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숙청의 수석 심문관: 정치국 위원부터 작가까지 굴복시킨 NKVD 수사부 부국장
흐루쇼프, 제20차 당대회 비밀연설(1956년 2월 25일): "최근 우리는 수사관 로도스를 심문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인간, 닭의 시야를 가진, 도덕적으로 말 그대로 타락한 자다. 바로 이런 인간이 당의 저명한 활동가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대숙청 시기 NKVD 수사부 부국장으로 정치국 위원 코시오르·추바르 등 고위 인사들을 직접 고문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국가보안 대령. 흐루쇼프의 1956년 비밀연설에서 실명 규탄된 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31베리슬라프 지구 OGPU 서기
- 1932즈나멘스크 지구 OGPU 보좌전권대표
- 1933–1936오데사 OGPU/NKVD 제4부에서 보좌전권대표, 전권대표, 작전전권대표, 과장보좌 역임
- 1937모스크바 GUGB NKVD 제4부(비밀정치부) 연수 후 중앙 기관에 잔류
- 1938–1939GUGB NKVD 제4부 제6과장 보좌 → NKVD 수사부 부장 보좌 → GUGB NKVD 수사부 부국장
- 1940폴란드 진주 작전 중 리보프 파견: NKVD 작전체키스트반에서 폴란드인 체포·처형 결정 서류 작성
- 1943–1946NKGB 소련 수사부 부국장 (국가보안 대령)
- 1947–1952크림주 UMGB 수사부장. 1952년 MGB 해고, 심페로폴 전신국 민방위 참모장으로 좌천
관련 역사 사건
고문과 주요 희생자들
로도스는 1938~1941년 사이 정치국 위원, 군 사령관, 문화계 인사들을 직접 심문하며 NKVD 최고의 '자백 추출 전문가'로 악명을 떨쳤다. 그가 다룬 주요 인물로는 정치국 위원 스타니슬라프 코시오르·블라스 추바르, 정치국 위원 후보 파벨 포스티셰프·로베르트 에이헤, 콤소몰 서기 알렉산드르 코사레프, 원수 키릴 메레츠코프, 공군 지휘관 그리고리 시테른·야코프 스무슈케비치·알렉산드르 록티오노프·파벨 리차고프, 작가 이사크 바벨, 연출가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등이 있다.
로도스의 고문 수법은 체계적이고 잔혹했다. 꼬인 밧줄로 발바닥과 등을 때리고, 의자 모서리에 꼬리뼈를 걸치게 해 앉혔으며, 플라스틱 봉지를 머리에 씌우는 질식 고문도 초기부터 사용했다. 피의자들이 의식을 잃으면 찬물을 끼얹어 깨운 뒤 다시 때렸다. 콤소몰 간부 벨로슬루드체프는 스탈린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로도스가 자신의 오줌을 강제로 먹이고 '이 인간 껍데기 쓴 똥덩어리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기록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사형 선고를 받은 로베르트 에이헤에 대한 고문이었다. 1940년 2월, 베리야가 직접 입회한 자리에서 로도스와 에사울로프는 에이헤에게 간첩 혐의를 인정하라며 고무 곤봉으로 구타했고, 이 과정에서 에이헤의 눈알 하나가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에이헤는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전 내무인민위원 보리스 반니코프는 로도스가 자신을 바닥에 내던지고 위에서 뛰어오르며 '다 불어, 다 불어!'라고 고함쳤다고 증언했다. 1941년 메레츠코프를 심문할 때는 갈비뼈를 부러뜨렸으며, 메레츠코프는 1956년 로도스 재판에서 이에 대해 증언했다.
로도스는 레프 시바르츠만과 콤비를 이루어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바르츠만이 주로 구타를 담당하고 로도스가 '자백'을 조서로 정리하는 식이었다. 니콜라이 예조프의 심문에도 참여했으며, 예조프는 훗날 재판에서 "첫 심문 때 나를 끔찍하게 때렸다"고 진술했다.
1956년 2월 26일 군사합의부는 로도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튿날인 2월 27일, 로도스는 사면을 탄원하며 자신이 "베리야와 그 공범들의 손에 쥐어진 맹목적 도구"에 불과했다고 주장했고, "무고한 내 아이들과 늙은 어머니, 아내를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4월 17일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가 사면을 기각했고, 로도스는 1956년 4월 20일 총살되었다. 시신은 화장된 뒤 돈스코이 묘지의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그가 죽음으로 내몬 많은 희생자들과 같은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