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 비밀연설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킨 1956년 폴란드 해빙기의 과도기적 제1서기
1956년 10월, 흐루쇼프가 군사개입을 위협하자 오하프는 폴란드군을 바르샤바 방어태세에 배치하며 맞섰고, '이 상황에서 고무우카가 국가를 이끌 최선의 선택'이라고 소련 지도부에 말했다.
크라쿠프 출신의 폴란드 공산주의자로, 1929년 폴란드 공산당에 입당해 사나치아 정권하에서 6년 반을 정치범으로 복역했다. 1943년 소련에서 베를링군 정치위원으로 활약한 후 폴란드 노동자당 중앙위원, 공공행정부 장관, 국방차관, 정치국원을 지냈다. 1956년 3월 비에루트 사망 후 제1서기가 되어 흐루쇼프 비밀연설의 폴란드어 번역본을 전국 당 조직과 공공집회를 통해 유포했고, 수천 부가 바르샤바 시장에서 팔릴 정도로 확산시켜 비밀연설의 전세계적 유출을 촉발했다. 포즈난 봉기 진압을 승인했으나 10월에는 소련의 군사개입 위협에 맞서 폴란드의 주권을 지켰고, 이후 고무우카에게 권력을 넘긴 후 1968년 반유대 캠페인에 항의하며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6 정치·당 지도 · 폴란드
경력 연표
- 1929폴란드 공산당(KPP) 입당
- 1939바르샤바 방어전 참전 후 소련으로 이동
- 1943베를링군 제1사단 정치위원, 레니노 전투 참전
- 1944–1946PPR 중앙위원, 공공행정부 장관
- 1949–1950국방차관 겸 군 정치총국장
- 1956.3–10PZPR 제1서기, 흐루쇼프 비밀연설 대량 유포 결정
- 1964–1968국가평의회 의장(국가원수)
- 1968반유대 캠페인에 항의해 전직 사퇴
관련 역사 사건
- 1941–1945대조국전쟁레니노 전투 참전 정치위원1943년 베를링군 제1사단 정치위원으로 레니노 전투에 참전했다.
- 1944–1948폴란드: 루블린 위원회에서 통일노동자당까지노동자당 중앙위원1944년부터 당 중앙에서 조직 업무를 맡았고, 1948년 고무우카 비판과 12월 통합대회에 참여했다.
- 1956.02제20차 당대회와 비밀연설비밀연설 유포 결정자비밀연설을 당 채널과 공개 집회를 거쳐 바르샤바 시장에서 판매되도록 확산했다.
- 1956.06포즈난 봉기비에루트 후임 제1서기비에루트 사후 절충 후보로 제1서기가 되어 비밀연설을 대량 배포·확산시켰고, 6월에는 포즈난 진압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