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초대 대통령과 이름이 겹치는, 의사 출신의 좌익반대파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러시아어 표기도 이쪽은 Эльцин, 대통령은 Ельцин으로 다르다.
1876년 키예프현 즈베니고로드카에서 태어났다(1875년으로 적은 자료도 있다). 1897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들어갔고 이듬해 오데사의 노보로시야대학 의학부를 마친 의사였다. 1910년 혁명 활동으로 우파현에 유배되어 벨레베이에서 위생의사로 일하며 볼셰비키에 가담했다. 혁명 후 지역 소비에트와 여러 위원회에서 일했고, 1923년부터 좌익반대파에 속해 46인 선언에 서명했다. 1927년 당에서 제명되어 이듬해 초 우스티-뷔미로 유배되었고, 1929년에는 수즈달 정치격리소에 수용되었다. 1936년 다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으며, 같은 해 마가단에서 정치범 단식투쟁을 조직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1937년 처형되었고 1956년 11월 23일 복권되었다. 아들 빅토르 보리소비치 엘친도 반대파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과학·기술
- 1923–1927 사회운동·조직 · 좌익반대파
경력 연표
- 1897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입당
- 1898오데사 노보로시야대학 의학부 졸업
- 1910우파현 유배, 벨레베이 위생의사
- 1923좌익반대파 가담, 46인 선언 서명
- 1927당에서 제명
- 1928–1929우스티-뷔미 유배, 수즈달 정치격리소 수용
- 1936재체포, 시베리아 유배, 마가단 정치범 단식투쟁 조직
- 1937처형
- 1956복권
관련 역사 사건
우파현 인민위원회 의장 시절, 1918~1920년
1918년 4월 우파현 인민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바시키르 공업지대의 공장 국유화를 추진했고, 현당위원회 의장이자 식량위원이던 알렉산드르 추루파와 함께 우파 군사위원 에라즘 카돔체프가 만든 전투부대를 동원해 카자크로부터 곡물을 거둬들였다. 거의 매일 레닌에게 곡물 열차를 보냈고, 이는 두토프 반란의 도화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엘친은 카돔체프의 민병식 부대를 트로츠키의 중앙집권적 군사관리 노선에 어긋난다고 보아 반대했고, 레닌에게 카돔체프가 붉은 군대 창설을 사보타주한다고 보고했다. 트로츠키가 보낸 위원회는 그 부대를 아마추어적 유격대라 규정하고 카돔체프를 해임했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의 무장 부대 결성도 허용했다.
1918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반란 뒤에는 볼셰비키의 우파 철수를 주장했고, 6월 모스크바로 옮겨 레닌의 임명으로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과 내무인민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내무인민위원 대리를 지냈다. 레닌에게 통치 강화를 건의했다가, 헌법 개정을 제안하지 말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할 생각을 버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1919년 1월 바시키리야에 소비에트 권력을 세우라는 위임을 받고 우파로 돌아갔으나 타타르-바시키르 공화국 수립에는 반대했고, 1920년 4월 제9차 당대회 때 이 문제로 레닌을 만났다. 바시키리야 공장 복구 과정에서 시행한 정책은 레닌의 비판을 받았고, 1920년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그 뒤 우크라이나 사회보장인민위원회와 전러시아 정치교육위원회, 러시아연방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