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스 야콥레비치 추바리

Влас Яковлевич Чубарь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91–1939 ✕ 총살

11년간 우크라이나 정부를 이끈 경제행정가, 스탈린과 기근 사이에서 균열을 드러내다

1932년 6월 추바리는 "모든 마을에서 수만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갔다"며 스탈린과 몰로토프에게 곡물 지원을 요청했다. 스탈린은 그를 두고 "추바리는 착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받을 몫보다 더 받았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페도리우카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경제행정가로, 1907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1923년부터 11년간 우크라이나 SSR 인민위원회의 의장을 지내며 공업화와 집단화를 추진했고, 1932년 6월 스탈린과 몰로토프에게 기근 실태를 보고하고 곡물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강제 집단화와 1932~33년 기근의 집행 책임도 함께 지며, 2010년 키예프 항소법원은 그를 홀로도모르 조직자 중 한 명으로 판시했다. 1935년 정치국 정위원이 되었으나 1938년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되었고, 1955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소련 정치국

1938.06 해임 · 1939년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우크라이나 공업화의 설계자: 돈바스 복구에서 제1차 5개년계획까지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를 장악한 1920년, 공업은 남북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돈바스 탄전은 침수되고 설비는 철거되었으며, 1920년 석탄 생산량은 전쟁 전의 15%에 불과했다. 추바리는 1920년 1월 우크라이나 산업복구 조직국의 의장으로 임명되어 파괴된 공장과 광산의 재건을 총괄했고, 1921년 12월에는 중앙석탄공업관리국 의장으로서 돈바스 복구를 직접 지휘했다. 그의 지도 아래 돈바스의 석탄 생산은 빠르게 회복되어 우크라이나 공업화의 에너지 기반을 마련했다.

1923년 7월 우크라이나 SSR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오른 추바리는 11년간 공화국의 경제를 총지휘했다. 제1차 5개년계획(1928~1932)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는 소련 전체 자본 투자의 5분의 1을 배정받았고, 드니프로 수력발전소(드니프로HES), 하르키우 트랙터 공장, 크리비리흐 및 자포리자 제철소 등 굵직한 중공업 시설이 그의 재임 중 건설되거나 확장되었다. 1930년 6월 하르키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1차 대회에서 추바리는 공화국 영토 내의 전연방 기업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권을 요구하며 모스크바의 중앙집권화 경향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이익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소련 전체의 공업화 계획을 충실히 집행하는 행정가이면서도 공화국의 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공업화는 막대한 인적 비용을 수반했다. 농민으로부터의 강제 곡물 수탈이 공업화 자금의 원천이 되었고, 추바리는 이 체제의 핵심 집행자로서 그 모순을 온몸으로 짊어졌다. 1932~33년 기근 당시 그가 보여준 곡물 지원 요청은 바로 이 모순의 표현이었다. 자신이 건설한 공업화 체제가 낳은 비극 앞에서, 그는 충실한 행정가와 양심 사이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1932년 기근 보고서와 스탈린과의 충돌

1932년 봄, 우크라이나 농촌에서는 전년도의 과도한 곡물 수탈로 인해 기근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추바리는 5월에서 6월에 걸쳐 15일간 키예프주와 빈니차주의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들을 직접 방문했다. 그가 목격한 광경은 참담했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여성들은 울고 있었고, 남자들조차 때로는 눈물을 보였다." 농민들은 추바리에게 직설적으로 항의했다: "왜 인위적인 기근을 만들었습니까? 수확은 있었는데 왜 모조리 빼앗아 갔습니까? 옛 체제 아래서도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바리는 1932년 6월 10일 스탈린과 몰로토프 앞으로 긴급 서한을 보내 최소 100개 지역이 식량 원조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하고, 100만 푸드(약 1만 6천 톤)의 곡물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최고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 의장 그리고리 페트롭스키도 별도의 서한을 보냈다. 이 두 서한은 소련 지도부에 기근의 존재를 정식으로 보고한 최초의 최고위급 문서들이다.

