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비서에서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의 창시자로
“트로츠키와 결별한 후에야 내 진정한 발전이 시작되었다.” — 1980년대 인터뷰에서
러시아 제국 출신 유대계 이주민. 트로츠키의 비서로 출발했으나 소련 문제로 결별, C.L.R. 제임스와 국가자본주의론을 정립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을 창시하고 뉴스 앤 레터스 위원회를 이끌었다.
경력 연표
- 1922가족과 함께 미국 시카고로 이주
- 1928트로츠키주의 옹호로 미국공산당 청년 조직에서 제명
- 1929보스턴의 독립 트로츠키주의 그룹(코니코프 지도)에 합류
- 1937–1938멕시코에서 트로츠키의 러시아어 비서 겸 속기사
- 1939소련의 성격 문제로 트로츠키와 결별
- 1940SWP 분열 참여 → 노동자당(WP) 결성
- 1941–1943C.L.R. 제임스와 존슨-포레스트 경향 결성,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정립
- 1947SWP로 복귀
- 1951한국전쟁 반대, SWP 재탈퇴, 코레스폰던스 출판위원회 결성
- 1953헤겔 『정신현상학』 연구 — '철학적 계기'로서의 절대자 해석 제시
- 1955C.L.R. 제임스와 결별, 뉴스 앤 레터스 위원회 창설
- 1958『마르크스주의와 자유』 출간 (마르쿠제 서문)
- 1973『철학과 혁명』 출간
- 1982『로자 룩셈부르크, 여성해방, 마르크스의 혁명 철학』 출간
- 1987시카고에서 77세로 사망
존슨-포레스트 경향과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두나옙스카야의 가장 독창적인 이론적 기여는 C.L.R. 제임스와 함께 발전시킨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이다. 1939년 그녀는 소련을 여전히 '노동자 국가'로 간주한 트로츠키와 결별했다. 트로츠키는 관료화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는 정식화를 고수했으나, 두나옙스카야는 소련의 생산관계를 분석한 결과 소련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새로운 계급 사회, 즉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1940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분열로 결성된 노동자당 내에서 두나옙스카야(당명 '프레디 포레스트')와 제임스('J.R. 존슨')는 '존슨-포레스트 경향'을 결성했다. 이들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으며, 노동자당 다수파는 '관료적 집산주의'로 보았다. 두나옙스카야는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 초기 저작과 소련 경제 분석을 결합해 국가자본주의가 단지 소련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적 단계라고 주장했다. 이 초기 분석은 1942~1943년 『뉴 인터내셔널』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다.
영국 트로츠키주의자 토니 클리프도 독자적으로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두 사람은 이후 국가자본주의론의 양대 창시자로 평가된다. 이 이론은 스탈린주의 좌파 내에서 소련의 계급적 성격을 둘러싼 가장 근본적인 논쟁 중 하나를 촉발시켰고, 이후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 철학적 계기와 혁명의 3부작
두나옙스카야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적 유산은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이다. 1953년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연구하며 그녀는 헤겔의 '절대자'가 이론과 실천의 이중 운동(실천에서 이론으로, 이론에서 철학으로)이라고 해석했으며, 이를 '철학적 계기(the philosophic moment)'라 불렀다. 이 통찰에서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 전체가 흘러나왔다.
1954년부터 그녀는 비판이론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수년간 서신을 주고받으며 헤겔과 마르크스에서 필연성과 자유의 변증법을 논쟁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1958) 초판 서문을 썼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을 단절된 별개의 시기로 보는 알튀세르식 해석을 거부하고, 마르크스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적 핵심을 재구성했다. 냉전기 그녀는 '제3진영(Third Camp)' 입장(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독자적 사회주의)을 견지했으며, 1953년 동독 봉기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려는 노동자들의 시도로 해석했다.
이후 『철학과 혁명』(1973)에서 헤겔부터 사르트르, 마르크스부터 마오쩌둥까지 포괄하는 변증법적 독해를 제시했고,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해방, 마르크스의 혁명 철학』(1982)으로 '혁명 3부작'을 완성했다. 그녀는 여성해방을 계급투쟁에 종속된 부차적 과제가 아니라 혁명적 변증법의 구성적 계기로 정식화했으며, 흑인해방운동과 장애인 권리운동 등 다양한 해방투쟁을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의 지평 안에서 통합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