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글레프 이바노비치 보키

Глеб Иванович Бок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79–1937 ✕ 처형

소련 신호정보의 아버지, 체카 스페츠오트델 창설자

경찰이 압수한 그의 수학 공책을 가리키며 "이게 암호라면 풀어 보시지"라고 조롱했다. 차르 비밀경찰은 끝내 해독하지 못했다.

구 러시아 제국 말기 지하혁명운동에서 암호 작성술을 익힌 올드 볼셰비키. 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과 동부·투르케스탄 전선 특별부장을 거쳐 1921년 체카 산하 스페츠오트델(Спецотдел)을 직접 기획·창설하여 1937년까지 이끌며 소련의 통합 암호·도청·무선정보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기밀 보호, 외교공관 도청 및 암호 해독, 무선 펠렌게이션, 최초의 정부보안통신망을 한 부서 아래 통합한 공로로 소련 신호정보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한편 솔로프키 특수수용소(SLON)의 큐레이터로서 굴라그 체계 초기 형성에도 관여했으며, 밀교와 티베트 탐사에 경도된 이력이 후일 기소의 빌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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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RSDLP 입당, 페테르부르크 볼셰비키 지하조직 활동
  • 1904–1909RSDLP 페테르부르크 위원회 위원
  • 1917.04–1918.03RSDLP(b) 페트로그라드 시위원회 서기
  • 1918.03–08북부지역·페트로그라드 체카 부의장
  • 1918.08–11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
  • 1919.01–09동부전선 체카 특별부장
  • 1919.09–1920.08투르케스탄 전선 체카 특별부장
  • 1921–1937체카·GPU·OGPU·GUGB NKVD 스페츠오트델(제9부) 국장
  • 1923–1934OGPU 콜레기야 위원
  • 1935국가보안 3등급 정치위원

프세볼로트 아폴로노비치 발리츠키

Всеволод Аполлонович Балицк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92–1937 ✕ 처형

우크라이나 보안기구의 지배자

1937년 7월 7일, 하바롭스크 역에서 후임 류시코프를 마중 나갔다가 예조프 서명의 체포영장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1월 27일 자신의 45번째 생일에 '특별절차'로 사형 집행.

우크라이나 GPU·NKVD 수장(1923~1937)으로 공화국 보안의 실권자. 홀로도모르 시기 탄압을 지휘하고 정치국 트로이카 일원으로 사형 처결권을 행사했으며, 민족주의 조작 사건을 주도했다. 1935년 국가보안위원 1급, 1937년 체포·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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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1922볼히니아·키예프 체카 의장, 전우크라이나 체카 부의장
  • 1923–1931우크라이나 GPU 의장
  • 1924–1930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겸임
  • 1931–1934OGPU 부의장
  • 1932–1934우크라이나 주재 OGPU 전권대표
  • 1934–1937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 1937극동 전출, 체포와 처형

니콜라이 이오시포비치 안토노프-그리추크

Николай Иосифович Антонов-Грицюк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인 1893–1939 ✕ 처형

카바르다발카르 트로이카 의장에서 NKVD 감옥부장이 된 체키스트

1937년 카바르다발카르 NKVD 특별 트로이카 의장으로 탄압을 주도한 뒤, 1937~1938년 솔로베츠키 특별감옥 수감자 처형에 직접 관여했다.

볼린현 돌스크의 우크라이나인 농업노동자 집안에서 루카 그리추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네 등급 모두 받았고, 1918년 입당해 두브로비차 봉기를 조직했다. 1920년부터 체카에서 일하며 튜튜닉 장군을 폴란드에서 끌어낸 작전에 참여했다. 1934~1937년 카바르다발카르 NKVD를 이끌며 공화국 특별 트로이카 의장을 맡았다. 1937년 10월부터 NKVD 감옥부 부부장, 부장으로 솔로베츠키 특별감옥 수감자 처형에 직접 관여했다. 1938년 10월 체포되어 1939년 2월 23일 총살되었고 1955년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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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두브로비차 봉기의 조직자·지도자로 활동한 뒤 붉은군대에 복무했다.
  • 1920–1934체카·GPU·OGPU에서 근무했고, 카바르다발카르 OGPU 지역부서장까지 올랐다.
  • 1934–1937카바르다발카르 자치주·공화국 국가보안부서를 이끌고 특별 트로이카 의장을 맡았다.
  • 1937–1938카바르다발카르 내무인민위원을 지낸 뒤 소련 NKVD 감옥부 부부장과 부장으로 솔로베츠키 특별감옥 수감자 처형에 직접 관여했다.
  • 1938–19391938년 10월 체포되어 1939년 2월 23일 총살되었고, 1955년 사후 복권되었다.