스탈린은 카가노비치에게 보낸 6월 15일자 서한에서 이렇게 반응했다: "추바리와 페트롭스키의 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자는 모스크바에서 수백만 푸드의 곡물을 더 얻어내기 위해 '자기비판'을 늘어놓고 있고, 후자는 곡물 조달 목표치를 낮추기 위해 성인 행세를 하고 있다." 8월 11일에는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추바리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를 해임할 것을 카가노비치에게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를 즉시 교체하지 않았다. 공개적인 충돌에도 불구하고 추바리는 1934년까지 우크라이나 인민위원회의 의장직을 유지했으며, 이는 스탈린이 당시 우크라이나의 통제 가능한 행정가로서 그의 가치를 인정했음을 시사한다. 이 1932년 6월의 서한은 오늘날 추바리의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핵심 사료로 남아 있다.

모스크바와 숙청: 충성, 몰락, 복권

1934년 추바리는 모스크바로 전출되었다. 스탈린의 신뢰를 잃은 뒤의 인사였지만, 그는 소련 인민위원회의 부의장과 소련 노동국방위원회 부의장을 맡았고 1935년 2월 정치국 정위원이 되었다. 1937년 8월 16일부터 1938년 1월 19일까지는 소련 재무인민위원을 지냈다.

대숙청 초기 추바리는 스탈린을 충실히 지지했다. 집단화 반대자들에 대한 체포를 승인한 1937년 2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그는 이들을 "공공연한 반혁명"으로 규정하는 격렬한 연설을 했고, 부하린을 "뱀"이라 부르고 트로츠키와 그 지지자들이 "파시즘의 요원"이라고 주장했다. 역사가 콘퀘스트는 그가 모스크바의 정책이 파멸을 낳으리라고 의심하면서도 그 정책을 집행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사료로 확인되는 행적이며, 도덕적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로 기록되어야 한다.

1938년 6월 16일 정치국은 "코시오르와 에이헤 동지, 그리고 추바리 동지 본인의 진술, 그 밖에 루주타크와 안티포프의 진술이 V. Ya. 추바리 동지에게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가 정치국에 앉거나 소련 인민위원회 부의장으로 일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시험 삼아 지방에서만 일을 맡긴다"고 정했다. 다음 날 그는 솔리캄스크 셀룰로오스 콤비나트 건설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38년 7월 4일 내무인민위원부가 그를 체포했고, 혐의는 반소련 테러·방해·사보타주 조직 가담과 독일 정보기관 요원이라는 것이었다. 1939년 2월 26일 소련 대법원 군사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고 형은 같은 날 집행되었다. 정치적 박해 희생자 명부에 따르면 그는 모스크바 돈스코예 묘지 제1공동묘에 묻혔다.

1955년 국가보안위원회와 검찰의 재심은 그에 대한 기소가 완전히 날조되었음을 밝혀냈고, 같은 해 8월 24일 군사재판부가 그를 복권했으며 당적으로도 그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당감독위원회 결정으로 복권되었다. 다른 사료의 기록도 병기한다. 1984년 『우크라이나 백과사전』은 그가 1937년에 체포되어 이후 "총살되었거나 수감 중 사망했으며 1960년대에 복권되었다"고 적는다. 체포와 복권 연대에 관한 이 기록은 소련 측 사료와 엇갈리므로, 어느 한쪽으로 합치시키지 않고 그대로 제시한다.

1956년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쇼프는 추바리 사건이 고문자 보리스 로도스에게 넘겨져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내무인민위원부 수장 라브렌티 베리야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추바리와 옛 동료 니콜라이 안티포프를 대면시켰는데, 심문에 굴복해 추바리를 고발했던 안티포프를 보고 추바리는 "이 뱀을 내 가슴에 품고 있었다. 도발자!"라고 외쳤다. 몰로토프는 훗날 "그는 우파와 함께 있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고 감지하고 있었다"며 체포를 정당화했다. 이는 흐루쇼프의 비공개 연설과 게티·나우모프의 연구에 귀속되는 진술이다. 가족도 함께 탄압받았다. 형 트로핌 추바리는 그보다 먼저 체포되어 그를 고발하는 진술을 했고 처형 명단에 올랐으며 이후의 거취는 알려지지 않았다. 1938년 7월 4일에는 남편과 같은 날 체포된 아내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 추바리(1903~1938)가 재판 없이 처형되고 1955년 복권된 사실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몰락은 1932년 기근기의 행정적 책임과 숙청기의 충성이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겹쳤는지를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