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프의 강철 부관
해군인민위원 시절, 함대에 무지했던 프리놉스키는 회의마다 엉뚱한 훈수를 두며 "내 말이 맞지?"라고 확인받곤 했다. 이반 그렌 제독이 일어나 "아닙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셨고 말씀은 틀렸습니다"라고 답한 뒤로 그의 무능은 더 이상 감춰지지 않았다.
예조프의 제1부관이자 국가보안총국장으로서 대숙청의 대량작전 실무를 총괄한 체키스트다. 보안기관 자체 숙청과 극동 NKVD 숙청을 직접 지휘했으며, 예조프 몰락과 함께 해군인민위원으로 전출됐다가 1939년 체포되어 1940년 총살됐다.
경력 연표
- 1919–1926체카·GPU 요원
- 1926–1930아제르바이잔 GPU 책임자
- 1933–1936OGPU·NKVD 국가보안총국 부지도부
- 1936–1938내무인민위원 제1부관·국가보안총국장
- 1938–1939해군인민위원
- 1939–1940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1937년 여름, 대량 작전의 실무 책상
미하일 프리놉스키는 예조프의 제1부인민위원이자 국가보안총국(GUGB)의 장으로서, 1937년과 1938년의 대량 작전을 날마다 굴러가게 만든 실무 총책이었다. 작전명령 제00447호에 따른 지역별 할당의 집계와 증액 승인, 민족 작전의 「앨범 절차」 심사가 그의 책상을 거쳤다. 예조프와 프리놉스키 두 사람의 서명이 곧 수천 명 단위의 처형 승인이 되는 절차였다.
그의 활동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다. 1937년 8월 그는 소련 대표단을 이끌고 몽골에 들어가 몽골 지도부에 대규모 숙청을 강제하는 작업을 감독했고, 몽골의 대숙청은 이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국가보안기관의 폭력이 국경을 넘어 수출되는 경로에도 그가 서 있었다.
프리놉스키는 심문실의 구타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다수의 진술에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하다. 대숙청의 문서들이 공개된 뒤, 그는 정책으로서의 테러와 폭력으로서의 테러가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연구자들에게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