블라디미르 예피모비치 체사르스키

Владимир Ефимович Цесарск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유대계) 1895–1940 ✕ 처형

대숙청의 회계장부를 쥐었던 예조프의 심복

1938년 여름, 심사를 기다리는 대량작전 「앨범」이 중앙에 10만 명분 넘게 쌓였다. 그 서류 더미에서 유죄와 형량을 확정하던 회계등록부장이 체사르스키였다.

오데사의 사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1915년부터 사회혁명당과 보로트비스트를 거쳐 1919년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1930년대 당 중앙위 기구에서 일하다 1935년부터 중앙위 서기 예조프의 보고담당 보좌관이 되었고, 예조프가 내무인민위원부를 맡자 그를 따라 들어가 그를 위해 신설된 인민위원 특임전권위원 자리를 거쳐 회계등록을 총괄하는 GUGB 제8부장이 되었다. 대량작전의 「앨범」 심사와 처형 명부 실무가 그의 손을 거쳤고, 1937년 국가보안 상급소좌로 승진했다. 1938년 비밀정치부(제4부)장과 모스크바주 NKVD 국장을 지낸 뒤 우흐토-이젬스키 수용소장으로 밀려났고, 예조프 몰락 직후인 1938년 12월 체포되어 1940년 1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되었다. 2002년 복권이 거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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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9사회혁명당·보로트비스트 활동가
  • 1930–1935당 중앙위 배치부·공업부 실무 간부
  • 1935–1937당 중앙위 서기 예조프의 보고담당 보좌관
  • 1936.10–11내무인민위원 직속 특임전권위원
  • 1936.11–1938.03GUGB 제8부(회계등록)부장 · 「앨범」 심사·명부 실무
  • 1938.03–05GUGB 제4부(비밀정치)부장
  • 1938.05–09모스크바주 NKVD 국장
  • 1938.09–12우흐토-이젬스키 수용소장

니콜라이 갈락티오노비치 니콜라예프-주리드

Николай Галактионович Николаев-Журид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97–1940 ✕ 처형

군 숙청과 민족 작전을 지휘한 예조프의 방첩 책임자

1938년 10월 체포된 뒤 그는 독일·폴란드·프랑스를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자백」했다. 2년 동안 그가 남들에게서 받아 내던 바로 그런 종류의 자백이었다.

코노토프의 우크라이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키예프에서 김나지움을 마치고 법학부를 다니다 제정군 하급 장교로 복무했고, 1918년 적군에 들어갔다. 1919년부터 체카 군 방첩에서 일했으며 예브도키모프 아래에서 우크라이나와 북캅카스 보안기관을 거쳐 올라왔다. 1936년 말 모스크바로 옮겨 NKVD 작전부장이 되었고, 1937년부터 적군 탄압의 주무 부서인 특수부(제5부)와 방첩부를 차례로 이끌며 폴란드·독일·라트비아·조선인 민족 작전을 감독했다. 1938년 10월 체포되어 1940년 2월 예조프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됐다. 2013년 러시아 대법원은 그를 복권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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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1918제정군 하급 장교
  • 1918–1919적군 입대, 정보 업무
  • 1919–1921체카 군 방첩 요원
  • 1921–1930우크라이나·북캅카스 보안기관 근무
  • 1930–1932OGPU 특수부 부부장
  • 1935–1936레닌그라드주 NKVD 부책임자
  • 1936–1937NKVD 작전부장
  • 1937–1938GUGB 특수부(제5부)장·방첩부장
  • 1938–1940체포, 재판과 처형

표트르 표도로비치 불라흐

Пётр Фёдорович Булах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인 1898–1938 ✕ 처형

