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아이히호른 암살을 조직하고 소련 감옥과 유형으로 반평생을 보낸 좌파 사회혁명당원
1918년 키예프에서 보리스 돈스코이와 함께 독일 점령군 사령관 아이히호른 암살을 준비했고, 헤트만 스코로파츠키 암살 시도는 실패했다.
데카브리스트 표트르 카홉스키의 종손녀로, 1905년 이후 사회혁명당 최대강령파에 들어가 1908년 징역형을 받고 네르친스크에서 스피리도노바와 함께 복역했다. 10월 혁명 뒤 좌파 사회혁명당에 합류했다. 1918년 당이 브레스트 강화에 맞선 테러를 재개하자 보리스 돈스코이와 키예프에서 아이히호른 암살을 준비했고, 헤트만 스코로파츠키 암살은 실패했다. 독일 군법회의의 사형 선고 뒤 1919년 1월 풀려났다. 1921년부터 소련의 유형과 1937년 재판, 크라스노야르스크 수용소를 거쳐 1954년 풀려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1919 사회운동·조직 · 좌파 사회혁명당
경력 연표
- 1906–1914사회혁명당 최대강령파, 1907년 체포, 네르친스크 징역
- 1917–1918좌파 사회혁명당, 제2차 소비에트 대회 간부회 위원
- 1918–1919좌파 사회혁명당 전투조직, 아이히호른 암살 조직, 독일 감옥에서 사형 선고 뒤 석방
- 1921–1954체포와 유형, 1937년 징역 10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수용소
관련 역사 사건
- 1917.10–1918.0110월 혁명제2차 소비에트 대회 간부회 위원10월 혁명 뒤 제2차 소비에트 대회 간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아이히호른 암살을 조직한 좌파 에스에르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회가 브레스트 강화에 맞선 테러를 결정하자 1918년 돈스코이와 함께 키예프에서 아이히호른 암살을 준비했다.
-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키예프에서 아이히호른 암살 조직1918년 보리스 돈스코이와 키예프에서 아이히호른 암살을 준비했다.
- 1937–1938대숙청1937년 재판의 피고인1937년 ‘전연합 사회혁명당 센터’ 재판을 거쳤다.
1937년 재판과 동료들의 기억을 위한 투쟁
1921년 이후 카홉스카야는 칼루가, 스타브로폴,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등지로 거듭 유형되면서 스피리도노바와 알렉산드라 이즈마일로비치와 함께 살았다. 1925년 당 조직을 되살리고 학생 단체 ‘혁명적 전위’를 지도했다는 혐의로 수용소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유형으로 대체되었다. 1928년 타슈켄트에서 세 사람은 영어 기술번역과 개인 교습으로 생계를 이었다. 1930년대 초 우파로 다시 유형되었으며, 이곳에서 이들은 스피리도노바의 남편 일리야 마요로프 가족을 포함한 공동생활을 했다.
1937년 2월 NKVD는 이들을 체포해 반혁명 조직과 테러를 꾸몄다는 혐의로 조사했다. 12월 25일 소련 대법원 군사재판부는 이른바 ‘전연방 사회혁명당 센터’ 사건에서 카홉스카야에게 징역 10년과 선거권 박탈 5년을 선고했다. 그녀는 카잔 감옥과 크라스노야르스크 수용소에서 산림·농업 노동을 했고, 1947년 석방 뒤에도 다시 체포되었다. 1949년 칸스크에 무기한 유형되었으며, 1954년 9월 풀려났다. 1958년 그녀는 스피리도노바와 이즈마일로비치의 말년을 기록한 회고록을 당 중앙위원회, 각료회의, 검찰에 보냈다. 그녀 자신은 1937년과 1949년 사건에서 1958년 재활되었으나, 동료들의 사건을 전면 재심사하라는 요구는 생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