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뢰징

Johannes Rösing
혁명적 민주주의 독일 독일 1793–1862 ○ 자연사

1848년 브레멘 민주주의 협회를 세운 급진 민주주의 상인

브레멘의 아마포 상인이자 은행가. 해방 전쟁에 의용병으로 나갔고, 1820년대 브레멘 시민 의회 의원이 되어 「보통 사람」의 권리를 담은 민주적 헌법을 요구했다. 1835년 체포되어 파리로 망명했다가 1837년 돌아왔다. 1848년 7월 수공업자 중심의 민주주의 협회를 세우고 무장 봉기를 선전했으며, 런던에서 마르크스를 만나기도 했다. 1848년 이후 죽을 때까지 브레멘 시민 의회 의원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848년 브레멘 민주주의 운동

뢰징은 언변이 좋아 상인 청년 단체 「우니온」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1848년 7월 니콜라우스 오르데만, 시계공 게오르크 마이어와 함께 수공업자들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협회를 세웠다. 공산주의자들은 곧 이 협회를 떠나 일반 노동자 협회를 따로 꾸렸다. 뢰징은 무장 민중 봉기를 선전했고 브레멘 성모 교회의 혁명적 민주주의자 목사 루돌프 둘론과 연락했으며, 여행 중 런던에서 마르크스를 만났다. 가택 수색과 투옥이 잇따르자 은행을 처남 플룸프에게 넘겼다.

1869년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는 『인쿠부스』에서 1848~1850년 브레멘 민주파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뢰징을 우르닝으로 꼽았다. 엥겔스는 같은 해 6월 22일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대목을 비꼬며 「뢰징에서 슈바이처에 이르기까지」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