기한보다 먼저 쏘기 시작한 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국장

1938년 봄 그의 사건을 정리한 결정문은 이렇게 썼다. '모든 범죄 행위는 내무인민위원부 국 기구에 침투하여, 국장 불라흐의 정치적 근시안과 무사안일 덕분에 튼튼한 둥지를 틀은 계급적 적들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북캅카스에서 잔뼈가 굵은 '북캅카스파' 체키스트로, 다긴이 고리키주로 옮겨 가자 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제3부장에서 국장으로 올라섰다. 1937년 쿨라크 작전에서 예정된 기한보다 앞서 7월 29일에 작전을 개시해 프리놉스키의 격렬한 반응을 불렀고, 평균을 웃도는 숫자를 제안하며 상한을 훨씬 초과해 체포를 밀어붙였다. 지역 체키스트의 자의에 대한 불만이 모스크바에 닿으면서 1938년 3월 해임되고 4월 말 체포되었으며, 1938년 7월 28일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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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1936북캅카스 체카·OGPU·NKVD 요원
  • 1936–1937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제3부장
  • 1937–1938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국장
  • 1937기한 전 대량작전 개시, 상한 초과 집행
  • 19383월 해임, 4월 체포
  • 1940총살

그리고리 표도로비치 고르바치

Григорий Фёдорович Горбач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인 1898–1939 ✕ 처형

옴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상한 증액을 몰고 다닌 '북캅카스파' 체키스트

옴스크주에 승인된 1급 한도는 1,000명이었다. 1937년 8월 15일 고르바치는 한도 증액을 청하는 암호전보를 예조프에게 보냈다. '8월 13일 현재 옴스크주에서 1급으로 5,444명이 체포되었고...'

예브도키모프가 1934년 국가정치국 안의 '자기 사람'으로 꼽은 북캅카스파 체키스트로, 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부국장을 지냈다. 1937년 옴스크주 NKVD 국장으로서 상한 증액 암호전보를 예조프에게 보내 한도를 9천 명 늘렸고, 이어 미로노프의 뒤를 이어 서시베리아(노보시비르스크주) NKVD를 맡아 숙청과 대량작전을 함께 밀어붙인 지도자로 꼽힌다. 류시코프 망명 뒤인 1938년 여름 하바롭스크 변경주 NKVD 국장으로 파견되었으나 그해 11월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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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1936북캅카스 체카·OGPU 요원
  • 1936–1937오르조니키제 변경주 NKVD 부국장
  • 1937옴스크주 NKVD 국장, 한도 9천 명 증액
  • 1937–1938노보시비르스크주 NKVD 국장
  • 1938하바롭스크(극동) 변경주 NKVD 국장
  • 1938–193911월 체포, 총살

이반 페트로비치 포파셴코

Иван Петрович Попашенко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인 1898–1940 ✕ 처형

쿠이비셰프주에서 대량작전 트로이카에 든 '북캅카스파' 체키스트

쿠이비셰프주 NKVD 국장으로서 1937년 명령 제00447호의 특별 트로이카에 참여해 탄압을 집행했고, 모스크바에서는 대숙청 관련 체포 작전을 지휘했다.

보로네시현 농촌의 우크라이나인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사마르칸트에서 자랐다. 1918년 입당해 투르키스탄과 북캅카스의 특별부에서 경력을 쌓은, 예브도키모프가 이끈 '북캅카스파'의 일원이었다. 1937년 1~9월 쿠이비셰프주 NKVD 국장으로 명령 제00447호에 따른 특별 트로이카에 들어 탄압을 집행했다. 가을에 모스크바로 옮겨 NKVD 행정경리국장과 작전부장을 지내며 '우익·트로츠키 지하조직'과 민족 작전 관련 체포·수색·호송을 맡았다. 1938년 11월 체포되어 1940년 1월 총살되었고, 2013년 복권 불가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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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볼셰비키당에 가입하고 사마르칸트 주 혁명재판소 서기를 지냈다.
  • 1920–1935투르키스탄과 북캅카스에서 체카·GPU·OGPU의 특별부서와 작전부서를 맡았다.
  • 1935–1937아조프·흑해 변경주 NKVD 부국장을 지냈다.
  • 1937쿠이비셰프주 NKVD 국장과 볼가 군관구 NKVD 특별부서장을 맡았으며, 명령 제00447호 특별 트로이카에 참여했다.
  • 1937–1938모스크바에서 NKVD 행정경리국장, 제2 작전부장, 제3 특별부장을 지냈다.

