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Калинин
소련 러시아 1875–1946 ○ 자연사

소련의 장기 공식 국가원수

1921년 3월 1일, 크론슈타트 반란 직전, 칼리닌은 무장도 없이 아내와 함께 요새로 들어가 수병들을 설득하려 했다. 박수로 시작된 그의 연설은 곧 야유에 묻혔고, 그는 침묵 속에 크론슈타트를 떠났다.

농민 출신 볼셰비키로 1919년부터 1946년 사망까지 소련의 공식 국가원수를 지냈다. '전연방의 장로'로 불리며 민중의 탄원을 받고 문맹 퇴치 운동을 이끄는 등 체제의 인간적 얼굴 역할을 했으나, 대숙청의 법적 토대가 된 테러사건 신속처리법령에 서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실권은 없었지만 27년간 소비에트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자신이 서명한 법률로 체포된 아내

1934년 12월 1일 키로프 암살 직후, 칼리닌은 테러 사건 재판 절차를 열흘로 단축하고 피고인의 항소권과 사면 청구권을 박탈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 법은 대숙청의 핵심 법적 도구가 되었다. 4년 후인 1938년 10월 25일, 칼리닌의 아내 예카테리나 로르베르크(1906년 결혼한 에스토니아계 직조공 출신)가 바로 그 법률에 따라 NKVD에 체포되었다. 혐의는 '반소비에트 활동과 트로츠키주의자·우익과의 연계'. 그녀는 레포르토보 교도소에서 고문을 받고 1939년 4월 22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전연방의 장로'로서 매년 수십만 통의 탄원서를 접수하던 칼리닌은 정작 아내를 구할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했다. 목격자들은 그가 '내게 아무것도 요청하지 마시오. 나는 무권력자요'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944년 장암 수술을 앞두고서야 스탈린에게 아내 석방을 간청했고, 예카테리나는 1945년 6월 풀려나 임종하는 남편을 간호했다. 그녀는 1954년 복권되었다. 이 일화는 스탈린 최측근조차 공포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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