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보리소비치 악셀로트

Павел Борисович Аксельрод
러시아 러시아 1850–1928 ○ 자연사

대중 노동자 정당의 이론가: 레닌의 전위당 모델에 맞서 패배한 논쟁

트로츠키 회고: 「악셀로트 집안에는 소박함과 진심 어린 동지적 참여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나로드니키로 출발해 1883년 플레하노프·자술리치와 함께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조직 「노동해방단」을 창립했다. 1900년 『이스크라』 편집위원, 1903년 RSDLP 분열 후 멘셰비키 핵심 이론가로서 대중적 노동자 정당을 주장하며 레닌의 전위당을 비판했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을 지냈으나 10월 혁명에 반대, 이후 망명하여 생을 마칠 때까지 제2인터내셔널에서 활동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레닌의 자코뱅주의적 전위당에 대한 첫 경고 (1903–1904)

RSDLP 제2차 대회(1903)에서 당원 자격을 둘러싼 분열 이후, 악셀로트는 새로운 『이스크라』(1903년 말–1904년 초)에 발표한 일련의 글에서 레닌의 중앙집권적 전위당 모델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를 자코뱅주의적·음모적 조직으로 변질시킬 위험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경고했다. 그는 레닌의 구상에서 "신권정치적 성격의 유토피아"를 보았고, 이를 러시아의 후진성이 낳은 "소부르주아적 급진주의"가 노동계급의 투쟁을 도구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악셀로트의 대안은 유럽 사민당들처럼 당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자주활동(самодеятельность) 위에 서는, 광범위하고 민주적인 대중 노동자 정당이었다. 이 논쟁은 볼셰비즘과 멘셰비즘의 이념적 분기점이 되었으며, 악셀로트가 제기한 민주적 정당 대 전위당의 문제는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근본적 긴장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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