보리스 아르카디예비치 야르체프

Борис Аркадьевич Рыбки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1899–1947 ✕ 의문의 교통사고사

정보관의 얼굴로 수행한 위험한 외교

그는 1938년 4월 핀란드 측에 독일이 핀란드를 거쳐 레닌그라드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리스 아르카디예비치 리브킨은 야르체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소련의 정보관이자 외교관이었다. 1938년 그는 핀란드에 대한 독일의 위협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비밀 협상을 시작했지만, 영토 교환 요구는 합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실패한 접촉은 협상과 안보 불신이 얽힌 채 겨울전쟁으로 향하던 소련·핀란드 관계의 첫 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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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예카테리노슬라프 체카에 입문
  • 1924–1929OGPU 반정보 부문 간부
  • 1931–1935이노 OGPU 중앙아시아·해외 공작
  • 1935–1938헬싱키 소련 공사관 영사, 야르체프 명의 활동
  • 1938–1939핀란드와 비밀 협상 담당
  • 1941–1943스톡홀름 소련 공관 정보 거점 책임
  • 1944–1945동유럽 비합법 공작·공작원 침투 부서장
  • 1947MGB 대외특수공작 중 사망

티모페이 암브로시예비치 스트로카치

Тимофей Амвросиевич Строкач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인 1903–1963 ○ 병사

베리야가 '수용소 먼지'로 위협하고 흐루쇼프에게 쿠데타를 경고한 내무장관

베리야가 전화로 "우리는 당신을 기관에서 쫓아내고 체포해 수용소에서 썩게 할 것이며, 가루로 만들어 수용소 먼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대조국전쟁 시기 30만 빨치산을 지휘한 우크라이나 파르티잔 사령부 책임자로, 이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무장관을 지낸 소비에트 보안기관 간부다. 전후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 반란군(UPA) 진압을 직접 지휘하며 대규모 체포를 주도했고, 스탈린 사후 라브렌티 베리야에 의해 르비우 주 경찰청장으로 좌천되었다. 1953년 6월 베리야가 당 기관을 우회해 MVD의 독자적 권력을 구축하려 한다고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경고했으며, 베리야로부터 '수용소 먼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이 사건은 베리야 체포 결의의 결정적 방아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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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1946우크라이나 SSR 내무부인민위원
  • 1942–1945우크라이나 파르티잔 운동 참모장
  • 1946–1953우크라이나 SSR 내무장관
  • 1953.03–06르비우 주 내무국장
  • 1953–1956우크라이나 SSR 내무장관 (복귀)
  • 1956–1957소련 내무차관 겸 국경·내무군 총국장

세묜 데니소비치 이그나티예프

Семён Денисович Игнатье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04–1983 ↓ 실각 1953

스탈린 말기의 마지막 MGB 장관

스탈린이 이그나티예프를 불러 "의사들에게서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네 목을 짧게 해주겠다"고 위협했다. 흐루쇼프는 1956년 비밀연설에서 이 장면을 공개 증언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자란 당 조직 전문가. 부랴티야·바시키르·벨라루스 등 민족 공화국에서 당 제1서기를 지내다 스탈린 말기 MGB 장관에 기용되었다. 의사 음모와 밍그렐 사건을 지휘했고, 스탈린의 직접적 위협 아래 복종했으나 체카 출신이 아닌 온순한 당료였기에 처형을 면했다. 실각 후 타타르 공화국 당 서기로 복귀해 타타르어 보존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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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1940년대당 조직·선전 라인에서 성장, 중앙위 관료로 승진
  • 1951–1953MGB 국가보안장관, 스탈린 말기 보안기관 수장
  • 1952–1953의사 음모 수사와 말기 반유대주의 공포 국면에 관여
  • 1953스탈린 사후 베리야에게 공격받고 MGB에서 축출
  • 1950년대–1960년대처형은 피하고 지방 당직으로 밀려남

바실리 스테파노비치 랴스노이

Василий Степанович Рясно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계 1904–1995 ○ 자연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진압을 지휘한 NKVD 내무인민위원

"7월 20일까지 자진 출두하면 사면한다. 이후의 모든 자는 조국의 배신자로서 체포·엄벌·섬멸될 것이다." — 1945년 5월, 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으로서 UPA에 내린 최후통첩.

