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멘트 예프레모비치 보로실로프

Климент Ефремович Ворошилов
소련 러시아 1881–1969 ○ 자연사

스탈린의 원수, 군사적 무능을 정치적 충성으로 버티다

1937년 5월 28일, NKVD가 넘긴 붉은 군대 지휘관 26명 명단에 직접 펜으로 썼다: "예조프 동지에게. 모든 악당을 잡아들이시오. 1937년 5월 28일. K. 보로실로프."

차리친 전투에서 스탈린과 맺은 인연으로 소련 최장수 국방수장(1925~1940)이 된 혁명군인이자 원수. 붉은 군대의 현대화·기계화를 진두지휘하는 한편, 대숙청 국면에서 185개 처형 명단에 서명하며 장교단 말살을 직접 승인했다. 겨울전쟁 참패로 국방인민위원에서 물러났으나, 독소전쟁기에는 빨치산 총사령관과 국가방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치국에 34년 반 동안 머물며 최고 기록을 세웠고, 흐루쇼프 축출을 시도한 1957년 반당그룹 사건에도 살아남아 1960년까지 최고소비에트 의장으로 재임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대숙청 — '모든 악당을 잡아들이라'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는 대숙청 시기 군사 지도부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직접 손으로 숙청을 승인했다. 그가 국방인민위원으로 재직하던 1937–1938년, 붉은 군대 장교단은 말살 수준의 타격을 입었다.

보로실로프의 서명은 185개의 '처형 명단'에 등장한다. 이 명단에 오른 18,000명 이상이 유죄 판결을 받고 총살당했다. 그는 정치국 위원으로서 NKVD 명령 제00447호에 따른 지역별 '숙청 할당량'(리미트)도 승인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937년 5월 28일의 결재였다. NKVD에서 국방인민위원부로 넘어온 26명의 붉은 군대 지휘관 명단에 보로실로프는 직접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예조프 동지에게. 모든 악당을 잡아들이시오. 1937년 5월 28일. K. 보로실로프.' 또 다른 142명의 지휘관 명단에는 더 짧게 '체포하라. K. V.'라고만 썼다.

이 서명들로 투하쳅스키, 야키르, 우보레비치 등 붉은 군대 최정예 지휘관들이 처형되었다. 보로실로프는 이들 중 다수와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었고 함께 근무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후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책임을 인정한 적도 없다.

1940년 겨울전쟁 패배 후 그가 국방인민위원에서 해임되었을 때, 그가 파괴한 장교단의 공백은 소련군 전체를 약화시킨 상태였다.

겨울전쟁 — 충성심이 전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다.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는 국방인민위원으로서 이 작전을 지휘했다. 그의 계산은 간단했다: 핀란드는 작고, 소련군은 무적이며, 전쟁은 2주 안에 끝난다.

현실은 참혹했다. −40도의 겨울, 핀란드군의 유격전, 그리고 깊은 숲. 소련군은 만네르하임 방어선에서 대량 학살당했다. 10만 5천 명 이상의 소련군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반면, 핀란드군 사망자는 2만 5천 명이었다. 4개월 후, 소련이 겨우 승리했지만, 국제적 체면은 구겨졌다.

스탈린은 격노했다. 보로실로프는 1940년 5월 국방인민위원에서 해임되었다. 그의 후임은 티모셴코였고, 진정한 후계자는 주코프였다. 그럼에도 보로실로프는 살아남았다. 충성심 하나로 말이다. 1953년 스탈린 사후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형식적 국가원수)까지 올랐다. 겨울전쟁은 무능한 충성파가 체제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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