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프랑스 공산당의 2인자, 의회와 지하를 오간 스탈린주의자
「기회주의, 합법주의, 의회 환상이 있었다… 우리가 당 앞에서 용기 있게 이 자기비판을 수행한다면 대중 사이에 투쟁에 유리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1947년 9월 코민포름 창립 회의에서
20구 파리에서 레옹 블룸을 꺾고 국회의원이 된 이후 37년간 프랑스 공산당 지도부에서 모리스 토레즈의 2인자로 활동한 정치인. 제2차 세계대전 중 점령 하 프랑스에서 지하당을 지휘했으며, 전후 국민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1947년 코민포름 창립 회의에서 PCF의 참여 정부 노선을 '의회 환상'이었다고 자인하며 마셜 플랜에 대한 투쟁적 반대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1969년 대통령 선거에서 21.3%를 득표, 프랑스 공산당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5–19171차 대전 참전, 베르됭에서 부상 후 포로
- 1920–1926PCF 창립 당원 → 중앙위원회, 국회의원 당선
- 1928–1936레옹 블룸을 꺾고 재선, 정치국 입성, 국회 부의장
- 1940–1944지하 PCF 책임자, 프랑스 레지스탕스 지도
- 1945–1947제헌의회·국민의회 의원 및 부의장, 3당 연정 참여
- 1947–1953코민포름에서 자기비판 → 마셜 플랜 반대 투쟁, 토레즈 병중 당 대행
- 1959–1975상원 의원 및 공산당 원내대표, 1969년 대선 21.3% 득표
- 1975몽트뢰유에서 사망, 페르 라셰즈에 안장
관련 역사 사건
- 1914–19181차 세계대전프랑스군 참전병베르됭에서 싸우다 부상당한 뒤 포로가 됐다.
- 1934–1938프랑스 인민전선과 1936년 총파업PCF 지도부, 하원 부의장토레즈와 함께 지지하되 입각하지 않는 노선을 집행했고, 인민전선 다수 의석의 하원에서 부의장을 맡았다.
- 1940–1944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해방공산당 레지스탕스 지도자독일 점령기 프랑스에서 지하 PCF를 이끌고 공산당 레지스탕스를 지휘했다.
- 1947–1948마셜 플랜과 냉전의 시작프랑스 공산당 대표슈클라르스카 포렘바 회의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해, 프랑스 공산당의 ‘기회주의’와 ‘의회 환상’을 인정하는 자기비판 연설을 했으며, 마셜 플랜에 대한 투쟁적 반대 전환의 핵심 인물이었다.
1952년 5월 28일, 프랑스 공산당과 세계평화평의회는 한국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는 매튜 리지웨이 장군에 반대하는 파리 시위를 조직했다. 전날 파리 경시청장 장 바이요가 집회를 금지했으나 시위는 강행되었고, 경찰과의 충돌 끝에 730명이 체포되었다. 이날 밤 몽트뢰유로 돌아가던 자크 뒤클로는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에서 체포되었다. 내무부는 국가 안전에 대한 음모를 폭로했다며 그의 차 안에서 권총과 곤봉, 죽은 비둘기 두 마리를 압수했다고 발표했는데, 비둘기를 소련에 비밀 정보를 전하는 전서구로 규정한 이른바 '비둘기 음모' 사건이었다. 뒤클로는 비둘기가 식용으로 받은 것이라고 진술했고, 압수 목록에는 완두콩 통조림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경찰은 비밀 회의에서 적어 둔 135쪽짜리 수첩도 압수했는데, 이는 그에게 반환되지 않았고 일부가 조르주 알베르티니의 대(對)노동조합 조직과 우익 신문들에 넘겨져 공표되었다. 정부는 이를 구실로 대규모 탄압에 나섰다. 당과 우호 단체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당원과 직원 명단이 확보되면서 경찰관, 무기 공장 노동자, 철도 노동자에 대한 제재와 해고가 이어졌고, 6월 4일 총파업은 동원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부의 패배로 끝났다. 1953년 가을 국민의회가 뒤클로를 포함한 공산당 의원 6명에 대한 면책특권 박탈 요구를 부결시켰고, 이로써 1952년부터 이어진 기소는 종결되었다. 같은 해 11월 17일에는 툴롱 사건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져 사법적 공세 자체가 끝났다. 1955년 11월 최종 공판에서는 171명에 이르던 피고인 가운데 22명만 출석한 가운데, 처음의 국가 안전 위협 혐의가 반란과 경찰 모욕 등으로 축소되었다.
1952년 5월 28일, 프랑스 공산당과 세계평화평의회는 한국전쟁 중 미국 육군 사령관이던 매슈 리지웨이가 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한 데 반대하는 시위를 파리에서 조직했다. 전날 파리 경시청장 장 바이요가 집회를 금지했으나 시위는 예정대로 열렸고, 경찰과의 충돌 끝에 730명이 체포되었다.
이날 밤 몽트뢰유의 자택으로 돌아가던 뒤클로는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에서 체포되었다. 내무부는 국가 안전에 대한 음모를 폭로했다며 그의 차 안에서 권총과 곤봉, 죽은 비둘기 두 마리를 압수했다고 발표했는데, 비둘기를 소련에 정보를 전달하는 전서구로 규정한 이른바 '비둘기 음모' 사건이었다. 뒤클로는 비둘기가 식용으로 받은 것이라고 진술했고, 압수 목록에는 완두콩 통조림도 들어 있었다. 경찰은 비밀 회의에서 적어 둔 135쪽짜리 수첩도 압수했고, 그 일부가 조르주 알베르티니의 대(對)노동조합 선전 조직과 우익 신문들에 넘겨져 공표되었다. 뒤클로는 수첩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구실로 대규모 탄압에 나섰다. 당과 우호 단체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당원 명단이 확보되면서 경찰관과 무기 공장 노동자, 철도 노동자에 대한 정직과 해고가 이어졌다. 공산당이 6월 4일 총파업으로 맞섰으나 동원에 실패했고, 레노-비앙쿠르에서는 해고가 이어졌다. 뒤클로는 7월 1일 항고 끝에 석방되어 정부에 타격을 안겼다. 이후 1955년 11월 열린 최종 공판에서 171명에 이르던 피고인 가운데 22명이 출석했고, 처음의 국가 안전 위협 혐의는 반란과 경찰 모욕 등으로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