사마르칸트 출신으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콤소몰·당 경력을 쌓은 뒤 1937년 당 충원으로 NKVD에 들어갔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우크라이나 SSR 내무인민위원으로서 UPA와 민족주의 지하조직을 무력 진압하는 작전을 지휘했으며, 종전 후에는 대규모 사면 회유와 가족 추방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폈다. 이후 소련 내무차관, 국가보안차관 겸 MGB 제2총국(방첩) 국장을 거쳐 1952년 후보 중앙위원이 되었으나, 1956년 '장교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로 해임된 후 건설 부문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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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1933투르크메니스탄 콤소몰·당 활동; 모스크바 전연방 공업아카데미
  • 1933–1937MTS 정치부장, 스탈린그라드 지역구 당 서기
  • 1937–1941GUG NKVD 방첩부 요원 → 과장
  • 1941–1943고리키주 NKVD/NKGB 국장
  • 1943–1946우크라이나 SSR 내무인민위원
  • 1946–1952소련 내무제1차관 → 내무차관
  • 1952–1953소련 국가보안차관 겸 MGB 제2총국(방첩) 국장
  • 1953–1956모스크바·모스크바주 MVD 국장

게오르기 카르포비치 치뇨프

Георгий Карпович Цинё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07–1996 ○ 자연사

브레즈네프가 KGB 안에 심은 또 하나의 눈

장군은 배신하지 않는다 — 20년 뒤 체포된 CIA 이중간첩 폴랴코프에 대한 첫 경고가 왔을 때 치뇨프가 한 말이다.

브레즈네프가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당 시절부터 신임한 야금 기술자 출신 KGB 간부로, 부의장 자리에서 15년간 안드로포프 의장의 움직임을 총비서에게 직접 보고한 'KGB 안의 브레즈네프의 눈'이었다. 육군대장·사회주의노동영웅까지 올랐으나 음모와 전횡으로 동료들의 평판은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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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1939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야금 공장 노동자 · 기술자
  • 1939–1941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당 간부 (브레즈네프 아래서 근무)
  • 1941–1945군 정치위원: 칼리닌 전선 폴리트국 부국장 → 제57군 폴리트부장
  • 1945–1951소련 측 오스트리아 연합국위원회 보좌관 · 부최고위원
  • 1953–1958주독 소련군 특별부장 (MVD/KGB)
  • 1966–1967KGB 제3국장 (군 방첩)
  • 1967–1970KGB 제2총국장 (방첩)
  • 1970–1982KGB 부의장 (군 방첩·수사부서 총괄)
  • 1982–1985KGB 제1부의장
  • 1985–1992국방부 총감찰관단 감찰관

파벨 아나톨리예비치 수도플라토프

Павел Анатольевич Судоплат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07–1996 ○ 자연사

트로츠키를 제거한 스탈린의 첩보 거장, 결국 스탈린의 감옥에서 15년

베리야는 우리가 추천한 사람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 하나였다: '그들이 정말로 필요한가?' — 『특수임무』

멜리토폴의 제분업자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에 붉은군대에 뛰어든 소년병은 남북전쟁의 무법지를 헤치고 GPU의 암약요원으로 성장했다. 1938년 로테르담에서 스탈린의 친필 명령으로 OUN 지도자 코노발레츠를 암살했고, 1940년에는 나움 에이팅곤과 함께 '오리 작전'을 지휘해 트로츠키를 제거했다. 독소전쟁기에는 제4국장으로서 적 후방의 파르티잔·사보타주 활동과 원자력 첩보(그룹 'S')를 총괄했다. 1953년 베리야의 '공범'으로 체포되어 15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석방 후 필명으로 역사소설을 쓰며 살다가 소련 붕괴 뒤인 1992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그의 회고록 『특수임무』는 소련 정보기관의 가장 내밀한 작전들을 처음으로 공개한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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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1921붉은군대 소년병; 포로·탈출 후 오데사에서 부랑자 생활
  • 1921–1932우크라이나 GPU·OGPU 정보장교로 두각을 드러냄
  • 1933–1938OGPU·NKVD 외국부(INO) — 베를린 OUN 내부 침투, 해외 암약
  • 1938코노발레츠 암살(로테르담); NKVD 외국정보국장 대행(11월–12월)
  • 1939–1941외국정보부국장; '오리 작전' — 트로츠키 암살 지휘
  • 1941–1946NKVD 제4국장 — 적 후방 파르티잔·사보타주 전쟁; 원자력 첩보 그룹 'S' 지휘
  • 1946–1953전후 대NATO 사보타주 작전; MVD 제1총국 부국장 (1953)
  • 1953–1968베리야 '공범'으로 체포, 15년형 — 블라디미르 교도소에서 복역
  • 1968–1996석방 후 필명으로 소설 집필; 1992년 완전 복권, 회고록 『특수임무』 출간

