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를 쥔 우파 반대파의 조직적 기반
1928년 10월 19일, 스탈린이 직접 모스크바 당 위원회 및 통제위원회 합동 총회 연단에 올라 '우경 위험'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이어 11월 우글라노프는 모스크바 제1서기직에서 해임되었다.
1886년 12월 5일(구력 17일) 야로슬라블현 페오도리츠코예의 러시아인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다 1905~07년 혁명에 가담했고 1907년 볼셰비키로 입당했으며, 1914년 재징집되었다가 부상으로 1916년 제대했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 모스크바 당 조직을 이끌며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고, 중앙위 서기 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류틴과 함께 좌익 반대파 분쇄에 앞장섰다. 1928년 우익 반대파의 지도자가 되어 강제 집단화와 급속한 공업화에 반대했으나 그해 11월 모스크바 제1서기직에서 해임되었다. 1932년 류틴 사건으로 출당되었다가 1936년 다시 체포되어 1937년 5월 31일 사형을 선고받고 당일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1 사회운동·조직 · 소련 · 당 서기국 · 조직인사
경력 연표
- 1907RSDLP 입당, 볼셰비키
- 1914–16차르군 복무, 부상 후 페트로그라드 귀환
- 19172월·10월 혁명 참여,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원
- 1921–22페트로그라드 현당 책임서기, 크론시타트 진압 참여
- 1922–24니즈니노브고로드 현당 책임서기
- 1924–28모스크바 현당 제1서기, 중앙위 서기
- 1926–29정치국 후보위원
- 1928–30소련 노동인민위원
- 1932류틴 사건으로 출당
- 1937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 당일 총살
소련 정치국
- 후보위원 1926.01–1929.04
1929.04 해임 · 우파 반대파, 1937년 처형
관련 역사 사건
- 1905–19071905년 혁명1905년 혁명 참여자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다 1905~07년 혁명에 가담했다.
- 1917.02–072월 혁명2월 혁명 참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원
- 1917.10–1918.0110월 혁명10월 혁명 참여
- 1921.03크론시타트 봉기봉기를 진압한 당 간부페트로그라드 현당 책임서기로 크론시타트 봉기 진압에 참여했다.
- 1921–1928신경제정책(네프)우파 반대파의 조직적 기반으로서 네프 유지를 지지
- 1923–1927레닌 사후 권력투쟁과 좌익 반대파좌익 반대파 분쇄를 이끈 당 간부류틴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좌익 반대파 분쇄에 앞장섰다.
- 1928–19375개년 계획과 소련의 대전환우파 반대파의 조직적 중추모스크바 당 제1서기로서 우파 반대파에 제도적 기반을 제공했고, 1928년 곡물 위기에서 비상조치에 반대하며 부하린·리코프와 함께 초고속 공업화와 강제 집단화 노선에 맞섰다.
- 1937–1938대숙청표적부하린계 모스크바 당 지도자로 1937년 처형됐다.
혁명에서 우익 반대파까지
1886년 12월 5일(구력 17일) 야로슬라블현 페오도리츠코예의 러시아인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다 1905~07년 혁명에 가담했고 1907년 볼셰비키로 입당했으며, 1914년 재징집되었다가 부상으로 1916년 제대했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 모스크바 당 조직을 이끌며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고, 중앙위 서기 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류틴과 함께 좌익 반대파 분쇄에 앞장섰다. 1928년 우익 반대파의 지도자가 되어 강제 집단화와 급속한 공업화에 반대했으나 그해 11월 모스크바 제1서기직에서 해임되었다. 1932년 류틴 사건으로 출당되었다가 1936년 다시 체포되어 1937년 5월 31일 사형을 선고받고 당일 총살되었다.
모스크바 당 기관의 주인
우글라노프는 1924년 가을 모스크바 당 조직의 제1서기로 임명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입했다. 그는 4년에 걸쳐 모스크바를 당내 최대의 지역 권력 기반으로 키웠고, 자신의 충성파로 구역당 위원회들을 장악했다. 특히 크라스나야 프레스냐 구역의 마르테먄 류틴과 함께 모스크바는 1925~27년 '좌익 반대파'(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를 분쇄하는 타격대로 기능했으며, 우글라노프는 이 공로로 1926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그러나 1928년 스탈린이 곡물 위기를 계기로 강제 징발과 급속한 공업화로 방향을 틀자 우글라노프는 자신이 구축한 바로 그 기관을 무기로 저항했다. 그는 1928년 7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농민들이 전시공산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할 근거가 없도록' 당의 의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며 스탈린 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모스크바 구역당 서기들 역시 집단적 저항에 가담했다.
스탈린은 우글라노프의 기반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1928년 10월 19일, 그는 친히 모스크바 당 위원회 및 통제위원회 합동 총회 연단에 올라 '우경 위험'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우글라노프가 4년간 공들여 구축한 모스크바 조직은 그날 중앙위의 '우경 일탈' 규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한 달 뒤 우글라노프는 모스크바 제1서기직에서 해임되었다. 류틴을 비롯한 그와 함께했던 구역당 서기들도 연쇄적으로 경질되었다. 자신이 일군 당 기관에 버림받은 셈이었다.
우글라노프의 몰락은 스탈린이 지역 당 기관을 어떻게 무력화하고 장악하는지를 보여준 전범이었다. 모스크바 조직은 그 후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등 스탈린 직계로 재편되었고, 지역당의 자율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