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우르반스

Hugo Urbahns
레닌분트 좌파 반대파 독일 독일 1890–1946 → 망명지에서 사망

함부르크 봉기의 정치 지도자, 레닌동맹을 이끈 독일 공산당 좌파 반대파

디트마르셴의 농가 출신 초등교사로 스파르타쿠스단을 거쳐 독일 공산당에 들어갔다. 1921~1924년 텔만과 함께 함부르크 당을 이끌었고, 1923년 함부르크 봉기의 정치 지도자였다. 1925년 재판에서 봉기의 책임을 지고 10년형을 받았으나 제국의회 의원 면책으로 풀려났다. 당내 좌파의 대변인으로 스탈린 노선을 비판하다 1926년 제명되었고, 1928~1933년 레닌동맹을 이끌었다. 소련이 자본주의로 가고 있다는 견해로 1929~1930년 트로츠키와 갈라섰다. 나치 집권 뒤 스웨덴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레닌동맹과 트로츠키와의 결별 (1926~1933)

우르반스는 당내 좌파에 속했지만 대부분의 공산당 좌파와 달리 구체적 행동에서 사회민주당과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1925년 말 출소한 뒤 그는 루트 피셔, 아르카디 마슬로프와 함께 좌파의 가장 이름난 대변인으로서 당과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노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1926년 11월 제명되었고, 「1000인 성명」으로 연대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베를린으로 옮긴 그는 「좌익 공산주의자」 의원 그룹, 곧 독일의 좌익반대파를 대표했고, 1928년 레닌동맹 창립을 주도해 1933년까지 이끌었다.

레닌동맹은 한때 트로츠키의 국제 좌익반대파와 연결되었다. 그러나 우르반스는 소련이 자본주의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에 대해 제국주의적 정책을 편다고 보았고, 트로츠키는 이를 격렬히 비판했다. 1929~1930년 두 사람은 갈라섰다. 트로츠키는 1932년 『다음은 무엇인가?』에서도 우르반스를 비판했다. 우르반스가 공산당이 노동계급을 지도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당을 소비에트로 대신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를 「조잡한 소비에트 물신숭배」로 보고, 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소비에트를 지도할 공산당의 권리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한편 우르반스는 1929년부터 나치에 맞선 반파시즘 통일전선을 이루는 일에 힘을 쏟았다.

1933년 나치 집권 뒤 그는 국적을 박탈당했고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스웨덴에 정착해 목공·인쇄공으로 어렵게 살며 레닌동맹의 망명 조직을 지키려 했다. 모스크바 재판을 날카롭게 공격하자 스톡홀름 주재 소련 대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그의 추방을 요구했지만, 받아 줄 나라가 없어 추방은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