파벨 야코블레비치 메시크

Павел Яковлевич Мешик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0–1953 ✕ 처형

베리야 측근이자 스탈린 대숙청의 집행자

1949년 8월 29일 세미팔라틴스크 실험장에서 실시된 소련 최초의 핵실험(22킬로톤)에 참가했다.

소련의 국가보안 간부이자 중장으로, 스탈린 대숙청을 실제로 조직한 집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베리야 측근이었다. 코노토프의 기계공장에서 자물쇠공으로 일하다 1931년 사마라 에너지 연구소에 들어갔고, 1932년 3월 당 중앙 결정으로 국가보안 기관에 배치되어 OGPU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1941년 2월 NKVD 분리 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인민위원이 되어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탄압을 조직했다. 1953년 3월 베리야에 의해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이 되어 강경 진압을 주장한 주 내무부장들을 해임했고, 6월 30일 키예프에서 체포되어 12월 23일 처형됐으며 2000년 재활이 거부되고 형량이 징역 25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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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41NKVD 수사부장, 경제총국 부국장
  • 1941우크라이나 국가보안인민위원
  • 1941–1943NKVD 경제국장
  • 1943–1945스메르시 부국장
  • 1945–1953제1총국 부국장(원폭 계획 보안·방첩)
  • 1953우크라이나 내무장관
  • 1953체포, 재판과 처형

세묜 쿠지미치 츠비군

Семён Кузьмич Цвигу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7–1982 ✕ 자살

브레즈네프가 안드로포프 옆에 심은 감시자

1982년 1월 19일, 수슬로프와의 격렬한 대면 후 다차 서재에서 권총 한 발. 당일 소집된 의사들은 심장마비로 사망진단서를 썼다.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 출신으로 역사 교사에서 NKVD에 입문해 몰다비아에서 브레즈네프의 신임을 얻었고, 1967년 KGB 제1부의장 겸 제5국장으로서 반체제 인사 탄압을 총괄했다. 1982년 1월 의문의 권총 사망은 수슬로프의 급서와 안드로포프의 당직 이동,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이어지며 크렘린 권력 구도의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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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1939역사 교사 · 중학교 교장
  • 1939NKVD 입대
  • 1941–1945남서부·남부 전선 및 SMERSH 복무 (전선 기록 논란)
  • 1951–1953몰다비아 MGB 부장관: 브레즈네프와 인연
  • 1957–1963타지크 KGB 의장
  • 1963–1967아제르바이잔 KGB 의장
  • 1967–1982KGB 제1부의장 · 제5국장: 반체제 탄압 총괄

그리고리 표도로비치 그리고렌코

Григорий Фёдорович Григоренко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8–2007 ○ 자연사

SMERSH 라디오 게임에서 KGB 제2총국까지 40년 방첩의 설계자

그리고렌코가 직접 조직하고 수행한 SMERSH 라디오 게임은 181건에 달했다 — '자가드카(수수께끼)', '투만(안개)' 등 암호명으로 압베어와 체펠린을 교란하며 독일군 사령부에 허위 정보를 주입했다.

