다. 땅속에서는 — 인간이 카타콤 속을 파고들듯, 벌레들이 인간 속을 파고든다. 사람이 있었다, 소녀가, 처녀가, 여자 — 여배우 베라 폴레바야가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모욕도, 긍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