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바 오타로비치 체레텔리

Шалва Отарович Церетели
소련 그루지야 1894–1955 ✕ 처형

제정군 장교 출신의 공작 요원

1939년 7월 8일, 모스크바에서 츠할투보로 향하는 NKVD 경호 특별열차 안에서 주중 소련 전권대표 보프쿤-루가네츠를 망치로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교살했다. 시신은 산으로 옮겨져 교통사고로 위장되었다.

그루지야 체레텔리 공작 가문의 후손으로, 제정군 장교와 포로 생활을 거쳐 1921년 그루지야 체카에 들어갔다. 귀족 출신이었지만 베리야의 가장 신뢰받는 은밀 공작 요원이 되어 납치와 암살을 전담했다. 대숙청기 NKVD 특별 트로이카 위원으로 앉았고, 1939년부터 자캅카스 국경경비대를 지휘했다. 그해 7월 주중 소련 대사 부부를 열차 안에서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사건의 직접 실행자로 기록된다. 전쟁 중에는 그루지야 제1부내무인민위원을 지냈다. 베리야 몰락 후 1953년 체포되어 1955년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베리야의 집행자: 감옥에서 만난 인연

체레텔리가 라브렌티 베리야와 처음 만난 것은 1920년 쿠타이시 감옥에서였다. 체레텔리는 그루지야 멘셰비키군에서 참모대위로 복무하던 중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고, 베리야는 볼셰비키 지하활동으로 투옥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감옥에서 만나 평생 끈을 이었다.

1921년 소비에트 권력이 그루지야에 들어선 후 체레텔리는 민병대원 살해로 다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복역하지 않았다. 1924년에는 놀랍게도 압하지야에서 요양 중이던 레프 트로츠키의 개인 경호 책임자로 배치되었고, 1927년까지 이 임무를 수행했다. 한때 반소비에트군 장교이자 범죄자였던 인물이 혁명 최고 지도자의 경호를 맡았다는 사실은 체레텔리의 경력에서 가장 역설적인 장면이다.

베리야가 권력 사다리를 오르면서 체레텔리도 함께 올랐다. 1938년 베리야가 내무인민위원으로 모스크바에 부임했을 때, 체레텔리도 자신이 데려온 측근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체레텔리는 중앙기관에 공식 직함 없이 베리야의 개인적 지시만 받으며 활동했다. 그는 체포 작전을 조직하고 수행하는 일을 전담했으며, 오직 베리야에게만 보고했다. '문맹에 가깝고 무식한' 인물이라는 내부 평가에도 불구하고, 체레텔리는 베리야가 가장 신뢰하는 은밀 공작원이 되었다. 동료들은 그를 '베리야의 사냥개'라 불렀다. 베리야는 1943년 테헤란 회담 때도 그를 소련 대표단 경호에 추천했고, 1946년에는 부적격 판정에도 불구하고 그루지야 국가보안부 차관에 앉혔다. 1953년 6월 말, 베리야는 체포되기 직전 체레텔리를 모스크바로 긴급 소환했으나, 그 목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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