그리고리 그리고렌코는 소련 방첩 기관의 중추를 40년 넘게 떠받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SMERSH에서 181건의 라디오 게임을 직접 수행하며 압베어와 체펠린을 상대로 기만 작전을 지휘했고, 이후 MGB와 KGB로 이어지는 방첩 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1970년부터 1983년까지 KGB 제2총국장을 맡아 CIA와 서방 정보기관의 심층 침투 요원들을 연쇄 적발하는 체계를 구축했으며, 1978년부터는 KGB 부의장을 겸임하며 유리 안드로포프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다. 그의 방첩 시스템은 외국 정보기관의 모스크바 거점을 수년간 마비시켰고,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방첩의 방법론적 토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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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1942NKVD 특별부 작전장교, 남서전선 및 스탈린그라드 전투 참전
  • 1943–1946SMERSH 3과 선임작전장교, 181건의 라디오 게임 수행
  • 1954–1956헝가리 주재 KGB 대표부 제1부대표
  • 1962–1969KGB 제1총국 대외방첩국장
  • 1970–1983KGB 제2총국장
  • 1978–1983KGB 부의장 (제2총국장 겸임)
  • 1983–1989소련 일반기계제작부 차관

비탈리 바실리예비치 페도르추크

Виталий Васильевич Федорчук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8–2008 ↓ 전보 1982

안드로포프 뒤의 짧은 KGB 의장

1982년 12월 내무장관으로 부임한 페도르추크는 첫 확대 합동회의를 내무부 청사가 아닌 루뱐카의 KGB 건물에서 소집했다. 한 장성은 훗날 '그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우크라이나 빈농 가정 출신의 군 방첩 장교로, 할힌골 전투와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실전을 겪은 뒤 SMERSH와 KGB 군 방첩 계통에서 경력을 쌓았다. 1970년부터 12년간 우크라이나 KGB 의장으로 공화국 보안기관을 이끌며 브레즈네프 후기 내내 자리를 지켰고,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이 되자 소련 KGB 의장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7개월 만에 내무장관으로 이동해 약 9만 명의 경찰 간부를 부패 혐의로 해임하는 숙정을 단행했으며,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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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70년대우크라이나와 군 방첩 계통에서 장기 보안 경력 축적
  • 1970–1982우크라이나 KGB 의장, 공화국 보안기관을 지휘
  • 1982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이 되자 KGB 의장으로 승진
  • 1982–1986곧 내무장관으로 이동, 안드로포프-체르넨코기의 규율 캠페인에 관여
  • 1986고르바초프 집권 뒤 해임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골루시코

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Голушко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37–2025 ○ 자연사

소련·우크라이나·러시아 3개국 보안기관을 두루 거친 KGB 우크라이나 공화국 KGB의 마지막 의장

그는 회고록 제목처럼 소련·우크라이나·러시아 3개국 보안기관에서 근무했다. 1994년 10월 사태 관련자 사면을 막으라는 옐친의 요구를 거부하고 “러시아 장교로서 국민에게 한 맹세를 지켰다”며 사임했다.

소련 국가보안기관에서 경력을 쌓아 우크라이나 공화국 KGB의 마지막 의장(1987–1991)을 지낸 인물이다. KGB 제5총국(이념적 방첩 및 반체제 탄압)에서 오래 근무하며 민족주의 감시와 반소 활동 단속을 전담하다가, 페레스트로이카기 우크라이나 공화국 보안기관 수장으로 발탁되었다. 소련 해체 후에는 잠시 독립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국(SBU)을 이끌었고, 이후 러시아로 옮겨 보안장관과 연방방첩국(FSK) 국장을 역임하며 3개국 보안기관에서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남겼다. 러시아 보안장관 시절 1993년 10월 사태 수감자 사면 문제로 옐친 대통령과 갈등하다 사임하였으며, 회고록 『3개국의 특별기관에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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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1963케메로보 검찰청 수사관
  • 1963–1974케메로보주 KGB, 작전요원 → 제5과 부과장
  • 1974–1983KGB 제5총국 제2과(민족주의 담당) 과장
  • 1983–1984KGB 제5총국 부총국장
  • 1984–1987KGB 사무국 제1부국장 겸 당직근무국장
  • 1987–1991우크라이나 공화국 KGB 의장, KGB Collegium 위원
  • 1991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NBU) 의장 대행
  • 1992–1993러시아 보안부 제1차관
  • 1993러시아 보안장관
  • 1993–1994러시아 연방방첩국(FSK) 국장